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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15의 게시물 표시

지금 안아주라 /Peter Han

    지금 안아주라      졸업 후 앞만 보며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강 기자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아내가 떠나고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에 정진했다. 빈자리란 어린 아들을 직접 키우는 일이었다. 주변에서는 아이를 위해 그렇게까지 희생할 필요가 있느냐며 조언했지만 사회적 성공은 더 이상 그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아내를 떠나보낸 후 그에게 가장 원망스러웠던 일은 아내를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사랑한다 말해주지 못한 자신이었다. 그는 아내를 보낸 후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가치관이 달라져있었다. 이젠 남은 아들 에게는 그런 후회를 하고 싶지 않기에 망설임 없이 사표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기자였던 본인의 장점을 살려 논술강사를 하며 하면 티도 안 나지만 안하면 티가 난다는 집안 살림과 아이를 키우며 작은 일상에 행복해 한다. 사람마다 슬픔을 벗어나는 방법이 다르듯 그는 아픈 상처와 분노를 글쓰기와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하나씩 정리하면서 이제는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정도까지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방송을 통해 그의 사연이 소개되고 최근에는 <지금 꼭 안아 줄 것>이라는 책까지 출판한 후 예의치 않게 유명인사가 되면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들려주는 다음 세 이야기는 항상 똑같다.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 그러니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꼭 안아주라는 세 가지였다. 유명한 철학자 아내들은 악처였다는 말처럼 아내 죽음은 그로 하여금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했고 이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라 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특별한 경험들은 철학자가 되고도 남게 만들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강물이 하염없이 바다를 향해 흘러가듯 인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쁨

12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13    그만큼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여러분은 또한 기뻐 뛰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14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하면 복이 있습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15    여러분 가운데에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악을 행하는 자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서 고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16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17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우리에게서 먼저 시작되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하겠습니까? 18    "의인도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하면서 자기의 영혼을 신실하신 조물주께 맡기십시오. <베드로 전서 4장> *주일엔 말씀만 보내드립니다.   최고의 설교는 말씀 그 자체입니다.

사진작가의 사진과 삶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상영 안내

사진작가의 사진과 삶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대한극장에서 3월3일 까지 상영하는데 시간표는 3월1일 14:15, 3월2일 18:25, 3월3일 12:10, 20:10 입니다. 아름답고 경이로워 때로 참혹함을 잊을 정도다. 거장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사진과 삶을 빔 벤더스가 다큐멘터리 필름에 담았다. 공동감독은 살가두의 아들인 줄리아누 히베이루 살가두이다. 빔 벤더스는 살가두의 극도로 사실적인 사진 기법을 연장해내듯 흑백 촬영으로 인생과 자연을 포착한다(공동감독 줄리아누는 컬러 촬영을 담당했다). 감독은 반투명 거울에 작품사진과 작가 살가두의 이미지를 겹쳐 빛을 조율하며 관객을 이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살가두의 내레이션을 따라가는데 종종 여기에 빔 벤더스의 논평도 개입된다. 내레이션마저도 인류와 문명에 대한 꽤나 성찰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벤더스의 예술가 다큐전작인 <피나>가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거장 피나 바우쉬에 대한 '동'(動)적 헌사였다면,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은 사진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문명관에 대한 '정'(靜)적 헌사다. 이 영화는 2014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특별상을 수상했다. 브라질의 한 농장에서 태어난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상파울루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군사독재에 맞서 투쟁하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카메라를 만난 살가두는 성공적 미래를 포기하고 전 재산을 걸어 장비를 구비한 후 국제분쟁과 기근의 현장, 남미와 아프리카 곳곳을 다니며 세상의 소금과 같은 인간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인간은 참으로 흉포한 짐승이다. 문명의 광기와 인륜의 폐허를 경험한 살가두는 이를 자신의 고통으로 앓으며 인간이라는 종족에 대한 구원의 기대를 접게 된다. 브라질로 낙향한 그는 황무지가 된 고향의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실험을 시작한다. 이는 10년간 지속되어 놀라운 결과로 이어지는데, 죽은 땅에 나무들이 자

내 안의 하나님께 이르는 길 <이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가 ? 나 자신의 건강과 기쁨과 안위만을 위한 것이라면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게 되어 있습니다 . 자신만을 위한 것은 개도 고양이도 돼지도 모두 마찬가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인간이란 영적인 부분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에 자신만을 위한 삶에 대하여 그 어떤 부족함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 이 부족을 느끼는 자신의 영혼의 소리를 지나치지 말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그 속에 자신만의 길 그리고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숨겨져 있습니다 . < 이주연 >   *오늘의 단상* 수레바퀴는 이끄는 소의 발자국을 따라 가듯, 인생 수레바퀴는 마음에서 내뱉는 말에 이끌려 지어져 갑니다. <이주연>

책 한 권의 혁명

책 한 권의 혁명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의미하지 않다. (프리드리히 니체) - 인디고 서원의《정의로운 책읽기》중에서 - * 하룻밤 사이에 혁명이 일어나고 역사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날 밤 읽은 책 한 권, 글 한 줄에 따라 내 인생의 역사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혁명에 섬광 같은 빛이 될 수 있습니다.  /Godowon Morning Letter

행복으로 가는 길

행복으로 가는 길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하지만 행복의 조건이란 자칫 잘못하면  물질적인 것에만 치중 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기도 하다 . ‘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것이다 . 좀 더 예뻐지면 행복해질 것이다 . 사랑을 하면 행복해질 것이다 . 건강하면 행복해 질 것이다 . 멋진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면 행복해 질 것이다 . 아기가 생기면 행복해질 것이다 .’ 등 끝없이 펼쳐지는 욕망을 담은 수많은 행복의 조건들이 여기에 존재한다 . 과연 행복에 조건이 있을까 ? 등록금이 없어서 진학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곧 행복이고 얼굴이 못생겨서 무시를 당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외모가 최고의 조건이 될 것이다 . 몸이 아픈 사람은 행복의 다른 이름을 건강이라고 생각 할 테고 ,   불임부부는 임신만큼 소중한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행복의 요소들이 채워진다고 해서 완벽한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 한 가지 행복을 얻게 되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니까 말이다 . 과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술술  잘 풀리는 것이 행복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 진정으로 값진 행복은 고난과 어려움에 부딪히고 깨질 때에야 발견할 수 있다 .   좌절과 절망을 딛고 일어섰을 때에서야 맛볼 수 있는 행복의 달콤함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는다 . 물질적 풍요를 최우선으로 여기던 건강한 이들도 막상 병을 앓게 되면 돈도 , 명예도 , 학벌도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아무리 부유한 권력가라고 해도 병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행복의 조건을   ‘ 건강 ’ 으로 재정립하고 마는 것이다 .

[지혜로운 삶과 행복한 삶] 김진홍의 아침묵상

아침묵상 제목과 날짜 지혜로운 삶과 행복한 삶 2015-2-27 전도서는 욥기, 잠언, 아가서와 함께 지혜의 문서로 분류된다. “참된 지혜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도서를 히브리어로는 “코헬레스의 말”이라 하고 영어로는 Ecclesiastes라 한다. 코헬레스란 말은 토론자란 뜻이고 에클레시아스테스는 모임에 참석한 자, 즉 회합자(會合者)란 뜻이다. 그래서 전도서는 “지혜를 배우기 위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토론한 내용을 적은 글”이라 할 수 있다. 전도서가 논하는 주제는 “선(善)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이다. 2장 3절에서 다음 같이 질문한다. “내 마음에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을까? … 천하 인생이 종신토록 살아감에 어떤 것이 값진 것일까?” 말하자면 인생에 있어 지상선(至上善)이란 무엇인가? (What is the summum bonum of man?)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는 책이 전도서 이다. 전도서의 시작은 세상만사 헛되고 헛될 뿐이란 고백으로 시작 한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전도서 1장 1절)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12장 1절)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장 13절) 전도서가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려는 교훈은 분명하고 단순하다. 명예, 재물, 사업, 쾌락 그 어느 것도 끝은 허무하다. 인생에서 참된 의미와 행복을 주는 삶은 오직 하나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삶이다. 이를 깨달아 실천하는 삶이 참 지혜이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은 이 지혜를 이미 얻게 된 사람들이니 성공한 사람들이요,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를 감사하며 긍지를 지니고 살아가자.

저항을 넘어 /다시 묵상함. 이주연

순응주의는 아첨과 같이 저급한 것입니다. 그러니 저항하십시오. 그러나 저항는 인생의 사춘기일뿐입니다. 마침내 순종하십시오. 나와 집단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하늘의 큰 뜻과 약속에! <2006 .="" 2.="" 28.=""> *오늘의 단상*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이는 남에게 봉사하는 길을 찾다 드디어 찾아낸 사람입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참다운 삶을 위한 훈화 글

  참다운 삶을 위한 훈화 글   남을 무시하지 말라 / 태공 "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여 남을 업신여겨서는 안 되며 , 자기가 크다고 생각해서 작은 사람을 무시해서도 안되고 , 용기를 믿고 적을 가볍게 대해서도 안된다 . "   힘으로 남을 이기려 하지 말라 / 맹자 " 힘으로 남을 이기려 하면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지만 진심으로 복종한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해서이고 , 덕으로써 남을 복종시키려 하면 마음 속으로 기뻐서 진심으로 복종하게 된다 . "   남을 해치고자 하면 자신이 먼저 다친다 / 태공 " 남을 판단하고자 하면 먼저 자기부터 헤아려 봐라 . 남을 해치는 말은 도리어 자신을 해치게 되니 , 피를 머금었다가 남에게 뿜으면 먼저자신의 입부터 더러워진다 . " 나를 칭찬만하는 사람을 조심해라 / 공자 " 나를 꾸짖어 말하는 사람은 나의 스승이요 , 나를 칭찬만 하는 사람은 나를 해하는 사람이다 . "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 / 공자 "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게 마련이다 . 착한 사람한테서는 그 선함을 배우고 , 악한 사람한테서는 그의 잘못을 보고 자신을 반성할 수 있다 . "

희망이 있습니까

» 자동차 사고로 목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지만 각종 보조공학 기기의 도움으로 새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상묵 교수 (44·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희망이 있습니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발령을  받은 아버지를 따라 이주했던 그는 해양학자가 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옵니다 . 열심히 공부한 결과 서울대에 입학해 해양지질학을 전공합니다 .   이후 국비유학생으로 미국 MIT 에서 지구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됐습니다 . 1 년에 평균 3 개월을 바다에서 지내며 해저 지형을 연구하던 이 교수는   2006 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데스밸리 지질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 학생들에게 과학자의 자세를 가르치기 위해 이 교수가 추진한 사업이었습니다 . 하지만 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차량 전복사고를 당해 목 아랫부분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고 맙니다 .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이 교수는 부단히 재활훈련을 했습니다 . 그리고 기적과 같이 6 개월 만에 강단에 복귀했습니다 . 그의 이야기를 담은 책 ‘0.1 그램의 희망 ’ 에서 이 교수는 “ 하늘은 모든 것을 가져가시고 희망이라는 단 하나를 남겨주셨다 ” 고 말합니다 . 결국 희망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 “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 라는 잠언 2 장 11 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정신을 차리게 하고 , 희망을 갖게 해줍니다 .    “덤으로 얻은 인생 2막 장애인 권익 위해 노력”   한겨레-푸르메재단 공동캠페인 <희망의 손을 잡아요- 우뚝 선 장애인> ②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교수 절망

말씀의 빛을 따라가는 삶 /나드향

말씀의 빛을 따라 걷기 어두운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삶은 성령님의 인도 하심을 따라 사는 삶일 것입니다. 가장 안전하고 초자연적인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삶이라 믿어집니다. 주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길이요 빛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앞두고 결정을 해야 하는데 또는 극심한 영적 전쟁의 치열한 전투에서 앞이 캄캄하고 어느 길을 가야 할지 모를때 기도의 불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성령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보내실것입니다. 말씀은 어두움 을 몰아내는 생명의 빛입니다. 늘 생명의 빛을 받아 살아간다면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몰라 혼란에 빠질 염려가 없을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신실하게 연구 한다면 우리가 가는 길이 더 환하게 보일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결정하고 따르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가는 길에 필요한 빛을 주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요. 마치 캄캄한 밤에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 가면 전깃불을 키듯이 말씀안에서 오랜 시간 기도로 보내면 주님께서는 이미 은혜 받았던 말씀으로 정확하게 빛으로 인도를 해주실것입니다. 얼마전에 여러 일로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여 쉬지 않고 기도를 계속 드렸는데 한밤중 기도를 하고 있을때 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 여호와께 맡겨라 하나님이 너의 아버지가 되신다 음성이 들렸습니다. 들을수 있는 음성으로도 말씀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로고스 말씀으로도 늘 연구하고 배우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잠잠히 사랑하다보면 어느날 말씀이 레마로 강하게 주실때가 있습니다. 어느 특정한 상황에 맞는 놀랍도록 강렬하게 살아 있는 그런 느낌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시는분이십니다. 성령님은 가끔은 위험의 순간에 또는 기도하는 여러 일들을 친히 음성을 들려 주실때도 있습니다..

승리를 확신하는 태도 /이한규목사

승리를 확신하는 태도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수치스럽게 하는 대적이 수치와 낭패를 당하게 해달라고 탄원했습니다(13-15절).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16절). 그런 승리의 역사를 통해 속히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심을 보여달라고 기도합니다(17절). 이 시를 쓸 때 다윗은 심령이 가난한 상태였고 실제로 사는 것이 힘든 상태였지만 그 와중에서도 최종승리를 확신하고 그런 최종승리의 때가 속히 오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사람이 고통에 빠지면 불평이 나오고 조급해집니다. 때로는 성도에게조차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신가요? 세상이 이렇게 불공정하게 펼쳐지는 것을 그냥 보고만 계신가요?”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성도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명과 약속에 초점을 맞추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패배와 고통의 얘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어도 최종승리를 확신하고 더 하나님을 찾고 더 믿음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야고보는 “시험을 만나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고통과 시험을 만나면 기뻐하며 환영할 수 있습니까? ‘성도의 최종승리’란 결과를 뻔히 알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최종승리란 뻔한 결과가 뻔하게 일어나게 하는 것이고 기도란 최종승리란 뻔한 결과가 더 빨리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최종승리란 뻔한 결과로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고통과 시험의 순간도 통과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고통과 시련이 있어도 마음 푹 놓고 최종승리의 때를 준비하며 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고대 건축기술 E07 잉카제국의 마추픽추

NGC 고대 건축기술 E07 잉카제국의 마추픽추 HDTV XviD go    http://youtu.be/GygRgoXSjJ0

[사무엘과 다윗(2)] 김진홍의 아침묵상

아침묵상 제목과 날짜 사무엘과 다윗(2) 2015-2-27 어제 글에서 적은 바처럼 사무엘은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바뀌는, 역사의 전환기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천직인 성직에 충실한 성직자였다.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그에게 백성들은 왕이 되어 달라고 거듭 간청하였기에,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왕이 될 수 있었던 그였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성직자로 일관하였다. 자신은 성직자로서의 자신의 직에 충실하면서 정치 지도자인 왕을 세웠다. 말하자면 그는 King-Maker로써 왕을 두 사람이나 세웠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무엘을 본받고 싶다. 나도 사무엘처럼 자신은 세속 권력인 정치가가 되지 아니하고, 성직자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면서 시대를 이끌 수 있는 좋은 정치가를 길러내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 사무엘이 세운 첫 번째 왕이 사울 왕이었다. 사울 왕은 불행하게도 실패한 왕으로 끝마쳤다. 사울의 실패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같이 일러준다.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사무엘상 15장 10절~23절 요약) 사울 왕이 실패한 원인은 위의 말씀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치를 베풀지 아니하고,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함에 급급하여 인기주의(Populism)에 영합한 정치를 펼쳤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의 정치가들의 행태를 보노라면, 사울 왕의 정치가 어떠하였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사울 왕의 정치가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자 아직 사울이 왕위에 있음에도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은 다음 왕으로 다윗에게 안수하였다. "사무엘이

그 풍성함으로 용서하시는 주님처럼

그 풍성함으로 용서하시는 주님처럼   교회 내엔 나쁜 사람도 있고 , 뾰족한 사람도 있고 , 상처와 원망 투성이도 있다 . 때론 목회자로서 수많은 아픔과 눈물을 경험할 때도 있고 심지어 버림을 받을 때도 있다 . 그 때마다 하나님께 , 주님이 내게 하신 대로 나도 따라 한다 . 묶어서는 안 된다 . 풀어 주어야 한다 . 하나님의 풍성하고 부요함 가운데 모든 것을 풀어 주어야 한다 . 만 가지 죄에도 불구하고 보혈의 공로로 나 같은 죄인을 죄 없는 자로 여기시는 하나님 , 그 풍성한 지혜와 지식과 은혜로서 용서하시는 주님처럼 또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야 한다 . - 화종부 목사의 ‘ 깊도다 ’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 에서 - 우리는 상대가 용서 받을 만한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 지금 용서를 해야 합니다 . 하나님은 독생자를 희생하신 그 은혜의 부요함을 죄인과 병자와 아무 공로 없는 자들에게 거저 주셨습니다 . 이것이 은혜입니다 . 행한 것이 없는 자 , 죄 많은 자 , 자격 없는 자 ,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한 일꾼 , 그들 모두에게 너무도 많은 복을 주시는 것 , 그것도 그냥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 우리는 이 감격의 은혜 앞에서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고 묶어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

[산마루서신] 본래의 나에 이르러 살기를

내가 창조주께서 지어주신 본래의 나에게 이르기 전엔 늘 행복을 찾아 헤매며 불행의 아쉬움을 지닌 채 방황합니다. 그리고 성공에 대한 강박감 속에서 그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나 아닌 나에 머물러 사는 것이 불행과 부자유의 시발점입니다. 특별히 가지고서도 누리지 못하고 이루고서도 든든하지 못한 까닭은 본래의 나에 이르러 살아가고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남의 삶을 흉내내고 나 아닌 나 밖의 잣대로 나를 재고 그들의 목적과 요구에 따라 살아 가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나는 어떤 나로서 살도록 지음 받은 것인가? 내가 왜 다른 이들의 표준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얼마만큼 이 땅에서 더 있다가 떠나갈 것인가? 오늘 하루 남의 삶이 아니라 나로서 나의 삶을 살도록 길을 갑시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언행을 일치하십시오. 말의 힘과 삶의 깊이가 더해질 것입니다. <이주연>

밝고 빛나게

밝고 빛나게 독립된 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스스로 서는 것을 말한다. 남에게 지배를 받지 않으며 남의 에너지를 의지하지 않는다. 남의 관심이나 사랑을 기대하며 그것이 없을 때 서운해 하지 않는다. 그것이 독립된 영이다. 하지만 독립된 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이들로 인하여 채워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이 묶임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도 드물다.        독립된 영의 한 특징이 무엇인가? 그것은 밝음이다. 독립된 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자유로우며 밝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으며 어려움이 있어도 그리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넘어져도 금새 툭툭 털고 일어난다. 그것이 독립된 영이다. 독립된 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온 세상이 자신을 대적해도 그리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냥 태연하게 자기의 길을 간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충전을 얻으며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독립된 영이 부족한 이들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둡다는 것이다. 그들은 우울하다. 어둡다. 그리고 매사에 비관적이다. 그들은 스스로 빛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다른 이들의 격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다른 이들이 인정하기 전까지 그들은 자신이 옳은 것인지, 바르게 가고 있는지 잘 확신하지 못한다. 우울하고 어두운 이들은 영적으로 땅 속에 거하는 것이다. 그들의 영에는 빛이 잘 비취기 어렵다. 그들은 그렇기 때문에 기생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다른 이들의 에너지를 취하여 먹고 살게 되는 것이다. 어둡고 우중충한 곳에서 사는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원리를 가르친다. 우울한 영들은 그렇게 다른 이들의 에너지를 빨아들이게 되며 거기에 근거해서 산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태가 이런 상태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모

“영성, 이성 도피 아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힘”

이어령 박사는 지난 2010년부터 5년간 양화진문화원에서 매달 한 차례씩 강연 또는 대담을 진행했다. 삶과 가족, 교육에서부터 사회와 경제, 문화를 논했고, 문화와 인물 등을 통한 성경 읽기, 그리고 전공인 소설과 인문학을 통한 ‘영성’ 탐구를 했다. 인생을 회고하는 대담도 진행했다. 본지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인 이어령 박사를 최근 서울 평창동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만나, ‘7년차 기독교인’으로서의 소감을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음력 설을 맞아, 이를 두 차례로 나눠 게재한다. [대담=류재광 편집국장, 사진=김진영 기자, 정리=이대웅 기자] ▲ 이어령 박사는 “세례를 받고 ‘문지방에 서 있다’고 말했는데, 7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여전히 죄인인 채로 문지방 위에 서 있다”며 “들어온 것도 나간 것도 아닌, 그 문지방 위의 긴장이 존재하는 한 죄인인 채로 하나님 앞에 서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영 기자 아무리 바뀌고 변해도 신 앞에선 피조물일 뿐 자신의 죄 인정 않는 사람이 대역죄 짓는 것  -‘세례’를 받으신지 벌써 7년째가 되셨습니다. 소감이 있으신지요. “기독교에 입문하고 ‘문지방’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문이 열린 것인지, 더 큰 문이 내 앞에서 닫힌 것인지 모르겠다고. 세례를 받은 사람의 말로는 격에 맞지 않지요.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문지방을 넘었다는 증거이고 이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이야기인데, 세례를 받고서도 저는 여전히 열린 문으로 들어가 있지 않고 문지방 위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나 마더 테레사의 서한을 보면, 저와 같은 말씀을 하고 있음을 아실 수 있습니다. ‘내가 크리스천이다’, ‘나는 이제부터 무죄한 자이다’는 말은 바로 피조물(被造物)이 조물이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바뀌고 변해도 신(神) 앞에서는 피조물일 뿐입니다. 피조물은 에덴에서 추방된, 신과 끊긴 상태로, 누구에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