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1월, 2020의 게시물 표시

새해를 열며, 🌷

새해를 열며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기인(奇人)이신 이지함(李之函) 선생의 호(號)는 토정(土亭)', 이 토정이라는 호(號)는 지금은 없어진 서울 마포나루 어귀에 토담집을 짓고 살았던 일에서 기인(起因)한 것이다. 오늘은 새해 첫날을 맞아. 신년 (新年)에 이야기에 많이 오가는 '토정비결(土亭秘訣)'에 대한 일화를 소개 하고자 합니다. 토정(土亭) 선생께서는, 언젠가 천안 삼거리에 위치한 한 주막집에 머무르시게 된 적이 있었다 한다. 마침 그 주막에는 각 지에서 올라 온 젊은 선비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한양에서 곧 있을 '과거(科擧)'를 보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과거에 급제(及第)하기를 바라고 공부를 해온 그들인지라, 당대(當代)에 큰 학자이시며 기인으로 명성(名聲)을 크게 떨치고 계신 토정 선생의 방을 찾아가 한 말씀을 듣고자 모이기에 이르렀다. 여러 젊은이들을 말 없이 바라 보시다가 문득 한 젊은 선비를 향해 이르시기를 "자네는 이번 과거에 급제할 운이 없으니, 서운하겠지만 그냥 고향에 돌아 가시게나." 하셨다. 모두들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민망해진 그 젊은이는 말없이 일어나 인사를 드리고는 뒷걸음질로 방을 빠져 나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청천벽력 같은 말에 아연해진 그 선비는 멍한 느낌에 주막을 나와서는 대문 옆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쪼구려 앉아 생각에 잠기었다. '그 동안 과거 급제를 목표로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해 왔는데~ 시험을 보기도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면 고향에선 나를 못난이라고 손가락질을 할테고, 대학자이신 선생의 말을 무시하고 과거를 보러가서 정말 낙방이라도 하면 평소에 흠모해 온 토정 선생의 말씀을 우습게 아는 놈이 되겠고,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멀거니 땅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마침 수 많은 까만 개미떼들이 줄을 지

🌻생명의 향기 | 의지의 힘과 우리의 선택🌻

🌻생명의 향기 | 의지의 힘과 우리의 선택🌻 시험받는 사람은 의지의 참된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람의 성격 가운데 있는 지배력, 곧 결정하고 선택하는 능력이다. 모든 일은 올바른 의지의 활용에 좌우된다. 선과 순결에 대한 욕망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거기에서 그치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악한 기질들을 정복하고자 바라고 소원하는 동안 멸망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를 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력을 주셨으므로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고,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애정을 지배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순결하게 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 있고, 우리의 의지를 그분께 드릴 수는 있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의 온 성격이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의지력의 올바른 활용을 통하여 완전한 변화가 생애에 이루어지게 된다. 의지를 그리스도께 굴복시킴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굳게 붙들어 줄 능력을 위로부터 받는다. 순결하고 고상한 생애, 식욕과 정욕에 승리하는 생애는 연약하고 요동하는 인간의 의지를 전능하고 확고한 하나님의 의지에 결합시키는 모든 사람에게 가능하다. ─ 절제생활, 112. 🌻Aroma of Life I The Power of the Will and Our Choice🌻 The tempted one needs to understand the true force of the will. This is the governing power in the nature of man,—the power of decision, of choice.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톨스토이 민화집 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이야기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 사람들의 사랑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실제로 사랑에 힘입어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는데 어색할 뿐 아니라 인색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는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는 일을 배우고 또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랑의 나눔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년 간 결혼 상담을 한 후 게리 채프먼은 다섯 가지의 기본적인 사랑의 언어, 즉 사람들이 사랑을 구사하고 이해하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생명의 말씀사)" 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이것입니다. 제1의 사랑의 언어: 인정하는 말 마크 트웨인은 "나는 한 번 칭찬을 받으면 두 달간은 잘 지낼 수 있다" 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일 년에 여섯 번 칭찬을 받으면 일 년 동안 사랑의 그릇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은 격려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칭찬하는 말이나 감사의 표현은 사랑을 잘 전달하는 힘이 있으며 당신이 그를 인정한다는 하나의 좋은 표현이 됩니다. 또한 우리가 사랑의 감정을 말로 전달하고 싶으면 온유한 말을 써야 합니다. 사랑은 온유하기 때문입니다. 제2의 사랑의 언어: 함께하는 시간 "함께하는 시간"이란 누군가에게 온전히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저 함께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하는

<세 황금문> 언어생활

이란 글을 보면, 언어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충고의 말이 나옵니다. "말하기 전에 세 황금 문을 지나게 하라. 다 좁은 문들이다. 첫째 문은 '그것은 참말이냐?' 그리고 둘째 문은 '그것은 필요한 말이냐?' 네 마음속에서 참된 대답을 하라. 마지막이고도 가장 좁은 문은 '그것은 친절한 말이냐?' 그 세 문을 지나왔거든 그 말의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염려 말고 크게 외쳐라." 옛날 우리네 선조들은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하면서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을 현명한 것으로 알아왔습니다. 반드시 말을 하여야 할 경우에는 "일언전십사(一言前十思)", 즉 "한마디의 말을 하기 전에 열 번 생각하라"고 충고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귀는 둘씩이나 주시면서 입은 하나만 만들어주신 것은 들은 것의 반만 말하라는 뜻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기간,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충성할 것인지 아니할 것인지를 입증할 수 있도록 은혜의 기간을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도록 죄를 지시는 분, 그분에게 우리의 죄들을 내려놓으라고 청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을 버리지 않고 우리 스스로 책임을 진다면 우리는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살아 계신 돌, 그리스도 위에 떨어져서 부서질 것이다. 그러나 그 돌이 우리 위에 떨어진다면 그것은 우리를 가루로 분쇄할 것이다. (설교와 강연 2 113.2) God gives us a probation in which we may prove whether or not we will be loyal to Him. Christ calls upon us to lay our sins upon Him, the Sin-Bearer, that we may represent God. But if we refuse to let them go, taking the responsibility ourselves, we will be lost. We may fall upon Christ, the living stone, and be broken, but if that stone falls upon us, it will grind us to powder. (Sermons and Talks Volume Two 113.2)

<늙으니까, 참 좋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물처럼 살 수 있는 자유 늙음이 아니면, 어찌 누리리~ 일하기 싫으면 놀고 놀기 싫으면 일하고 머물기 싫으면 떠나고 떠나기 싫으면 머물고 내가 나의 의지처 되어 바람처럼 살 수 있는 행복 늙음이 아니면 어찌 맛보리 회한의 벼랑 끝에 서서 돌려달라 돌려달라 악다구니를 쓴다해서 되돌아 올 청춘도 아니지만 사랑과 미움의 격랑 헤치며 인욕의 바다 허우적대던 그 맵고 짜고 쓰고 아리고 달콤했던 날들 기쁘고 즐겁고 이름답던 날들 성취감에 들떠던 지나간 기억들은 추억의 불쏘시개로 족한 것을 새해 한살을 더한 내인생이 이젠 계절로 치면 낙엽지는 늦 가을 하루로 치면 해 기우는 오후 황혼 쯤에 왔는데 여기서 무얼 더 바라겠는가 여기서 무얼 더 취하겠는가 서라벌 밝은 달아래 밤 늦도록 노닐던 처용처럼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시면 꽃 꺾어 바치겠다던 노옹처럼 고운님도 늙어 내 옆에 있으니 춤추고 노래하여 흘러 흘러 함께 가자구나 아~ 늙으니까 참 좋다!!~ 아직도 나에게는 등 토닥여 사랑 할 사람 사랑 할 일만이 남아 있으니 황혼길 인생, 멋멋지게 살다 멋지게 가자구나!! ㅡ庚子年 元旦ㆍ 靑覃ㅡ

진리로 나가는 길 세 단계

12세기의 영성가인 끌레르보의 버나드 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그가 자신의 책에서 진리로 나가는 길 세 단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되고 의롭게 되고 정결하게 되는 길은 먼저 결정적인 것은 겸손입니다. 겸손하고야 유순한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노를 쉬게 한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의 말은 언젠가는 터지게 마련이고 언젠가는 불의로 치닫기 마련입니다. 아주 낮추고 낮추어서 겸손하게 되면 말이 부드럽고 온유하고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모두 이해하는 마음, 자비로운 마음, 믿어주는 마음, 내 편에서가 아니라 저 편에서 생각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 차면 우리의 말은 전혀 달라집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순결을 지켜야 됩니다. 항상 내 마음을 내가 다스리고 깨끗한 순결, 입술이 깨끗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언어 폭력시대에 살고 있는데 언어폭력이 실제 폭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입니다. 말초 신경적이요 극단적이요 속된 말을 하고 잔인한 말을 합니다. 언어는 그 마음에 있고 그 인격에 있고 그 신앙에 있고 그 운명으로 치닫게 됩니다. “Thank You Our Lord..!”

자기 십자가를 지고 ..!🙏

사람은 범죄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이들 사이에 교통은 단절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의 죄를 그분의 몸에 지시고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돌아 가셨으며, 하늘과 땅의 깊은 골짜기에는 그 십자가로 인해 다리가 놓여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그 깊은 골짜기로 이끄셔서 놓여진 다리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신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설교와 강연 2 113.1) By transgression man was severed from God, the communion between them was broken. But Jesus Christ died upon the cross of Calvary, bearing in His body the sins of the whole world, and the gulf between heaven and earth was bridged by that cross. Christ leads men to the gulf and points to the bridge by which it is spanned, saying, “If any man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Matthew 16:24). (Sermons and Talks Volume Two 113.1)

자기 인생 산 어른들은 안다, 성공의 열망이 헛되다는 것을

자기 인생 산 어른들은 안다, 성공의 열망이 헛되다는 것을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4/20 15:04 [더,오래]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16) 도서출판 나무생각 창업과 함께 꿈꾼 모습이 있다. 나무생각은 창업 초기에 실버와 고령화에 대한 책을 우리 사회에 대한 의무로 생각하고 여러 가지 제안의 성격을 띤 책을 출간했다. 우선 우리 사회의 고령화 현상이 심각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현상 제시와 대안들을 차례로 출간했다. 창업 초기, 실버와 고령화에 대한 책을 출간했다. [사진 나무생각] 출간 초기에 발행했던 『고령사회 2018 다가올 미래에 대비하라』, 『가족, 부활인가 몰락인가』, 『여성 학교』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고령화는 지속되고, 가족의 형태는 기존의 사고를 넘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인권과 권리가 다양한 논의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고령화와 실버, 그리고 여성 사회 현상의 진화와 별개로 나 개인적인 꿈이 있었다. 나이 들어가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지혜와 혜안, 통찰을 엿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각계각층에서 일가를 이룬 분이나 삶을 아름답게 살아내신 분을 찾아가 그들의 지혜에 기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아무리 넘어서려고 해도 세월과 연륜을 통과하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세계였기에 흠모의 마음은 깊었다. 어쩌면 모자란 내가 그들의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좀 더 줄여보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고령사회와 실버에 관한 책을 만들면서 나는 가끔 상상에 빠지곤 했다. 나이 드신 진정한 어른을 찾아가 조곤조곤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고령화와 실버에 관한 책을 만드는 동안 한 채 있던 아파트의 대출은 늘어갔고, 어느 정도 체계를 잡았을 때는 아파트를 팔아야 했다. 그래서 인터뷰에 대한 꿈은 스멀스멀 잊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을

새로운 심령으로..!🦠

먼저 성도는 심령이 날마다 새로워 져야합니다. 심령은 마음의 영이며 "새롭게 된다"는 "새롭게 하다. 갱신하다"는 뜻으로 현재에 변화가 일어나는 상태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영이 날로 날로 새로워짐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심령의 변화와 갱신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할 때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의 행동의 원천인 심령이 새롭게 될 때 우리의 모습도 삶의 모양도 변화되게 됩니다. 또한 심령이 새로워진 사람은 새로움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입니다. 🙏

여러분의 건강지수는 얼마입니까?

여러분의 건강지수는 얼마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에는 얼마의 건강이 있습니까?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을 주께 바쳐,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사랑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건강하면 건강한 대로 사랑을 확인하고, 병들면 병드는 대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합니다. ‘사랑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리할 때 그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하게 은혜로 충만하게 될 때, 삶 자체가 소중해지고 세상도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정말로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

강건한 다리의 중요성..

■ 강건한 다리의 중요성 사람은 다리가 튼튼하면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다. 사람의 다리는 자동차의 바퀴와 같다. 바퀴가 망가 지면 자동차가 굴러갈 수 없다. 사람이 늙으면서 가장 걱정해야 하는것은머리카락 이 희어지는 것도 아니고 피부가 늘어져서쭈글쭈글 해지는것도아니다. 다리와 무릎이 불편하여 거동이 어려워지는 것을 제일 걱정해야 한다. 미국에서발행하는 '예방(Prevention)'이라는 잡지에 장수하는 사람의 전체적인 특징에 대해 다리 근육에 힘이 있는 것이라 고 정의하였다. 장수하는노인들은 걸음걸이가바르고 바람처럼 가볍게 걷는 것이 특징이 다. 두 다리가 튼튼하면 천수를 다할수있다 두 다리는 몸무게 를 지탱하는 고층 건물의 기둥이나 벽체와 같다. 사람의 전체 골격과 근육의 절반은 두 다리에 있으며 일생 동안 소모하는에너지의 70퍼센트를 두 다 리 에서소모한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큰 관절과 뼈는 다리에 모여 있다.젊은 사람의 대퇴골은 승용차 한 대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슬개골(膝蓋骨)은 자기 몸무게의 9배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대퇴부와종아리의 근육은 땅의 인력 과 맞서 싸우고 있으며 늘 긴장 상태에 있으므로 견실한 골격과 강인한 근육, 부드럽고매끄러운 관절은 인체의 ‘철(鐵)의 삼각(三角)’을 형성하여 중량을 지탱하고 있다. 두 다리는 사람의 교통수단이다. 다리에는 온 몸에 있는 신경과 혈관의 절반이 모여 있으며, 온 몸에 있는 혈액의 절반이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두 정강이가 튼튼하면 경락이 잘 통하여  뇌와 심장과 소화계통 등을 비롯하여 각 기관에 기와 혈이 잘 통한다. 특별히 넓적다리의 근육이 강한 사람은 틀림없이 심장이 튼튼하고 뇌기능이 명석한 사람이다. 미국의 학자들은 걷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건강상태를 가늠 할 수 있다고 했다. 70살이 넘은 노인들이 한 번에 쉬지 않고 400미터를 걸을 수 있으면, 그렇지 못한 또래의 노인들보다 6년 이상 더 오

선한 마음은, 🌱

선한 마음은,🌱 사랑의 응답은 사랑이요 사랑의 결과는 선함입니다. 사랑받는 사람의 마음은 선해집니다. 정말로 사랑받는 사람은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불쌍히 여기는 사람, 그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혹 사람들의 허물이 보이거나 남 잘못하는 게 보이거나 못마땅한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아직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죄를 구속하신 주님의 엄청난 사랑을 깊이 감격하고 보면 두 가지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불쌍히 보이는 사람밖에는 없고 모든 사람의 장점을 보게 됩니다. 단점이 보이지 않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사랑이 있는 고생

사랑이 있는 고생 사랑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머문다. 사랑의 척도가 그대로 행복의 기준이 되곤 했다. 그 사랑이 어려움을 동반한다고 해서 포기하면 사랑의 꿈은 사라진다. 사랑이 있는 고생은 더 큰 행복을 안겨준다. -  김형석의《행복 예습》중에서 - * 사랑은 때로 고통과 아픔을 수반합니다.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고생이 있는 사랑, 사랑이 있는 고생, 그래서 얻어지는 열매가 진짜 큰 행복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Godowon Morning Letter

김홍신 작가의 책 “하루 사용 설명서” 중에서,

📮김홍신 작가의 책 "하루 사용 설명서"중에서~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걸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생명인걸. 코막히면 안다. 숨쉬는것만도 행복인걸~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걸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엄청 큰 재산인걸 잃은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걸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걸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걸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게 행복인걸~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걸... ✔이세상의 주인공은 나!~~~ 오늘도 멋지고 당당하게 사십시오!

내가 겸손할 수 있습니까?

내가 겸손할 수 있습니까? 내가 스스로 내 마음을 비울 수 있습니까? 이 모든 악한 마음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Amen ..!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 인간은 가치지향적 존재이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값어치는 그가 어떤 가치관을 지녔느냐에 따라 규정되어진다. 그러나 때와 사람에 따라 가치를 지향하는 마음이 둔하여지게 되고 더러는 마비되기까지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과 충동에 따라 행동케 된다. 오늘날 우리가 날마다 듣고 보게된 각종 부패와 비리들은 그 밑바닥에 가치관의 상실 혹은 가치관의 부재가 원인으로 숨어 있다. 가치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가치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위기상황은 물질적 가치에 사로잡혀 정신적 가치를 잊고 있음에 원인이 있다. 이런 증세가 심하여지면 정신적 가치가 물질적 가치 앞에 굴복하게 되고 정신적 가치가 물질적 가치에 예속되게 된다. 심지어 크리스천들에게도 이점은 마찬가지이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 믿는 동기가 물질적 축복을 받고 세상적 영화를 누림에 유익을 얻고자 믿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이런 수준으로 예수 믿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컬어 배금주의(拜金主義, mammonism)이다. 배금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나 신앙은 돈이 우상이 된다. 돈이 우상이 되고 재물이 하나님이 되니 사람들은 돈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선과 악, 시와 비에 대한 의식과 판단이 사라진다. 문제의 해결은 물질적 가치가 정신적 가치에 예속되어야 한다. 정신이 물질을 다스리고 정신이 본능을 지배할 때라야 인간은 인간답게 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종교가 중요하고 문화가 값진 것이다.

“만일 너희가 이것을 행하면 너희는 그 안에서 살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걸음 한 걸음씩 겸비의 길을 내려 오셨으며, 대적이 뒤쫓았다. 그분은 “혈과 육에 대한” 씨름을 하지 않으시고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이것은 우리의 사업이며 그래서 이 권고가 주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13절). 우리의 싸움에서 우리는 십계명으로 방어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일 너희가 이것을 행하면 너희는 그 안에서 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설교와 강연 2 112.3) Step by step Christ descended the path of humility, pursued by the enemy. He wrestled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principalities, against powers, against the rulers of the darkness of this world, against spiritual wickedness in high places” [Ephesians 6:12]. This is our work, and therefore the exhortation is given, “Wherefore take unto you the whole armor of God, that ye may be able to withstand in the evil day, and having done all, to stand” [verse 12]. In our fight we are barricaded by the ten commandments. “If ye do them,” says Christ, “ye shall live in them.” (Sermons and Talks Volume Two 112.3)

“ 당신은 진짜 부자입니다”

㊗️당신은 진짜 부자입니다㊗️👍 한 회계사가 진실하게 사업을 하는 크리스천 기업가를 찾아가서, 세금 보고서를 대신 작성해 줄 테니 재산 목록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기업가는 자신의 재산 목록은 아주 많다고 대답했습니다. 회계사는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세금을 가장 적게 내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자, 그럼 사장님의 재산목록을 정리해 봅시다” 라고 했습니다. 크리스천 기업가가 불러준 재산 목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나에게는 영생(요3:16)이 있습니다. 둘째, 크고 아름다운 집인 천국(요14:2)이 있습니다. 세째,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평화(빌4:7)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네째,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움(벧전1:8)이 있습니다. 다섯째,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고전13:8)을 받았습니다. 여섯째, 현숙하고 신실한 아내(잠31:10) 가 있습니다. 일곱째, 건강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출20:12)들이 있습니다. 여덟째, 진실하고 변함없는 친구(잠18:24)들이 있습니다. 아홉째, 캄캄한 밤중에도 찬송(시42:8)을 부를수 있습니다. 열번째, 생명의 면류관(약1:12)이 있습니다. 열한번째, 내게 필요한 모든것을 충족하게 채워주시는 나의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빌4:19)를 모시고 살아 갑니다.. . . . 그러자 그 회계사는 장부를 덮으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의 재산에 세금을 부과할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부자입니까? 시시하게 집을 몇 채 가지고 있고, 땅을 가지고 있고,은행에 돈이 좀 많이 있다는 것으로, 자신이 부자라고 착각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혹시 월세방이나 전세방에 살고, 수입이 변변치 않다고 해서 자신이 부자임을 모르고, 위축되어 살아가고 있지나 않습니까? 당신은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

年賀狀의 시초

이규태 코너 (1991.1.4.). 0749 年賀狀 기원전 2000년 漢高祖가 長安의 長樂宮을 낙성시켰을 때 일이다. 때마침 정월 초하루인지라 문무백관이 궁전 앞에 東西로 줄지어 서서 새 宮殿들이를 하는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 劉邦이 탄 연(輦)이 도착하자 문무백관이 앞다투어 장수(長壽)를 비는 만세(萬歲)를 외치고 신분 순으로 앞으로 나아가 덕담(德談)을 올렸다. 대단한 열기였던지 프롤레타리아 유목민 출신인 황제는 이 式典을 꾸민 유학자 숙손통(叔孫通)에게 이렇게 말했다. 『황제란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지 오늘에야 알았다』고. 이 궁(宮)들이에 맞붙여 새해맞이의 「拜年」을 정례화했고, 이것이 궁전뿐 아니라 조야에 번져 歲拜의 기원이 됐다 한다. 한데 明祖에 들어오면서 이 세배가 자꾸만 번잡해져 설날 전야부터 천지신명에게 절하고 조상에게 절하고 상전-일가친척 어른-동료들을 찾아다니며 절을 하다 보니 보름이 지나도 세배를 못 마치는 형편이 되었다. 그래서 원거리에 사는 사람이나 친소(親疏)의 차이에 명함으로 세배를 때우는 습속이 생겼다. 현재 남아있는 年賀 명함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11세기 후반 北宋의 학자 진관(秦觀)의 것이다, 당시 양식을 보면 「경하(敬賀)」라 쓰고 줄을 바꾸어 「아무개 존형(尊兄)」, 다시 줄을 바꾸어 큰 글씨로 「정단(正旦)」, 줄을 바꾸어 보낸 이의 이름 밑에 「手狀」이라 쓰고 있다. 이것이 年賀狀의 시초인 것이다. 연초가 되면 문기둥에 接福이라 쓴 붉은 종이봉투를 달아놓고 연하장을 투함케 했다. 이 연하장을 담아 갖고 다니는 비단상자를 배합(拜盒)이라 하는데 은실-금실로 꾸며 종에게 들려 한 바퀴 돌곤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세함(歲銜)이라는 명함 세배가 있었다. 각 관아(官衙)나 영문(營門)의 아랫사람들은 상전이나 선임자들의 집에 세배(歲拜)를 가는데 문전에 놓아둔 칠을 한 분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명함을 놓아두고 돌아 다니는데 이를 세함이라 했다. 問安婢라 하여 예쁜 계집종을 골

타조같은 사람

타조 같은 사람/ 타조가 들으면 화를 낼지 모르겠지만, 제가 본 동물 중에서 타조처럼 우스운 동물은 못 본 것 같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미니동물원 (산림박물관 안에)이 있는데, 가끔 아이들과 가서 동물들을 구경을 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몇 번 아는 체를 하고 만져주면 금방 친구가 되는데, 타조만큼은 절대로 친해지지 않습니다. 한 참 친해지려고 노력하면 조금 친해진 것 같다가도 먼 산 한번 쳐다보고 타조를 바라보면 그새 잊어버리고 처음 본 것처럼 막 부리로 쪼려고 합니다. 그러면 "에이..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그렇게 기억력이 없냐" 하면서 포기하고 말지요. 커다란 덩치에 비해서 형편없이 작은 뇌의 크기 때문일까요? 성경을 읽다가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타조는 땅에 알을 낳고 모래로 그것을 따뜻하게 덮지만, 곧 잊어 버리고 발로 밟아 깨뜨리거나 야수들이 밟도록 그냥 내버려 둔다. 타조는 새끼를 마치 자기 새끼가 아닌 것처럼 거칠게 다루고 그 새끼들이 죽는다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타조에게 지혜를 주지 않고, 총명도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욥39:14-17) 아하, 타조가 그렇게 바보 같은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구나." 말은 앞발로 힘차게 땅을 박차고 용사들을 향해 전진하면서, 두려움을 모르고 칼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화살통은 그 등에서 철커덕거리고, 창과 단창은 번쩍인다. 땅을 종횡무진으로 날뛰고, 나팔이 울려 퍼져도 멈출 줄 모른다. 그렇지만, 타조가 날개를 펼치고 달릴 때는 말과 기수보다 빠르다." (욥39:14-17쉬운성경 재구성) 우와... 타조는 비록 머리는 나쁘지만, 그 용맹스러움은 말보다 더 하구나! 그러니까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뭐든 한 가지는 잘하는 것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조 같은 사람에게 지혜가

🌻생명의 향기 | 마음 속에 계시는 예수님 🌻

생명의 향기 - 🌻생명의 향기 | 마음 속에 계시는 예수님 🌻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 17:23)  에녹은 묵상하고 기도하고 경성(響醒)의 갑주를 입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기도로 씨름한 후에는 불신자에게 애소(哀訴)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그는 불신자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그 진리를 가림으로써 그들의 영혼들을 방치하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이러한 밀접한 연결로 인해 그는 하나님의 일들을 행할 용기를 얻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고, 그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증거를 얻었다. 오늘날 모든 신자들은 이렇게 할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자들이 하나님과 함께 거주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신자들과 그분의 거처를 함께 하시는 것이다 ...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들의 길이 그분을 기쁘시게 한다는 증거를 얻는 것은 에녹, 엘리야, 부조들, 선지자들, 사도들, 그리고 순교자들에게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고, 그분을 그들의 생애 속에 모시고 다니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각 사람들의 특권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실로 열매 맺는 나무들이 될 것이다.  -- 승리하시는 그리스도, 50. 🌻Aroma of Life I Jesus In The Heart 🌻 I in them, and thou in me, that they may be made perfect in one; and that the world may know that thou hast sent me, and hast loved them, as thou hast loved me. John 17:23. Enoch not only meditated and prayed, and put on the armor of watchfulne

친(親)에 담긴 의미,

🍈 친(親)에 담긴 의미 어떤 마을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았다. 하루는 아들이 멀리 볼 일을 보러 갔다. 저녁 다섯시에는 꼭 돌아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다섯시 반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여섯시가 되었는데도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걱정이 태산 같다. 아들이 왜 안 돌아올까. 어머니는 마을 앞에 나아갔다. 아들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는다. 멀리까지 바라보려면 높은 데 올라가야 한다. 어머니는 큰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아들이 오는가 하고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고 있다... 멀리서 오는 아들을 발견하게됩니다 그 정성스러운 광경을 글자로 표시한 것이 친(親) 자다.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아들이 오기를 바라보고[見] 있다. 이 3자가 합하여서 친(親) 자가 되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아들 오기를 바라다보는 부모님의 지극한 마음, 그것이 친(親)이다. 친(親)은 어버이 친 자다. 어머니(母親), 아버지(父親), 어버이는 다정하고 사랑이 많다. 어버이는 나와 제일 가까운 분이다. 그래서 친구(親舊) 친절(親切), 친밀(親密), 친목(親睦), 친화(親和), 친애(親愛), 친숙(親熟), 친근(親近)이란 낱말이 생겼다. 또, 절친(切親)이니 간친(墾親)이니 하는 다정한 말이 나왔다. 친(親)자 밑에 붙은 말 중에 나쁜 말이 하나도 없다. 서로 친하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리들 관계에 있어야 할 기본원리, 근본감정은 친(親)이다.

은혜의 삶

은혜의 샘/ 당신은 너무 많이 달렸습니다.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싸웠고, 밀어붙였으며 자신의 길을 헤쳐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당신을 주목하셨습니다. 그분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됐다! 이제 그만! 내게 맡겨라! 거기 네가 걸어 온 뜨거운 모래에 앉아라. 네 옆에 무엇이 있는지 보아라. 시원한 물이 넘쳐나는 샘이다.” -찰스 스윈돌의 ‘지혜’ 중에서- 우리의 힘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엔 넘지 못할 장벽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의 요구하는 기준에 자신의 모습을 맞추다 보면 스스로에게 실망해 넘어지기도 합니다. 지금, 지치고 곤한 우리의 영혼 가운데 주님이 “내게로 와서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함께 걸어가기를 청하십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은혜의 샘 주님의 부르심 가운데로 나아오십시오. 훗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승리를 외치게 될 것입니다.

인성으로 인성을 만지심..!🌱

그분은, 지상에서 가장 비천한 자라도 자신의 가난함이나 무지로 인하여 내가 이것 때문에 여호와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말하며 핑계하지 못하도록 겸비하게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으로 그분의 신성을 옷입으셨으며, 인성으로 인성을 만질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고 인성으로 사실 수 있도록 하셨으며, 사람의 모든 시련과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셨다. 인성으로 그분은 사람에게 닥칠 모든 시험을 이해하셨다. (설교와 강연 2 111.5) He came in humility, in order that the humblest being upon the face of the earth could have no excuse because of his poverty or ignorance, and say, Because of these things I cannot obey the law of Jehovah. Christ clothed His divinity with humanity, that humanity might touch humanity; that He might live with humanity, and bear all the trials and afflictions of man. He was tempted in all points like as we are, yet without sin. In His humanity He understood all the temptations that will come to man. (Sermons and Talks Volume Two 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