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11월, 2013의 게시물 표시

감동을 주지 못하는 설교.

감동을 주지 못하는 설교. 예루살렘에 난폭한 운전기사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난폭하게 운전하는지 밥먹듯이 교통법규를 어겼습니다. 또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운전하는지 예루살렘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갔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예루살렘 회당에서 일생동안 성경을 가르친 랍비는 죽어 지옥에 간 것입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일생동안 성경을 가르친 랍비가 천국에 가야하고, 난폭한 운전기사는 지옥에 가야 당연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이런 해석이 나왔답니다. 난폭한 운전기사는 마땅히 지옥에 가야지만 천국에 온 것은 손님들이 그의 차를 타기만 하면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고, 랍비는 천국에 오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옥에 가게 한 것은 그가 설교만 하면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고 모두 졸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답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설교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 아마도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될것입니다. 부모 자식관계나 친구, 교회에서의 관계.. 너와 나의 모습에서 사랑과 섬김으로 천국을 볼 수있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습니다. "주님께서도 기뻐하시겠네요.."    André Rieu a son meilleur !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www.youtube.com/watch_popup?v=FcLF5wopyjo

행복

행복 사람들은 흔히 행복이 무엇인지 묻고, 찾고 싶어한다. 그것은 마치 공기처럼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다. - 정래의 '정글만리'에서 -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참 행복이지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는 것도 행복입니다.

장미나무가 된 가시나무

장미나무가 된 가시나무 골짜기에 가시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하루는 정원사가 오더니 그 가시나무를 파내어 장미꽃나무 사이에 심는 것이 아닌가! 아이쿠! 이 사람이 대단한 실수를 하고 있구나! 나같이 쓸모 없는 가시나무를 이렇게 아름다운 장미나무들 사이에 심어놓다니…. 머지않아 내가 쓸모 없는 가시나무라는 것을 알면 뽑아서 불에 던지겠지? 그런데 정원사가 예리한 칼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이제야 이 사람이 내가 가시나무라는 것을 알았구나! 아니나 다를까 그 정원사는 그 가시나무를 베어버리는 것이었다. 어?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다시 장미의 싹을 접붙이는 것이었다. 아!불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내가 장미나무가 되다니 이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야! 여름이 되어 아름다운 장미꽃이 그 나무에도 피었다. 그것을 보면서 정원사가 말했다. "본래 너는 가시나무였으나 장미를 접붙여 이제 장미나무가 되었으니 아무도 너를 가시나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예수님이라는 장미꽃을 통해 구원해 주셨다. 천지창조 때 생명이 없는 먼지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을 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다시금 예수님의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다. 이 귀한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나그네길인 이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야 할 것이다.

< 자연은 자연대로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

< 자연은 자연대로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 서양에는 자연을 정복해야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있는데 동양에서는 그 따위 소리 하지 않는다. 사람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 자연은 자연대로 되게 하는 것이지 이를 사람이 되게 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맘은 맘대로, 몸은 몸대로 되게 해야 한다. 부족한 것이 있어도 부족하려니 하고 그냥 놔두는 것이다. 마음이란 물건에 걸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마음 제대로 있다. (씨알의 메아리 다석 어록. 135쪽)   < 풀이 > 자연과 격리된 도시국가의 성벽 안에서 철학을 했던 서양인들은 자연과 타민족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서양인은 자연을 인식과 지배의 대상으로 여겼을 뿐 주체로 보기 어려웠다. 농본국가사회에서 자연에 의지하며 자연의 품에서 농사지으며 사상을 형성했던 동양인은 사람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농사는 자연과 사람이 주체로 참여하는 일이다. 동양인은 사람을 자연 속에서 보았고 자연을 사람 안에서 보았다. 사람은 자연에서 피어난 꽃이며 사람의 마음과 정신은 자연에서 맺어진 열매요 씨알맹이다. 자연은 사람 안에서 완성되고 고양된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서 살았던 동양인은 자연을 인식과 정복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더불어 사는 주체로 생각한다. 사람도 자연도 서로 주체다. 따라서 자연은 자연대로 되는 것이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도 자연의 일부인 몸도 주체다. 자연은 자연대로 몸은 몸대로 되게 놔두어야 한다. 사람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억지로 자연과 몸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마음대로 주체로 자유로워야 한다. 물건이나 물질이나 기계가 마음을 지배하거나 속박해서는 안 된다. 마음이 물건에 걸리거나 매이지 않으면 언제든지 마음은 제대로 자유롭다. 마음이 마음대로 자유로울 때 몸은 몸대로 몸의 본성과 이치에 따라 실현되고 완성된다. -박재순

中國 四大石窟

中國의 石窟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그 중에도 彩色 된  重慶 大足石刻을 제외한 雲崗石窟 龍門石窟 敦煌 莫古窟은  중국 3대 석굴로 보는이로 하여금 신비감을 자아낸다.  나는 금년 3월에 同學知己들 과 더불어 中原文化를 探訪하여 洛陽에 있는 龍門石窟은 가 보았다.  실로 중국인들은 대단한 민족이다.  스케일이 우리와는 다르다.   慶州 吐含山 중턱에 있는 우리나라 石窟庵이 용문동굴을 보며 자꾸만 떠 올랐다.  우리의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예술성과 이들의 雄渾함과 壯嚴한 때문 만은 아닌 그 무엇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當代에 金大成이란 한 사람의 거장이 축조한 석굴암과 數百年에 걸쳐 만들어낸 중국의 석굴 과 차이가 아닐까 하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다.  중국의 석굴중 꼭  어느 한 곳은 가 봐야야 불교 문화의 眞髓를 터득할 것으로 믿어지지 때문이다.      中國 四大石窟     1) 雲崗 石窟 (山西省)  中國文化遺産 (2001年 指定)   산서성(山西省) 대동(大同) 서쪽 15km, 무주강(武州江) 북안에 있는 사암(砂岩)의 낭떠러지에 조영(造營)된 중국에서 가장 큰 석굴사원. 전체길이는 동서로 약 1km에 이르며 석굴의 총수는  42개이다. 南北朝時代   북위(北魏)의 역사서 에 따르면, 460년대 초에 조영된 것이라한다.   이 석굴은 北魏 의 文化史的 遺産 일 뿐만 아니라 中國 을 중심으로 한 西北 印度·中央 아시아와 의 문화적 교류 및 韓國과 日本의 佛敎文化(大乘佛敎)를 만들어낸 아시아 문화 생성의 자취를 입증해 주는 중요한 유구(遺構)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의 寶庫라고 한다.   운강석굴 全景.  뒤에 보이는 암반 속에 석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   동굴 안으로 들어가 여러 형태로 조각된 불상을 보며 놀라게 된다.       거대한 암벽에 연달아 築造 한 寺刹 (懸垂寺刹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