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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14의 게시물 표시

어떤 비오는 날

어떤 비오는 날 에바 오/사진작가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하와이에 태풍이 온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들떠 있던 마음에 실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받아놓은 친구 딸의 결혼식은 일기예보와 상관없이 하루하루 다가왔다. 완벽주의 성격에 경제적 여유도 있는 친구는 딸의 결혼식을 위해 완벽한 준비를 해놓았었다. 리허설 디너는 호텔 가든에서 하와이언 댄스와 함께 아름답게 펼쳐질 예정이고, 결혼식은 또 다른 호텔에서 성대하게 치러질 계획이라고 했다. 하객으로서 복장부터 신경이 쓰였다. 가든에서는 긴팔 옷을 입어야 할 것 같고, 결혼식에는 어깨가 드러나는 요즘 유행하는 반짝이 드레스를 입어야 할 것 같고, 그리고 밖에서는 바람 이 불지도 모르니 모자나 스카프가 있어야 할 것 같고 … 생각이 많았다. 게다가 비가 온다고 하니 준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즐거운 고민은 끊임없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그러나 즐거운 고민도 잠깐. 동행할 친구에게 문제가 생겼다. 하와이에 태풍주의보가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그 친구는 비행기 타는 것이 무서워 잠을 못 잔다는 게 아닌가. 친구들끼리 이미 계획을 다 짜놓았는데,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친구들이 설득에 설득을 하자 그 친구는 죽을 각오를 하고 떠나기로 했다,드디어 결혼식 3일 전, 우리는 골프도 칠 겸해서 일찌감치 하와이로 떠났다. 막상 도착하니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아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 일기예보는 우리를 다시 실망시켰다. 결혼식 날인 일요일에 비올 확률은 100%라는 것이었다. 태풍은 호놀룰루를 비껴간다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제발 비도 같이 가

향기로 말을 거는 이여

향기로 말을 거는 이여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남을 배려하지 않고 먼저 자기 실속만 차리려는 경향에 빠져드는 자신을 볼 때 얼른 '넓게 더 아름답게!' 하고 속으로 외칩니다. 늘 함께 지내는 이의 행동이 못마땅하고 그를 향한 이해의 폭이 자꾸만 좁아지려 할 때,  '넓게 더 아름답게!' 하고 마음을 다독입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큰일들에 무관심하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골몰해 있을 때,  '넓게 더 아름답게!' 를 조용히 외칩니다. 남의 호의를 무시하고 의심하는 옹졸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넓게 더 아름답게!' 를 외웁니다. 다른 종교,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만나 자칫하면 빠지기 쉬운 편견과 선입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넓게 더 아름답게!' 를 반복합니다.  남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고 용서가 안 돼 속을 끓일 때도, '넓게 더 아름답게!' 를 읊조립니다. 모든 일에 '넓게 더 아름답게!'를 기도처럼 끊임없이 외우고 실천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삶의 길을 우리 함께 걸어야겠지요? 나는 오늘 이렇게 고백해봅니다. 큰 하늘을 담은 바다처럼 내 마음도 한없이 넓어지고 싶습니다. 늘 부서질 준비가 되어 있는 파도처럼 내 마음도 더 낮아지고 깨지고 싶습니다. 그래야 넓고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온몸으로 가르치는 바다여 파도여 사랑이여.

마음에 꼭 심어야 할 좋은 씨앗들

마음에 꼭 심어야 할 좋은 씨앗들 우리는 사랑에 의해서 태어났기에 사랑이 없으면 멸망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자기를 극복하며 보다 성숙해 지기도 합니다. 우리를 울리는 것도 사랑이지만, 우리를 결합시키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있어서 거의 모든 것입니다. -괴테의 <명언록>중에서 사랑은 이따금씩 문제를 일으키지만 유일한 해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희생과 양보가 없으면 결국 이기적이 되고 맙니다. 사랑은 최대의 모순을 융화시키고, 세상으로 통하는 길을 알도록만듭니다. 가장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려운, 사랑의 그 묘약 앞에서 종종 방황하는 이유를 이젠 알 수 있습니다

The Lord Will Be Your Everlasting Light

BLOG POST: Light of the World via  Meet Me In The Meadow by  Roy Lessin The world is a dark place, but there is a Light that shines brighter than any lighthouse and can save any battered vessel from being smashed against the rocks of sin. The light of Jesus will always take you out of the darkness of selfishness, evil, fear, confusion, bondage, and dead religion. There are many false lights who say, “Look to me. Listen to me. Follow me.” But as we heed the voice of false lights we only go deeper into the darkness.   Everlasting Light  No longer will you need the sun to shine by day, nor the moon to give its light by night, for the Lord your God will be your everlasting light, and your God will be your glory. Your sun will never set; your moon will not go down. For the Lord will be your everlasting light. Your days of mourning will come to an end. Isaiah 60:19-20 /Dayspring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 인정받으려면 자신을 인정해줄 권위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공적인 지위나 힘이 없어도 자신이 동경하는 면을 갖고 있거나 여러 가지 부분에서 자신이 우러러볼 만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알아서 권위를 실어주기도 한다. 즉 그의 말 하나하나에 커다란 영향을 받으며 쉽게 상처받고, 쉽게 힘을 얻는다는 말이다. - 박승숙의《마음 똑똑》중에서 - * 우리가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스쳐가는 사람도 있고 얽히고 설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로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합니다. 그 중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 하나 만나면 날개가 달립니다. 단점이 장점으로, 부족함이 넉넉함으로 바뀝니다. 하늘을 납니다.    /Godowon Morning Letter

뜨거운 심장을 가진 자에게서만

뜨거운 심장을 가진 자에게서만 남도 쪽에 있는 섬들 중에 거의 다가 기독교인인 섬들이 있다. 이곳은 섬사람 80% 이상이 교회에 다닌다. 모두가 그리스도인들이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제자훈련이 안되고, 성경공부가 안되고... 그 어떤 새로운 시도가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 좋은 것 같지만 답답하다....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대로가 좋다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있는 경우도 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뜨거운 마음이, 심장이 식어 있다는 것이다. 심장이 식어 있는데 어찌 건강체를 이룰 수 있겠는가? 늘 뜨겁게 요동치는 심장을 가져야 진정한 그리스도인 아닌가? -이주호 목사의 ‘죽음보다 무서운 것’에서- 중세 기독교가 부패해 가기 시작한 원인도 국교가 되었으니 전도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뜨거운 마음이, 심장이 식어진 것입니다. 그 때부터 중세 기독교는 온 몸이 냉해지고 곳곳에 암이 생기고 결국 온 몸이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개인도 살아 있는 신앙인이라면, 온 몸에 복음의 열정이 흐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뜨거운 마음, 세상을 변화 시키는 은혜의 동력은 뜨거운 심장을 가진 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  글쓴이 : 김옥엽

The prayer:

The prayer: Father, Thank You for each and every day  You have blessed us here on earth.  Thank You for Your tender mercies.  Thank You for giving us friends and  family to share joys and sorrows with.  I ask You to bless my friends, relatives,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and   those I care deeply for, who are reading this right now.  Where there is joy, give them continued joy,  Where there is pain or sorrow,  give them your peace and mercy.  Where there is self-doubt, release a renewed confidence.  Where there is need, fulfill their needs. Bless their homes,  families, finances, their goings and their comings. In Jesus' name, Amen.

중보기도의 힘

중보기도의 힘 “나는 그 일에 어느 누구도, 어떤 일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기도를 잊고 있었다. 누군가의 기도에 연결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회심하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  -체리 풀러의 ‘기도 입히는 엄마’ 중에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사랑을 포기합니다. 누군가를 향해 ‘결코 변화될 수 없는 사람’ 이라 말하며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발견하기도 전에  등을 보이며 손을 놓아 버립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주님을 알기 전, 우리 역시 ‘결코 변화될 수 없는’ 연약하고 상처 입은 사람이었음을 말입니다. 무너진 인간관계 속에 실망하며 좌절하고 계십니까? 그래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선하신 때가 이를 때까지 눈물의 기도를 거두지 마십시오. 오늘 한 영혼을 향한 우리의 기도가 놀라운 구원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크리스챤의 영적코드-기다림

크리스챤의 영적코드-기다림 기다릴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끝이 안보이는 기다림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절망을 지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동일하게 기다림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림을 통하여 질그릇을 금그릇 되게 하십니다. 성숙한 믿음이란 잘 기다리게 하는 힘이며 뿌리깊은 영성이란 기다림의 영성입니다. 이러므로 인생의 실패는 기다림의 실패이며, 신앙실패의 원인 중에 하나는 조급함에 있습니다. 사단은 언제나 '당장 이루라' 재촉하며 충동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부족과 미숙을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의 덜됨과 철없음을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향하신 기다림을 포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10년, 20년...을 끈질긴 사랑으로 기다려 주셨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지체들을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과 역사하심에 대하여 한달을 길다 합니다. 1년 앞에 쉽게 포기하고 절망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하여 기다림의 은혜를 베푸시는데, 우리는 부부,자녀,친구,팀원,순원,동료, 교우,이웃...에 대하여 기다림에 너무 인색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로 인하여 늘 마음이 눌려 있고 상해 있습니다. 왜? 저 모양인가...'' 왜? 저렇게도 안 변할까...' '왜? 아직도 그 수준밖에 안되나....' 이런 넉두리와 한숨속에는 내 자신에 대한 교만과 다른 지체들에 대한 조급함과 경시함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기다려줍시다. 주님이 나를 기다려주고 계시듯.... 평생이라도 말이죠. 사실은 형제의 모습이 내 모습이며, 내가

윤동주 : 참회록

참회록 ( 懺悔錄 ) ---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詩 )>(1948)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 ( 王朝 ) 의 유물 ( 遺物 ) 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 나는 나의 참회 ( 懺悔 ) 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    만 이십 사 년 ( 滿二十四年 ) 일 개월 ( 一個月 ) 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 ( 懺悔錄 ) 을 써야 한다 .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 ( 告白 ) 을 했던가 .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 그러면 어느 운석 ( 隕石 )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 창작 연월일 : 1942. 1. 24. >   윤동주 ( 尹東柱 ) 는 역사라는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춰 참된 자아의 모습은 무엇이며 자기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가를 모색하려고 한다 . 시인은 역사 속의 자아를 성찰 ( 省察 ) 하여 지금까지 식민지 현실 속에서 좌절과 절망 속에 살아온 삶을 스스로 꾸짖고 부끄럽게 여긴다 . 그러나 시인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 역사 속의 참된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여 자기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가를 찾아낸다 . 그것은 민족이 현재 처한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자아를 희생하는 데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 자기의 참된 모습을 스스로는 볼 수 없어도 역사라는 거울에 후세 사람들이 그것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바로 여기에 이육사 ( 李陸史 ) 의 시 정신과 마찬가지로 자기 희생 , 즉 순교자적 자세에서 자기가 바라는 이상 세계

간절한 기도

간절한 기도 간절하게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기도에 있어서 간절함과 열렬함은 다릅니다. 기도에 있어서 열렬함은 맹렬하게 뜨거운 것을 의미하고, 간절함은 자신의 기도가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을 향해 매달리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참된 열렬함 안에는 언제나 간절함이 있고, 지속적인 간절함은 열렬함을 불러옵니다. 은혜의 지배아래 있고 기도의 은혜가 충만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공유합니다. 나와는 아주 먼 관계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에도 눈물이 쏟아져 나오고 그 심령의 아픔과 연약함이 내게 전해집니다. 그래서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내 마음이 아프며, 그의 고통을 내 것처럼 여기며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됩니다. 이는 그 기도 속에 간절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가 그러한 간절함을 죽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세 상의 염려와 근심,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엉클어진 마음으로는 간절해질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