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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태 칼럼]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가족 정신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담임).

[김병태 칼럼] 회복해야 할 하나님의 가족 정신

입력 : 2017.02.20 15:59




가족이라는 말은, 들어도 들어도 싫증나지 않고 감동이 몰려온다. 가족은 서로 사랑한다. 함께 모인다. 시간을 함께 보낸다. 서로를 책임진다. 기쁨, 슬픔, 고통, 아픔 등 모든 것을 함께 나눈다.

가족은 무조건적인 관계이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지 않는다. 그저 덮어주고 용납한다. 가정은 무장해제토록 한다. 긴장하지 않는다. 공격하지 않고, 방어하지도 않는다. 따뜻함이 있고, 포근함이 있다.

그러니 시대가 흘러도 가족만큼 강한 연대감을 갖고 있는 공동체는 없다. 그래서 가족이 있다는 건 아주 중요한 행복 조건이다. 가족이 있다는 걸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떠나기 전에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 후회하는 그날이 다가오기 전에. 가족 때문에 다소 아파하고 힘들어 할 수도 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읗 흘릴 수도 있다. 그래도 가족은 너무 소중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예수님은 육적인 가족보다 더 소중한 영적인 가족을 소개하신다. 어느 날 예수님이 어느 '집'으로 들어가셨다(막 3:20-21). 그러자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쫓아왔다.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이 사역하셨다. 그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붙들기 위해 찾아왔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미쳤지. 미쳤어!"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31절). 예수님 주변에 둘러앉았던 무리가 예수님에게 물었다.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반문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동생들이냐?" 예수님은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말했다.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예수님은 피로 맺어진 가족을 제치고, 자신을 따르는 영적 가족을 강조하셨다.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소개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권속은 가족 식구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집'은 '가족, 식구'를 말한다. '하나님의 집'인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가족이 그러하듯, 영적 가족도 서로 모여야 한다. 서로 간섭을 받으며 산다. 만약 서로 모이지 않고, 간섭을 받지 않으려 한다면 가족이라 할 수도 없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4-25)."

사실 영적 가족인 교회는 육신적 가족보다 훨씬 더 강한 연대감을 갖고 있다. 육신적 가족들의 얼굴을 1년에 몇 차례나 보는가? 그런데 교회에서의 영적인 가족은 매 주일 본다. 교회 속으로 깊이 들어온 성도들은 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만난다. 육신적 가족은 이 땅에서의 관계이지만, 영적 가족은 영원한 관계이다. 그러니 육신적 가족보다 영적 가족이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우리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다. 교통은 교제와 사귐을 말한다. 성도가 서로 교제하고 사귐을 갖는 건 너무 중요하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는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가 원활하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예배하는 것,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 봉사하고 섬기는 것, 교제하는 것이다. 성도의 원활한 교제가 없다면 삭막한 교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영적 가족의 교제는 '하나님 나라 지향적'이어야 한다.

예수님이 갖고 계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제자 소그룹'에서 출발했다. 뿐만 아니라 바울 때부터 3세기까지의 초대교회 역시 '가정교회'였다. 교회라는 공식적인 건물이 세워지지 않았고, 기독교인들의 가정 중에서 특정한 가정을 세워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게 됐다.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 가정교회는 친밀성이 매우 높았다. 거기서 이루어지는 사랑은 고상한 모범이었다. 효과적인 가르침과 훈련이 이루어졌다. 성령이 역사하는 통로가 되었다.

교회의 순수성과 생명력은 교회가 점차 대형화되고, 제도화되고 조직화되면서 퇴색됐다. 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저항운동이 수도원 운동이다. 수도원운동은 세속화돼 가는 교회 공동체를 회복하려는 소그룹 운동의 전형이었다.

소그룹이 갖는 장점들이 많다. 소그룹은 관계에 대한 갈증을 채워준다. 대그룹 안에서는 관계의 친밀함을 맛볼 수도 없고, 개체의 중요성은 무시된다. 그런데 소그룹 안에서는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까지 서로 나눌 수 있다. 가족적인 친밀함을 경험할 수 있다. 소그룹은 그룹 애착심을 만들어 주고, 교회 소속감과 애착심까지 만들어 준다. 소그룹에서 카타르시스가 이루어진다. 자신의 감정과 속이야기를 풀어놓음으로써 정서적인 치유를 받을 수 있다.

소그룹은 대그룹에서 충족시킬 수 없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장례가 있을 때 구역 식구나 전도회 식구들이 큰 도움이 된다. 구역 식구에게 반찬을 해 주고, 어려움이 있을 때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중보기도 제목을 나누고 서로 기도해 주기도 한다. 소그룹은 각자에게 섬김과 헌신의 기회를 제공하여 존재감을 경험하게 한다. 섬김과 헌신을 통해 영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개인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성장도 가져온다. 소그룹은 모방이 이루어진다. 다른 지체들을 보면서 긍정적인 면에서나 부정적인 면에서 배우고 닮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는 벤치만 달구고 있는 '벤치 워머'들이 많다. 주변인으로 겉돌기만 한다. 공동체 속 깊은 곳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회에 대한 애정도 없다. 소속감도 없다. 조금만 마땅하지 못한 일을 보면 훌쩍 떠난다. 자그마한 상처에도 참지 않는다. '이 교회 아니어도 교회는 많은데 뭐.'라고 하며.

그런 신앙으로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로 전쟁터에 나갈 수 있을까? 무거운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 십자가를 질 상황이 되면 줄행랑부터 치지 않을까? 이런 성도가 개척교회나 어려운 교회를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자기 이익과 만족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신앙인으로 살 뿐이다.
/김병태 목사(성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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