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어가는 내 꼴을 보면서-
/김동길
고려 말의 선비 이색(李穡)이 이렇게 탄식하였습니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흰 눈이 아직도 다 녹지 않고 남아있는 골짜기에 덮인 구름이 험악해 보인다.
그리운 매화는 지금 어디 쯤 피어 있는 것일까.
석양에 홀로 서 있는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옳은가.
이색은 1328년에 태어나 1396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고려조가 무너질 때 그는 이미 70을 바라보는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한 시대의 뛰어난 선비였던 목은(牧隱)은 봄을 노래하는 매화를 그리며 탄식하였습니다.
나는 이미 80을 넘어 90을 바라봅니다.
‘건강 백세’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지만 다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건강하게 100세를 살겠다는 것은 허망한 꿈입니다.
‘노익장(老益壯)’을 말하는 이들은 노년의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마다 회갑을 넘기기가 어렵던 시대에
‘장수’는 바람직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평균 수명이 80을 넘게 되었다는 오늘,
장수’의 비결을 운운하는 것은 매우 죄스러운 일입니다.
오히려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이 바람직하다고 나는 믿습니다.
오늘 20대, 30대의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보면서
‘자기들과는 무관한 사람들’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만,
오늘의 노인들도 한 때는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었음을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땅바닥에 앉았다간 일어나기가 어렵고,
조심하지 않고는 계단을 무사히 오르내리기가 어려운 사람들은 노인이라고 하는데,
사는 일이 힘에 겹다는 사실을 날마다 느끼면서 오늘도 살아갑니다. ..
◆2014/02/27(목) -‘낭만 논객’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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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접어들어서 종편 에 새로운 프로가 하나 등장했는데 그 이름이 ‘낭만논객’입니다. ‘낭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 명칭만은 ‘낭만’입니다. 세 사람이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앉아서, 조명을 받아가며 한 2시간 떠들어댑니다. 나의 왼편에는 당대에 유명한 가수 조영남 씨가 앉아 있고, 내 오른 편에는 50년 이상 아나운서로 이름을 떨친 김동건 씨가 앉습니다. 2시간을 떠들어도 방영되는 분량은 그 반 밖에 안 되니 편집을 하는 사람들도 힘이 들겠죠. 우리 세 사람은 한 달에 네 번은 꼭 만나야 하는 뜻하지 않았던 운명의 이 야릇한 ‘장난’을 즐기고 있습니다. 세 사람의 나이를 평균하면 77세라는데 그 중에서도 최연장자인 내 나이는 2014년 정월 초하루부터 87세가 되었으니 집에 누워서 쉬어도 탓할 사람이 없겠지만 나는 이 날까지 하루도 쉬어 본 적이 없습니다. 디스크 수술 때문에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던 7일 정도의 ‘강제 휴가’가 있었고, 교도소에 갇혀 있던 동안은 일은 하지 않고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젠 TV에 나와서 무슨 말을 해도 나를 잡아갈 정보부도 없고 보안사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누구나 거침없이 할 수 있는 ‘멋진 새 세상’이 우리의 세상이 되었는데, 감옥에 안 가도 되는 나라라고 하여 저마다 마음 놓고 떠들어대니 매우 요란하고 시끄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삼갈 것입니다. 김동건은 이 시대에 가장 예의 바른 사람인데, 예(禮)가 예술인 걸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나의 인생 후배이자 당대의 명가수인 조영남은 이 시대에 가장 자유분방한 ‘철 안 드는’ 예술인입니다. 이 두 ‘예술인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인생을 논하는 일이 벅차게 감격스럽다고 느끼면서 혼자서 ‘노년 만세’를 부릅니다. 노인에게도 함께 일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고마운 일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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