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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26의 게시물 표시

나눔,

나눔/ 나눔이란 그저 최소한 성의를 보일 만큼 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을 최대한 주는 것이지요. 따뜻한 사람은 이웃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기회를 매일 매일 발견합니다. 우리도 이웃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켄 블랜차드, 트루엣 캐시의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中- 주님이 주신 나눔의 기회를 모른 척 할 때가 있습니다. 나눌 수 없는 것이 없다며 뒤 돌아 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말 한 마디가, 따뜻한 배려가 우리 이웃의 삶을 변화시키고 주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주신 나눔의 기회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것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주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이영순 칼럼

하나님의 자녀                      2026년 2월 11일 ( 중앙일보 ) 이영순 칼럼 외출을 하려고 옷을 골랐다. 이옷 저옷 입어 보면서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옷들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옷 장 속을 마구 휘젔다 보니 괜한 일거리만 쌓였다.   아무리 옷을 바꾸어 입어 보아도 내가 원하는 이전의 멋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을,  사 계절은 질서있게 왔다 가고  다시 오건만 인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흐르는 강물 처럼 일방 통행이다.  세월은 나를 이렇게 변화 시키고 있었다.   그 흘러간 세월 속에  한참 혜메다 보니 약간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소크리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떠 올랐다.  눈은 현실에 맞춰야한다. 흘러버린 지난 날에 맞추면  문제투성이다. 옷장속을 휘젓고 나니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  나의 변화된 현실을 보면서 어릴 때 자랐던 북녘 땅이 새삼 그리워 진다. 우리가 살던 함경남도 ‘고원’에서 해방 직후 다녀왔던 이웃 도시 ‘영흥‘이 생각난다.  그곳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하 늘을 찌르는 듯한 아름들이 나무들에 감탄사를 연발했던 것이 마치 어제 일 갔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일제 강점기의 잔인했던 민족 말살  정책 의 만행도 잊을 수 없다.  미국에 온지 어느덧 반 세기가 지났지만  떠나온 조국에 대한 생각으로 종종 가슴을 태우곤 한다. 한번 가 보고 싶었던 북녁의 고향 땅은 이제 추억 으로 남긴 채… .  마음속으로 ’우리의 참 안내자 되신 주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다짐한다.  “ 오늘도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평강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겠습니다.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 으니 (요 1: 12)‘                                                 Santa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