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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주의는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성경은 말합니다.“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3) 우리가 이 진리를 잊고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것은 율법주의입니다. 그리고 율법주의는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율법주의란,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을 신뢰하기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더 의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규칙과 규정을 따르는 삶이며, 결국 하나님의 은혜 를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덫입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게 됩니다. 반대로 은혜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롭게 대하게 됩니다. “내가 무엇을 더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또 내가 무엇을 잘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나를 덜 사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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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참된 스승’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유일하게 하늘 에서 오신인류의 참된 스승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천국과 지옥의 비밀을 알고 오신스승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3: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나로 말미 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참 생명의 길로, 은혜의 길로, 축복의 길로, 영생의 길로확실하게 인도 해 주시는 참된 스승이십니다. 인생의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스승,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수천억만 인생들이 생의 변화를 받고 새출발했습니다.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인생을 산 것처럼이 지구촌안에 인류의 참된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생의 변화를받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지구촌 땅끝까지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인류의 참된 스승이신 예 수 그리스도를만나는 사람들마다 회개하고 변화받아새로운 인생길 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본문 말씀에우리에게 삶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15절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참된 스승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스스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닦아 주심으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배웠다고 교만하고 높아지고많이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탐욕을 버리고 겸손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줌으로섬김의 삶에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든 사물의 이치는 희생이 뒷받침되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53년, 군 전우애로 똘똘뭉친 소대원들의 단톡방에 본인 가정사를 올린 두 전우의 유사한 글에 감동을 받아 모든 사물의 이치는 희생이 뒷받침되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 새엄마와 딸이 얽힌 신뢰와 애틋한 정과 사랑이야기는 이 탁탁한 세상에 귀감의 글 눈물없이 못 보기에 공유하고자 올려봅니다 {세상을 보는 지혜} 새 어머니 아버지와 26년을 함께 산 새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돼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친척들은 하나같이 저한테 연락했 습니다. “빨리 가 봐. 새어머니가 집에 있는 값나가는 거 다 들고 나간 거 아니냐.?” 그 말을 듣는데, 저는 그냥 씁쓸하게 웃음만 나왔습니다. 우리 집에 뭐가 그렇게 대단히 값 나가는 게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새어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새어머니는 서른여덟에 아버지를 만났고, 그때 아버지는 마흔 다섯이었습니다. 그분 인생은 참 고단했습니다. 스물일곱에 남편을 사고로 잃었고, 그 다음 해에는 여섯 살 아들마저 물놀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 거렸고, 그 고통을 제대로 이해해 준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서른 여덟에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새어머니는 집을 정말 반듯하게 꾸려 갔습니다. 아버지를 살뜰히 챙겼고, 집안도 늘 반짝 반짝했습니다. 제가 집에 갈 때마다ᆢ 상이 휘어지게 밥을 차려 주셨고, 직접 텃밭에서 키운 채소도 바리바리 챙겨 주셨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는 말 그대로 몸을 갈아 넣듯이 간호했습니다. 병원에서도 거의 혼자 다 맡다시피 했습니다. 대소변 수발까지 들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라면 그렇게까지는 못 했을겁니다. 그래서 저는 늘 그분이 고마웠습니다. 우리 집에 해 준 모든 것, 아버지한테 쏟은 그 정성, 그걸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두 분이 ...

아침을 읽는다.. ♡ 으깨진 두부

2026,4.24일. 아침을 읽는다.. ♡ 으깨진 두부 유명한 여류 소설가 신달자씨가 어느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 대담을 나누던 중에 진행자가 남편에 대한 질문을 하자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9년 동안 시어머님의 병간호를 극진히 해드렸고 20년을 넘게 남편의 병수발을 불평 없이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고맙다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제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밖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나! 여보 비 좀 봐요. 당신이 좋아하는 비가 오고 있네요."라며 뒤를 돌아 보았는데 남편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말없이 묵묵했던 남편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졌습니다.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채 우두커니 고독을 새기며, "남편이란 존재는 아내에게 무엇을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가 아닐까요?" 라는 고백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어느 가정에 무뚝뚝하고 고집이 센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예쁘고 착하고 애교가 많았기 때문에 아내의 상냥스러운 말과 행동이 남편의 권위적인 고집불통과 무뚝뚝한 불친절을 가려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하는 길에 가게에 들러,두부 좀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이 남자가 궁상맞게 그런 봉지를 어떻게 들고 다니냐면서 벌컥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아내가 직접 가게에 가서 두부를 사가지고 오다,음주 운전 차량에 치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남편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내는 이미,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유품을 바라보다 검은 봉지에 담겨진 으깨진 두부를 발견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너무...

바다에 뜨는 별

바다에 뜨는 별/ 낙망이라는 중력보다 갈망이라는 부력이 더 크면 얼마든지 우리는 고해와 같은 세상에서 승리할수 있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신령해진다 해도 연약함은 연약함으로 남아 있다. 뿐만아니라, 하루 아침에 산이 바다가 되거나 죄인이천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사방이 우리를 가로 막을것이며 여전히 우리는 사망의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문제와 슬픔 으로가라 앉으려 할 때 더 이상견딜수 없는 어려움으로 체념의 바다에 빠져 갈 때차라리 죽는 것이 사는것 보다부러워 조금씩 사망의 그늘에 잠길 때갈망이라는 부력을 높이는 것이다. 깊은 바다 한가운데 쇠붙이를 떨어뜨리면 쇠붙이는 금방 가라앉고 만다. 그러나 쇠붙이에 스치로플을 묶어 바다에 빠뜨리면 쇠붙이는 가라 앉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가라 앉고자 하는 쇠붙이의 중력보다 뜨고자 하는 스치로플의 부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루는 쇠붙이와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가라 앉으려 한다. 기분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고, 물질로도 그렇고, 심적으로도 그렇다. 되는 일이 없어 그렇고, 가능성이 안보여 그렇고, 미래의 문에 닫혀 그렇다. 그뿐인가? 열등감으로 가라 앉으려 하고, 상처로 가라앉으려 하고 "비교가난"으로 가라 앉으려 한다. 하나님마져 움직여 주지 않으심에 그렇고, 망망대해에 홀로 버려진 듯한 생각으로 슬픔과 거절감의 바다에 빠져든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희망끈마져도 하루 지나고 나면한올 한올 풀어져 있다. 간신히 숨을 고르지만 더 이상내게는 희망과 가능성마져도비껴가고 보통 사람들에게는실개천같은 일상인 일들이내게는 건널수 없는 크고깊은 강으로 다가온다. 그럴때는 정신마져도혼미해지기 일쑤다. 그와 같을 때엔 다른 길이 없다. 갈망이라는 부력을 의지 하는 것이다. 낙망이 절망이라면 갈망은 희망이다. 낙망의 중력이 우리를 날마다 바다 깊은 곳으로 끌고 갈지라도 갈망이라는 부력으로다시 떠올라야 한다. 문제를 없앨 수는 없다. 바다를 하루 아침에땅으로 만들 수도 없다. ...

《여성 수학자, 캐서린 존슨》

《여성 수학자, 캐서린 존슨》 / NASA의 계산원 '캐서린 존슨'(1918~1920, 향년 102세)이 서류뭉치를 가득 들고 건물들 사이를 맹렬하게 뛰어가고 있었다. 특히 '캐서린 존슨'처럼 ‘흑인, 여성, 세 아이의 싱글맘’이라는 트리플 악재를 지닌 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그 여정이 유독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캐서린'의 삶은 인종 차별과 성차별로 얼룩진 트리플 쓰나미를 극복해낸 전설이라 할 만하다. '캐서린'이 서류뭉치를 안고 애타게 달려간 곳은 어이없게도 옆 건물의 화장실이었다. 흑인 직원들과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백인들 때문에, '캐서린'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다른 건물의 ‘유색인 전용’ 화장실로 뛰어가야 했다. 그런데 왜 서류뭉치를 들고 뛰었던 것일까? 아마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도 아까웠기 때문일 것이다. '캐서린'은 집에서 세 아이가 기다리는 싱글맘인데다가 교통비를 아끼려고 동료들과 함께 카풀 출퇴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 시간에 최대한 많은 일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려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껴야 하는데, 화장실이 다른 건물에 있으니 얼마나 속이 탔을까, 다행히도 이때 ‘유색인 전용 화장실’이란 간판을 철거하는 분노의 방망이가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캐서린'의 속사정을 알게 된 상사가 자기 관할 구역 안에서 만이라도 차별을 없애기 위해 나선 것이다. 물론 백인 남성인 그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런 호의를 베푼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겐 소련과 우주 개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캐서린'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캐서린 존슨'은 10살에 고등학교 입학자격 시험을 통과할 정도로 뛰어났지만, 초등학교로 학업을 마칠 뻔하기도 했다. 당시는 인종 분리 정책이 심할 때라 대부분 중학교에서는 흑인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열이 높았던 '캐서린'의 부...

”범사에 감사합니다.“

살전 5장 18절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NIV) 연구에 따르면 감사하는 마음이 가장 건강한 태도 중 하나라고 합니다. 당신은 무엇에 감사하고 있나요?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든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시고, 당신 안에 계시며, 당신 편이십니다. 그러므로 불평보다 감사할 이유가 항상 있습니다. 행복은 결국 선택입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마음과 태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복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좋은아침 ] 오늘은 당신이 눈으로 보는 것 마다 즐거움이 넘치고.... 오늘은 당신이 손으로 만지는 것 마다 신이 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당신이 예쁜 입술로 말을 할 때 모든 이에게 함박웃음을 전해주고 오늘은 당신이 귀로 듣는 것 마다 모두 기쁨 넘치고 기분좋은 하루면 좋겠습니다 "진실"은 나의 입술로 "관심"은 나의 눈으로 "봉사"는 나의 손으로 "정직"은 나의 얼굴로 "친절"은 나의 가슴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행복한 하루 되시고 늘 행운이 항상 당신 곁에~~*^^* 좋은일 웃을일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