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더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당신의 가장 큰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누가복음 6:36)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용서가 없는지 느껴본 적이 있나요? 그러나 사람들이 당신이 자비를 베푸는 모습을 보게 되면, 특히 사회가 점점 더 거칠고 냉정해지는 상황 속에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야—예수님처럼.”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누군가의 모든 행동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행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습니다. ---------------------아침 시. ♡ 내일 ♡ 이 세상은 결코 천국이 아니고 세상 사람들은 또 천사가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천국이라 여기고 살면 때로 세상이 천국이 되고 세상 사람들도 천사가 되는 게 아닐까? 내일은 너를 만나는 날 너를 만나는 그 곳이 천국이 되고 내가 또 천사가 아닐까? 오늘부터 나는 천국을 살고 천사를 만난다. ㅡ 나태주 ㅡ 작은 기쁨 찿는 아침을 엽니다 ♡♡♡
벌침의 비유/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12/ 약 50년 전, 내 주변을 맴돌던 벌떼에 쫓겨 제이 엘리엇의 집 현관문을박차고 들어갔을 때의 그의 놀란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내가 그 집 뒷문으로 빠져 나왔을 때 벌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였지만, 사실은 내가 벌떼를 제이의 집에 남겨놓았던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그 역시 나를 따라온 벌들에 쫓겨 뒷문 밖으로 뛰어나왔습니다. 나는 열 군데 이상을 쏘였지만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이는 달랐습니다. 그는 “내” 벌들에게 한두 군데정도 쏘였을 뿐인데도 눈과 목이 고통스런 알레르기 반응으로 부어올랐습니다. 나 때문에 친구가 심한 고통을 당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도 실제로 일어납니다.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를 닮지 않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사과를 할지라도 “벌에 쏘인 상처”는 그대로 남습니다.그리스도인들이 따뜻하고 인내심이 있기를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신앙이나 삶 때문에, 혹은 두 가지 모두 때문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그런 기대를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을 바라 본다는 것을 우리는 때때로 잊어버립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분노 보다는 자비를, 판단보다는 동정을, 비판보다는 격려를 보기를 더 기대합니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선한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마 5:16; 벧전 2:12). 우리의 이웃들이 우리의 행동과 반응을보고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향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말하거나 행동하기전에 잠시 멈추어 생각하게 해주소서. 친절과 배려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채워주소서. 사람들이 내게서 내 모습은 적게 보고, 예수님의 모습을 많이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