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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와 재산을 주시고 그것을 누리게 하신다면, 우리는 감사하며 우리가 수고해서 얻은 것을 즐겨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도서 5:19 행복은 당신의 환경과는 거의 관계가 없고, 당신의 태도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더 많이 가진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사람은 늘 조금 더 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누리기로 선택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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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라지는가?

책은 사라지는가?/ 시대가 바뀌어서 책의 시대는 지나고 이제는 영상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에는 '좋은 책'을 찾았는데 지금은 '재미있는 책' 을 찾고 책을 '읽는다' 가 아니라 책을 '본다' 고 합니다.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이제 책의 시대는 영원히 가버린 것일까요? 아닙니다.영상은 순간적인 자극을 주지만, 마음에 철학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한 번 눈앞을 지나가 버린 영상을 다시 보려면 리플레이를 눌러야 됩니다. 그러나 글은 리플레이를 누를 필요가 없습니다. 눈동자만 움직이면 되니까요. 영상은 단회적인 반면 글은 자동 무한 반복이기 때문에, 단 한 줄의 문장도 깊은 묵상이 되고 철학이 됩니다. 똑같은 영상은 두 번만 봐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지만, 글은 자기도 모르게 이해가 될 때까지 자동으로 여러 번 읽혀집니다. 영상은 감정을 자극하지만, 글은 이성을 자극합니다. 감정은 뜨거워졌다가도 식어버리면 그만이거든요. 그러나 이성에 굴복되면 사람 자체가 변합니다. 글만큼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동영상이 아무리 대세라고 해도 글과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그걸 눈치 채고 방송에도 자막이라고 부르는 글을 영상에 많이 넣습니다.

사람의 '전체'를 보아라

사람의 '전체'를 보아라 / "사랑은 맹목적이다."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사랑이 맹목적인 동안에는(즉 사랑이 상대편의 '전체'를 보지 못하는 동안에는) 사랑은 아직도 근원어 '나-너'의 지배하에 서 있지 않다. 미움은 원래가 '맹목적'인 것이다. 상대편의 부분밖에 보지 못할 때에만 미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마르틴 부버의《나와 너》중에서 - * 그 사람의 전체를 보면 미워할 수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부분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나의 욕망을 충족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상대의 전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너와 나의 영적 합일'에 있습니다. 전체로서의 '너'와 '나'의 참다운 만남 안에 사랑이 존재합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Thank you, godowon morning letter..!"

파란색 에너지/

파란색 에너지/ 절망과 희망은 일란성 쌍둥이다. 우리가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희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 되기도 한다.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희망 속에서 절망을 보지만 현명한 사람은 절망속 에서도 희망을 캐낸다. 어떠한 시련도 행복의 기회일뿐, 불가능은 없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으면 합니다. 단 하나뿐인 사람답게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장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으면 눈앞에 있는 상대의 '개성'도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자신에게 긍지를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萬古의 眞理♥

♥萬古의 眞理♥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도 어떤 사람은 별을 보고 어떤 사람은 어둠만 봅니다. 같은 사람을 만나도 어떤 사람은 장점을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단점만 기억합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마음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입니다. 창문에 먼지가 묻어 있으면 밖의 풍경이 흐려 보입니다. 그러나 흐린 것은 세상이 아니라 창문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불평이 가득하면 감사할 일이 보여도 불만이 먼저 보이고 시기가 가득하면 축하할 일이 생겨도 배가 먼저 아픕니다. 반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작은 행복도 크게 누립니다. 사람을 바꾸려 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의 창문을 닦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내 생각이 나를 더 힘들게 합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기회를 발견하고 어떤 사람은 핑계를 발견합니다. 같은 고난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성장하고 어떤 사람은 원망합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무엇을 얻느냐를 결정합니다. 🍉🍇🍒 제철 과일 하루 중 언제 먹는게 좋을까? 🌺복숭아ㅡ저녁에 먹는 것이 좋다.  폴리페놀류 성분이 들어 있어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고 암을 예방하며,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파인애플ㅡ저녁식사로 고기등의 단백질 식품을 먹은 뒤 섭취한다. 파인애플에 들어 있는 브로멜린이란 단백질 분해 효소가 단백질의 소화를 돕기 때문이다.  🌺수박ㅡ아침, 저녁에 먹어도 되나 늦은 밤에는 피한다.  야뇨증, 전립선비대증 같은 배뇨장애가 있으면 저녁에는 되도록 먹지 않는다. 🌺토마토ㅡ아침, 저녁으로 언제 먹어도 좋다.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혈압이 올라가는 오전에 먹으면 좋다.  토마토는 혈압을 낮춰 몸을 차게 하므로 노약자는 생토마토 보다 익혀 먹는 것이 좋다.  또, 토마토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지방이 쌓이는 것을 예방한다.  🌺바나나ㅡ저녁에 먹는다.  신경안정 효과가 있어 스트레스로...

🌸영혼의 순례(비움 속에 평안)🌸

🌸영혼의 순례(비움 속에 평안)🌸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으신다 이른 새벽, 순례자는 작은 언덕에 앉아봅니다. 밤이 다 지나갔는데도 동쪽 하늘은 아직 어둡습니다. 문득 마음속에서 조급한 생각이 일어납니다. “왜 아직도 밝아오지 않을까.” 그러나 하늘은 그 누구의 재촉에도 서두르지 않습니다. 새벽은 한순간에 오지 않습니다. 어둠이 조금씩 물러가고, 희미한 빛이 산등성이를 스치며, 마침내 온 세상이 밝아집니다. 하나님의 일하심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우리는 기적을 기다리지만, 하나님은 성숙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결과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과정을 빚으십니다. 씨앗 하나가 땅속에서 싹을 틔우기까지 아무도 그 움직임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시간은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이 아니라, 가장 깊은 생명이 자라는 시간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말씀을 읽어도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사람은 자고 깨는 사이에도 씨는 스스로 자란다고 하셨습니다. 농부는 억지로 싹을 끌어올리지 않습니다. 기다립니다. 햇빛을 믿고, 비를 믿고, 생명의 신비를 믿습니다. 신앙도 억지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조용히 익어 갑니다. 순례자는 오래된 포도나무 아래에 앉습니다. 굽은 줄기에는 수많은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자신의 굽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묵묵히 열매를 맺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순례자는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반듯한 사람보다 익어 가는 사람을 기뻐하시는구나. 세월은 몸을 늙게 하지만, 은혜는 영혼을 익게 합니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아까의 어둠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집니다. 그제야 순례자는 미소를 짓습니다. “새벽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빛은 내가 끌어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찾아온 선...

조용히 내리는 은혜입니다.

조용히 내리는 은혜입니다. / 이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조용히 내린다는 것입니다. 소나기는 요란하게 내립니다. 이런 소나기는 때로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홍수가 나서 모든 것을 다 쓸어가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슬은 다릅니다. 온 세상을 소란하게 하는 큰 소리도, 차고 넘치는 충만함도 없습니다. 이슬은 소리 없이 내려 온 세상의 생명을 유지시키며 소생케 하는 너무도 유용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슬은 생명, 부활, 젊음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주 사용되기도 합니다. 우리도 때로는 강한 성령의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누가 봐도 은혜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표시 나는 은혜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일상의 매 순간을 살아가면서 조용히 이슬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런 은혜는 겉으로 보면 은혜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냥 덤덤해 보이고 크게 변화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은혜가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소나기로 내렸던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임했음을 발견하는 때가 옵니다. 초목이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을 머금고 성장하는 것처럼, 소리 없이 임하는 이슬 같은 은혜를 받아 나날이 성장하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