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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늙은이는 성숙한 젊은이

늙은이는 성숙한 젊은이/ 문맹은 글씨를 못 보는 사람이 아니라 글씨를 안보는 사람입니다. 젊은이와 낡은 이의 구분도 잘 살펴야합니다. (늙은이는 성숙한 젊은이입니다.) 나이가 많아져서 낡아지는 게 아닙니다. 새로워지려 하지 않으니 낡아지는 것입니다. 알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으니 낡아지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끊임없이 낡아진 자기를 깨고 새로운 자기를 세우는 자입니다. 언제나 새로워지려는 자가 젊은이입니다. 80세에도 젊은이가 있고 20세에도 낡은이가 있습니다. 녹슬지 않는 삶을 위하여 우리 모두는 늙는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면 죽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려워 할것은 늙음이나 죽음 이 아니다.녹슨 삶 을 두려워해야 한다. 삶이 녹슬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다중에서 - 모든 것은 늙고 병들고 죽는다.이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어제가 오늘이 아니고 지금의 이야기가 내일은 낡은 이야기가 된다. 늙고 죽는 것에 대한 절규는삶을 더욱 노화시킬 뿐이다. 모든 노화는 태만과 마음의 빈곤에서 시작된다. 생산적인 삶, 아름다운 감성, 더 이해하고 더 사랑하는 마음만이 삶을 더욱 푸르게 한다. 조화와 균형의 질서만이 삶을 녹슬지 않게 한다. 어제 내린비로 씻긴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며봄 바람에 연두빛으로웃을 입기 시작하는 나무들은 살랑살랑 가지를 흔들며 싱그러운 향기를 풀어내고 여러 물새들의 고운울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으며 소복소복 솟아 오르는 파릇 파릇한 풀잎 사이로 깨알같은 노오란 풀꽃이 수줍은 듯 피어나고 청옥색의 강 물결에 현란한 빗살이퍼져 나가는 강은 마치 은별이 흐르는 듯, 은하 강이 흐르는 듯, 너무도 아름다웠지요. 긴 한숨 뿜어내 바람속에 날려 보내고 강에 흘려 버리며 지친 마음 다스리고 나니 마음이 더욱 맑고 산뜻해지더군요.
최근 글

이것이 다 내 것이라고?         이영순

이것이 다 내 것이라고?         이영순 / 나의 방에 들어서니 나의 것이 어찌 이렇게 많은가! 세상에 올때는 알몬으로 왔는데 ! 아니 오래 전 미국에 올때는 가방 하나 들고 왔는데! 그리고 생각하니 사람들은 내것 때문에 온통 아우성이다. 요즘 이 정 들었던 내것들이 무거운 짐이 되었네! 종 종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어딘지 숨어있다가 불숙 불숙 틔어나오니  오히려 귀찮은 존재가 되니 이것도 내것에 대한 애착때문인가! 내것이? 내 것이 어디 있어요? 아무리 내것이라고 우긴다 해도 갈때는 다 알몸으로 가던데요. 그러기에 인간은 착각 속에 날마다 분주하고, 착각속에서 어굴하고 아니,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착각이지요. 예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애써 얼굴을 고치고 문질러 발라도 그것은 잠간이던데요. 아웅 다웅 에써 번 돈으로 노후를 편안히 살겠다던 부부는 그 돈을 써 보지도 못하고 차 사고로 가던데요. 그러니까  돈 많은 사람도  돈 없는 사람도 다 잠깐이던데요. 그러니까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바램과는  달리  병들고 늙어가고 아니 엉뚱한 암이 덤벼들어 세상을 하직하는 소식만이 들리네요. 내것이 세상에 어디있어요? 내것은 하나도 없네요.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인생의 순례의 길에서 우리 구주 예수님과 함께 걸으면서 노년의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만끽합시다.                                      이영순 Santa Clarita

목숨을 살린 배려

목숨을 살린 배려/ 바닷가에 별장과, 작은 배를 가진 남자가 여름마다 별장에 가서 작은 배를 타고 난 뒤에 손질을 해두었습니다. 하루는 그 배를 손질하던 도중 배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바로 수리를 해야 했지만,´어차피 1년 있다 사용할 건데 뭐´라는 생각으로 그냥 방치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도색은 필요할 것 같아 사람을 불러 페인트를 칠한 뒤 창고에 배를 잘 보관해 두었습니다. 일 년이 지난 뒤 남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별장을 찾았다. 아이들은 배를 타고 놀게 해달라고 했고 남자는 별 생각 없이 허락을 했다. 아이들이 떠나 지 한 시간이 돼서야 보트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황급히 아이들을 찾아 나섰는데, 저 멀리서 무사히 아이들이 돌아와 배를 보니 구멍이 깔끔하게 수리되어 있었다. 작년에 배에 페인트 칠을 하던 남자가 구멍을 보고는 수리를 해준 것이다.남자는 큰 선물을 준비한 뒤 칠을 해준 사람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배려에 정말로 감사 드립니다. 당신에겐 작은 선행이었지만 그 선행이 나의 두 자녀를 살렸습니다!˝ 작은 선행, 작은 노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힘이 닿고, 기회가 생기는 한 한 작은 배려와 노 력을 아끼지 마십시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26 10 16 브니엘!   창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은 야곱이 붙인 것이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성경에 없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것은 유서가 깊은 화려한 도시가 아닌 인적이 없는 얍복 나루 건너편 언덕의 이름없는 거친 광야인 것을 알 수 있다.   그곳에서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했다. 그리고 그 씨름에서 이겼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어코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씨름한 곳을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 브니엘이라 불렀다. 하나님의 얼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출 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다.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는 순간 죽는다.   그 하나님과 야곱은 씨름을 한 것이다. 얼굴을 본 것뿐 아니라 씨름을 했다. 그리고 이겼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야곱은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하나님의 얼굴을 볼 뿐아니라 함께 씨름을 했고, 그리고 그 씨름에서 이겼다.   야곱 자신이 죄로 인해서 마땅한 형벌을 받고 죽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과 긍휼을 통해서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다.   브니엘은 죄인이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대 앞에서 죽지 않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하나님의 얼굴이다.   고후 4:6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 뒤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 뒤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미리 아셨고, 그들이 그의 아들을 닮도록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가족의 성품을 닮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숙해 가는 데 있어서 본받아야 할 최고의 모습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보다 우리의 성품을 빚어 가시는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고통과 거절과 실망과 어려움이 전혀 없는 삶을 사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셨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끝까지 충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도 그와 같은 성품**이 자라나기 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황을 즉시 바꾸시기보다, 그 상황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우리의 삶이 더 편안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조금씩 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무승부의 원리란 생명의 원리이다

무승부의 원리란 생명의 원리이다 / 무승부의 원리란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생명의 원리입니다. 부부란 타이틀 매치를 벌이기 위해 링에 올라가서 상대방을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야 하는 권투 선수는 아닙니다. 사랑으로 이루어진 관계에서는 승자와 패자의 우열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그대의 결혼이라는 사랑의 컵에서 사랑이 넘치게 하려면 그대가 잘못했을 때 시인하고 그대가 잘했을 때 침묵하라” 우리 인생들은 사회생활에서 항상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주장을 하며 삶의 승리자가 되려는 본능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한 것은 합리화시키고 잘한 것은 드러내려고 하지만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들에게는 잘못한 것을 시인하는 용기와 잘한 것에 침묵하는 겸손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에는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의 높은 산이 깎이고 나의 낮은 골짜기가 메워져 평탄한 대로를 함께 걸어가는 것이 부부입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 인생의 모든 음표를 지나 마침내 발견한 감사 우리 집 벽에는 오래전부터 한 장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림 속에는 바이올린 한 대가 놓여 있다. 활은 악보 위에 비스듬히 놓여 있고, 곁에는 히브리어로 쓰인 시편 한 권과 은빛 잔 하나가 조용히 놓여 있다.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세 가지가 하나로 다가온다. 말씀과 음악과 잔. 시편은 말씀이고, 바이올린은 그 말씀을 살아내는 인생의 연주이며, 잔은 그 모든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 가운데 내가 오래 마음에 품어온 한 구절이 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젊었을 때 나는 이 말씀을 많이 가진 사람의 고백이라고 생각했다. 건강하고, 일이 잘되고, 자녀가 잘되고, 경제적으로 넉넉하며, 원하는 것을 이루는 삶. 잔이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 말씀은 전혀 다른 뜻으로 다가왔다. 인생의 잔에는 좋은 것만 담기지 않았다. 기쁨도 담겼지만 눈물도 담겼고, 만남도 담겼지만 이별도 담겼다. 성공도 담겼지만 실패도 담겼다. 얻은 것만큼 잃은 것도 있었다. 때로는 하느님께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느냐고 묻고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돌아보니 그 모든 것이 내 잔 안에 들어 있다. 나는 한때 좋은 것만이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안다. 삶은 기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만남과 이별, 빛과 어둠이 함께할 때 비로소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바이올린에는 네 줄이 있다. 높은 음만으로는 음악이 되지 않는다. 낮은 음도 필요하다. 장조만으로는 곡이 완성되지 않는다. 때로는 단조가 필요하다. 빠르게 지나가는 음표도 있고, 길게 머무는 쉼표도 있다. 삶도 그러했다. 나는 좋은 음만 연주하고 싶었다. 성공, 건강, 기쁨, 사랑. 그러나 내게 주어진 악보에는 내가 원하지 않았던 음표도 있었다. 실패가 있었고, 기다림이 있었으며, 눈물이 있었고, 이별도 있었다. 그때는 그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