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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최빈국에서 출발한 한국의 기적!

◆상당히 긴 글입니다. 가슴 찡합니다◆ * 전쟁으로 최빈국에서 출발한 한국의 기적!!!*** 1950년부터 3년간의 전쟁이 한반도에 남긴 것은 거의 없었어요. 건물은 무너졌고 다리는 끊어졌으며 사람들은 집을 잃었습니다. 1953년 10월 영국 가디언지의 특파원 제임스 카메론이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본 광경을 기사로 썼어요. 거리마다 무너진 건물들뿐이다.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사람들은 판잣집과 천막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은 맨발로 돌아다닌다. 겨울이 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어 죽을지 상상조차 끔찍하다.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그랬어요. 서울 인구 100만 명 중 60만 명이 판자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상수도가 없었고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1953년 11월 프랑스 르몽드지가 더 직설적인 표현을 썼습니다. 한국은 국가라고 부를 수 없다. 이건 그냥 폐허다. 원조로 연명하는 거대한 난민촌일 뿐이다. 숫자로 보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1953년 한국에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였어요. 당시 세계 최빈국으로 꼽혔습니다. 에티오피아가 70달러였습니다. 한국이 에티오피아보다 가난했던 겁니다. 산업시설은 거의 다 파괴됐어요. 전쟁 전에 있던 공장 600개 중 500개가 폭격으로 망가졌습니다. 남은 공장도 돌아갈 전기가 없었고 전기가 있어도 돌릴 기술자가 없었어요. 1954년 3월 미국 타임지가 한국 특집 기사를 냈습니다. 제목이 충격적이었어요.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파괴된 나라.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았던 거예요. 전쟁 전 남한 인구는 약 2천만 명이었는데 북쪽에서 피난 온 사람들까지 합치니 2500만 명이 넘었습니다. 좁은 땅에 먹을 것도 없는데 사람만 넘쳐났어요. 1955년 1월 세계은행이 한국에 조사단을 보냈습니다. 6개월간의 조사를 마쳤습니다. 마치고 그들이 낸 보고서의 결론은 냉정했어요. 이 나라가 자립 경제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소 30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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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깊이 묵상하면서,

사순절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깊이 묵상하면서 회개와 경건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삶에 적용해 보는 시간입니다. 또한 사순절은 기쁨으로 부활절을 맞이하는 준비의 시간으로, 자신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며 우리 삶의 방향을 경건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로 되돌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 기간 동안에 우리의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그리스도인이 사는 법,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와 생활을 깊이 느낄 수 있도록 교육적인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A.D 325 년 니케아 회의에서 정한 교회의 규칙에 40 일간의 사순절이 언급되어 있고, 몇 년 후 아타나시우스의 목회서신에도 사순절과 부활절에 대한 준비의 말씀이 있습니다. 사순절은 중세기부터 주로 회개의 시기로 지켰는데 종교개혁자들도 이 사상을 받아들여서 공동기도문 중 사순절 기도문 주제를 “회개”로 삼았습니다. 당시 니케아 종교회의 때 사순절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1.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데,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사랑과 고난을 묵상하고, 2.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보며,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사명을 감당할 것인지를 각오를 다지는 기간이며, 3. 온전한 신앙회복을 위한 결단의 기간으로, 직접적인 전도활동과, 소외된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금식해서 모인 성미와, 마음에 우러난 헌금과, 헌혈도 하는 절대 경건의 기간으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끼 밥을 먹어 우리의 육체를 보살피듯이, 사순절의 묵상도 계속되어 온갖 유혹에서 넘어지지 말아야겠습니다. 기호품이나 즐겨 하는 것들을 절제하고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삶에서 돌이키며 잠잠히 주님과 동행하여 그분을 닮아가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결국 사순절은 예수님의 삶과 사역, 고난을 묵상하며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기간입니다.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 아름다운 순종과 희생의 길을 따라가기 위해 나는 어떤 경건의 훈련을 계획하고 있는지요? 믿음과 고백은 삶의...

상대주의와 형식주의를 타파하는 능력 2/🍀어느 가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상대주의와 형식주의를 타파하는 능력 2 [마태복음 7:24~25]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어느 가정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부모님은 교회에서 직분도 있었고, 열심히 봉사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아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일예배와 입시설명회가 겹치면 “오늘은 어쩔 수 없지.” “자식을 위한 일이니 하나님도 이해하시겠지.”, 아이의 성적이 오르면 감사했고, 등급이 떨어지면 온 집안이 어두웠습니다. 가정예배는 바쁠 때는 자연스럽게 생략되었지만 학원 상담은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의 명문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부모는 기도응답에 감사하며 눈물로 그를 공항에서 보냈습니다. 처음 몇 달은 괜찮았습니다. “엄마, 여기 수업 재미있어요.” “교수님이 토론을 많이 시켜요.” 아들은 지적 토론이 활발한 환경을 만났습니다 “진리는 절대적이지 않다.” “도덕은 사회가 만든 규칙이다.” “종교는 문화적 산물일 뿐이다.” 이런 말들이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는 생각했습니다. ‘맞는 말 같은데…?’ 왜냐하면 그에게 신앙은 삶의 중심이 아니라 입시를 도와주는 배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전화로 물었습니다. “요즘 교회는 나가니?” 아들은 가볍게 말했습니다. “엄마, 종교는 각자 선택이에요. 진리는 상대적인 거잖아요.”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다.” 아들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아빠, 저 어릴 때 우리가 진짜 절대적으로 여긴 건 하나님이 아니라 성적 아니었어요?”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습니다. “교회도 다녔죠. 하지만 시험 기간이면 예배보다 모의고사가 더 중요했잖아요. 기도도 했죠. 근데 기도 제목은 늘 대학이었잖아요. 저는 그냥 집에서 가장 ...

”상팔자 인생..!“

끝까지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는 글. (선물상자)"상팔자 인생..!" / 여러분은 노년에 누가 가장 상팔자라고 생각하십니까? 평생 악착같이 모아 건물주 된 사람? 자식들 명문대 보내고 의사, 변호사 만든 사람? 천만의 말씀입니다. 살아보니 그게 다 부질없더군요. 돈이 수백억 있어도 병실에 누워 콧줄 꽂고 있으면 그게 지옥이지 무슨 팔자입니까? 자식이 잘나면 뭐 합니까? 바쁘다 핑계로 명절에 전화 한 통 없으면, 그게 바로 독거노인 신세입니다. 진짜 팔자 좋은 사람 따로 있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평범해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세상 근심 하나 없이 매일이 소풍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특별한 이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70, 80이 넘어서도 자식 눈치 안 보고 남 부러울 것 없이 당당하게 사는 진짜 팔자 좋은 사람들의 특징 다섯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내가 여기에 해당하지는 않는지, 꼭 확인해 보십시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첫째, 죽을 때까지 내 집에서 떵떵거리는 사람 옛말에 금수저 흑수저 따지지만, 노년의 진짜 최고의 수저는 바로 '내 집 수저'입니다. 아무리 자식이 잘나서 강남 타워팰리스에 산다 한들 그 집에 얹혀사는 부모와, 다 쓰러져 가는 촌집이라도 내 명의로 된 집에서 사는 부모 둘 중 누가 더 행복하겠습니까? 100이면 100, 내 집 있는 사람이 압승입니다. 늙어서 남의 집에 산다는 것, 그것만큼 서럽고 눈물 나는 일이 없습니다. 자식 집이요? 그게 남의 집이지 어떻게 내 집입니까. 아들 집은 며느리 집이고, 딸 집은 사위 집입니다. 합가해서 사는 순간부터 여러분의 인생은 '닌자(忍者) 생활'이 시작되는 겁니다. 아침에 눈이 떠져도 며느리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면 방에서 못 나갑니다. 목이 말라 죽겠는데 냉장고 문 여는 소리가 탱크 소리처럼 클까 봐 침만 꼴깍 삼킵니다. 화장실은 또 어떻습니까? 볼일 보고 물 내리는 소리에 며느...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4:18 오늘 당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습니다. 지금 느끼는 압박감, 걱정, 불확실함은 모두 한때의 순간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오래 지속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그분의 사랑,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그리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는 영원한 소망입니다. 마음이 벅차고 힘들 때, 시선을 바꾸십시오. 문제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영원한 관점**을 바라보십시오.믿음은 우리가 현재의 순간을 넘어, 아직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게 합니다. 주님, 잠깐의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집중하도록 도와주세요. 전체 그림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주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Amen.

한국의 젓가락 문화^^

**한국의 젓가락 문화^^ 저는 '리처드 폴먼'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30년째 문화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 전공은 '음식 인류학'과 '인지 인류학'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떤 도구로 먹느냐가 제 연구 주제였습니다. 젓가락, 포크, 숟가락, 손으로 먹는 문화까지 모두 제 연구 영역이었죠. 지난 30년간 저는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를 오가며 현장 조사를 진행해왔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식문화는 이미 여러 편의 논문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들은 예측 가능한 문화권이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달랐습니다. 한국은 늘 데이터에서 튀는 값이었습니다.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설명도 되지 않았죠. 세계 강대국과 식사 도구를 연결시키는 건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 논리니까요. *먼저 포크를 생각해 봅시다. 포크는 서양 문명의 대표적인 식사 도구입니다. 구조가 단순하죠. 매개의 날카로운 네 갈래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습니다. 사용법도 간단합니다. 음식을 찌르면 됩니다. 손목을 약간만 움직이면 되고 힘도 거의 들지 않습니다. 필요한 근육은 손목과 팔뚝 일부뿐입니다. 단순 동작의 반복이죠. 뇌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이제 젓가락을 봅시다. 젓가락은 완전히 다른 도구입니다. 2개의 막대를 동시에 제어해야 하죠. 하나는 고정하고 다른 하나는 움직여야 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지렛대 원리가 작동한다는 겁니다. 엄지와 검지 중지가 정확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손가락 끝에 압력이 손목으로 전달되고 손목의 각도가 팔 전체의 균형을 결정합니다. 하나의 연쇄 작용이죠. 그런데 한국의 젓가락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한국의 젓가락은 쇠로 만들어서 무게가 있습니다. 나무젓가락과 비교하면 2배에서 3배는 무겁죠. 그리고 표면이 매끄럽습니다. 나무처럼 마찰력이 없습니다. 힘을 과하게 주면 음식이 바져나가고 힘을 덜 주면 음식을 놓치게 됩니다. 강의실이 점점 더 조용해졌습니다. 더 중요한 건 형...

정직이 가져다준 선물💟

💟정직이 가져다준 선물💟 1990 년대, 미국의 자선 사업가 케네스 벨링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빈민가를 지나던 중, 지갑을 잊어버린 것을 알았다. 벨링의 비서는 '빈민가 사람들이 주운 지갑을 돌려 줄 리 없다며 포기하자'고 했지만, 벨링은 지갑을 주운 사람의 연락을 전화기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전화 연락은 없었다. 비서는 ‘지갑에 명함이 있으니 돌려 줄 마음이 있었으면 벌써 연락이 왔을 겁니다’ 라며 퇴근을 종용했지만 벨링은 침착한 모습으로 전화를 기다렸는데 날이 어두워 질 무렵 드디어 전화가 왔다. 지갑을 주운 사람은 남루한 차림의 어린 소년이었고, 돌려준 지갑에 든 돈은 그대로였는데 지갑을 건넨 소년이 주저하면서 말했다. “혹시 돈을 좀 주실수 있나요?” 비서는 "그럴 줄 알았다"며 소년을 비웃었지만, 벨링은 웃으며 소년에게 얼마가 필요한지 물었다. “감사해요. 저에게 1 달러만 주시면 돼요. 지갑을 주운 후 연락하기 위해 공중 전화가 있는 곳을 찾긴 했지만, 전화를 걸 돈이 없어서 주변 가게에서 빌렸어요. 그 돈을 갚으려고요.” 소년의 말에 벨링은 속으로 감탄하면서, 의아하여 물었다. “내 지갑에 돈이 있었는데 왜 그 돈을 쓰지 않았니?” 그 물음에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그건 제 돈이 아니잖아요. 남의 지갑을 허락도 없이 열면 안 되잖아요.” 소년의 얘기를 들은 비서는 자신의 생각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소년의 맑은 눈을 본 비서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고, 벨링은 감동한 나머지 소년을 꼭 끌어 안아 주었다. 벨링은 즉시 지금까지의 자선 사업 계획을 변경하여, 빈민가에서 학교에 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그곳의 몇몇 학교에 투자를 했는데 벨링의 마음이 그렇게 바뀐 것은 바로 그 정직한 소년 때문이었다. 그 학교의 개학식 연설에서 벨링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을 멋대로 추측하여 평가 하지 마십시오.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