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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업그래이드 하라/

인생을 업그래이드 하라/ 1만2000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에 도전합니다. 바로 ‘하루 한 번 하늘 보기’입니다. 도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카메라 앵글이 하늘로만 꽉 찬 사진을 매일 올려야 합니다. 창문이나 장애물에 가려지면 실격입니다. 건강한 습관 형성 앱 챌린저스에 올라온 목표입니다. 이곳에는 5시 기상, 50일 안에 복근 만들기 등 목표가 다르지만 원하는 것은 동일한 도전으로 가득합니다. 바로 나 자신의 업그레이드입니다. 업그레이드는 한 단계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버전을 높여 오류를 해결하고 성능을 향상시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삶의 질적 변화를 의미하는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줄여서 ‘업글 인간’이라 합니다. 업글 인간의 동기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오는 불안보다는 어제보다 못한 내 모습에 대한 불안입니다. 그래서 than other보다는 than yesterday, ‘남들보다 나은 나’보다 ‘어제보다 나은 나’에 관심이 많습니다. 겨자씨가 거목이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매일매일의 성장이 소중합니다. 업글 신앙인이 되기 위해 신앙 습관 챌린저스를 하나씩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최근 글

복합붕괴와 질병…

죽음은 복합붕괴의 결과다. 80을 넘어서면 질병의 문제보단 가족,친구,사회적 단절과 삶에대한 의욕상실로 죽음에 이른다. 살아야할 의미하나만 남겨두면 된다. 받은 내용이 넘넘 공감이 되어서 전달 합니다. 85세 전후에 죽는 ‘충격적 이유’🆘️ "병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 마지막을 앞당긴다" 의학 통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큰 병 없이 지내다” 80대 중후반, 특히 85세 전후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가족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특별히 아픈 데도 없었는데요.” 그러나 의학적으로 보면, 이 죽음은 결코 갑작스럽지도, 이유 없는 것도 아니다. 1️⃣ 사망 원인은 ‘병’이 아니라 복합 붕괴 85세 전후의 사망은 하나의 질병 때문이 아니라, 신체·정신·사회적 기능이 동시에 무너지는 ‘노쇠의 종착점’에서 일어난다. 심장은 아직 뛰지만 자율신경의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폐는 숨을 쉬지만 기침 반사와 면역 방어가 약해지며 뇌는 의식이 있으나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 사라진다 이 상태에서 감기 한 번, 넘어짐 한 번, 식사량 감소 몇 주가 곧바로 생의 마지막 방아쇠가 된다. 2️⃣ 의학적으로 가장 치명적인 요소: 근육 소실과 탈수 85세 전후 사망의 공통 분모는 의외로 단순하다. 근감소증(Sarcopenia) 만성 탈수와 저영양 노년기에 근육은 단순한 ‘힘’이 아니라 ▶ 면역 저장고 ▶ 혈당 조절 장치 ▶ 낙상 방지 장치 ▶ 호흡 보조 기관이다. 걷는 양이 줄고, 씹는 힘이 약해지고, “입맛이 없다”는 말이 늘어나는 순간 몸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하강 곡선에 들어선다. 3️⃣ 생활 측면에서 가장 충격적인 이유: 쓸모의 상실감 의학이 쉽게 말하지 않는, 그러나 결정적인 요인이 있다. 바로 “나는 이제 할 일이 없다”는 마음이다. 노년기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이것이다. “사람은 병보다, 의미 상실로 더 빨리 죽는다.” 친구와의 단절 사회적 역할의 종료 하루를 시작할 이유의 소멸 이때 몸은 생존을 ‘목표’로 삼...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잠언 12:25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적절한 때에 전해진 한마디 말은 불안이 짓누르던 마음을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평범한 말들을 사용하셔서 놀라운 치유를 이루십니다. 마음이 무겁게 느껴질 때, 혼자 버티려 하지 마세요. 친절과 위로가 당신에게 닿도록 마음을 여세요. 또 누군가가 근심으로 눌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 당신의 말이 가진 힘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주님, 불안이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큰 무게가 되는지 주님은 아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 주님의 따뜻한 말씀을 들려주시고, 치유를 전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로 우리를 빚어 주옵소서. 언제 들어야 하고, 언제 말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며,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 주님의 긍휼과 사랑이 드러나게 하소서. 아멘.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산다 1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산다 1, / [로마서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정말 뜨거웠습니다. 새벽 기도도 빠지지 않았고 성경은 밑줄로 가득했고 찬양만 나와도 눈물이 났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내 인생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의 입술에는 늘 감사가 있었고 마음에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회사 일이 바빠지자 피곤하다는 이유로 기도는 하루 이틀 빠지기 시작했고, 업무상 일요일에 골프가 잡히면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고, 말씀 묵상은 “내일 하지 뭐”로 미뤄졌습니다. 예배를 드리긴 했지만 온라인으로 차에서나 다른 장소에서 드리자 집중도는 떨어졌고, 마음에 새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은 마음에 있지, 꼭 현장에 가야 할 필요 있나.” “내가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처음엔 작은 타협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죄에 민감하지도 않고, 기도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고, 말씀을 안 봐도 괜찮아졌습니다. 세상의 가치가 더 중요해지고, 성공, 돈, 인정이 신앙보다 앞자리에 앉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삶은 세상 사람과 똑같아졌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도 감격이 없었습니다. 찬양이 울려 퍼져도 그는 시계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언제 끝나지? 오늘도 할 일이 많은데… 늦게 끝나면 차 빼는데 시간 걸리니 빨리 나가자” 그는 교회 안에 있었지만 열정이 식으면서 복음의 능력 밖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 [요한계시록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조금씩 식어갑니다. 말씀을 미루고 기도를 줄이고 복음의 감격을 붙잡지 않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교회 안에는 있지만 복음의 능력 밖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명목상...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세아 6:1 (NET) “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찢으셨지만, 우리를 고치실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를 상하게 하셨지만, 우리의 상처를 싸매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찢으시지만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하게 하시지만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십니다. 그분의 목적은 언제나 파괴가 아니라 **새롭게 하심**이며, 버림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회개는 수치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방향의 전환**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고갈시키던 것들에서 돌아서서, 다시 생명을 살리시는 유일한 근원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멀리 떠났든, 얼마나 오래 미루어 왔든, 그분의 초대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치유는 우리가 돌아오기로 결단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Amen..!

마음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

마음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 생각은 우물을 파는 것과 닮았습니다. 처음에는 흐려져 있지만 차차 맑아지니까요. 살다 보면 진정 우리가 미워해야 할 사람이 이 세상에 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원수는 맞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마음속에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병은 육체의 병이지 마음의 병은 아닙니다. 성한 다리가 절룩거리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리에 생긴 이상이지 마음에 생긴 이상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육체의 병 때문에 마음까지 고통받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이해가 되고도 남을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병들면 무척 곤란한 일입니다. 마음은 우리 몸의 뿌리같은 것이라서 뿌리마저 병들면 회생은 어려운 일이되고 맙니다.그렇습니다. 마음은 다이아몬드처럼 순수 할수록 더 무게가 나갑니다. 마음은 팔고 사지 못하지만 줄 수는 있는 것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입니다. -이정하 '돌아가고 싶은 날의 풍경' 中에서- 연악한자를 도우시는 주님! 비록 몸은 병들었을지라도 마음만은 온전하게 도와주소서.

모나리자,

"모나리자.” / 그 이름은 단 한 번의 미소로 전 인류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미소의 주인공과, 그 미소를 그린 화가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 인간적이고, 더 쓸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는 흔히 ‘화가’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삶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한 전설이었습니다. 그는 화가이자 음악가, 건축가, 기계공학자, 해부학자, 발명가, 물리학자, 화학자였습니다. 그의 노트 속에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비행기의 날개 설계도와 잠수함의 구조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는“세상에 불가능 이란 없다”는 신념으로 살았던 진정한 르네상스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늘 고독했습니다. 다 빈치는 합법적 결혼이 불가능했던 시절에 태어난 서자였습니다. 그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법적으로 아버지의 성(姓)을 물려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이탈리아의 예술 학교에도 정식으로 등록할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세상은 언제나 문턱이었고, 그는 그 문턱을 넘기 위해 밤마다 스스로를 갈아 넣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 여인이 찾아옵니다. 24살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 리자 델 조콘도. 부유한 비단 상인의 아내였던 그녀는 남편의 부탁으로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요청 했습니다. 다 빈치는 처음엔 흔한 의뢰라 생각했지만, 캔버스 앞에 선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습니다. 리자의 눈빛에는 묘한 슬픔과 온기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 눈빛의 이유를 알고 싶어졌습니다. 다 빈치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빛 속에서 리자를 맞이했습니다. 그녀가 웃을 때의 미묘한 입가의 떨림, 고개를 살짝 기울일 때 흐르는 부드러운 곡선, 그 모든 것을 마음에 새기며 그는 붓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미소를 완성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웃음은 매일 달랐고, 그날의 빛과 바람, 그녀의 마음에 따라 조금씩 다른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그리려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