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충만하게 사는 것/ 인내란 힘든 훈련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어떤 일들, 즉 버스가 도착하거나 비 온 후 날이 갤 때까지, 또는 친구의 귀환이나 문제의 해결 등과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까지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는 다른 사람이 해줄 때까지 피동적으로 기다리 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 순간을 최대한 충만하게 살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며,지금 여기, 이 순간을 맛보며, 그리고 우리가 지금 있는 곳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진정 참는 것입니다. 참을성이 없으면 우리는 현실에서 도피하려고만 하게 됩니다. 우리는 참된 일들이 내일,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날 것처럼 행동합니다. 참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찾고 있는 보물은 우리가 서 있는 땅 바로 밑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지금 여기에서 누리 지 못하는 것은 내일도, 모레도 누릴 수 없습니다. 지금 나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내게 가장 합당한 일이며, 지금 여기에 나로 있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평생 어쩌면 기다리다가 그 귀한 세월, 소중한 선물을 다 보내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선교사 되어 살 것인가? 구도자가 되어 살 것인가? 라즈니쉬가 말했습니다. 선교사는 도를 자기가 누리지 못하고그 도를 전하기에 바쁜 사람이다. 사랑을 행하기보다, 사랑을 전하는 사람, 십자가의 도를 누리기 보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에 바쁜 것이 오늘 나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인내'란 늘 순간을 충만히 사는 것이란 나우웬의 말, 제 가슴을 뛰게 만들어 주고 있네요. 영성생활이란 늘 감사와 고마움에 거하고, 감격과 충만에 머무는 생활입니다.
26 09 28 살 수 없는 줄 알고! 삼하 1:10 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다윗은 아말렉 족속을 도륙했다. 그리고 이틀 후에 아말렉 족속 중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의 소식을 전했다. 그 때 이 아말렉 사람은 사울의 죽음에 대해 다윗에게 상을 받을 줄 알고 사울의 죽음에 거짓말을 덧붙여 말하고 결국은 그 거짓말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사울은 자기 죽음을 알고 병기 든 자에게 자기를 죽이라고 명했다. 그러나 병기 든 자는 사울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다. 그래서 죽이지 않았다. 삼상 31:4-5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의 병기 든 자의 모습이 오늘 날 참으로 그리운 까닭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죽어가는 생명이고 그 생명의 연장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생명에 대해서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육신의 그림자인 아말렉 사람은 생명을 이 세상에서 받는 상과 비교해서 생명을 죽이는 것이 유익이 될 것 같으면 그 생명에 가차 없이 손을 댄다. 이 거짓말, 거짓된 악한 말이 결국은 스스로 죽음을 불렀다. 다윗은 이 아말렉 사람을 죽였다. 삼하 1:14-15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