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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온유와 겸손 /

진정한 온유와 겸손/ 예수께선 스스로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셨습니다. 모세를 가르켜서는 지면에 그보다 온유함이 더한 이가 없다 하였습니다. 이러한 온유와 겸손이란 어떤 모습입니까? 힘이 있으나 사나움이 없는 지경입니다. 사자에게서 사나움을 빼버린 것과 같은! /오늘의 단상/회의하기 전 먼저 웃고 시작하십시오. 건설적이고 협조적인 시간이 될 것입니다. /조용히 자신만의 길로/네덜란드의 대철학자 스피노자 (Benedict Spinoza 1632-77) 는 생계를 위하여 렌즈를 깎으며 살았습니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당신의 저서 한 권에 이 책을 루이 14세에게 바친다고 한 마디만 써주면 당신이 죽을 때까지 은급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공손한 거절 편지를 보내고 죽을 때까지 렌즈를 깎았습니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의 궤도를 따라 길 가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그러한 이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한번뿐인 인생의 길에서 후회와 회한을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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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명품

인간 명품, / 만나라. 밥도 먹고 이야기하라. 웃어라. 이야기도 하고 차도 마셔라. 게으름 정당화 하지말고 부지런이 만나라 일본 동경대 의대 교수는 나이가 많을수록 만남이 중요하다고 했다. 즉 혼자서 한 시간 운동하는 것보다는 두세 명이 모여서 대화 나누며, 깔깔거리며, 커피 한 잔 마시고, 술 한 잔 마시는 것이 몸에 훨씬 좋고 오래 산다고 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강 하게 오래 살수 있다 자주 어울려야 덜 늙는다. 운동하면 좋지만, 운동은 하지 않아도 남과 어울려 다닌 사람이 더 튼튼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울리면 돌아다니게 되고, 우울증도 없어지고, 활기차게 보인다…. 매일 한 번 이상 집 밖을 나서면 ‘외출 족’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친구나 지인과 만나거나 전화로 대화를 나누면 ‘교류 족’으로 분류했다.  그러고는 4년 후 이들의 신체 활력과 자립도를 비교하니 당연히 외출과 교류, 둘 다 한 사람의 점수가 가장 좋았다.  외출과 교류만 비교 했을 때는 교류 족이 외출족보다 더 신체 활력이 좋았다. 외로이 홀로 등산을 다닌 것보다 만나서 수다 떠는 것이 더 좋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일본에서는 노쇠를 측정하는 지표에 “일주일에 몇 번 남과 어울립니까?”라는 질문이 꼭 들어있다…! 오늘도 자신감을 느끼고 항상 밝은 얼굴로 웃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만나서 살아요. 친구들아 몸이 조금 불편해도, 작은 약속이 있어도, 우리 만나요, 크게 웃어봅시다. 일가친척 만나서 핏줄로 하나가 되어보라 가족의 귀중함은 기쁨 환희 활력이 생긴다 만남이 훌륭한 인간 명품이된다.

한 사람이 지닌 믿음의 힘/

한 사람이 지닌 믿음의 힘/ 크리스천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곧 예수 대속의 십자가를 의지하는 ‘구원받은 믿음’, 또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임마누엘 믿음’ 그리고 시련과 환난 중에 그리스도의 행하심을 경험하는 ‘역사하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대표적인 한 사람을 들자면 얀 후스(1372∼1415)가 있습니다. 그는 체코에서 칼뱅이나 루터보다 100년 먼저 종교개혁을 시도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체코대학 교수요 학장이었던 그는 당시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잘못된 교리를 지적하다가 교황에 의해 파문당했고 콘스탄츠공의회로부터 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개혁의 동지들과 교회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모든 이들이여, 진리로 담대하라!” 이런 후스의 믿음은 한 알의 밀알이 돼 모라비안 공동체를 탄생시켰고 100년 뒤 루터가 일떠선 종교개혁의 토대가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니콜라우스 진젠도르프, 존 웨슬리에게도 영향을 미쳐 전 세계로 복음이 확장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오직 한 사람의 믿음의 힘으로 이렇게 큰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안식일은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며,

06-13-2026 The Sabbath is God’s precious gift - a sanctuary of rest in a restless world. 안식일은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며, 쉼 없는 세상에서 쉴 수 있는 성소입니다. When we honor the Sabbath and keep it holy, we step away from the pressures of life and draw closer to our Creator. 우리가 안식일을 존중하고 거룩하게 지킬 때, 삶의 압박에서 벗어나 창조주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The Sabbath strengthens families, renews our minds, and fills our hearts with peace and joy. 안식일은 가정을 튼튼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며, 평안과 기쁨으로 우리의 심령을 채워 줍니다. In the New Testament, Jesus regularly honored the Sabbath.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규칙적으로 안식일을 존중하고 지키셨습니다. The Bible says, “As His custom was, He went into the synagogue on the Sabbath day” (Luke 4:16). 성경은 “예수께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누가복음 4:16)라고 말씀합니다. Jesus showed that the Sabbath is not a burden but a blessing, a time to worship, heal, and reconnect with God. 예수님은 안식일이 짐이 아니라 축복이며, 예배하고 치유받고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는 시간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Beloved, no matter how fierce life’s storms may be, the Sabbath provides a refuge of hope. 사랑하는 자여, 삶의 폭풍이 아무리 거...

화려함보다 무릎을 찾으시는 하나님

화려함보다 무릎을 찾으시는 하나님, / [시편 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 작은 개척교회와 시골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성도 수가 많지도 않았고 사례비도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논밭까지 팔아 서울 홍제동 판자촌에 교회를 세웠고, 가족 여덟 식구는 작은 전셋방 하나에서 꽁보리밥을 먹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나가지 않으면 엄하게 꾸짖었고, 늘 기도와 말씀만 이야기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아이들 눈에는 그런 아버지의 삶이 너무 힘들어 보였습니다. 다섯 형제는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목사는 되지 말자.” 그런데 아무도 몰랐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다섯 아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불러가며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주님, 이 아이들을 주님의 종으로 써 주옵소서. 제 삶은 초라해 보여도 좋습니다. 이 아이들만은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게 해 주옵소서.” 세월이 흘러 가난한 판자촌 교회에서 눈물로 기도하던 그 목사의 아들들은 훗날 모두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아 목회자와 신학자, 교수로 세워져 수많은 영혼을 살리는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독수리 5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름 없는 듯 보였던 목사님은 바로, 대구동신교회를 섬긴 권성수 목사님의 아버지, 권위주 목사님입니다. 권성수 목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한때는 “나는 목사가 될 바에는 차라리 자살해 버리겠다”고까지 말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만큼 아버지의 목회 현장은 너무도 가난했고 힘겨웠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 아버지 목사님의 인생이 작아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작은 시골교회와 개척교회의 눈물을 통해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

행복의 언어/

행복의 언어/ 매우 낯선 풍경이고 낯선 상황이다. 그러나 저 햇살 속에 저 남자처럼 그렇게 어두운 내면의 지배를 받으며 멍하니 앉아 있어 본 적이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철학과 이성은 행복의 언어가 아니다. - 이남호의 '일요일의 마음' 중에서- 논리적이고 지성적인 것은 때론 정신의 고상함과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주지만 대체로 딱딱하고 차갑고 무겁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들은 작고 부드럽고 섬세하고 따뜻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시를 읽은 것은 행복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산다. - ‘단풍드는 날’ 중에서-

나는 매달 연금 130만 원을 받았다.

(퍼온글)나는 매달 연금 130만 원을 받았다. / 그중 80만 원은 늘 아들 집에 보탰다. 그런데 아들이 나한테 한 말은 이거였다. “엄마, 그냥 시골집에 내려가서 사는 게 어때. 며느리가 엄마한테 노인 냄새가 난대.” 나는 한마디만 했다. “그래.” 더 말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바로 방으로 들어가 짐부터 쌌다. 옷장에 있는 옷은 대부분 며느리가 안 입는 것들이었다. 나는 내가 자주 입던 옷 몇 벌만 골라서 낡은 여행가방에 넣었다. 머리맡에 두던 혈압약, 혈당 측정기, 평소 쓰던 보온병도 하나씩 챙겼다. 30분도 안 걸렸다. 아들 집 물건에는 손대지 않았다. 며느리 얼굴도 굳이 보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말을 더 보태 봐야 나만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아들은 거실 입구에 서서 내가 짐 싸는 걸 보고만 있었다. 붙잡는 말은 끝내 없었다. 내가 가방을 끌고 나가려 하자 그제야 4만 원을 내밀었다. 길에서 뭐라도 사 먹으라고 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손만 한번 저어 보이고 그냥 나왔다.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갔다. 시골집으로 내려가는 시외버스 표를 샀다. 세 시간쯤 걸리는 길이었다. 창밖만 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잠잠했다. 서운함보다 먼저 든 건 해방감이었다. 시골집은 오래된 단층집이다. 대문 자물쇠도 녹이 슬었고, 마당에는 마른 잎이 수북했다. 방 안 가구마다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먼저 마당을 쓸었다. 그다음 탁자랑 의자를 닦고 물을 끓였다. 뜨거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집은 낡았어도 내 집이었다. 눈치 볼 사람도 없고, 괜히 맞춰 줄 사람도 없었다. 아들 집에 있을 때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며느리는 담백한 걸 좋아했고, 아들은 간이 센 음식을 찾았다. 나는 그 입맛 맞추느라 매일 다르게 차렸다. 밥 먹고 나면 설거지하고, 바닥 닦고, 부엌 정리했다. 오후에는 시장에 가서 장을 봤고, 저녁도 내가 했다. 내 연금 130만 원 가운데 내가 쓰는 돈은 50만 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