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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壽信號와 ⛑️警告信號

🪭長壽信號와 ⛑️警告信號 나는 과연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사람의 수명은 흔히 유전 50%, 생활습관 50%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75세를 넘긴 이후부터는 유전보다는 체질과 습관이, 수명을 더 많이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이가 같은 75세인데도 어떤 분은 생각이 또렷하고 젊게 사시고, 어떤 분은 몇년을 넘기기 힘든 듯한 생활을 하는 이유는, 바로 장수체질의 몸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오늘 성별과 상관없이 75세가 넘은 후에, 10가지 신호가 보인다면 이미 장수 체질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는기준을 간단하고 쉽게 적어보겠습니다. 이건 단순한 건강상식이 아닙니다. 내 몸상태를 점검하는 기준이 되며, 앞으로 10년 , 20년의 노후 방향을 바꾸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병원검사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몸과 일상의 변화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들만 간단하게 정리한 내용입니다. 지금부터 나오는 10가지 중에서 3개이상에 해당된다면 아직 충분히 장수 체질로 바꿀 수 있는 상태며, 5개이상 해당된다면 이미 장수 체질에 들어선 상태고, 7개 이상 해당 된다면 통계적으로도 매우 장수할 가능성이 큰상태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장수 체질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장수는 타고나야 한다. 또는 집안 내력이 좋아야 오래산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의학과 노화 연구에서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장수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균형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장수 체질이란 단순히 병이 없는 몸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조금 아파도 회복이 빠르고 무리하지 않아도 일상이 유지되고, 큰 병 없이 세월을 견디는 몸, 이런 상태를 장수체질이라고 합니다. 학문적으로는 이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장수 체질은 5가지 균형이 동시에 유지되는 상태입니다. 첫번째, 대사의 균형입니다. 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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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한 가지 정의는,

자비의 한 가지 정의는 “받을 자격이 없는 용서와 값없이 베푸는 친절”입니다. 사실 우리는 삶의 매 순간마다 자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마시는 물조차도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없다면 우리는 살아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만드신 이유는 당신을 사랑하시고 그의 자비를 베풀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시다. 거기서 우리는 자비를 받고, 가장 필요할 때에 우리를 도우시는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4:16, NLT) One definition of mercy is “undeserved forgiveness and unearned kindness.” The truth is, you need mercy every single second of your life. The air you breathe and the water you drink are mercies from God. You wouldn’t be alive if it wasn’t for the mercy of God. God made you because he wanted to love you and show you his mercy. Let us come boldly to the throne of our gracious God. There we will receive his mercy, and we will find grace to help us when we need it most” (Hebrews 4:16 NLT).

봄은 기쁨이고 나눔입니다..

봄은 기쁨이고 나눔입니다.. / 봄이 되면 오므렸던 공간들이 서서히 펼쳐집니다. 꽁꽁 오므려 진해질 대로 진해진 색깔이 넓어진 공간으로 퍼지며 연해집니다. 추위에 새빨갛던 볼이 엷어져 분홍이 되고, 시커멓게 딱딱하기만 한 담벼락이 푸석거리며 숨 가루를 올립니다. 봄의 색은 연해짐이며 퍼짐입니다. 나만이 옹차게 가지고 있던 것을 펼쳐 나누는 기쁨입니다. 따뜻함은 나를 펼치게 하고 나의 색을 골고루 퍼져 연하게 만듭니다. 진하디 진하게 뭉쳐있던 색들이 연하게 퍼지면서 부드러워집니다. 부드러움은 나눔입니다. 봄은 나누어도 채울 수 있는 온도가 충만한 공간입니다. 나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은 희망 없이는 나눌 수 없습니다. 봄은 나눌 수 있는 여유입니다. 봄에도 성장하고 나누지 않고 웅크리고 나만의 것을 가지려 하지만 그렇게 살면 죽은 것이입니다. 봄이 돌아오듯 나를 성장시키고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땅 바닥을 보니 풀 꽃잎들이 돋아나고 있었어요. 움츠렸던 가슴과 맘을 활짝 펴시고 희망찬 새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봄이 온 것이 아니고 겨울이 변하여 봄이 된 것입니다. 봄은 또 봄으로 충분히 익고 익어서 여름으로 변할 것입니다. 물론 이 여름도 그대로 여름으로 있을 수 없고 틀림없이 여름은 변하여 겨울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표현을 했어요. “잠자는 밤은 겨울이고 일하는 낮은 여름이고 밥 먹는 저녁은 가을이며 깨는 아침은 봄이다” 라고. 우리는 지금 깨는 시간에 자리 잡고 있고, 깨어야 할 계절인 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백정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

[ 백정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 7일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주일이지만, 오늘은 좀 거룩해져 보려한다. 생각해보니 벌써 방영 9년차인 드라마지만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라는 드라마에는 내가 참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누구의 인생에나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캬~ 1893년 조선, 박성춘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직업은 백정. 당시 백정은 사람이 아니었다. 호적도 없고, 이름도 되는대로 불렸으며, 길을 걸을 땐 허리를 굽혀야 했고, 갓도 쓸 수 없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그냥 '도살장의 고기 써는 기계' 취급을 받았다. 어느 날 박성춘이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백정 놈 죽나 보다" 하며 거적때기에 말아 버리려 했고 동네 의원조차 "천한 몸에 손댈 수 없다"라며 진료를 거부했다. 그가 죽어가던 그 밤, 낡은 초가집 문이 열리고 한 외국인이 들어왔다. 고종 황제의 주치의였던 캐나다 의사, 올리버 에비슨(Oliver Avison)이었다. 왕의 몸을 만지던 그 귀한 손이, 똥오줌과 피고름으로 뒤범벅된 백정의 몸을 덥석 잡았다. 에비슨은 며칠을 그를 치료했다. 무어라는 선교사의 부탁이 있었다지만 그가 어떻게 황제의 주치의면서 며칠씩 밖에 나올 수 있었는지, 왜 하필 그였는지 찾아봐도 기록이 없다. 다만 박성춘이 깨어났을 때, 에비슨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일어나세요. 당신은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순간이 아마 박성춘의 인생에 신이 머물다 간 순간 아닐까?. 그는 병만 나은 게 아니라 '영혼'이 구원받았다. 감격한 박성춘은 이후 '관민공동회' 연단에 올라 수천 명의 양반들 앞에서 이렇게 외친다. "나 같은 짐승도 사람 대접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귀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조선 최초의 백정 연설이다.) 그리고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박성춘은 ...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

누가복음 1장 7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위로부터 해가 우리에게 임하여” 아무리 삶이 어둡고 불확실하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의 자비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시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밤은 길고 무겁고 끝이 없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마지막이 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반드시 빛은 찾아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우리 삶 속으로 찾아옵니다. 비록 우리의 시간표와는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타이밍은 언제나 완전한 긍휼과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이 진리가 오늘 당신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Luke 1:78 says, “A new day will dawn on us from above because our God is loving and merciful” no matter how dark or uncertain life feels, God’s mercy is always working behind the scenes—preparing a new beginning. Night can feel long, heavy, and endless, but it never has the final word. Light always comes. In the same way, God’s love breaks into our lives right when we need it most—not always on our timeline, but always with perfect compassion and purpose. Let this truth settle in your heart.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시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실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는 은혜입니다. 이 땅에 교회가 처음 탄생하고 나서 한 300년 동안 기독교는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는지요. 그러나 기독교는 그 300년 동안 무섭고 혹독한 핍박을 견디며 점점 퍼져나갔습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로마 황제가 기독교 앞에 굴복 하는 날이 오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 혹독한 시기를 견뎌 냈는지 아십니까? 십자가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십자가 를 자랑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 출발이 자기부정이며, 그 노정이 자기비하이며, 그 종점이 자기희생입니다 . 결과는 무엇을 가져오겠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 하신 대로 결과는 망하고 마나 십자가의 뒤를 따라 그의 사랑 안에서 사는 성도에게는 자기 부정과 자기 비하와, 자기 희생을 통하여 영원한 영생 을 가져옵니다. 또 한, 참 신앙은 영생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주와 함께 죽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은 "다른 사람들의 과거로부터 죽고 내 안에 있는 분노로부터 죽는 것이 믿음의 길"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계획함으로 시작하고 노력함으로 취하고 교만함으로 멸망합니다. 예수님은 군중들이 몰려와서 억지로 왕을 삼으려는 것을 피하여 혼자 산으로 떠나 기도하셨습니다(요6:15). "영이 걸리기 쉬운 병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매우 잘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체스터튼). (요18장33-38)

🟧대학교수 남편, 초등학교 교사 아내가 지혜롭게 사는법

🟧대학교수 남편, 초등학교 교사 아내가 지혜롭게 사는법 / "대학교수는 쉬운 것을 어렵게 가르치고 초등학교 교사는 어려운걸 쉽게 가르친다." 얼마전 교육분야에 종사하는 부부동반 모임에 나갔더니 후배중에 남편은 대학교수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인 부부가 나왔다. 두 사람이 말하는걸 보고 모두 폭소가 터졌다. 남편은 아내를 대학생 대하듯 말하고 아내는 남편을 초등학생 대하듯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배꼽을 빼고 웃으니까 둘다 '직업병'이라고 답을 해서 다시 웃었다. 대학교수는 학문의 끝단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직업이고 초등학교 교사는 배움의 첫단추를 채워주는 직업이다. 두 직업 모두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점은 같지만, 속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대학교수는 한가지 전공을 깊이 파고드는 '스페셜리스트'다. 평생 자기전공이라는 우물을 깊이 파 내려간다. 가끔은 너무 깊이 들어가서 옆에서 무슨 일이일어나는지 잘 모를 때도 있다. 전문성이 깊어질수록 세상과의 소통보다 학문과의 대화에 몰입하는 ‘전문가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초등학교 교사는 ‘제너럴리스트’의 끝판왕이다. 오전에는 국어 선생님이었다가, 오후에는 산수와 과학, 심지어 음악과 체육까지 담당해야 한다. 아이들이 엉뚱한 질문을 하면 백과사전 같은 지식으로 즉시 대응해야 한다. 대학교수는 일상용어가 아니라 전문용어로 가르치는 직업이다보니 일상생활에서도 무심결에 전문용어가 튀어나온다. 반면에 초등학교 교사는 이해하기 어려운 ‘인생의 기본’과 ‘세상의 원리’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쉽게 풀어내는 직업이다. 직업의 장단점도 뚜렷하다. 대학교수는 연구의 자율성이 있고 근무시간도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나 끊임없이 논문 실적과 고독한 연구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반대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보람이 있다. 하지만 전 과목을 아우르는 수업 준비에 생활 지도, 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