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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겸손은 함께 갑니다.

바울은 겸손하게 성장하고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교만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함정이 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영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해 더 노력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겸손은 사람을 가르침 받을 수 있는 마음으로 만들기 때문에 행복으로 이끕니다. 행복과 겸손은 함께 갑니다. 겸손한 사람은 이렇게 묻게 됩니다. “나는 어떻게 더 좋은 배우자, 친구, 상사,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 오늘 행복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십시오. 겸손한 마음으로 시편 139편 23–24절을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Amen.
최근 글

어떤 일과 일 사이의 여백/

어떤 일과 일 사이의 여백/ 예를 들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일을 하기 전 잠시 책을 덮고 묵상을 한다든가 전화를 끊자마자다른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방금 통화한 사람을 위해기도하는 마음을내 는 것 같은 훈련입니다. 전깃불도 우체부도들어 오지 않는 곳에서살고 있는 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촛불 아래서 한 자 한 자 적은 편지를 부치기 위해 마을까지 내려와야 했던 그 시간들. 아마도 그들에겐 저절로 ‘스타티오’ 훈련이되었 던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 시간의 여백 속에서 쌓아갔던 그 관계의 깊이는또 어떠했을까요 나에서 우리로 서로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택하는 방법은 각자 다를 수 있다. 가정에서의 일상 활동 을 통해서든,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든, 일터에서 실천하든,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든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다가 서려는 노력은 ‘ 나에서우리로‘ 운동에중요한 기여 를 하게 될 것이다. - 마크& 크레이그 킬버거의 "나에서 우리로"중에서 - 나는 하나지만,우리는 하나 로의 통합을 의미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 사이에 가로 놓인인간적인 장벽 이 없을수는 없지만 너무 자기 자신에집착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라는 친근감은 하나가 둘 이상의강한 힘이 되고,작은 행동 에서 커다란 정신이발휘 되는 놀라움이 있습니다. 내가 귀하면 다른 사람도 귀합니다. ‘나’가 아니라‘우리’ 라는사회적 관심과 애정 을꽃 피워야겠습니다. 나에게서 우리로, 삶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지요. 하나보다 둘 둘보다 셋이 함께해서이루어진 일 그 열매 맺음이 얼마나 클지 생각해봅니다.

● 엄마의 마지막 소원

● 엄마의 마지막 소원 / 98세 어머니가 생의 끝자락에서 아들에게 아주 조용히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음 생이 있다면, 엄마는 네가 키우는 강아지가 되고 싶다. 너는 문을 열고 강아지를 보면 그렇게 환하게 웃잖아. 그런데 엄마를 보면 늘 아무 표정이 없더라. 엄마가 강아지보다도 못한 거지.” 젊었을 때 어머니에게 아들은 전부였습니다.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혼자서 아들을 키웠습니다. 힘들어도 버텼고, 서러워도 참았습니다. 자기 것은 늘 뒤로 미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늙고, 혼자 밥 먹는 것도 힘들어지고, 누군가의 손이 필요해졌을 때. 아들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어머니는 낯선 방에서 매일 창밖을 봤습니다. 햇빛을 본 게 아니었습니다. 집이 있는 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혹시 아들이 와서 “엄마, 집에 가자” 이 한마디 해주지 않을까 기다렸습니다. 익숙한 방에서, 익숙한 이불을 덮고,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집에 이제 자기 자리는 없다는 걸 어머니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며느리는 이미 차갑게 말했습니다. “집에서 돌아가시게 하면 안 돼요. 기분도 찝찝하고, 나중에 집도 팔기 어려워요.” 노인이 집에서 돌아가시는 게 무섭다고 했습니다.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요양원에 찾아왔습니다. 아들은 침대 옆에 앉아 물었습니다. “엄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거 있어?” 어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삼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 생이 있다면, 엄마는 네가 키우는 강아지가 되고 싶다.” 아들은 멈칫했습니다. “엄마, 왜 그런 말을 해?” 어머니는 눈물이 고인 채 조용히 말했습니다. “엄마도 알아.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거.” “너희 집에 있을 때도 매일 조심했어. 말 한마디 잘못할까 봐, 너희 기분 상하게 할까 ...

생명의 향기 • 변화는 생각에서 시작됨

🌻 생명의 향기 • 변화는 생각에서 시작됨 🌻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겔 3: 26)는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를 의미한다.  이와 같은 마음의 변화는 그리스도인 의무에 대한 명확한 개념, 진리에 대한 이해를 항상 동반한다.  진리에 대한 우리의 견해의 명확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정비례할 것이다. 우리는 사고 능력을 올바르게 장악할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은혜를 원한다.  우리는 악을 생각하고, 못마땅한 일들에 마음을 계속해서 집중시킬지 모르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가?  그것은 우리의 모든 경험을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이 되게 만든다.  그러나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은 목적을 염두에 둔다. 눈은 성화되며, 귀도 성화된다. 그리고 악에 대해서 그들의 눈과 귀를 닫을 사람들 또한 변화될 것이다. —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2, 670. 🌻 Aroma of Life • Transformation Begins With Thoughts 🌻 The words “A new heart also will I give you” (Ezekiel 36:26) mean, “A new mind will I give you.”  This change of heart is always attended by a clear conception of Christian duty, an understanding of truth.  The clearness of our view of truth will be proportionate to our understanding of the Word of God. We want the transforming grace of God to take right hold of our thinking powers.  We may think evil, we may contin...

자아 상실/

자아 상실/ 게오르규의 작품 『25시』를 보면, 요한 모리츠라는 젊은이가 제2차 세계 대전 때 징집을 당해 독일군에 입대를 했다가 얼마 후 유대인이라는 오해를 받습니다. 그 청년은 온갖 핍박과 고난을 당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독일 군의관의 신체검사를 통해 ‘독일 게르만족의 순종’이라는 판결을 받은 이후부터 갑자기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독일군이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그는 연합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연합군의 심사관이 포로들을 하나하나 심사하다가 요한 모리츠의 파일을 보게 되었는데, 그의 파일은 두 가지로 적혀 있었습니다. 어떤 서류에는 ‘유대인’으로, 또 다른 서류에는 ‘게르만족의 순종’ 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 심사관은 그에게 “도대체 너는 누구냐?” 라고 물었습니다. 심사관의 질문을 받은 그는 대답을 못하고 속으로만 ‘도대체 나는 누구지?’ 라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핍박을 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독일군 영웅으로 높임을 받으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중에 그가 재판을 받고 석방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서도 그는 전혀 기뻐할 줄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자기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을 모셔 들인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정체성을 가지십시오. 주님, 정체감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더 이상 세상에서 방황하지 맙시다.Amen.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잠18;21) 우리의 말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열매가 되어 돌아 오기 때문에 우리의 말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도, 신앙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61;1-3절을 통하여 주의 신을 우리에게 보내사 '마음이 상한(응어리) 자'를 고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지금도 절대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까지 신실하시고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마음에 응어리'를 품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이 아닙니다. 그 응어리가(미움,분노,억울함,원통함...) 어떤 것이든 말이죠. "그때 그 일만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다른 것은 다 참고 용서해도, 그 일만은 그 사람만은 안 되고 그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 땀이 흐르고 그 사람을 떠올리면 피가 거꾸로 돌고 그때 일을 생각하면 너무 후회가 되고 억울하고 내 살아 생전에는 용서 못할 것 같고, 해결 안될 것 같은 것" 이런 식의 생각과 응어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할 뿐 아니라, 영의 생각이 아닙니다. 이런 식의 생각과 응어리의 배후 조종자는 사단입니다. 응어리는 사단이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비밀병기입니다.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응어리가 풀리지 못한 채 맺혀 있으면 잠깐 기쁠 수는 있으나, 오래 기쁠 수는 없으며 잠깐 감사할 수는 있으나. 오래 감사할 수는 없으며 잠깐 사랑할 수는 있으나, 오래 사랑할 수는 없으며 잠깐 용서할 수는 있으나, 오래 용서할 수는 없으며 잠깐 기도할 수는 있으나, 오래 기도할 수는 없으며 잠깐 뜨겁게 믿을 수는 있으나, 오래 잘 믿을 수는 없습니다. 응어리를 품고 사역을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마련이고, 응어리는 반드시 또 다른 응어리를 낳습니다. 이러므로, 응어리는 반드시 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우선과제입니다. 응어리는 '품고 사는 것'이 ...

정문일침(頂門一鍼)

#G☞ 정문일침(頂門一鍼) , 정수리에 침 하나를 꽂는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는 따끔한 충고나 교훈을 이르는 말입니다 데일카네기는 충고의 기술에서 "누군가에게 충고를 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야단을 치거나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는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서로 마음이 상하기 쉽다."고 하였으며 카프만 부인이 자신의 책(冊) ‘광야의 샘’에서 이런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누에 고치에서 번데기가 나방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지켜 보았습니다. 바늘구멍만 한 틈새에서 몸 전체가 비집고 나오려고 한나절을 버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에 가위로 구멍을 넓혀 주었고, 커진 구멍으로 쉽게 빠져나온 나방은 공중으로 솟아 오르려고 몇 번을 시도하더니 결국 날지 못하고 땅바닥을 맴돌았습니다. 그녀는 나방이 작은 틈새로 나오려고 애쓰는 시련을 거치면서 날개의 힘이 길러지고 물기가 알맞게 말라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고통을 싫어하고 기쁨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고 기쁨만 있다면 인간의 내면은 절대 여물 수 없습니다. 나방처럼 난관을 헤쳐가는 과정에서 생존의 힘을 기를 수 있게 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입니다. 다친 달팽이를 보거든 도우려 들지 마세요.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급한 도움이 그를 화나게 하거나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여러 별자리 가운데서 제자리를 벗어난 별을 보드라도 별에 충고하지 말고 참아주세요. 별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마세요.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랑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장 루스로 가 쓴 ‘또 다른 충고들’ 이란 시입니다. 사람들은 자식이나 친구에게 충고하면서 “다 너를 위해 그런 것” 이라고 말합니다만, 실상은 상대를 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