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의미/ 크로아티아의 한 예술가와 영화감독은 이별 박물관 이라는것을 만들 었습니다. 모든 것을 바쳐가며4년이나 연애를 했지만 끝까지 서로가 이해할 수없는 부분이 있어서결국은 헤어지기로 했는데, 그동안의 추억으로 서로에게 격려하자는 의미에서 자그레브에작은 박물관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건물이 워낙 넓어이들은 ‘이별’에 관련된물건들을 기증받기로 했습니다. 그렇게‘이별 박물관’에 대한 소문은 조금씩 퍼져 나왔고, 여러 가지 사연을 담은 물건들이 하나 둘씩 도착했습니다. “사랑했던 반려견의 목걸이에요.”, ‘평생 사랑하자고 약속하며 나눠가진 열쇠와 자물쇠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을떠나고 없어요.”, “우리 아이가 마지막까지품에 안고 있던 곰 인형이에요.” 하나같이 가슴 아픈 이별의 사연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늘어났고, 심지어 비슷한 박물관도 여기저기에 생 겨났습니다. 사람들은 가슴 아픈이별의 사연을통해 자신의 아픔을위로 받고,이겨낼 힘을얻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픔과 슬픔에도 주님의위로와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이별은또 다른 소망이자 하나님의 약속에대한 믿음입니다. 곧 다시 만날 그리운사람들을 생각하며 천국을 소망하며 오늘하루를 살아가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제가 언젠가가야할 본향이 있음을생각하며 살게 하소서. 나의 아픔을 다른이들과 나누고, 나역시다른 이들의 아픔에 귀기울이십시오.
•인생역전의 비결•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12살 이후로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14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아이는 상점의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손님들에게 솔직하게 상품의 장단점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주인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너처럼 팔다 가는 돈을 벌 수 없어. 정직하게 장사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단 말이야!” 그러나 그 아이는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주인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당장은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정직하게 팔면 손님은 다시 우리 가게를 찾아 올꺼예요.” 그 아이의 말은 맞았습니다. 정직한 가격과 꼼꼼한 품질 관리로 판매한 그의 방식은 많은 손님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그 소문이 퍼져 그 상점은 갈수록 장사가 잘 되었습니다. 주인은 세상을 떠나면서 그 가게를 그에게 물려주었고, 그는 이것을 발판으로 23세에 남성용 의류 상점을 개설하여 31세 때 백화점을 세웠습니다. 그는 필라델피아와 뉴욕에 백화점을 세워 백화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가난한 상점 점원에서 백화점왕으로 인생 역전한 그 주인공은 바로 존 워너메이커 (1838-1922)입니다. 훗날 체신부 장관이 된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관은 부업이고 주일학교 교사가 본업입니다” 이 유명한 말을 남길 만큼 교회 주일학교 교사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으로 60년간을 주일학교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교회를 세웠고, YMCA 총재가 되어 65년 동안 헌신하며 세계 곳곳에 수많은 YMCA 건물을 지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 큰 업적을 남긴 한국의 황성기독교 청년회(한국의 YMCA)의 종로 2가 회관도 1907년에 그가 기증한 것으로 그가 투자하는 것은 항상 최고의 가치를 창출했습니다. 그가 성공하는 데는 7가지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1. 새벽형 인간 2. 긍정적인 삶의 태도 3. 절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