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하는 쪽이 편안합니까, 미워하는 쪽이 편합니까? /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쉽습니까? 서운함을 고백하는 것이 쉽습니까? 용서하는 쪽이 쉽습니까, 분노를 간직하는 쪽이 쉽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천국에 가까운 지 지옥에 가까운지를 보여줍니다. 사랑이 어색하고 사랑의 표현이 어색하다면 당신은 천국과 멀리 있습니다. 남의 잘못이 보기 싫고 판단이 되며 쏘아붙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면 당신은 지옥과 가까이 있습니다. 천국에 익숙해지십시오. 천국의 삶을 훈련하십시오. 지옥이 불편하고 어색해지게 하십시오. 미워하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어지게 훈련하십시오. 우리는 영원히 천국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좋은 상황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 감사는 좋은 상황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감사는 바울과 실라처럼 감옥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풍요할 때가 아니라 가난하고 부족할 때가 주님의 풍성하심을 고백해야 할 시간입니다. 낙심되고 마음이 아플 때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위로해야할 시간입니다. 가장 고통이 극심할 때 그 때가 진정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할 시간입니다. 마음이 아플 때, 눈물이 흐를 때, 슬픔이 몰려올 때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님께 찬양을 드리십시오. 고통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주님을 높이고 사람들을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곧 천상의 기쁨, 그 영광의 임재가 무엇인지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는 모두 다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싫어하는 것은 자신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이웃을 축복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아름답고 충만하게 하는 것이죠. 우리는 다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보이는 것, 보이는 사람 모두를 사랑하고 축복하면서 보내세요.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 , / 엄상익 (변호사) 30년 가까운 그 때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사십대 중반쯤 한창 일을 할 때였다. 부산에 사는 고종 사촌형이 엑스레이 필름을 보내면서 부탁했다. "폐암 진단이 나왔는데 실력 있는 서울 의사에게 확인 해 줘. 나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나는 사무실 건너편에서 개업하고 있는 진단방사선과 의사인 친구에게 그 필름을 가지고 갔다. 경기고와 서울의대를 졸업한 그는 실력있는 의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가 필름을 날카롭게 주시하더니 판결을 선고 하듯 말했다. "석 달" 형은 정확히 석 달 후에 죽었다. 아직은 오십대 젊은 나이인데 하던 일을 그대로 둔 채 저 세상으로 건너간 것이다. 나도 불안했다. 하루는 그 친구에게 가서 검사를 받았다. CT 모니터를 보던 친구가 마우스를 멈췄다. 화면을 확대했다. 다시 축소했다. 각도를 바꿨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친구의 얼굴 표정을 봤다. 친구의 손가락이 화면 한 점을 가리켰다. "쓸개에 1.5센티짜리 혹이 보여." 친구의 표정은 시험지를 앞에 놓은 모범생 이었다. "설마...?" "설마가 아냐. 이 정도 크기면 악성화됐을 확률이 높아." "네가 잘 못 봤을 수도 있잖아?" "아니야 내 진단이 틀린 적이 없어." 그는 위로조차 하지 않았다. 병원을 나왔다. 머릿속이 텅 비었다. 내가 죽으면 저 하늘도, 저 거리도, 저 사람들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집에 와서 침대에 쓰러졌다. 죽는다는 말인가? 믿어지지가 않았다. 서울대 진단방사선과 과장으로 있는 친한 친구에게 내가 받은 CT필름을 보냈다. 오진이기를 바랬다. 나는 아직 죽을 때가 안됐다.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암일 가능성이 많아. 일단 수술을 해봐. 그래야 확실히 알 수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