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 / 2026년 2월 11일 ( 중앙일보 ) 이영순 칼럼, 외출을 하려고 옷을 골랐다. 이옷 저옷 입어 보면서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옷들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옷 장 속을 마구 휘젔다 보니 괜한 일거리만 쌓였다. 아무리 옷을 바꾸어 입어 보아도 내가 원하는 이전의 멋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을, 사 계절은 질서있게 왔다 가고 다시 오건만 인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흐르는 강물 처럼 일방 통행이다. 세월은 나를 이렇게 변화 시키고 있었다. 그 흘러간 세월 속에 한참 혜메다 보니 약간 멋쩍은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소크리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떠 올랐다. 눈은 현실에 맞춰야한다. 흘러버린 지난 날에 맞추면 문제투성이다. 옷장속을 휘젓고 나니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 나의 변화된 현실을 보면서 어릴 때 자랐던 북녘 땅이 새삼 그리워 진다. 우리가 살던 함경남도 ‘고원’에서 해방 직후 다녀왔던 이웃 도시 ‘영흥‘이 생각난다. 그곳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생가가 있던 곳이다. 하 늘을 찌르는 듯한 아름들이 나무들에 감탄사를 연발했던 것이 마치 어제 일 갔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일제 강점기의 잔인했던 민족 말살 정책 의 만행도 잊을 수 없다. 미국에 온지 어느덧 반 세기가 지났지만 떠나온 조국에 대한 생각으로 종종 가슴을 태우곤 한다. 한번 가 보고 싶었던 북녁의 고향 땅은 이제 추억 으로 남긴 채… . 마음속으로 ’우리의 참 안내자 되신 주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다짐한다. “ 오늘도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평강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겠습니다.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 으니 (요 1: 12)‘ San...
[류석호의 슬기로운 노후생활] 난향천리 인향만리-향기로운 삶 한양경제 2026-02-10 / ▲류석호 객원논설위원(전 언론중재위원). 한양경제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 가면 ‘최필금 강의실’과 ‘최필금 캐럴(열람실)’이 있다. 고려대 앞에서 식당과 하숙업을 하는 최필금(73) 유정식당 사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최 씨는 40년째 식당과 하숙업을 하며 그동안 고려대에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4억원이 넘는 돈과 물품을 기부해 ‘고대(高大)의 어머니’로 불린다. 경남 밀양에서 11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최 씨는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부산 데레사여고 1학년을 중퇴하고 23세 때 상경, 여러 궂은 일을 하다 40년전 고려대 앞 셋방에서 하숙을 치기 시작했다. 최 사장은 가난과 학업의 한(恨)을 푸는 방편으로 대학가에서 하숙과 식당업을 하면서 대학생들이 공부 잘 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최 씨의 식당은 값싸고 푸짐해 가성비가 좋기로 정평이 났고, 현재도 100명의 하숙생을 건사하고 있다. 그동안 그의 하숙집을 거쳐간 고려대생은 1000명이 넘고, 각종 고시(시험) 합격자도 100명에 이른다. 태생적으로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최 사장은 지금도 인근 소년소녀가장을 후원하거나 독거노인과 어려운 이웃들을 초대해 식사대덥을 하고 있으며, 성북구 새마을부녀회장을 맡아 왕성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장(차관급)으로 재직 중인, ‘한자의 뿌리’의 저자 김언종 고려대 명예교수(74, 한문학과)는 20년째 지식기부를 해오고 있다. 현역 교수 시절 고려대 사회교육원(라이시움)에서 100명이 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매주 저녁 한차례 2시간씩 사서오경을 무료로 강의했고, 지금도 명륜동 퇴계학연구원 강의실에서 고전(古典)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20여년 전 안식년을 맞아 미국 뉴욕에 머물면서 미국 사회의 ‘기부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아 학교로 돌아온 후 지식 나눔을 시작했다고 했다. 최 사장과 김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