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하늘/ 괴로움을 기쁨으로 삼고 축복보다는 고통에 더 익숙히 살아온 세월, 백발로 나부끼는 광야에 선 어머니, 주고도 바라지 않는 언제나 당신은 하늘입니다. 생명을 가로질러 속살 고 나온 그날부터 우리는 어머니의 웃음이며 아픔이었습니다. 철없는 유년은 가난한 행주치마에 눈물로 얼룩짖고 이제는 철들어 분주한 세상 살아 가느라 얼굴도 뵙지 못한 무심한 사람 어머니의 하루를 그냥 해지게 합니다. 모든 사람이 저편에 설 때 이편에 서실 분 당신 계심으로 우리는 오늘이 있어 이 세상에 그리운 사람 많아도목이 쉬도록 부를 이름은어머니 그 이름 하나뿐입니다. 어머니 텅 빈 저 하늘을 서러워 마십시오.어느 날 목말라 돌아오는아들로 인해 문 닫지 말고 저 동구밖 산허리 길을 오늘도 지켜봐 주십시요. -‘고훈 -
● 어느 시골우체부의 편지전달 효과^^ / 전남 해남에서 머슴 집 아들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허약하여 홍역을 심하게 앓자 그의 어머니는 ‘얘가 제대로 사람 구실이나 할 수 있을까?’ 를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가난한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머슴인 아버지를 따라 나무를 하고 풀을 베는 일로 가난한 살림을 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는 너무나도 학교에 가고 싶었습니다. 소년은 어릴 때부터 엄마와 같이 다니던 교회에 가서 학교에 가게 해 달라고 며칠 기도하다가 하나님께 편지 한 장을 썼습니다. “하느님, 저는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굶어도 좋고 머슴살이를 해도 좋습니다. 제게 공부할 길을 열어주세요. 그 길만 열린다면 제 생애를 바칠 테니 부디 하느님 응답해 주세요.” 소년은 공부에 대한 자신의 열망과 가난한 집안 형편을 편지에 적었습니다. 그리곤 편지봉투 앞면엔 ‘하느님 전 상서’라고 쓰고, 뒷면엔 자기 이름을 써서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소년이 쓴 이 편지를 발견한 집배원은 어디다 편지를 배달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고민하던 끝에 ‘하나님 전상서라고 했으니 교회에 갖다 주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해남읍에 있는 한 교회 목사님께 편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당시 그 교회 목사님은 농촌 계몽운동에 앞장선 분이었는데, 소년의 편지를 읽고 큰 감동을 받고선 그를 불러 교회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살게 하고 과수원 일을 돕게 하면서 중학교에 보내주었습니다. 소년은 열심히 공부해서 전남대 의대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병든 흑인들을 무료로 치료해 준 "슈바이처(Schweitzer, 1875- 1965)"박사와 같은 좋은 의사가 되려면, 슈바이처 박사처럼 먼저 신학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신학대학에 진학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고향에서 목회를 하다가 스위스 바젤대학교로 유학를 가게 되었고, 박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