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 면허증은/ 55 세부터 100 세까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나이일까? 55세: 일을 시작하기엔 늦고 그만두고 놀기 엔 아쉬운 나이. 60세: 미국 나이로는 아직 50대라고 우기는 나이. 65세: 전철이나 버스에서 자리 양보하면 극구 사양하는 나이. 70세: 길흉사에 굳이 참석 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 75세: 상(賞) 받을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아 도 되는 나이. 77세: 긴 편지는 두 번 읽어야 이해가 되는 나이. 80세: 누가 옆에 있어도 방귀를 뀔 수 있는 나이. 85세: 뛴다고 생각하는데 걷고 있는 나이. 88세: 감기 들어도, 배탈이 나도, 이게 마지막인가 생각 드는 나이. 90세: 주민등록증 번호 를 잊어버리는 나이. 95세: 한국 말도 통역이 필요한 나이. 97세: 혼자 밥먹는 것도 신기한 나이. 99세: 집에 누워있으나 산에 누워있으나 마찬가지인 나이. 100세: 귀신한테 시비 거는 나이.
👵어머니의 마지막 자존심, / 일흔셋의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처음에는 말을 참 잘했습니다. “엄마, 잠깐만 계세요.” “제가 매주 올게요.” “명절에는 꼭 집으로 모시고 갈게요.” 할머니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잠깐이 15년이 됐습니다. 15년 동안 아들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명절에도 데리러 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전화조차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자식 키우면 노후가 든든하다고. 그런데 이 할머니는 평생을 아들 위해 살고도, 결국 요양원에 잊힌 사람이 됐습니다. 할머니는 젊을 때 부지런했습니다. 남편과 평생 아끼며 살았습니다. 돈을 모았고, 도심에 방 세 개짜리 아파트도 남겼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키웠습니다. 공부시켰습니다. 집 장만도 도와줬습니다. 결혼할 때도 힘을 보탰습니다. 줄 수 있는 건 다 줬습니다. 이 정도 했으면 늙어서 밥 한 끼는 같이 먹을 줄 알았습니다. 명절에 얼굴 한 번은 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순 살 되던 해,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머니는 하루아침에 혼자가 됐습니다. 그래도 몸은 괜찮았습니다. 혼자 집에서 살아도 되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막 결혼한 뒤였습니다. 일이 바쁘다고 했습니다. 아이도 어려서 정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결국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할머니는 그때도 아들을 이해했습니다. 젊은 사람 사는 게 힘들지. 내가 잠깐 들어가 있으면 되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그날 이후, 어머니를 자기 인생에서 지운 것처럼 굴었습니다. 처음 반년은 가끔 전화가 왔습니다. 그러다 점점 줄었습니다. 나중에는 완전히 끊겼습니다. 요양원에서 제일 견디기 힘든 날은 명절이었습니다. 다른 어르신들 방에는 자식들이 왔습니다. 과일을 들고 오고, 옷을 들고 오고, 집에 모시고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방은 조용했습니다. 할머니는 방 안에 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