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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재정적으로, 영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거대한 장벽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 77편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길이 큰 물 가운데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자신의 지혜와 힘만으로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는 막연한 희망에만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원하십니다. 당신이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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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이 오늘을 침공할 때: 회개라는 은혜

영원이 오늘을 침공할 때: 회개라는 은혜, / 우리는 '영원'이라는 단어를 쉽게 입에 올리지만, 사실 영원은 시간의 끝없는 연장이 아닙니다. 영원은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초월한 하나님의 존재 방식입니다. 오늘이라는 좁은 감옥에 갇힌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영원을 만질 수도, 이해할 수도, 그리로 넘어갈 수도 없습니다. 마치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스스로 하늘을 날아오를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간에 갇힌 우리를 그분의 영원 속으로 초대하시는 방식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영원이 시간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입니다. 우리는 흔히 '회개'를 내가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나의 노력' 혹은 '나의 결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눈이 멀어 길을 잃은 자가 스스로 빛을 찾아갈 수 없듯이, 시간에 갇히고 죄로 죽을 인간은 스스로 회개할 힘조차 없습니다. 회개(Metanoia)는 내가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의 자리에 찾아오셔서 나의 고개를 돌려주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 마음조차도, 나의 비참함과 유한함을 깨닫고 영원을 사모하게 되는 그 갈망조차도,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에 먼저 찾아와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사도행전 11:18). 회개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가장 첫 번째 '선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영원으로부터 찾아오신 그 은혜의 손길에 항복하는 것뿐입니다. 회개는 나의 의지가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

*78세 강미자할머니의 인생(실화)*

*78세 강미자할머니의 인생(실화)* / 저는 이제 서울의 삭막한 아파트를 떠나, 동해의 작은 도시 속초에서 파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살고 있는 78살 강미자라고 합니다. 남들은 아들 잘 키워 호강만 남았다고 했지만,제 삶은 호강이 아닌 지옥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더는 참을 수 없어, 제 인생의 마지막 반란을 시작했습니다.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 독한 할머니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처음부터 독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남편을 일찍 여의고 시장 한구석에서 반찬 가게를 하며 악착같이 아들 하나를 키워냈습니다. 그 아들이 장가를 가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가 태어났을 때, 저는 한 지붕 아래 북적이며 사는 것이, 세상 가장 큰 행복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아니 행복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며 살았죠. 제 하루는 새벽 5시, 지긋지긋한 이명과 함께 시작 되었습니다. 잠이 부족해,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유기농이 아니면 입에도 대지 않는 까다로운 손녀 세아의 도시락을 싸는 일이었습니다.현미밥에 어젯밤 미리 재워둔 한우 장조림,살짝 데친 유기농 브로콜리. 행여나 귀한 손녀가 탈이라도 날까,제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수십 배는 더 신경을 썼습니다. 그다음은 아침 식사 준비, 빵을 좋아하는 며느리를 위해 토스트를 굽고,밥을 고집하는 아들을 위해 국을 데웁니다. 그들이 식탁에 앉을 때쯤이면,저는 이미 세탁기 2대를 돌리고 난 후였습니다. 색깔 옷과 흰옷은 기본, 며느리는 자신의 실크 블라우스와 남편의 와이셔츠는 반드시 손빨래를 따로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니까요. 그들의 옷감이 상하는 것은 세상이 무너질 일이고,제 손목이 너덜너덜해 지는 것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 모두가 집을 나선 뒤에는 청소가 시작됩니다. 구석구석 먼지를 닦고,오후 5시까지는제 유일한 수입원인 단골 주문 반찬을 만들어 배달까지 마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

끌어당김의 법칙

끌어당김의 법칙/ 우리의 마음은 자석과도 같다. 행복한 사람은 다른 행복한 사람을 끌어당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은 기회를 끌어당긴다. 삐딱한 사람은 삐딱한 사람을 끌어당긴다.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끌어당긴다. -앤드류 매튜스의 '지금 행복하라'에서 -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행동이 뒤따르듯이 어떤 현상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이루어진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긍정적이고 좋은 생각 을 꾸준히 하는 것이좋다.

'하인리히 법칙'을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

"사소한 신호가 보내는 경고, '하인리히 법칙'을 무시하면 안 되는 이유" 살아가다 보면 "어라? 이번엔 운이좋았네"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 있다. 계단에서 발을 삐끗했지만 다치지 않았을 때, 운전 중 잠시 한눈 팔았다가 앞차와의 충돌을 간신히 피했을 때처럼 말이다. 대다수 사람은 이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긴다. 하지만 이 사소한 순간들이 사실은 머지않아 찾아올 거대한 불행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 어떨까? 우리는 종종 예고 없이 찾아온 재앙 앞에 절망하곤 한다. 그러나 과연 그 불행은 정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것일까? 세상 모든 일에는 징조가 있는 법이다. 무너지는 담벼락은 반드시 먼저 금이 가고, 깊은 병은 가벼운 기침에서 시작된다. 이처럼 큰 사고가 나기 전 반드시 수많은 경미한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통계적 사실을 증명한 인물이 있다. 바로 오늘 이야기할 '하인리히 법칙'이다. 미국의 한 보험사 감독관이 발견한 기적의 비율! 1920년대 미국, 전 세계 산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하던 그곳에서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 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미국의 대형 보험회사인 트래블러스(Travelers Insurance)에서 안전 분석 감독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산업 현장에서는 매일같이 수많은 노동자가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그저 '운이 없어서 일어난 불가항력적인 사고'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하인리히는 그 시선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회사에 쌓여 있는 7만 5천 건이 넘는 방대한 산업재해 통계 자료를 하나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고 경위서와 피해 기록을 분석하는 지루한 작업이 수년간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놀라운 법칙 하나를 찾아내게 된다. "1 : 29 : 300" 이 세 가지 숫자가 지닌 의미는 명확했...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격/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격/ 인격은 한 개인이가지 고 있는 됨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성이라고도 말하고, 품격이라고도 말합니다. 행동이 예의 바르고, 말이 따뜻하고, 성품이 인자하고. 한입으로 두 말하지 않고, 사람들이 볼 때나안 볼때나 한결 같고. 품격입니다. 이런 이들이 많을수록사회 는 밝아지고,사람들은 힘을 얻습니다.인격은 어디 서 오는가? 통장잔고에서 온다는 말도 있지만, 인격은 통장 잔고가 아니라 영성에서 옵니다. ‘영성’은 성령에 의해 만들어지는‘인격’입니다. 성령의 9 가지 열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갈5:22-23).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인격이고, 영성입니다. 이 영성이 우리를 눈부 시게 아름다운 사람,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격자로 만듭니다. 선한 인격을 방해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모난 성격’과 ‘나쁜 기억’입니다. 모난 성격과 나쁜 기억 에 발목 잡히면 인격은 아름다워지기 힘듭니다. 타고난 모난 성격을 인격으로 조절하고, 나쁜 기억과 힘든 과거를 영성으로 이겨 나갈 때 한 겨울을 뚫고 피어나는 매화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습니다.

"세상이 각박한 것만은 아닙니다."

💕감동스토리💕 / "세상이 각박한 것만은 아닙니다." 아버지와 26년을 함께 산 새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돼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친척들은 하나같이 저한테 연락했습니다. “빨리 가 봐. 새어머니가 집에 있는 값나가는 거 다 들고나간 거 아니냐.” 그 말을 듣는데, 저는 그냥 씁쓸하게 웃음만 나왔습니다. 우리 집에 뭐가 그렇게 대단히 값 나가는 게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새어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새어머니는 서른여덟에 아버지를 만났고, 그때 아버지는 마흔다섯이었습니다. 그분 인생은 참 고단했습니다. 스물일곱에 남편을 사고로 잃었고, 그다음 해에는 여섯 살 아들마저 물놀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고, 그 고통을 제대로 이해해 준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서른여덟에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새어머니는 집을 정말 반듯하게 꾸려 갔습니다. 아버지를 살뜰히 챙겼고, 집안도 늘 반짝 반짝했습니다. 제가 집에 갈 때마다 상이 휘어지게 밥을 차려 주셨고, 직접 텃밭에서 키운 채소도 바리바리 챙겨 주셨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는 말 그대로 몸을 갈아 넣듯이 간호했습니다. 병원에서도 거의 혼자 다 맡다시피 했습니다. 대소변 수발까지 들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라면 그렇게까지는 못 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늘 그분이 고마웠습니다. 우리 집에 해 준 모든 것, 아버지한테 쏟은 그 정성, 그걸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두 분이 26년이나 함께 살았지만, 끝내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니라 그냥 함께 산 사이였던 겁니다.  그 사실이 저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아버지 상태가 나빠지고 병원에 오래 계셨을 때도, 병상 곁은 늘 새어머니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