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당신의 자기 가치를 당신의 재산 가치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자기 가치를 당신의 재산 가치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가치가 당신이 가진 값비싼 물건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것들은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또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삶은 더 많이 소유하거나 더 많이 성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관계에 관한 것이며,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만족의 비결은 우리가 가진 것에서 안전함과 만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가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만족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됩니다. 리빙 바이블은 시편 17편 15절을 이렇게 풀어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부유함에서 만족을 찾지 않습니다. 나의 만족은 주님을 바라보고, 우리 사이에 모든 것이 평안하다는 것을 아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늘에서 깨어날 때, 나는 완전히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내가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뵐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7:15
최근 글

삶의 길을 밝혀주는 지혜의 등불

삶의 길을 밝혀주는 지혜의 등불/ 지식이 많다고지혜 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간혹 우리 중의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운지식 으로 인해 오히려 오만 하게 되어지혜를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혜의 첫 걸음은 자기 가 미흡하다는 것을 아는데 있다고 합니다. 지혜롭다는 건 우선 고개를 숙일 줄 안다는 것이지요. 유태인 속담 중에 태양은 당신이 없어도 뜨고 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이 광활한 우주와 오묘한 자연 속에서 우리인간의 존재는 보잘 것 없는 작은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껏 오만을 떠는 것은 지식만 있었지 지혜가 없는 까닭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우리 인간은 결국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존재 아닙니까? 그런 지혜의 문만 열게 되면 인생의 많은 난관 들을 비교적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에게 무엇을 가장 원하느냐고 묻자 그는지혜를 원한다 고 했습니다. 인생의 불빛이 되어주는 지혜,그 지혜로움 으로 당신의 인생이 환히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 천지 배까리가 행복이다

🎁 천지 배까리가 행복이다..! / 요즘 가장 핫(hot) 하면서 사랑받는 시(詩)가 나태주시인의 '행복'이란 詩일게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시인은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걸 행복(幸福)이라 했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 빨래줄처럼 널려 있는 것이 행복이다. 산 꼭대기까지 안올라도 물속 깊이 안들어 가도 언제 어디서나 행복은 찾을 수가 있다. 줏어 담기만 해도 보석상자가 모자랄 듯하다. 예쁜 미소가 행복이고 주름진 얼굴이 행복이고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가 행복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천지 빼까리'가 행복이다. 사방에 널린게 행복인데도 평소에는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이다. '돌아갈 집이 있고, 혼자서 부를 노래가 행복'이라 했는데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매일 행복속에 파묻혀 산다. 언제나 전화할 수 있는 친구가 행복이고 배고플 때 먹을 밥이 있는 게 행복이고 가고 싶을 때 걸을 수 있는 두 발이 행복이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이 행복이다. 누구나 다 행복은 보물상자처럼 마음속에 쌓여 있다. 시간날 때마다 보따리를 풀어 보자. 그냥 두면 언젠가는 행복도 내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 펌 글 -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와 재산을 주시고 그것을 누리게 하신다면, 우리는 감사하며 우리가 수고해서 얻은 것을 즐겨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도서 5:19 행복은 당신의 환경과는 거의 관계가 없고, 당신의 태도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더 많이 가진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사람은 늘 조금 더 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누리기로 선택하십시오!

책은 사라지는가?

책은 사라지는가?/ 시대가 바뀌어서 책의 시대는 지나고 이제는 영상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에는 '좋은 책'을 찾았는데 지금은 '재미있는 책' 을 찾고 책을 '읽는다' 가 아니라 책을 '본다' 고 합니다.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합니다.이제 책의 시대는 영원히 가버린 것일까요? 아닙니다.영상은 순간적인 자극을 주지만, 마음에 철학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한 번 눈앞을 지나가 버린 영상을 다시 보려면 리플레이를 눌러야 됩니다. 그러나 글은 리플레이를 누를 필요가 없습니다. 눈동자만 움직이면 되니까요. 영상은 단회적인 반면 글은 자동 무한 반복이기 때문에, 단 한 줄의 문장도 깊은 묵상이 되고 철학이 됩니다. 똑같은 영상은 두 번만 봐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기지만, 글은 자기도 모르게 이해가 될 때까지 자동으로 여러 번 읽혀집니다. 영상은 감정을 자극하지만, 글은 이성을 자극합니다. 감정은 뜨거워졌다가도 식어버리면 그만이거든요. 그러나 이성에 굴복되면 사람 자체가 변합니다. 글만큼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동영상이 아무리 대세라고 해도 글과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그걸 눈치 채고 방송에도 자막이라고 부르는 글을 영상에 많이 넣습니다.

사람의 '전체'를 보아라

사람의 '전체'를 보아라 / "사랑은 맹목적이다."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사랑이 맹목적인 동안에는(즉 사랑이 상대편의 '전체'를 보지 못하는 동안에는) 사랑은 아직도 근원어 '나-너'의 지배하에 서 있지 않다. 미움은 원래가 '맹목적'인 것이다. 상대편의 부분밖에 보지 못할 때에만 미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마르틴 부버의《나와 너》중에서 - * 그 사람의 전체를 보면 미워할 수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부분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나의 욕망을 충족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상대의 전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너와 나의 영적 합일'에 있습니다. 전체로서의 '너'와 '나'의 참다운 만남 안에 사랑이 존재합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Thank you, godowon morning letter..!"

파란색 에너지/

파란색 에너지/ 절망과 희망은 일란성 쌍둥이다. 우리가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희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 되기도 한다.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희망 속에서 절망을 보지만 현명한 사람은 절망속 에서도 희망을 캐낸다. 어떠한 시련도 행복의 기회일뿐, 불가능은 없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으면 합니다. 단 하나뿐인 사람답게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장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으면 눈앞에 있는 상대의 '개성'도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자신에게 긍지를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