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4.24일. 아침을 읽는다.. ♡ 으깨진 두부 유명한 여류 소설가 신달자씨가 어느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 대담을 나누던 중에 진행자가 남편에 대한 질문을 하자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9년 동안 시어머님의 병간호를 극진히 해드렸고 20년을 넘게 남편의 병수발을 불평 없이 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고맙다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제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밖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나! 여보 비 좀 봐요. 당신이 좋아하는 비가 오고 있네요."라며 뒤를 돌아 보았는데 남편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말없이 묵묵했던 남편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졌습니다.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채 우두커니 고독을 새기며, "남편이란 존재는 아내에게 무엇을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가 아닐까요?" 라는 고백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어느 가정에 무뚝뚝하고 고집이 센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예쁘고 착하고 애교가 많았기 때문에 아내의 상냥스러운 말과 행동이 남편의 권위적인 고집불통과 무뚝뚝한 불친절을 가려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하는 길에 가게에 들러,두부 좀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이 남자가 궁상맞게 그런 봉지를 어떻게 들고 다니냐면서 벌컥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아내가 직접 가게에 가서 두부를 사가지고 오다,음주 운전 차량에 치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남편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내는 이미,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유품을 바라보다 검은 봉지에 담겨진 으깨진 두부를 발견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너무...
바다에 뜨는 별/ 낙망이라는 중력보다 갈망이라는 부력이 더 크면 얼마든지 우리는 고해와 같은 세상에서 승리할수 있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신령해진다 해도 연약함은 연약함으로 남아 있다. 뿐만아니라, 하루 아침에 산이 바다가 되거나 죄인이천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사방이 우리를 가로 막을것이며 여전히 우리는 사망의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문제와 슬픔 으로가라 앉으려 할 때 더 이상견딜수 없는 어려움으로 체념의 바다에 빠져 갈 때차라리 죽는 것이 사는것 보다부러워 조금씩 사망의 그늘에 잠길 때갈망이라는 부력을 높이는 것이다. 깊은 바다 한가운데 쇠붙이를 떨어뜨리면 쇠붙이는 금방 가라앉고 만다. 그러나 쇠붙이에 스치로플을 묶어 바다에 빠뜨리면 쇠붙이는 가라 앉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가라 앉고자 하는 쇠붙이의 중력보다 뜨고자 하는 스치로플의 부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루는 쇠붙이와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가라 앉으려 한다. 기분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고, 물질로도 그렇고, 심적으로도 그렇다. 되는 일이 없어 그렇고, 가능성이 안보여 그렇고, 미래의 문에 닫혀 그렇다. 그뿐인가? 열등감으로 가라 앉으려 하고, 상처로 가라앉으려 하고 "비교가난"으로 가라 앉으려 한다. 하나님마져 움직여 주지 않으심에 그렇고, 망망대해에 홀로 버려진 듯한 생각으로 슬픔과 거절감의 바다에 빠져든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희망끈마져도 하루 지나고 나면한올 한올 풀어져 있다. 간신히 숨을 고르지만 더 이상내게는 희망과 가능성마져도비껴가고 보통 사람들에게는실개천같은 일상인 일들이내게는 건널수 없는 크고깊은 강으로 다가온다. 그럴때는 정신마져도혼미해지기 일쑤다. 그와 같을 때엔 다른 길이 없다. 갈망이라는 부력을 의지 하는 것이다. 낙망이 절망이라면 갈망은 희망이다. 낙망의 중력이 우리를 날마다 바다 깊은 곳으로 끌고 갈지라도 갈망이라는 부력으로다시 떠올라야 한다. 문제를 없앨 수는 없다. 바다를 하루 아침에땅으로 만들 수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