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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    교회에서 말하는  ‘ 예수 구원 ’ 이  ‘ 다른 구원 ’ 들을 압도하고  사람들을 다시 몰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저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 구원 ’ 이  무엇인지부터 진지하게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구원은 한 마디로  ‘ 천국 입장 티켓 ’ 인가요 ?  세월호의 주인이었던 유병언이나 박옥수 ,  신 天 지 같은 사교집단을  ‘ 구원파 ’ 라고 부릅니다 .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 하고 말합니다 .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성경 ,  찬송을 가지고  똑같은 순서의 예배를 드리며  겉으로 봐서는 우리와 다른 것이 없습니다 .  그런데 그들을 왜 이단이라고 분류합니까 ?     ‘ 구원 ’ 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  똑같은 단어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  예를 들면  ‘ 배 ’ 라는 단어를  어떤 사람은  사람이 타고 다니는 배라고 생각하고 ,  어떤 사람은 맛있게 먹는 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    구원파 사람들은  “ 언제 구원 받으셨습니까 ?”  하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   지금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확신도 없는데   ‘ 언제냐 ?’  하는 질문 앞에서 당황하게 됩니다 .  “ 나는 어느 날 확실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 하고 대답하면  구원파의 논리에 동의하여 ...

흔드심은, 주님의 본심이 아니다.

흔드심은 ,  주님의 본심이 아니다 .     흔들리십니까 ?...  너무 흔들려 흔들릴 힘조차 없는 분들께 이 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서양속담에  " 단단한 쇠는 두드려서 만든다 " 는 말이 있다 .  살다보면 ,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두드리고 흔드실 때를 만난다 .  그냥 내버려두셔도 ,  존재론적으로 힘든 일이 많은데 흔드심과 두드리심이 멈추질 않는다 .  어떤때는  ' 왜 나만 두드리시느냐고 ?'  저항도 하고  ' 왜 나를 이토록 모질게 흔드시느냐고 ?' ' 이제 그만 좀 하시라 ' 고 애원도 해 보지만 하나님의 흔드심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     그러나 ,  지나고 보면 우리 철부지 인생은 ,  하나님의 두드리심으로 철이 들고 우리의 신앙과 삶의 깊이는 ,  주님의 흔드심의 깊이와 비례함을 경험하게 된다 .  사람은 누구나 다 약하다 .  그러나 ,  두드리면 강해진다 .  사람은 누구나 다 요동한다 .  그러나 ,  흔들면 산성이 된다 .  허버트는  " 큰 배는 깊은 바다를 필요로 한다 " 고 했다 .  큰 믿음 ,  큰 성숙 ,  큰 축복 ,  큰 응답은 반드시 큰 흔드심을 통하여 주어진다 .  하나님은 ,  구원 말고는 거저 주시는 것이 별로 없으시는 듯 하다 .     반드시 침묵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  행함으로 축복에 이르게 하시고 흔드심 후에 응답하시며 ,  막으심으로 열으신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25 년 동안 흔드셨다 .  그후에 아들을 주셨고 ,  그 아들을 흔드신 후에  '...

'그냥 주님이 좋은 은혜'

아픈 것은 아픈 것이고 ..  주님으로 그냥 좋은 ,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  가난한 것은 가난한 것이고  주님으로 마냥 좋은 ,  하루이고 싶습니다 .  속상한 것은 속상한 것이고  그냥 기쁘고 감사한 하루이고 싶습니다 .  힘든 것은 힘든 것이고  그냥 주로 말미암아 ,  즐거운 하루이고 싶습니다 .  억울하고 분한 것은 ,  그런 것이고  그냥 주님으로 행복한 하루이고 싶습니다 .  내 뜻대로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고  그냥 ,  믿음의 부자이고 싶습니다 .  내일 당장 굶어 죽는다 해도 ,  오늘은 그냥 주님으로 황홀합니다 .  내일이면 온 세상이 끝난다 해도 ,  오늘밤은 주님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  어느 한곳 기댈 곳 없이 사방이 막혔어도 ,  무엇이 걱정입니까 ?  주님이 살아 계시면 됐지 ...  모든 사람에게 거절당하고 ,   외면 당하면 어떻습니까 ?  주님이 살아 계시면 됐지 ...     걱정이 안되어 걱정인 ,  그런 은혜가 있음에  오늘 같은 하루를 내일도 살고 싶습니다 .  겹겹이 쌓여 가는 고난 속에도 ,   하나님의 섭리는 있습니다 .  도무지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도 ,  하나님의 섭리는 있습니다 .  힘이 아니라 ,  짐이 되는 그 사람 속에도 ,  나를 향하신 그분의 섭리는 있습니다 .     길고 긴 ,  하나님의 침묵과  악인의 형통 속에도 ,  하나님의 ...

겨울의 숲의 음악 /이한규목사

겨울의 숲의 음악  롱펠로우는 <겨울의 숲>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 그 풍성하던 여름의 자취는 모두 어디로 가고 말았는가?/ 지저귀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갔으며/ 부드럽던 여름 바람은 어디로 가버렸나/ 그 푸르던 숲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렸는가!/ 그러나 여기에도 음악은 있다!  거칠고 사나운 겨울의 음악!/ 이 거칠고 사나운 겨울바람에도/ 갈대는 고운 소리로 울고 있구나!”  위대한 신앙인들은 남보다 더 심한 고난과 시험의 과정을 잘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시험과 고난은 필요합니다. 시험과 고난 없이 큰 인물이 될 수 없습니다. 시험과 고난의 수렁에 빠져 있을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함으로 다시 서십시오. 믿음의 능력은 고난 중에 더욱 나타나야 합니다. 물론 성도라고 항상 굳건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붙잡은 손만 놓지 않는다면 점점 믿음도 성숙하게 됩니다.  고난과 절망은 다릅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지만 고난은 참된 삶에 이르는 약입니다. 고난을 통과해야 참된 인생 예술품이 만들어집니다. 실연을 겪으면 사랑의 고귀함을 깨닫고 가난을 겪으면 자선의 고귀함을 깨닫고 무직생활을 겪으면 일의 소중함을 깨닫고 낙방을 겪으면 노력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또한 배신을 겪으면 충성의 소중함을 깨닫고 실패를 겪으면 “나는 높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비로소 겸손해집니다.  배반과 위선이 넘치는 삶의 가면들은 고난으로 인해 벗겨집니다. 결국 고난은 말과 행동의 진실성을 판단할 만한 중요한 표준입니다. 그 표준이 없는 것이 불행입니다. 각종 고난은 삶을 진실하게 만들어서 삶을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순간이 찾아오면 ‘자가진단’을 통해 그때 삶에 스며있던 위선의 때를 벗기고 보다 성숙해지는 순간으로 활용하십시오. 고난 때문에 절망하면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고난을 잘 수용하고 활용하면 진정...

격려의 공동체를 이루라

격려의 공동체를 이루라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실 때 각 사람을 개인적으로 구원하시되 그들을 공동체 ‘안으로’ 구원하신다. 따라서 믿음의 형제자매가 서로 모른 체 살아가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떠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하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다른 성도들과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몸을 무시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이며, 그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는 것이다. -튤리안 차비진의 [더 크리스천] 중에서- 공 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삶이 참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개개인의 취향과 성격이 다름을 인정하지만 개개인의 구성원은 자신의 방식이 아닌 함께라고 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자신을 오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들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손님처럼 다니면 온전한 하나됨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각 지체입니다. 서로 다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늘 기억하며 서로 격려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공동체, 서로 사랑하고 격려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열려 있는 만큼 사랑할 수 있고 받을 수 있고 줄 수 있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강건너 북한의 도망강에서 벌어지는 모습들

https://youtu.be/1O9HNIpHBuk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자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자   눈으로 보여지는 모든 것은 착각일 수 있다 깊이 있게 봐야 보일 수 있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며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를 발견하고 관찰해 그 속에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게 우리는 무엇을 준비 해왔는지 확인하자  자 연의 아름다움은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확인하지 말자. 풀 한포기의 생명력을 관찰하고 작은 부분일지라도 조화로울 수 있게 하는 자연을 확인하자. 살아있는 자연 속에서 나의 존재는 작은 부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사람은 사람을 평가하기 앞서 자신도 평가해봐야 한다. 사고가 지배하는 사람은 사고의 환경에 적응해 있기에 작은 곳만을 볼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연인과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해보자. 조화가 있는지 그 조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고 느끼고 있는지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보완하자. 모습의 아름다움을 생각지 말고 내적 아름다움을 키워가며 바라볼 수 있는 자신이 되자. 조화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무형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