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교회에서 말하는 ‘예수 구원’이
‘다른 구원’들을 압도하고
사람들을 다시 몰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
무엇인지부터 진지하게
다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은 한 마디로 ‘천국 입장 티켓’인가요?
세월호의 주인이었던 유병언이나 박옥수,
신天지 같은 사교집단을 ‘구원파’라고 부릅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하고 말합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성경, 찬송을 가지고
똑같은 순서의 예배를 드리며
겉으로 봐서는 우리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왜 이단이라고 분류합니까?
‘구원’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단어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배’라는 단어를
어떤 사람은 사람이 타고 다니는 배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맛있게 먹는 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구원파 사람들은 “언제 구원 받으셨습니까?”
하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확신도 없는데
‘언제냐?’ 하는 질문 앞에서 당황하게 됩니다.
“나는 어느 날 확실히
구원을 받았습니다”하고 대답하면
구원파의 논리에 동의하여
나도 구원파가 되는 것이고,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나는 구원을 받지 않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구원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천국 입장 티켓’을
언제 확실하게 샀느냐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천국입장 티켓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만약,‘구원’을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면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구원파들과 같은 논리로
‘구원’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예수 구원’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구원하는 것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고 하는데,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사방 천지에 넘치고 넘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구원받기 위해 예수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살기 힘들 때에는 교회마다
사람들이 꽉꽉 찼습니다.
그런데 점점 살기가 좋아지니
교회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
주말이면 산과 바다가 꽉꽉 차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힐링(Healing)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과 바다가 사람들을 힐링시켜주고 구원하고 있습니다.
살기 힘들 때는 사람들이 병 걸리고 다치면
교회에 와서 죽기 살기로
기도하고 금식하여 병을 고치더니,
지금은 병 걸리고 다치면 먼저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오늘날 의료기술과 유전자공학의 발전은
미래에 사람도 만들어낼 기세입니다.
앞으로 인간의 미래는 ‘유전공학자’ 들의
손에 달려 있으니 그들이 인류의 구세주가 되겠네요.
살기 힘들 때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옷도 얻어 입고,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문화생활도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조금 살만하니 사람들은 운동장으로,
공연장으로, 해외여행으로,
대형쇼핑몰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교회가
가장 가난한 곳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은
어딘가 곤란한 곳에 빠져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에 부족한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이
풍요롭고 완벽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면
사람들은 구원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만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고 속이는
거대한 어둠의 세력들이 사람들을 다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교회에서 말하는 ‘예수 구원’이
‘다른 구원’들을 압도하고 사람들을
다시 몰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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