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09 28
살 수 없는 줄 알고!
삼하 1:10
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다윗은 아말렉 족속을 도륙했다.
그리고 이틀 후에 아말렉 족속 중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의 소식을 전했다.
그 때 이 아말렉 사람은
사울의 죽음에 대해
다윗에게 상을 받을 줄 알고
사울의 죽음에 거짓말을 덧붙여 말하고
결국은 그 거짓말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사울은 자기 죽음을 알고
병기 든 자에게 자기를 죽이라고 명했다.
그러나 병기 든 자는 사울의 명령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다.
그래서 죽이지 않았다.
삼상 31:4-5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의 병기 든 자의 모습이
오늘 날 참으로 그리운 까닭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죽어가는 생명이고
그 생명의 연장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생명에 대해서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육신의 그림자인 아말렉 사람은
생명을 이 세상에서 받는 상과
비교해서 생명을 죽이는 것이
유익이 될 것 같으면
그 생명에 가차 없이 손을 댄다.
이 거짓말, 거짓된 악한 말이
결국은 스스로 죽음을 불렀다.
다윗은 이 아말렉 사람을 죽였다.
삼하 1:14-15
다윗이 저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소년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저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물론 이 아말렉 사람을 다윗이 죽인 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벌을 내린 것이다.
이 아말렉 사람이 한
거짓된 말과 행동을 통해서
오늘 날 현대인들이 말하는
죽음, 안락사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여러가지 정황과 의사의 경험,
과학적 장비의 조사 결과가
죽는 것이 기정 사실이고,
그리고 그 죽음에 앞서서 고통이 있다.
따라서 그 죽음에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타인이 그 생명에 대해서
사람이 손을 대는 것이 과연 옳은가?
사람이 과연 생명에 대해서
손을 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쉽게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한번은 깊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결정에
인간이 함부로 손을 대거나
법으로 정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그 생명의 원천이 사람에게 있다면
사람이 그 생명에 대해서 손을 대는 것에
정당성이 있다 할 수 있다.
시 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주의 빛 중에서 인간은 빛을 본다.
주의 생명 중에서 인간은 살아간다.
그러나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다.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래서 생명에 대해서 인간이 손을 대는 것은
절대적으로 합당하지 않다.
오래된 낡고 헤진 작은 곰인형이 있다.
오래전에 죽은 아이가 가지고 놀던 인형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이 와서 지저분하다고
자기 마음대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 행동이 옳은 것인가?
아말렉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의 고통을 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저렇게 고통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생각한다.
그래서 그 죽음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옳은가?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만이 그 생명에 대해
좌지우지 할 수 있다.
사람은 결코 그것에 대해서
어떤 결정도 할 수 없다.
인간이 만든 법이라 할지라도
생명에 대해서는 인간은
관여할 여지가 전혀 없다.
왜 그런가?
인간은 생명을 모른다.
인간은 죽음을 모른다.
인간은 생명의 시작이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 생명을,
하나님께 속한 생명을,
인간이 지혜가 있다고,
능력이 있고 권력이 있다고,
법을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그 생명에 손을 대는 것이 옳은가?
마지막 때
하나님이 주신 인권,
天賦人權천부인권이 경시된다.
왜 이런 생각이 현대 사회에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가?
생명을 사람이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6번째 계명이
살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6이라는 사람 숫자이다.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일까?
‘살 수 없는 줄 내가 알고’
아말렉 사람은 사울이 살 수 없는 줄
자기가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거짓말로 자기가 죽을 줄
알지 못했다.
자기의 죽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죽음을 알겠는가?
사람이 살 수 없는 줄 알고
그의 죽음을 도와 주려고 칼을 빼어
죽이려하는데 화살이 날아와
내 심장에 먼저 꽃일 수 있다.
인간이 사람의 생사화복을 어떻게 아는가?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생명에 대한 바른 생각은
사울의 병기 든 자의 말이다.
탈무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고통의 유무에 따라
타인이 종결지을 수 있는
권한이 없느니라.'
신 30: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시다!
주님!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십니다.
사는 날이 고통스럽다고
생명에 손을 대는 어리석음,
인간의 오만함을 용서하소서!
광명 중에 광명을 보고
생명 중에 생명을 보게 하소서!
사람의 생명 중에서
생명이신 하나님을 보게 하소서!
아멘! 아멘! 아멘! 🙏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