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09 10
믿음은-2! /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믿음은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말한다.
믿음은 예수다!
예수는 사실이다!
예수는 참된 역사다!
진리는 예수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예수다!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는 믿음이다!
예수는 역사다!
예수는 진리다!
예수는 사실이다!
예수가 믿음이라는
직접적인 말씀은 의외로 많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믿음에 있는가"를 검증하는
단 하나의 시금석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가"를 묻는다.
믿음의 유무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실체'가
실존하느냐의 여부와 완전히 동일한 말이다.
갈 3:23, 25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여기서 ‘믿음’은
인간의 내면적 심리 상태가 아니라,
구속사 속에서 때가 차매
공간과 시간 안으로 오신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실체이신 예수님을 말한다.
'율법의 시대'가 지나고
마침내 인격으로 이 땅에 오신 분,
곧 '오신 믿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나는 또 무엇을 바라는가?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났다.
인생은 苦海고해다!
그래서 平康평강(peace)를 바란다.
그 평강의 왕이 예수님이시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평강의
실체가 예수님이다!
믿음은 예수님이다!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그 영광의 실체가 예수님이다.
나는 그 영광을 원한다.
믿음은 예수님이다!
인생은 죄의 심판을 두려워한다.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자신의 피를 흘려 죄를 영원히 용서하셨다.
예수님은 구원의 실체이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나는 그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원한다.
믿음은 예수님이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병이 낫기를 원한다.
그 병을 고치는 능력이 예수님께 있다.
눅 5:17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하더라.
예수님에게 있는 능력을
내게로 가져오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세상의 유명하고 지식이 있는
바리새인, 교법사들에게는
이 믿음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
즉 그들은 ‘믿음’이 없었다.
그들의 마음에 ‘예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가 있는 사람,
즉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
12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은
그 마음에 ‘예수’가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
예수님에게 있는 능력이
그 여인에게로 나갔다.
막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즉시로 그 여인의 병이 나았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막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네 ‘예수’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동일한 표현이다.
내 안에 계신 ‘예수’,
내 안에 계신 ‘믿음’!
내 믿음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내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이다.
모든 병을 고치는 ‘예수’가
내 안에 있으면 병이 낫는다.
모든 병을 고치지 못하는 ‘예수’라면
내 안에 있는 병은 낫지 않는다.
그것이 곧 내 ‘믿음’이 어떤 믿음인가
하는 것과 연결된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
그런데 구원을 받지 못한다.
왜 그럴까?
구원하지 못하는 ‘예수’이기 때문이다.
구원하지 못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구원을 하시는 ‘예수’가 아닌
부분적 구원을 하는 ‘예수’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구원을 하는 ‘믿음’이 아닌
부분적 구원을 하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는 ‘예수’가 아닌
지난 죄만 용서하는 ‘예수’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속죄를 이루는 ‘믿음’이 아닌
원죄, 지난 죄만 용서하는 ‘믿음’이다.
믿음이 다르다는 것은
예수가 다르다는 것이다!
영원한 속죄를 하지 못하는 ‘예수’
영원한 속죄를 하지 못하는 ‘믿음’
이것을 가지고 평생을 교회 다녀도
결코 구원을 받지 못한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
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구원하는 ‘예수’,
구원하는 ‘믿음’은 바로 이 말씀처럼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는 예수, 믿음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내 모든 죄를 단번에, 영원히,
가장 분명하게 씻기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이 내 ‘믿음’이다.
그 ‘믿음’이,
그 ‘예수’가 나를 구원했다.
나를 낫게 했다.
나에게 평강을 주셨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믿음이 없으면, 예수가 없으면
버리운 자니라!!!
주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귀신들린 자의 말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내 삶에 ‘예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내 삶에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제 ‘믿음’이 내게 들어왔습니다.
‘예수’가 내 안에 계십니다.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바라고 원하는 것의 실체를 봅니다.
그것이 제 삶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믿음이 나를 지킵니다.
예수가 나를 지킵니다.
믿음이 모든 것을 이룹니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십니다.
네 믿음대로 되라!
네 믿음의 실체대로 되라!
아멘! 아멘! 아멘! 🙏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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