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 임한 대법관,
고재호의 겸손, /
"교만은 서서히 자신을 죽이는 자살 행위와 같다.
법관으로 40년을 살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얼마나 겸손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법조계의 원로들이 후배들에게 '머리를 더 숙이라'는 뜻으로 들려주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1950년대,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최연소 대법관이 된 고재호(1913~1991) 선생의 일화입니다.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지내며 명망이 높았던 그였지만, 고향인 전남 담양으로 내려가던
길은 소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당시엔 대법관 전용 차량이 없던 시절이라, 그는 광주까지 열차를 타고 내려가 다시 완행버스로 갈아타야 했습니다.
버스 종점에 내려 고향 집으로 향하던 중, 그는 개천을 마주했습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을 건너려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순경 한 명이 그를 불러 세웠습니다.
"여보시오, 어차피 양말도 벗었으니 나 좀 업어서 건너 주구려."
40대 중반의 대법관에게 그보다 조금 더 나이 든 순경이 무례한 부탁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고 대법관은 아무런 내색 없이 묵묵히 순경을 등에 업고 개천을 건넜습니다.
반대편에 도착해 다시 양말을 신는 그에게 순경이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물었습니다.
"건너마을엔 무슨 일로 가시는가?"
"집안에 혼사가 있어 가는 길입니다."
"그래요? 성함이 어떻게 되쇼?"
"고재호라고 합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순경은 그 자리에 엎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 순경은 "서울에서 귀한 대법관 어른이 오시니 개천가에서 기다렸다가 잘 모시라"는 경찰서장의 지시를 받고 나온 파출소 직원이었습니다.
정작 모셔야 할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등에 업혀 강을 건넜으니,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노릇이었지요.
세상에는 작은 권력이라도 쥐면 어깨에 힘을 주고 타인을 굽어보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고재호 대법관은 "겸손이 영광보다 먼저"임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그가 은퇴 후에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두 차례나 역임하며 존경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법 지식이 아니라 바로 그 낮은 자세에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곁에도 '완장'의 위세보다 '사람'의 도리를 먼저 생각하는 고재호 대법관 같은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 오늘의 명언
"교만은 천천히 자신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진정한 권위는 제복이나 직함이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에서 나온다."
위 글귀처럼 오늘도 겸손의 미덕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복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받은 글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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