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음다움
아름다움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알음이예요.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름답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것의 알음을 아는 것입니다.
수련장 한 가운데 느티나무 밑에 커다란 바윗돌이 와 있습니다.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꽉 찬 것 같아요",
"그 위에서 시를 한 수 읊고 싶어요",
"고기를 구워먹고 싶어요"가보고 싶지요?
위에 앉고 싶죠? 그럼요. 돌이 끌어 당기는 것입니다.
그런 예지 능력을 우리가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저거 얼마짜리지' '가져올 때 굉장히 힘들었겠네' 합니다.
한 때 굉장히 탐독했던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통해 저는 그 당시에
'아! 선악과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앎에 걸려들어 있습니다.
아는 것에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병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는 것이 해방이 되어야 하는데
아는 것이 병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은 그런 기운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것을 상실이라고 합니다.
"기운 좀 차려","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얼굴에 다 기운이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면 기운이 하나 없이 보여요.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운차게 나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면 기운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느 학교도 굉장히 뻗어나가는데
어느 날 기운을 잃었습니다.
기운을 잃어버린 학교에 가보면
운동장도 기운을 잃어버려서 잡초가 무성합니다.
크리슈나무르티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분의 사상을 이어받은 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대화를 나눈
[굴레에서의 해방]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을 읽고 '아! 나도 주말학교를 해야겠다'
그래서 지금 생활관으로 쓰는 한옥을 구해서 주말학교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는 '학교에 있는 큰 나무 하나는
그 어떤 큰 선생님보다도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학교에 있는 아름드리나무를 사진으로 보니
몇 아름드리 되겠더군요.
거기 밑에서 크리슈나무르티가
학생들 앞에 앉혀 놓고 그 앞에서 강연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진이 저에게는 너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아! 그것이겠다. 그런데 퇴락해 가는 집을 보면
그런 나무조차도 기운을 잃습니다.
어느 것으로부터 기운을 주고 받고 그래서 상생(相生),
서로가 살리는 기운 속에 있습니다.
그것을 아름다움 속에 산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가장 살리는 기운이 무엇인가?
사랑의 기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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