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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발상의 전환, 이스라엘의 경우(3)] 김진홍의 아침묵상

아침묵상 제목과 날짜 발상의 전환, 이스라엘의 경우(3) 2015-11-28 "너희는 이전 일을 생각하지 말며 옛적 일을 기억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이사야 43장 18절) 앞의 글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 땅은 농업에는 거의 부적합한 땅이다. 적어도 우리 기준에서는 그러하다. 사막에 준하는 황무지에 물도 없고 길도 없는 모래밭에서 무슨 농작물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은 그런 땅을 개척하여 농지로 만들어 작물을 심고 가축을 기르며 과수원을 가꾸는데 성공하였다. 그런 땅에서 농업을 일으켜 750만 인구가 식량자립을 하고 해마다 수십만 달러 어치 농축산물을 수출하고 있다. 그것도 평화로운 상태에서가 아니라 수십배에 달하는 아랍인들에 둘러싸여 수시로 전쟁이 터지는 전시상태에서 이루고 있는 업적이다. 내가 이스라엘의 한 키브츠를 방문하였을 때에 딸기농장을 방문하였다. 그들의 딸기농장을 보고 내가 입을 딱 벌리게 된 것은 딸기가 평지에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벽을 의지하여 계단식으로 마치 아파트처럼 딸기밭이 이루어진 점에서다. 그런 발상은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어떻게 딸기를 아파트 같은 계단식으로 된 곳에 층층이 심게 되었을까 하는 놀라움으로 안내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대답인즉 물을 아끼기 위함이라 하였다. 사막 땅에 400km 거리를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기에 한 방울의 물도 귀할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그래서 한국처럼 평지로 된 밭에 물을 주면 물의 손실이 많겠기에 딸기밭을 아파트처럼 층층으로 심어 위에서 물을 주면 아래까지 차례로 흘러내려 물을 절약할 수 있기에 그런 발상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층층으로 달기를 기르면 물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선체로 작업을 할 수 있기에 작업효율이 높아진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게 길러진 딸기가 일조량이 워낙 많은 사막인지라 당도가 높기가 마치 꿀맛 같았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이주연>

[2015-11-28] 진리는 무엇입니까?    한 젊은이가 진리를 얻고자 선생님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도록 스승은 제자에게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해 주질 않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는 선생님께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어찌 제게 진리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질 않으십니까?" 선생님이 대답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자네가 내 집에 머문 이후 줄곧 진리를 가르쳐 주질 않았는가?" "선생님, 언제 제게 진리를 가르쳐주셨습니까?" "내가 가르쳐주었지! 자네가 아침에 차를 가져왔을 때에 내가 그것을 받아 마셨고, 자네가 아침 문안 인사를 하였을 때에 내가 받질 않았는가?" 진리란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일이요, 그 섬김을 정성을 다해 받아주는 일입니다. 또한 진실한 마음으로 문안할 때에 진정한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진리란 추상이 아니라, 사랑이니 말입니다. 십자가가 진리인 까닭은 수억년 피고지는 역사의 계절에 지고한 하늘의 사랑이 거기서 꽃 피었기 때문입니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 살아있다 ' 는 것이 중요하지 , ' 살아왔다 ' 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 < 에머슨 >

[씨알이 씨알에게] 본래 열둘의 의미는

재단법인 씨알(crlife.org) 2015년 11월 27일 금요일 제842호  본래 열둘의 의미는 열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예수를 중심으로 새로 하나인 생명체를 이룬 데 있었다. 이제 그것이 깨졌다. 유다 하나가 문제 아니다. 물론 그 개인도 불쌍히 여기지만 그로 인해 열하나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 상태를 놓고는 자기 가실 길을 갈 수 없다. 몸소 제자의 발을 씻으신 것은 단순히 봉사정신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보다 더 깊이는 그 산산 부서짐으로 더러워진 마음을 다시 씻어 깨끗이 하기 위해서다. 상처는 씻지 않고는 합창이 아니 된다. 독성균을 씻어버려야 한다. 발을 씻음으로 그것을 상징하신 것이다. <함석헌 전집 15, 펜들힐의 명상> 36쪽 함석헌

옛날이 그리운 까닭 /김동길

◆ 2015/11/28(토) -옛날이 그리운 까닭- (2768) 영어에도 ‘Good old days’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이 그립다는 말일 겁니다. “Past seems best”라는 격언도 흔히 쓰입니다. 지나간 일들은 다 좋게 보이는 법입니다. When I grow too old to dream, I'll have you to remember and when I grow too old to dream, your love will live in my heart. 내가 너무 늙어서 꿈도 못 꿀 때 그 때에도 나는 그대 잊지 못하리 나 너무 늙어서 꿈도 못 꿀 때 그 때에도 그대 사랑 내 가슴 속에 젊었을 때에는 사랑의 고통이 전혀 없었겠습니까?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른 뒤 그 아픔은 많이 잊혀지고 그 상처는 새 살이 돋아났을 뿐일 겁니다. <적(赤)과 흑(黑)>의 저자인 프랑스의 작가 Stendhal(Henri Beyle, 1783 - 1842)은 자기 벨트에 사랑했던 여인들의 이름을 다 적어 놓았었다고 전해지는데 나는 그 허리띠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명단에 몇 사람의 애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성들 때문에 잠 안 오는 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영국 시인 Shelley가 “I fall upon the thorns of life! I bleed!”(나 인생의 가시밭에 쓰러져 피 흘리노라)라고 탄식했을 때 그는 틀림없이 그의 여인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정말 행복했던 때가 있었습니까?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면 그건 언제입니까? 철이 없을 만큼 어렸을 때, 아버지·어머니가 아주 젊으...

“용서는 평화와 행복의 문… 복수는 위로 못 돼” /Book Review

“용서는 평화와 행복의 문… 복수는 위로 못 돼”     이대웅 기자 | 2015.11.25         왜 용서해야 하는가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 포이에마 | 272쪽 | 11,000원 “등에 박힌 총알보다, 가슴속에서 자라는 복수심이 더 끔찍하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를 강조한다. 주기도문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는 말도 나오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용서하라(마 18:22)’는 주님의 말씀도 있다. 우리의 구원과 믿음도 주님의 십자가로 인한 ‘용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IS의 프랑스 파리 테러 소식을 접하면서, 이 작은 책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전혀 용서하고 싶지 않았으며, ‘왜 용서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처럼 직접 겪어내야 하는 사소한 문제부터 이러한 전 지구적 테러까지, ‘용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면서도 희생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책에는 끔찍한 사고로 자녀를 잃거나 축구선수의 꿈을 좇다 무고한 폭행을 당해 하루아침에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 등,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증오’ 대신 ‘용서’를 선택함으로써 삶을 회복하고 진정한 승리를 얻는 이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일제강점기와 6·25 등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서로에게 수많은 상처를 안긴 우리나라의 사례도 여럿 나온다. 저자는 “용서는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문”이라며 “낮고 좁아서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 문은 찾기도 어려워서 찾는 데 오래 걸리지만, 그렇다고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모두 용서의 문을 찾아냈고,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당신도 어느새 그 문 앞에 당도할지 모른다”며 “그때는 부디 그...

그런데 예수님도 부족한 분이신가?

그런데 예수님도 부족한 분이신가 ?        최근에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새롭게 반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 결과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  사탄이  “ 너는 부족해 !” 라고  이야기하면 나는 이렇게 반응한다 .     “ 그래 ,  맞아 .  그런데 예수님도 부족한 분이신가 ?”  이렇게 답을 하면  대화가 갑자기 끊어져 버린다 . 겉으로 보기에 사탄은 내 연약함과  부족함에 대해 하루 종일이라도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지만  내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충분함에 대해  말하는 순간 그는 더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 - 릭 하워드 ,  제이미 라쉬의  ‘ 하나님 왕국에서 큰 자 ’ 에서 -     이것은 단순히 자신의 말이  변화를 불러온 것이 아니라 그 마음 안에 변화가 온 것입니다 .  자신에 대해 낙심하던 상황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이제 부족한  자신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하나님은 내가 완전하기를  기대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요구하지도 않으십니다 .  그분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은  모든 것에 충만하신 그리스도 (all sufficient Christ) 께  내 모두를 맡기고 그분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

전진하는 자의 벗

전진하는 자의 벗     니체는   "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전진이다 . 앞에는 언덕이 있고 ,  냇물이 있고 ,  진흙도 있다 .    먼 곳으로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조용히 갈 수는 없다 .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 " 라고 말한다 .    따라서 우리는 고통을 싫어하면서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 - 김광수의 《 둥근 사각형의 꿈 , 삶에 관한 철학적 성찰 》 중에서  -       항해를 하면서 바다가 늘  잔잔하기만을 기대한다면 착각입니다 .  내일의 하늘에 무지개만  뜨기를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  앞으로 ,  미래로 ,  전진하는  사람에게 풍파는 언제나 따라다닙니다 .  풍파 ( 風波 ) 는 전진하는 자의 벗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