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사회와 후진사회"
"Real community is not produced by any sentiment or feeling of fellowship... it is the product of being considerate of one another."..... Dietrich Bonhoeffer (1906-1945, German theologian)
'성숙한 사회는 단지 민족적정서나 교제에 의하기 보다는 남을 배려하는데 있다.'
Marian W. Edelman 이라는 미국의 여류교육자는 어린이이들에게 꼭 하나 가르쳐 줄 것이 있다고 하며 남을 배려하는 태도라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태도 하나만으로도 박사학위에 해당하는 富를 아이에게 안겨줄 것이라 했다.
그녀는 일생 아동들이 자라고 되어지는 모습을 보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결혼생활이나 직장생활에서 더 성공적이며 더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며 한 말일 것이다.
우리 배달겨레가 세계적 기준으로 보아 절대우수한 민족이긴 하나 다른 선진사회에 비해 턱없이 결여된 것이 한가지 있으니 남을 배려하는 태도라고 여겨진다.
인간은 군서생활을 하며 서로 배우며 발전하는 가운데 생존을 영위하는 존재로 혼자서 살 수는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 혼자 고립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동물의 세계가 상호보완적 관계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임에도 혼자만 살 수 있다고 믿으며 행동하는 것은 사람들 뿐이며 특히 우리 사회는 더욱 그러하다.
며칠 전 지하철 승강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승강기 문이 아직 열려있었으로 내가 타려는데 타지 말라고 아우성을 치는 여자 소리가 안으로부터 들려왔는데 내 뒤를 따르는 한두명의 여자까지 타면 승강기 문이 늦게 닫히고 출발이 늦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안에는 아직 공간이 많은데도 하는 말이였다.
또 며칠 전에는 내가 마지막으로 승강기에 타고 문이 닫히는 순간 어느 노인이 힘겹게 승강기를 향해 달려왔으므로 내가 승강기 문을 여는 단추를 누르자 안에 탔던 여인 하나가 왜 문을 열어주는가고 거칠게 항의하는 것이 아닌가?
밖의 한 사람 보다는 안의 사람들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다 불과 몇초의 시간 때문에 벌어지는 촌극인데 다 먹고 노는 인간들이며 분초를 다투어가며 출퇴근을 하는 인간들도 아니었다.
나는 내 앞의 쓰레기는 반드시 줍는 습성이 있는데 옆의 단지는 최고가 아파트단지다. 새벽 산책길에는 전날 오후에 아이들이 버리고간 공병이나 과자봉지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으나 아무도 주울 생각이 없이 널려져 있었다.
내가 줍고 있는데 7-8 살 난 남자아이들 앞에 공병들이 나딩굴고 있었으므로 좀 주우라고 했더니 내가 버린 것이 아니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시절 근무하던 병원 뒷문은 어느 아파트 단지를 통과해야만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뒷 통로를 폐쇄해 먼 길을 돌아 출퇴근을 해야만 했다. 주민들이 아프면 자신들도 병원 출입에 애로가 많았을 것이나 우선 남들이 자신의 땅을 밟고 다니는 것이 싫어서였을 것이다.
자유민주사회라는 것은 남들도 자신과 꼭 같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음을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옆 단지에는 그네가 두개가 있다. 미국에서 어린 손주들이 와 놀이터가 있는 단지를 갔다. 제법 큰 두 아이들이 그네를 타고 있던 터라 내 손주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먼저 타고 있던 아이들은 십분이 가고 이십분이 가도 그네를 양보할 생각이 없다.
시간이 꽤 흘렀으므로 애엄마가 좀 양보할 생각이 없는가 묻자' 아녜요 우리 더 탈꺼예요!'
먼저 잡은 놈이 임자!
어제는 지하철에서 길을 잃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외국인을 저만치에서 보았다.
나는 이미 개찰구를 통과한 다음이었으므로 철책을 사이에 두고 물으니 그는 지하철역을 잘못 내린 것이 확인되었다.
나도 가는 길이었으므로 그로 하여금 개찰구를 통과하게 한 후 같은 열차를 타고 가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한국어를 한마디 못하는 그가 찾는 Apple 대리점을 찾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유난히도 복잡한 신논현역에 그와 같이 내려 5번 출구로 나가 그가 찾던 대리점으로 그를 인도하고 행여나 체류하는 동안 문제가 있으면 전화를 하라며 내 번호가 적혀있는 명함을 건네주곤 다시 지하철을 타고 가던 길을 갔다.
미국의 네브라스카주에서 열흘 여정으로 한국을 왔다는 그가 조금은 감사하지 않았을까? 또 이 이국땅에서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천사를 만났다고 하지는 않았을까?
본문의 저자는 개신교 목회자면서 신학자로 나치의 유태인박해의 그릇됨을 저항하다 급기야는 히틀러에게 밉보여 반역죄로 사형을 당한 인물이다.
그는 진정코 성숙한 사회는 단지 민족적 유대감 같은 정서만으로는 형성되기 어려우며 반드시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때만 가능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선진사회로 진입하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 하나를 그가 설명하고 있다.
5/26/2026 박인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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