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사람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사람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문화체육 관광부에서 장애인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한 예술인을 선정하여 수여(受與)하는 대한민국 장애인 문화 예술상(文化 藝術賞)에서 대상(大賞)을 차지한 시각장애인인 나사렛대학에 이상재 교수가 계십니다. 이상재교수께서는 7살 때 동네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망막(網膜)을 다쳐 9번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10살 때는 완전히 시력(視力)을 잃고 말았습니다. 앞을 볼 수 없었던 소년은 방황(彷徨)하게 되었고 사춘기 때에는 사직공원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래 부르다 주위 사람들과 다투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투성이가 된 이상재학생이 사직공원에서 내려오던 중에 그를 안타깝게 여긴 한 할머니가 교회에 가서 6개월만 기도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매주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무려 8개월동안 매주 금요일 철야(徹夜)기도날에 교회에서 밤마다 기도(祈禱)를 했으나 시력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이졔는 교회도 절대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까지 했습니다
음악적 재능(才能)과 조예(造詣)가 깊었던 그는, 중학교 때부터 크라리넷(clarinet)을 잘 연주해서 중앙대학 음대에 입학하여, 1990년도 수석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인 그를 받아주는 오케스트라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방황하는것 보다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차 한 친구의 권유로 미국 명문 음대 존스 홉킨스 피바디(Peabady) 음악대학에 지원을 했는데 놀랍게도 입학 허가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미국 3대 유명 음대중 하나인 피바디(Peabady) 음대에서 이상재는 6년동안 치열(熾烈)하게 공부하고 연구했습니다. 하루 수면시간을 4시간 이상 자지않았고 열심을 다해,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피바디 음대에서 시각장애인으로는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는 영예(榮譽)를 차지하였고 한국의 명예를 더 높이는 공적(功績)도 이루였습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그는 피바디 음대 재학 시절, 주위의 많은 동료들로 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실생활 속에서 항상 깊은 체험을 함께 하게 되었다는 신앙 체험담을 자주 듣게 됩니다. 그의 학교 동료였던 친구 한명이 워싱턴에 있는 교회에 한번 가 보자고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가 그 교회가 예배 후에 제공하는 점심 비빔밥이 기가 막히게 맛있다는 자랑을 하더랍니다. 당시 미국 생활을 하면서 햄버거와 샌드위치에 신물이 나있던 이상재는 비빕밥을 먹으러 워싱턴에 있는 민족장로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던 중 추수감사주일을 앞둔 어느 날 담임목사님께서 이상재에게 클라리넷 연주를 잘 한다고 하던데 예배시간 설교가 끝난 후 특별순서로 클라리넷 연주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설교가 끝나면 자기가 연주를 해야 한다는 기대를 가지고 설교를 열심히 경청하고 있던 중인데 그 때, 하나님께서 이상재교수에게 찾아오셨다고 체험담을 그가 설명했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에 의하면 갑자기 어린시졀 교통사고 때의 자동차 소리와 사직공원에서 피투성이로 싸울때 소리, 철야 기도하면 눈뜰거라던 할머니 소리, 미국으로 올 때 들었던 비행기의 이륙 소리와 잡음의 소리가 한꺼번에 겹쳐서 이상재교수의 귀에 들렸는데 그 요란한 소리로 외부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는데 바로 그 때 가슴 속에서 부터 울려오는 분명한 음성 소리가 들렸는데 <''네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 순간까지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었노라''>라는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실토(實吐)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설교가 끝나고 그는 순서에 따라 클라리넷 연주를 해야하는데 눈물이 비 오듯 쏟아져 하염없이 울면서 연주를 했습니다 ''괴로 울 때 주님의 얼굴을 보라''는 제목의 연주를 하는 내내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 연주를 했고 연주를 듣던 성도들도 이상재 교수의 신앙고백을 들은 후라 모두가 감동과 감격과 은혜의 눈물을 함께 흘렸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성령의 뜨거운 은혜를 체험한 이상재 교수는 고국에 귀국 후, 그는 천안에 있는 나사렛대 관현악과 교수로 초빙되었고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하트 시각장애인 체임버 오케스트라'' 를 창단해 해마다 50~60회에 달하는 공연을 실시 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1년 10월, 카네기홀이 설립된(1891년) 이후 처음으로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그의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했는데, 공연 후 단원들이 모두 퇴장은 했는데도 이날 관객들이 기립박수로 끝없이 환호하고 박수가 끝날줄 몰라 다 퇴장했던 시각장애인들이 다시 무대로 입장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전해오는 유명한 스토리입니다. 이 내용을 소개하는 저 역시 크리스찬이나 장로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이상재 교수를 보더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게 합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선한 뜻 가운데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신비로운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도 하면서 소망을 가지고 또 이 한해를 맞이하실 때 나에게도 좋은 기회가 허락될 줄 믿습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일본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18 81="">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 고 추 장  🌶

🌶 고 추 장  🌶 고추장에 관해서 특별한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게 갈비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의 일이다. 한개도 아니고 열개씩이나 골절되어 꼼짝달싹을 못하고 아편으로 통증을 겨우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혈압이 올라가고 혈당이 올라가 혼수지경에 이르니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도 어떻해서든지 날 살려보려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왔지만 모두가  헛수고일 뿐이었다. 나 또한 집사람을  혼자 살게 만들면 천벌을 받겠기에 열심히 음식을 먹으려 애를 썼지만 구역질만 더 할 뿐이었다. 여행다닐 때 고추장 단지를 꾀차고 다니며 햄버거에 발라먹던 생각이 나서 고추장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고추장을 죽에 넣어 먹으니 신통하게 잘 넘어가는데 그 맛 또한 기가막혀 부글거리는 뱃속까지 편안해졌다. 덕분에 문병오는 사람마다 고추장 단지를 가져오는 바람에  고추장 벼락을 맞을 지경이 되었다. 그 후로는 고추장 단지가 내 식탁에 주인이 되었다.   고추장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고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몰라도 신통하기 짝이 없었다. 소태 같던 입맛이 꿀맛이요,  구역질도 잠잠해지고 느글거리던  뱃속까지 고분고분 고추장말을 잘 들으니 과연 고추장의 위력이 대단하다. 내 미국 친구들이 겨울만 되면 단골처럼 감기로 골골대고 있을 때 나는 감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그들이 날보고 너는 어떻게 감기 한 번 안걸리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내가  건강한 것은 김치 파워야.  너희들도 김치를 먹어라." 하고  자랑을 했는데 이제는 고추장의 효능이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어린 아기를 달랠 때 호랑이 나온다 하면 뚝 그치고, 순사 온다 하면 뚝 그치듯이 뱃속이 앙탈을 부리면 고추장 먹는다  하면 조용해 질 것 같다.  고추는 남미와 아프리카가 원산지란다. 고추의 매운 맛은 알카로이드의 일종인 캡사이신 때문이란다. 이 캡사이신이  자극을 주어 발효작용을 해서 감기 열을 내리기도 하고 위도 자극해서 위액 분비를 촉진해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 헤아릴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첩첩산중에 상당히 가난한 곳이다.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가정 형편도 안 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도시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나는 대구 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에서 나의 석차는 68/68, 68명 중에 꼴찌를 했다. 지독하게 부끄러운 성적표를 들고 고향으로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표를 부모님께 내밀 자신이 없었다. 무학의 한을 자식을 통해서 풀고자 했는데, 맨 꼴찌라니...!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부모님을 떠올리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 지우개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 1등으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초등 학교도 못다닌 무학이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말했다. "찬석이가 공부를 잘했더나 ? 아버지가 말했다. "앞으로 두고 봐야제, 이번에는 우짜다가 1등을 했는가배...!" "아들 하나는 잘 뒀구먼, 1등을 했으면 잔치를 해야제!" 그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 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 뿐인 우리집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제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부지 ~ !"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서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 박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