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이발사" /
"The ultimate test of your knowledge is your capacity to convey it to another."....Richard Feynman (1918-1988, Nobel Prize winning physicist)
'얼마나 아는가의 최종 테스트는 남에게 얼마나 잘 가르치는가의 능력에 있다.'
교수를 지칭하는 'professor' 는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대중 앞에서 자신의 믿는 바를 공표, 선언 내지는 천명한다' 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어휘다.
이 어휘가 중세에는 주로 종교적신념을 선언하며 전달하는 의미를 내포하다 학문이 구체화되면서 가르친다는 의미를 갖다가 대학이 본격적으로 설립되면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자를 지칭하는 어휘로 발전하게 되었다.
교수라는 직함을 얻기 위해서는 비교적 까다로운 여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대개 해당학문에서 십년이상의 연구경력과 학위소지는 물론 논문점수까지 통과되어야 하며 자신의 학문을 전달하는 능력도 소지해야 한다.
대학재학 당시 생화학이라는 비교적 난해한 학문을 강의하는 교수들이 계셨는데 아시는 것은 무척 많아 보였으나 한시간 내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혼자만의 독백을 하는 교수들도 계셨다.
Einstein 은 지나치는 촌로에게 자신의 지식을 이해시킬 수 없다면 그는 자신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는데 어렴풋이 안다는 사실과 학생들을 강단에서 가르친다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필자도 대학교수직을 수년간 역임하며 직접 강단에서 의과대학 학생들을 지도한 일이 있었는데 학생들의 어떠한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하며 스스로 완벽한 이해가 없어서는 가르칠 수 없다는 생각에 대학시절 보다도 더 많은 공부를 한 일이 있다.
가르칠 때 진정한 배움이 일어난다는 말도 있고 가르칠 때는 두사람에게 배움이 발생한다는 말이 있으며 학문에 거목이 되기 위해서는 가르치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인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intellectual labor' 즉 지적노동 또는 생각하는 일이므로 인간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학문을 깊이 익힌 교수는 한 사회의 지성의 최고봉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하겠다.
또 그들이 해당분야에서 지고의 지식수준을 갖고 있으므로 팥으로 메주를 쑨다한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 사회의 기준잣대가 되고 있으며 아무도 감히 도전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은 모두가 타락하는 마당에 해당학위도 돈으로 팔고사는 일이 흔하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지방의 예술대학에서 실용음악이라는 과목에 적을 두고 색소폰만 가르쳐도 교수라 부르는 시절이 되었다.
하루는 인근의 이발소에 들렀다. 처음 보는 여자이발사가 있어 머리를 어떻게 짜르기를 원하는가고 묻기에 이렇게 저렇게 짤라달라고 했더니 그런 머리는 내 얼굴모양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그냥 내식으로 해달라고 하니까 자신이 모대학의 이용학과 교수라며 자신의 뜻대로 할 것을 강권하는 것이었다.
'교수 이발사'.....
요즘 웬만한 개업가의 외래진료실을 입장하먼 의례히 눈에 띄는 글씨가 'ㅡ대학병원외래교수'라는 문구다.
대학병원에 시간제로 출강하며 외래환자도 본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제도다.
옛날 우리 재학시절에는 교수요원들의 숫적부족으로 해당대학의 동문으로 학문이 깊이가 두꺼운 원로의사들을 강단에 초빙하여 강의를 듣게하던 시절, 당시는 그런 제도를 '외래교수'라 불렀다.
아마 외래환자를 진료한다는 의미보다는 외부에서 왔다 (外來)는 의미를 내포하는 어휘였을 것이다.
어느 대학병원의 외래교수라는 명칭을 걸어놓기 위해서는 해당대학병원의 양해가 있어야 하나 같은 동문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도 매정할 뿐 아니라 약간의 기부금도 낼 것이며 혹 환자가 발생하여 이송해야 할 경우 해당대학병원으로 보낼 것이니 상호부조의 원칙에 입각해 발생하는 일일 것이다.
의사들의 경력난은 항상 화려하게 치장하는 법이어서 심지어는 이름모를 외국의 세미나에 참석한 것까지 경력으로 기재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환자를 진료하는 행위는 물론 학문에도 기초를 두어야겠으나 환자 하나를 진료함에 있어 全人的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인간을 깊이 이해하는 의사여야지 교수라는 직함만으로는 진정한 치유를 기대할 수 없다.
내용보다는 포장을 더 중시하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 아닌가 한다.
7/10/2026 박인철 씀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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