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나는 자유인인가?" /박인철

"나는 자유인인가?" / "Whoever covets more is evermore a slave."..... Robert Herrick (1591-1674, English poet) '누구나 더 소유하고자 하는 자는 노예신세를 면치 못하리라.' 고등학교 시절 학교교훈이 '자유인, 문화인, 평화인' 이었다. 문화인과 평화인은 알겠으나 자유인은 무엇을 말하는가를 늘 생각해 왔는데 학교를 졸업한지 근 60년이 되건만 교훈이 지적한대로 내가 과연 자유인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다. 새장에 갇혀있는 새는 주인이 주는 모이를 먹으며 유복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창공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를 자유하다며 부러워 할 것이다. 그럼 창공의 새는 자유인인가? 그러나 그 새는 둥우리에 놓고 온 새끼들을 먹일 모이를 찾기가 예전 같이 쉽지않아 걱정이 태산이며 위에서 황조롱이가 언제 자신을 채어갈지 몰라 두려움으로 늘 전전긍긍이다. 근심과 걱정이 많은 새를 자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우리 안의 새가 더 자유하지 않은가? Socrates 는 바라는 것이 적을수록 인간은 신의 경지에 가까와진다고 했는데 극단적인 비유겠으나 화장실이 급한 사람을 자유인이라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본문이 말하는 'covet' 이란 어휘를 들여다보자. 우리 말로는 단지 '~을 원한다' 를 의미한다고 표기하고 있으나 이 어휘에는 합리적이지 못한 바람 즉 남의 것을 탐낸다든지 바랄 수 없는 경지의 것을 탐할 때 사용하는 어휘다. 인간의 소유욕을 나무랄 수는 없으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손을 보더라도 펴서 남에게 주는 근육보다 움켜쥐는 근육이 더 발달했으며 팔을 펴는 근육보다는 끌어안는 근육이 더 발달되어 있다. 따라서 많은 것을 벌어들여 그것을 세상을 위해 베푸는 일은 고매하기 짝이 없는 것이며 자유함에 이르는 길이나 부당한 욕망과 탐익은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킴을 본문은 경계하고 있다. 욕망의 노예는 아니더라도 광의로 해석할 때 敎訓이 말한대로 인간이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Joseph Campbell 이라는 사람은 돈을 위해서 일을 할 때 그는 자유인이 아니라고 했다. 왜냐 하면 돈을 위해 일을 하는 즉시 그는 돈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늘 자신의 수당이 적다고 말할 것이며 행여나 더 많은 돈을 찾아 항상 다른 직장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직장의 환경이나 수당 같은 사항에 대해 연연하지 않으며 항상 기쁨 가운데 일을 할 것이며 오로지 삶의 목표를 위해 사는 사람은 두려움이나 근심을 초월한 사람이니 그는 진정한 자유인이 아닌가? 그러나 현실적으로 돈이 아닌 열정과 일에 대한 사랑만으로 직장생활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새장 안에 갇혀 있는 새가 두려움없이 편히 살고 있으나 항상 푸른 창공을 동경한다면 그 새 역시 자유인은 아닌 것과 같이 불안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도 자유인이 아니다. 그리고 남자에게는 영원한 폭군 둘이 있으니 부인과 자식들이다. 과연 이 둘에서 자유할 수 있는 남자가 있는가? 따라서 남자에게 결혼은 영원한 노예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독신이라고 해서 그는 자유인인가? 바라는 것과 두려움없이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상태는 자유함의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인간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늘 근심이 가득하다. 자유는 누구나 다 이르고 싶어하나 그것에 이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이유다. '자유인'이라는 교훈을 보며 의아해 할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삶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자유인에 이르고자 고뇌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함축해 본다. 그것이 그토록 이르기가 수월하다면 학교 교훈의 일번지가 되었겠는가? 인간은 자유스러울수록 고독한 법이다. 따라서 자유에 이르는 길을 그리도 험난하게 만들어 놓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고독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12/20/2024 박인철 씀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일본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 고 추 장  🌶

🌶 고 추 장  🌶 고추장에 관해서 특별한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게 갈비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의 일이다. 한개도 아니고 열개씩이나 골절되어 꼼짝달싹을 못하고 아편으로 통증을 겨우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혈압이 올라가고 혈당이 올라가 혼수지경에 이르니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도 어떻해서든지 날 살려보려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왔지만 모두가  헛수고일 뿐이었다. 나 또한 집사람을  혼자 살게 만들면 천벌을 받겠기에 열심히 음식을 먹으려 애를 썼지만 구역질만 더 할 뿐이었다. 여행다닐 때 고추장 단지를 꾀차고 다니며 햄버거에 발라먹던 생각이 나서 고추장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고추장을 죽에 넣어 먹으니 신통하게 잘 넘어가는데 그 맛 또한 기가막혀 부글거리는 뱃속까지 편안해졌다. 덕분에 문병오는 사람마다 고추장 단지를 가져오는 바람에  고추장 벼락을 맞을 지경이 되었다. 그 후로는 고추장 단지가 내 식탁에 주인이 되었다.   고추장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고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몰라도 신통하기 짝이 없었다. 소태 같던 입맛이 꿀맛이요,  구역질도 잠잠해지고 느글거리던  뱃속까지 고분고분 고추장말을 잘 들으니 과연 고추장의 위력이 대단하다. 내 미국 친구들이 겨울만 되면 단골처럼 감기로 골골대고 있을 때 나는 감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그들이 날보고 너는 어떻게 감기 한 번 안걸리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내가  건강한 것은 김치 파워야.  너희들도 김치를 먹어라." 하고  자랑을 했는데 이제는 고추장의 효능이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어린 아기를 달랠 때 호랑이 나온다 하면 뚝 그치고, 순사 온다 하면 뚝 그치듯이 뱃속이 앙탈을 부리면 고추장 먹는다  하면 조용해 질 것 같다.  고추는 남미와 아프리카가 원산지란다. 고추의 매운 맛은 알카로이드의 일종인 캡사이신 때문이란다. 이 캡사이신이  자극을 주어 발효작용을 해서 감기 열을 내리기도 하고 위도 자극해서 위액 분비를 촉진해...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 헤아릴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첩첩산중에 상당히 가난한 곳이다.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가정 형편도 안 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도시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나는 대구 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에서 나의 석차는 68/68, 68명 중에 꼴찌를 했다. 지독하게 부끄러운 성적표를 들고 고향으로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표를 부모님께 내밀 자신이 없었다. 무학의 한을 자식을 통해서 풀고자 했는데, 맨 꼴찌라니...!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부모님을 떠올리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 지우개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 1등으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초등 학교도 못다닌 무학이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말했다. "찬석이가 공부를 잘했더나 ? 아버지가 말했다. "앞으로 두고 봐야제, 이번에는 우짜다가 1등을 했는가배...!" "아들 하나는 잘 뒀구먼, 1등을 했으면 잔치를 해야제!" 그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 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 뿐인 우리집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제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부지 ~ !"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서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 박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