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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교훈"

"황제의 교훈" "Reject your sense of injury and the injury itself disappears.".....Marcus Aurelius (121-180, Roman Emperor) '상처받은 사실을 잊으라! 그리하면 그 상처는 없어지리니" 본문의 작가는 내가 가장 흔히 인용하는 사람으로 당시 유행하던 철학의 사조 중 하나였던 스토아학파의 거장이었으며 그가 남긴 '수상록 ㅡ Meditation' 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읽는 명저로 꼽히고 있다. 그가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죽기까지 19년 간이나 재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늘 펼치는 그의 철학도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오늘의 주제로 삼는다. 세상에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골프와 자식이라는 말이 있는데 자신이 철학자였으며 현군으로서 로마가 최고의 태평성대를 누렸던 Pax Romana를 이끌었던 군주였으며 아들을 위해 당대 내로라하는 학자들을 왕사로 초빙하여 자식을 가르쳤건만 자식농사만큼은 실패하여 왕위를 이어받은 그의 아들 Commodus 는 극도로 포악하여 31살의 어린 나이에 情婦의 주도로 검투사들에 의해 살해를 당한 바 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뜰 수 있음과 호흡할 수 있으며 사랑하고 생각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고 했으며 매일 아침 오늘이 내 인생 최악의 날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임하면 매일 별 탈없이 지낼 수 있었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당시 지구의 전체라고 할 수 있으며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국의 황제를 19년이나 역임했으니 그가 얼마나 많은 영욕의 세월을 보냈겠는가? 그러나 그는 사물 자체에는 생명력이 없으며 우리가 그것을 어찌 정의하는가에 따라 그 사물의 성격이 정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으며 외부적인 사안에 결코 자신의 행ㆍ불행을 결부시키지 않을 것을 말했다.
인간은 대면하는 사물 자체보다도 그 사물을 보는 안목에 의해 행ㆍ불행을 결정짓는다고 말했는데 예를 들어 수술을 앞둔 환자가 수술자체로 아파하기 보다는 수술에 대한 공포심으로 더 고통받는 것과 동일하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모욕감은 일생을 두고 잊지않는 법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욕인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며 잊으면 없어지는 것이나 잊지않고 있으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는 법이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Carl Jung 은 'What you resist persists.' 라는 말을 남겼는데 잊으려고 애를 쓴다든지 잊지 못해 애를 먹는 경우 그 사안은 지속적으로 마음에 남아 괴롭힐 것을 경고하고 있다. 당시 세계의 대통령이랄 수 있는 로마제국의 황제로서 그 역시 경우에 따라서는 심한 모욕감을 느껴야 했을 때도 꽤 자주 있었을 것이다. 누가 나를 모욕할 때 그는 그 순간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것이지 나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므로 개인적차원에서 받아들이지 말고 웃음으로 넘기기 바란다. Bertrand Russell은 자신은 네살짜리 앞에서도 자신의 의사를 바꾸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배우기 위해서는 자신의 ego를 버릴 줄 알아야 하니 그것은 모욕이 아니라 한 단계 상승을 위한 징검다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를 가슴에 안고 사는 것은 강한 산(酸)을 그롯에 담고 있다가 상대에게 뿌리려는 행위와 같아 그것을 뿌리기 전 산에 의해 그릇부터 삭는 것과 동일하며 불에 타는 석탄을 남에게 던지기 전 내 손부터 타는 것과 동일하다. 주변에는 자신과 과거의 악연으로 연루된 사람 혹은 자신에게 모욕감을 안겨준 사람들을 잊지 않고 벼르고 있는 경우가 흔한데 인간이 죽기 전 제일 크게 후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용서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라고 하지 않는가? 2/21/2024 박인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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