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크리스챤의 영적코드-기다림




크리스챤의 영적코드-기다림

기다릴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기다리며 사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끝이 안보이는 기다림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절망을 지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동일하게
기다림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기다림을 통하여
질그릇을 금그릇 되게 하십니다.

성숙한 믿음이란 잘 기다리게 하는 힘이며
뿌리깊은 영성이란 기다림의 영성입니다.

이러므로 인생의 실패는 기다림의 실패이며,
신앙실패의 원인 중에 하나는 조급함에 있습니다.

사단은 언제나 '당장 이루라'
재촉하며 충동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부족과 미숙을 기다려 주십니다.

우리의 덜됨과 철없음을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우리를 향하신
기다림을 포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10년, 20년...을 끈질긴 사랑으로 기다려 주셨고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지체들을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과 역사하심에
대하여 한달을 길다 합니다.

1년 앞에 쉽게 포기하고 절망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하여 기다림의 은혜를 베푸시는데,
우리는 부부,자녀,친구,팀원,순원,동료,
교우,이웃...에 대하여 기다림에 너무 인색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로 인하여
늘 마음이 눌려 있고 상해 있습니다.

왜? 저 모양인가...''
왜? 저렇게도 안 변할까...'
'왜? 아직도 그 수준밖에 안되나....'

이런 넉두리와 한숨속에는
내 자신에 대한 교만과 다른 지체들에 대한
조급함과 경시함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기다려줍시다.
주님이 나를 기다려주고 계시듯....
평생이라도 말이죠.

사실은 형제의 모습이 내 모습이며,
내가 그토록 속상해 하는 다른 지체의
모습속에서 나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실때의 마음도 이러하실 터인데...
'왜 그렇게 믿음이 없냐?'
'왜 그렇게 성화되지 못하냐?'
'왜 그렇게 아직도 그대로냐?'고
한번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기다려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도 극심한 조급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그러했듯이 말이죠.

당장 마실 물을 달라 합니다.
당장 고기와 먹을 것을 달라합니다.
안주면 돌아간다 합니다.
이것이 우리 내면의 일그러진 실존형상 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당장 응답하시라 보챕니다.
하나님의 때를 앞당기라 떼를 씁니다.
왜, 이렇게도 더디냐고 따집니다.
조급함의 이유는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이며,
우리의 불신앙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마귀는 우리의 조급함을
배후에서 충동하고 조종합니다.

우리를 견딜수 없이
조급하게 하는 사단을 대적하십시요.

아브라함이 25년을 기다렸듯
야곱이 21년을 기다렸듯
모세가 80년을 기다렸듯
요셉이 13년을 기다렸듯이....
(나중에는 기다림마져 포기하게 하심)

가족에 대하여 남편에 대하여
아내에 대하여 자녀들에 대하여
포기하고 기다려 주십시요.

'그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기다리되 투덜거리지 말고 잠잠히 기다려 주십시요.
기다리는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10년이고 20년이 지나면 달라지리라 기대하십시요.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기다리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만일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기다려주지 않으시고
당장 포기하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람은 몽둥이와 잔소리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기다려 줌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변화속도 만큼 남도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때문에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기다리게 하실까?'를 고민했습니다.

그 이유는, 기다림을 통하여
더 좋은것을 주시기 위함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나를 깨뜨리시기 위함'입니다.

기다림처럼 우리를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깨뜨릴 방법은 없습니다.

끝을 모르는 기다림은 죽음을 방불케 합니다.
그 기다림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교만은 부셔지고 자아는 죽고
속사람의 찌꺼기는 걸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 자신을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나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을 아시고
치명타를 아십니다.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빨리 깨어지고
쉽게 항복하는지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그 부분을 건드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세상에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길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얼른 포기 하십시요. 얼른 항복하십시요.
하나님 앞에서의 항복은 곧 행복의 시작입니다.

때려주고 싶은 사람, 원수 같은 사람,
보기도 싫은 사람에 대하여
주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요.

주님의 마음을 달라고 간구하십시요.

미움은 내 마음대로 되지만,
품음은 내 뜻대로 되지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내 마음을 바꾸실 분은 주님 한 분뿐입니다.

그와 나를 만드신 그 분만이
 A/S 에 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그 어떤
대상으로 인하여 힘들다 말하지만

하나님의 포커스는 그가 아니라
나에게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가시같은 사람을 내 가까이(곁에) 두심은
나를 깨뜨리시고 온전히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극진한 배려 이십니다.

그렇다면 그를 대적하여서는 승산이 없읍니다.
나를 속히 내려 놓으십시요.
나를 얼른 포기 하십시요.
나를 온전히 깨뜨리십시요.
옥합을 깨뜨리듯이...

죽는길이 사는 길이며, 깨어짐이 세워짐이며,
포기함이 얻는 길임은 진리의 핵입니다.

기다림이 힘든 것도, 포기하기 어려움도,
불평과 원망이 들끓음도
사실은 나의 못난 자아때문입니다.
(자아를 깨뜨리기 위하여 노력하지 마시고
자아를 죽여 달라 기도하지 마시고
이미 십자가에서 청산된
자아를 인정하고 선포하십시요)

우리의 기다림과 하나님의 기다리심 중에
어느쪽이 더 힘들까를 생각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기다림보다

사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더 속히 주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야곱의 험악한 인생이 속히 청산되기를 기다림보다
하나님이 야곱의 인생을 빨리
'평안인생'으로 바꾸어 주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응답은
야곱이 지렁이 같이 되고서야
이루어지게 되었고

야곱의 기다림은, 하나님 앞에서의
항복으로 끝이 나게 됩니다.

나를 찌르고 격동케 하고
나의 인생에 막대한 손해를 입혀
억울하게한 그분(?)을 오히려
불쌍히 여겨 기다려 주십시요.

그 때문에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의 고생도 큰 것입니다.

마치 요나가 탄배 때문에
뱃사람들이 함께 고생했듯이 말이죠.

나를 힘들게 하는 그분의
수고와 노고가 얼마나 많은지요.

나도 그로 인하여 힘들지만,
그 또한 나를 인하여 힘들지요.

결국, 나를 나되게 하고 철들게 하고
온전케 하고 성숙케 할 사람은
나를 칭찬하여 주고
극진하게 섬겨 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쉬지 않고 격동시키는 그분(?) 뿐입니다.

그분의 수고를 치하하십시요.
오히려 그분을 주님의 마음으로 격려하십시요.
분을 가장 훌륭한 파트너로 품으십시요.

그리고, 그 일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십시요.
우리가 기다림을 힘겨워하고
버거워 하는 것을 보시고 아시는 분이 계십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피투성이 될때
어쩔줄 몰라 서 계셨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가 처절히 당하는
기다림의 고통을 아시고 어쩔줄 몰라 하십니다.

그분을 신뢰하세요.그분께 붙잡히세요.
그분을 이전보다 더 많이 사랑하세요.
우리의 기다림 속에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기다림속에는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다림 속에는
준비케 하시는 놀라운 손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기다림 속에는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배려가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요.

'행복인생'은 항복으로 다가오며
'평안인생'은 기다림의 승리로 찾아오며
기다림의 끝은 나의 깨어짐으로
앞당겨 질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얼만큼 깨어져야 합니까?
'이 정도면 되었지 않느냐?'
라는 생각조차 안들 때까지,
얼만큼을 더 기다려야 합니까?

기다림마져 포기될때까지,'기다리라' 하심은
하나님의 필연적인 섭리이며,
나를 나되게 하시는 기막힌 은혜입니다.

그냥...막연히....기다리시면 안됩니다.
기도하며, 은혜받으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마침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실수 있습니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예레미야 애가 3;25-26)

우리가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지쳐 있을 때
조용히 다가와 손 내미시며
격려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 태초부터
지금까지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주님의 기다림을 우리도 배우게 하옵소서.

기다림이 얼마나 힘겨운 것이지를
너무도 잘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기다림에 동참하시어
마침내 기다림에 승리자가 되게 하소서.

그러나, 너무 오래 기다리게 마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요동하며
주를 향한 마음이 변할까 염려 되옵니다.

어떤 경우에도 잘 기다리는 은혜로 채우소서.
찌르는 가시, 이미 박혀 있는
가시마져도 품을 수 있게 하시며
그로인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하소서.

너무 굵은 가시로 인하여 곪아 터진
지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만져 주옵소서.
이 땅에 힘겨운 지체들,
하루가 천 년 같은 형제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나의 가시로 인하여 힘들 때,
오히려 남의 가시
뽑아 주는 일에 쓰임 받게 하소서.
가시면류관 쓰셨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일본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 고 추 장  🌶

🌶 고 추 장  🌶 고추장에 관해서 특별한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게 갈비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의 일이다. 한개도 아니고 열개씩이나 골절되어 꼼짝달싹을 못하고 아편으로 통증을 겨우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혈압이 올라가고 혈당이 올라가 혼수지경에 이르니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도 어떻해서든지 날 살려보려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왔지만 모두가  헛수고일 뿐이었다. 나 또한 집사람을  혼자 살게 만들면 천벌을 받겠기에 열심히 음식을 먹으려 애를 썼지만 구역질만 더 할 뿐이었다. 여행다닐 때 고추장 단지를 꾀차고 다니며 햄버거에 발라먹던 생각이 나서 고추장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고추장을 죽에 넣어 먹으니 신통하게 잘 넘어가는데 그 맛 또한 기가막혀 부글거리는 뱃속까지 편안해졌다. 덕분에 문병오는 사람마다 고추장 단지를 가져오는 바람에  고추장 벼락을 맞을 지경이 되었다. 그 후로는 고추장 단지가 내 식탁에 주인이 되었다.   고추장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고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몰라도 신통하기 짝이 없었다. 소태 같던 입맛이 꿀맛이요,  구역질도 잠잠해지고 느글거리던  뱃속까지 고분고분 고추장말을 잘 들으니 과연 고추장의 위력이 대단하다. 내 미국 친구들이 겨울만 되면 단골처럼 감기로 골골대고 있을 때 나는 감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그들이 날보고 너는 어떻게 감기 한 번 안걸리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내가  건강한 것은 김치 파워야.  너희들도 김치를 먹어라." 하고  자랑을 했는데 이제는 고추장의 효능이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어린 아기를 달랠 때 호랑이 나온다 하면 뚝 그치고, 순사 온다 하면 뚝 그치듯이 뱃속이 앙탈을 부리면 고추장 먹는다  하면 조용해 질 것 같다.  고추는 남미와 아프리카가 원산지란다. 고추의 매운 맛은 알카로이드의 일종인 캡사이신 때문이란다. 이 캡사이신이  자극을 주어 발효작용을 해서 감기 열을 내리기도 하고 위도 자극해서 위액 분비를 촉진해...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 헤아릴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첩첩산중에 상당히 가난한 곳이다.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가정 형편도 안 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도시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나는 대구 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에서 나의 석차는 68/68, 68명 중에 꼴찌를 했다. 지독하게 부끄러운 성적표를 들고 고향으로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표를 부모님께 내밀 자신이 없었다. 무학의 한을 자식을 통해서 풀고자 했는데, 맨 꼴찌라니...!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부모님을 떠올리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 지우개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 1등으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초등 학교도 못다닌 무학이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말했다. "찬석이가 공부를 잘했더나 ? 아버지가 말했다. "앞으로 두고 봐야제, 이번에는 우짜다가 1등을 했는가배...!" "아들 하나는 잘 뒀구먼, 1등을 했으면 잔치를 해야제!" 그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 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 뿐인 우리집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제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부지 ~ !"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서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 박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