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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눈물을 보고

대통령 눈물을 보고 
치미는 분노를 금할길 없다
■ 대통령의 눈물은 온 국민의 아픔이다 ■

사진이 안보일 때→우측클릭→'사진보기' 클릭, OK. ☞작성: Daum카페: 한국 네티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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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1(수) -눈물어린 담화문을 듣고- (2212)
해방 후의 혼란과 6‧25의 참변을 겪으면서 나는 대학에 다녔습니다. 거기서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와 현실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그 뒤에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의 이름 있는 대학의 대학원에 가서 여러 해 공부를 하고 돌아와 한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정년이 되어 퇴직한지도 허언 20년이 넘었습니다.

나 는 서양의 합리주의를 익혔고, 문명은 감정의 표출보다는 억제를 권장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4‧16 세월호의 침몰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의 고2 학생들을 생각하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지 않은 한국인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박 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에 관한 담화문’ 발표가 있던 5월 19일 아침에 나는 TV가 없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보지 못하고 있다가 그 뒤에 방영된 뉴스 시간에 보고 나도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담화문을 마무리하면서 이번 세월호 침몰의 비극 속에서 살신성인(殺身成仁)한 이 나라의 ‘영웅들’의 이름을 분명하게 발음하면서 대통령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내 눈으로 보고 나도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다행히 주변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간 신과 협잡꾼, 도둑과 모리배가 우굴 거리는 이 땅에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그 한 마디에 국민의 절대다수는 숙연해졌습니다. 그것을 대통령의 자작극이니 ‘쇼’니 하며 비방한 자들이 있다고 듣고 내가 한국인인 사실이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그 담화문에 빠진 것이 있다는 말은 할 수 있어도 어떻게 대통령의 진심을 의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자들은 만일 법이 허용한다면, 광화문에 서 계신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다 모아놓고 내 주먹으로 한 대씩 후려갈기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대한민국이 합리적이어야 하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2014/05/20(화) -“Shame on you!”- (2211)
“부끄럽다” “창피하다” - 이런 느낌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감정이라 하겠습니다. 잠자리에서 요에다 오줌을 누었거나 바지에 똥을 싼 어린이의 표정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나이가 되면 사람은 누구나 배설을 위해 화장실을 찾습니다.

‘수 치심’이라고 하면 어려운 말처럼 들리지만 우리말로 옮기면 ‘부끄러워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은 어떤 때에 ‘수치심’이 발동되는가? 첫째는 거짓말이 탄로 났을 때이고, 두 번째는 이기적인 동기 때문에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입니다. 따지고 보면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있으면 사람은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법입니다.

양 심의 어느 수준은 지키고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맨 먼저 탈출하여 제 목숨은 건졌지만 그 많은 젊은이들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게 만들어, 오늘 살인죄로 재판에 회부된 그 배의 선장을 향해, “Shame on you!”라고 합니다.

사 람에게 ‘수치심’이 없다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이 무슨 꼴이 되겠습니까? 아마도 난장판이 될 것입니다. 법률만 가지고 인간사회의 질서가 잡히지는 않습니다. 검찰총장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세상에서, 배를 타는 선장에게만 “Shame on you!”를 부르짖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2014/05/19(월) -만사가 뒤죽박죽인데- (2210)
이번 세월호의 참사로 한 가지 일이 분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가 ‘한강변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놀라운 경제적 발전을 이룩한 것은 어김없는 사실인데 이에 어울리는 정신적 성장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 신적 연령’이니 하는 말은 좀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그런 어려운 말은 쓰지 말고 아주 쉬운 말로 바꾼다면 우리 사회의 경제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윤리와 도덕은 아직도 야만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더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자면, 대학원에 입학은 했지만 행동거지는 초등학교 어린이 수준이란 말입니다.

상 상도 할 수 없었던 이런 재앙을 겪고 나서 정치권이 노는 꼴을 좀 들여다보세요. 이것을 겨레 전체의 비극으로 간주하고 대처하려는 정치인은 도무지 보이지 않고 이 불행을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소속한 정치집단에 유리하게 만들어 보려고 추태를 부리고 있으니 만사가 뒤죽박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불상사를 수습하기 위해 선두에 서서 진두지휘해야할 대통령을 “물러나라”고 소리 지르는 놈은 제정신입니까? 왜 그렇게 정신연령이 낮은 겁니까? 6.4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려고 이런 변태적인 언동을 일삼는 것입니까?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그럴 수는 없습니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이라고 읊은 두보(杜甫)의 시를 읽어보지 못했습니까? 나라가 망하면 산하만이 남습니다. 그런 상황에 봄이 오면 뭘 합니까!

나라가 깨어지기만을 고대하고 있다면 사람구실 하기는 틀렸습니다. 어쩌다 나라가 이 꼴이 되었습니까? 만사가 뒤죽박죽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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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이 본 우리나라의 강점
IMF 당시, 우리가 어려웠을 적에 어느 국가에서도 우리 돕기를 주저 하고, 비싼 금리를 준다고 하여도 선뜻 나서지 않고 있었을 당시, 독일의 DEUTCH BANK에서 거액의 자금을 지원 받아 외화 자금 부족의 어려움을 해소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동 은행의 서울 지점장으로부터 우리를 지원한 사유를 듣게 되었는데, 우리가 몰랐거나 간과했던 예상치 못한 답을 듣게 되었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학력 수준이 세계최고 라는 점이다.
웬만하면 대부분 대학을 다녔으니 세계 어느 나라도 그런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적 수준이 높다는 점.
두번째,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기후를 가지고 있어, 강추위나 무더위에 신체가 단련 되어 극한 지역의 추운 지방에 가던, 더운 곳에 가던 세계의 어느 곳에 가더라도 견디어 낼 수 있는 적응력이 뛰어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 힘이 강하다는 점.
셋째,
전 남성이 국방 의무를 마치었기 때문에 군사무기를 다루어 본 경험이 있어 최소 총 쏘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며 이 또한 우리의 장점이라는 점
넷째,
세계 최대의 공장 시설을 보유 하고 있다는 점, 즉 조선,반도체, 자동차, 정유, 제철등  막대한 자금이 소요 되는 시설 들을 이미 갖추었다는 점
 
다섯째,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느 브랜드던지 초일류를 사랑하고 지향 하기에
이러한 경향은 나아 가서결국은  일류 국가로  성장 할 수 밖에 없다는 점
다섯 가지의 강점을 가진 국가는 지금은 어려워도 자기네 귀 한 돈을 떼어 먹을 수는 없다는 확신이 있어 자금을 지원 하였노라 라는  대답이었다.
S &P, MOODYS 같은 신용평가사들의 수치에 의한 평가가 아닌 무형자산의 평가방법은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처 발견치 못한 강점과 장점이 있다는 사실은 새삼 소중함과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 하였고, 이를 꿰뚫어 보는 그 들의 혜안 또한 놀라웠다.
우리 어려워 진 이즈음,
이러한 장점을 포함한 전 국민의 힘을 발휘하여 난관을 돌파 하리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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