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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사라진다

일자리가 사라진다       앞으로 일자리는 점점 사라진다 .  미래사회에서는 지금처럼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아니라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받게 된다 .  일자리만 있어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게 되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  미국 정부는 현존하는 직종의  80 퍼센트가  10 년 안에 사라진다고 발표했다 .  지금도 이미 평생직장 개념이 흔들리고 있지만  2025~2030 년쯤 되면 평생직종 ,  평생직장은 완전히 사라진다 . -  박영숙의 《 당신의 성공을 위한 미래뉴스 》 중에서  -     어두운 미래 전망입니다 .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  이미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  접근 방식을 달리 하면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직업을 수없이 창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아직 길은 있습니다 .  만반의 준비 태세와 지도력이 관건입니다 .

복음으로 사는 삶 /이재학

복음으로 사는 삶 바울이 기뻐한 이유,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보면 종종 복음의 초점이 잘못 강조된 다른 복음들이 등장한 때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날 참된 복음의 변질을 가져오는 가장 보편적이면서 그릇된 복음의 한 형태가 ‘번영 복음’ 혹은 ‘번영 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신학은 우리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형통하고 축복이 쏟아지고 병도 들지 않고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출세만이 기다린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사실이 아니고 경험적으로도 사실이 아닙니다. -이동원의 [처음 복음] 중에서- 기 독교는 복음을 지켜낼 때 힘이 있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때 주의 일을 감당합니다. 잘못된 자기 복음, 물질만능주의 편승하고 일등주의에 오염된 복음은 또 하나의 거짓을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복음이신 예수 그 자체입니다. 그분을 알고 그분을 믿는 것이 기적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알려주는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절망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겨내는 하는 능력입니다. 더욱 복음적인 삶을 추구하는 교회와 성도가 필요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먹어도 허하고 입어도 추운, 그리움

먹어도 허하고 입어도 추운, 그리움 권정희 논설위원 입력일자: 2015-10-24 (토)   아들들은 65살이다. 충청도의 이순규(85) 할머니도, 경상도의 이옥연(88) 할머니도 전쟁 중에 낳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북의 남편을 만나러 갔다.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행사장에 모인 96 가족 중 부부와 자식의 한 가족이 만난 케이스는 이들 두 건뿐이었다. 65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미 많은 분들은 세상을 떠났다. 북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자란 자식 세대는 65세가 마지막일 것이다. 1950년 전쟁이 터진 직후 충청도의 새댁 이순규씨의 남편 오인세(현재 85세)씨는 훈련 받으러 간다며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경상도, 이옥연씨의 남편 채훈식(현재 88세)씨는 함께 잠을 자다가 “잠시 다녀올 게”하고 나가더니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거짓말 같은 이별들이었다. 스물 갓 넘은 아내들은 혼자 아들을 낳고 길렀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남편을 기다리며 고향땅을 지켰다. 아내들은 그때 알지 못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 세월이 흘러 자신도 남편도 백발의 노인이 된다는 것, 백발이 되도록 만날 수가 없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그리움의 한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 대못으로 박혀서 기쁠 때 슬플 때 가리지 않고 가슴을 찢어낸다는 것. 미리 알았더라면 지레 질려버렸을 삶을 견뎌낸 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기억에 생생한, 20대의 아내·남편을, 두세 살배기 아들·딸을, 10살 남짓 동생을 눈으로 찾으며 노인들은 모여 들었다. ...

낙엽도 떨어질 땐 아프다 /최송연

낙엽도 떨어질 땐 아프다                        최송연                     서걱서걱 갈대의 부딪는 소리 섶을 이루며 쌓여가고 스산한 갈바람 가야 할 길 재촉하니 한세상 미련 없다 했건만 모든 진액 아낌없이 쏟아붓다 이제 열매에 자리 내어준 채 떠나야 하는 것이 힘든 걸까 못다 한 사랑 뒤로해야 하기에 저토록 흔들리고 있는 걸까 그래, 낙엽도 떨어질 땐 아프다 너무 흔들지 마라...

신앙고백의 초월적 능력<이주연>

[2015-10-29] 신앙고백의 초월적 능력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천국의 열쇠가 맡겨졌습니다 . 그리고 그 고백을 지키기 위하여 순교자가 나왔고   그 피 위에서 복음이 선포되고 교회가 이루어져 갔습니다.  그 고백이란 무엇입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의 인성만 있고 신성을 부정하는 신학과 신앙이 발전 진보된 듯이 변장하여 행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는 주도 아니며  그리스도도 아니며  하나님의 아드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거기엔 윤리는 있을지 몰라도 구원은 없고 사랑은 있을지 몰라도 영원한 생명은 없습니다. 그러한 신학 위에선 교회도 세워지지 아니하며 회개와 거듭남, 구원과 영생 그리고 성화도 꽃피지 않습니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행복은 이미 이룬 것을 감사할 때 찾아오며 희망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에서 가능성을 볼 때에 찾아듭니다 . <산>

[예언자의 전통(1)] 김진홍의 아침묵상

아침묵상 제목과 날짜 예언자의 전통(1) 2015-10-29 서구 문명을 이끌어 온 3가지 전통이 있다. 첫째는 그리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논리와 이성의 전통이다. 이 전통의 중심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있다. 둘째는 로마의 법과 질서이다. 우리 한반도와 비슷한 넓이의 국토와 비슷한 수의 인구인 이태리가 천년 로마를 이끌었던 전통의 중심에 법과 질서를 존중한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 셋째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사랑과 정의의 전통이다.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전통은 세계의 어떤 종교, 어떤 문화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든 독특한 전통이다. 이 전통의 중심에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가 있고 사랑의 예언자, 호세아가 있고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기라성 같은 예언자들이 자리 잡고 있다. BC 8세기에 병들어 망해 가는 조국을 탄식하고 책망하여 온 백성들로 회개를 촉구하였던 예언자들 중에 4명의 대표적인 인물이 있었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그리고 미가이다. 아모스는 정의를 부르짖으며 "정의를 물같이 흐르게 하고 공의를 개울물 같이 흐르게 하라"는 메시지를 소리 높이 외쳤다. 호세아는 사랑의 하나님을 백성들에게 전하며 자신의 삶을 사랑의 실천자로서의 삶의 모습으로 실천하였다. 그는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기를 외간 남자 품으로 떠난 아내를 거듭거듭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사랑을 실천하였다. 이사야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을 실천하며 남 다른 통찰력으로 당대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깨우치는데 인생을 걸었다. 이들 3사람의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하나로 묶어 선포한 예언자가 미가이다. 그는 미가서 6장에서 동료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하나로 묶어 다음같이 선포하였다. "내가 무엇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무엇으로 하나님을 경배할까... 사람아 주께서 무엇이 선한지를 내게 보이셨나니 여...

과유불급(過猶不及) /김동길

◆ 2015/10/29(목) -과유불급(過猶不及)- (2738)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만도 못하다”는 뜻으로 풀이가 됩니다. 공자께서 가르치신 중용지도(中庸之道)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과음(過飮)도 과식도 해롭습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과욕이라고 합니다. 일이 지나치면 과로라고 합니다. 과욕은 개인과 가정을 망치고 더 나아가 나라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예는 역사에 차고 넘친다고 하겠습니다. 지나친 욕심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지나침’이 우리 삶에 많은 고통을 주는 사실 또한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편지나 우편물을 받아 뜯으려 할 때 풀로 하도 철하게 사방을 꽉 막아서 뜯기 조차 어려운 그런 편지나 통지문을 받고 이를 뜯으며 ‘화’를 내지 않는 성현군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위로 붙인 데를 자르다가 편지 자체를 베는 일도 있고 소포의 내용물에도 손상을 입히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나의 스승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받아서 뜯어 읽어야 할 상대방 생각도 하고 편지를 풀로 붙이라고. 저만 아는 어려운 문자를 써가며 어린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어리석은 어른도 많기에 도산 안창호가 일러 주었답니다. 어른에게 쓰는 말투로 아이들에게 글을 써서 보내면 안 된다고. 강연장에 가서 알아듣지 못할 어려운 말로 떠드는 사람을 보면 아무리 소문난 학자라고 하더라도 제 정신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청중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깔보는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보자기 네 귀를 옭매는 사람을 보셨지요? ‘고’가 없어서 이를 푸는 데 여간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리고 애를 먹게 되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