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300여명이 한 사고로 재난… 어른들이 젊음들을 지켜주지 못해 우리 모두 가해자로 자신에 분노… 건성건성 살며 규칙 지키지 않아 戰場 버리고 살길 찾아 도망갈 것… 작은 매뉴얼, 하찮은 규칙 지켜야 김대중 고문 이런 적이 없었다. 40년 넘게 많은 재난과 사고를 보고 또 취재했지만 이렇게 참담하고 이렇게 황망하고 이렇게 죄스러운 적은 없었다. 수백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자연재해도 있었지만 이렇게 10대 청소년 300여명이 한 사고로 재난을 당한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전쟁이 아니고서는 아마도 이 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젊음이 한꺼번에 사라진 기억도 없다. 일주일 내내 사고 원인, 구조 과정, 책임자 처벌,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국민의 눈과 귀를 울렸지만 중요한 것은 이 땅의 어른들이 그 젊음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로 귀착된다. 선장과 승무원들을 욕할 일이 아니다. 그 선장과 승무원들은 바로 나이고 우리이고 어른이고 국민 모두이기 때문이다. 이 마당에 누가 누구를 욕하고 때릴 것인가. 희생자들이 일반 어른들이었고 심지어 천안함처럼 군인들이었으면 애통과 분노는 컸을지라도 이번처럼 모두의 자책(自責)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과 전사(戰死)가 가볍다는 뜻이 아니고 그때는 우리가 우리의 분노를 되돌려줄 대상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참사는 분노의 대상이 우리 자신이다. 우리 어른들 모두가 가해자고 살인자고 범죄자다. 범죄자의 심경으로 주말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며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나 구조는 없었다. 구조란의 숫자는 '174'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도 '생환(生還)'이지 '구조(救助)'가 아니다. 그 바람에 자꾸 환영(幻影)에 시달렸다.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유쾌한 웃음소리, 찰랑거리는 여학생들의 머리카락, 날렵한 남학생들의 몸짓 그리고 그들이 함께 부르는 노랫소리, 귀여운 얼굴, 건강한 미소…, 이런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