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배반/
잠자리 한 마리가 가만히 풀 위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살금살금 다가와
있는 힘껏 잠자리채를 휘둘렀습니다.
'윙’하고 바람 갈라지는 소리에
잠자리는 날개를 폈습니다.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잠자리가
아이를 향해 말했습니다.
"나에게 날개가 없었다면
어린 너한테 잡힐 뻔 했구나.”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잠자리는
온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아이에게 말을 하다가 그만 거미줄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파르르 날개를 떨고 있는 잠자리를
보며 거미가 말했습니다.
"너에게 날개가 없었다면, 이렇게
거미줄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움직여 봐야 소용없어,
움직일수록 더 조여들 뿐이니까"
거미는 재빠르게 잠자리를
먹으려고 달려갔습니다.
그 순간, 산새 한 마리가 허공을 가르며
총알처럼 날아왔습니다.
산새는 표적처럼 박혀있던 거미를
낚아채듯 물고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신음하는 거미에게 산새가
말했습니다. "거미야, 미안해.
네가 몸을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만
않았어도 나는 너를 보지 못했을 거야“
세상적으로 자랑하고 뽐낼 수 있는
힘과 환경을 가지고 마음껏 누리며
살아간다고 해도 그 자랑거리가
오히려 덫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부족함 때문에 오히려
넉넉해질 때도 있습니다.
나, 혹시 듣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길을 묻고 나서
그이가 아무 말 없이 지나가 버린 걸 가지고
'그놈, 참 몹쓸 놈이고’하지는 않았는지,
나, 행여 의족을 하고 버스에 앉아 가는
다리 불편한 젊은이 곁에 서서 가면서
'요즘 젊은 놈들, 어른도 몰라봐’하며
속으로 욕하지는 않았는지,
우리가 고난 주간과 부활 주일을 앞에 놓고
십자가에 관한 성경 말씀이나 설교를 많이 듣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이 한 구절만 가지고는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요한복음 18장 28절 이하에서
'주셨다'는 말의 의미를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죽이기로 작정하셨다는 뜻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단호한 뜻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 23절에 말한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미리 알고 정하신 뜻에
따라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알고
미리 작정하신 일이요,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는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분명한
판단 아래 하나님께서 내리신 결론인 것입니다.
다른 죽음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십자가의 죽음일까요?
하나님은 왜 하필이면 가장 잔혹하다는
그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을까요?
갈라디아서 3장 13절만큼 이것에 대해
선명한 답을 주는 곳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십자가는 한마디로 저주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야만
했던 한 가지 이유는 예수님이 저주의
죽음을 죽어야 할 입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율법의 저주 아래
갇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율법의 요구요 명령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나 자신을 사랑했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기보다 언제나
나 자신만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태어나서 온통
죄만 짓다가 한 생을 끝내야 되는
것이 우리의 입장입니다.
결국 율법이 명령하는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불복종했기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죄 값으로 물으시는 저주밖에 없었습니다.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의 실존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그 저주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 받아야 했습니다.
그것도 적당하게 받아서는 안 되고,
저주받은 자가 죽는 죽음을 대신 죽어야
했습니다. 십자가 죽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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