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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taph (墓碑銘)

Epitaph (墓碑銘) / "I will NOT be right back after this message."..... Merv Griffin (1925-2007, American talk show host) '이 메씨지가 끝나더라도 이번 만큼은 나는 곧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대중화가 되어있지 않은 듯하나 미국 등지에서는 묘비에 글을 새기는 습관이 있다. 이 碑銘에 새긴 글은 압축하여 한 인간의 삶 전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하겠다. 나는 나의 부친께서 돌아가셨을 때 궁리 끝에 '여호아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동판에 새겼는데 평생을 척박하게 사셨으므로 저 세상에서나마 풍요롭게 사실 것을 기원했음이다. 또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빼면 남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마음에 어머니 묘비에는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라 새긴 바 있다. 본문의 작가 Merv Griffin은 알아맞히기 게임쇼인 'Jeopardy' 와 'Wheel of Fortune' 을 개발하였는데 미국에 잠시라도 거주하였던 사람들은 이 푸로에 익숙할 것이다. Talk show host 로 일세를 풍미한 사람인데 전립선암으로 서거했을 당시 자그마치 십억불의 재산을 남겼으니 입 하나로 벌어들인 돈 치고는 짭짤한 편이다. 그런 그가 푸로그램 진행 중 광고방송이 나오기 전 '곧 돌아오겠다' 는 말을 밥먹듯 했는데 이제는 광고 후에도 곧 안 돌아올 것이라는 특유의 코미디를 묘비에 적은 바 있다. 서양인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의 그것과 많은 차이를 보이는 대목인데 유명인들이 남긴 묘비명을 점검하며 편린이나마 그들의 철학을 엿보고자 한다. 쳐칠은 술도 고래고 담배는 그의 등록상표며 기행을 일삼았는가 하면 수많은 政敵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독설을 많이 퍼부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나는 이제 나를 만드신 그분께로 다시 돌아가 그분을 만나려고 하나 그가 나를 만나주실지는 모르겠다' 고 적었다. 또 어떤 사람은 '여기 왜 이렇게 어두운거야?'라 적은 사람도 있고 '나 아프다고 했잖아?'라 한 사람도 있다. George Bernard Shaw (1856-1950) 같은 사람은 '아, 글쎄! 오래 어영부영 하다가는 이꼴 난다니까!' 라 적었으며 '나 나왔다 가는데 뭐 할 말 있어?' 라 물은 사람도 있고 역시 그답게 Frank Sinatra 는 '진짜는 이제부턴데' 라 기록한 바 있다. Phillip Margolin 같은 작가는 먼저 보낸 부인을 그리워하며 'Gone but never forgotten' 이라고 적었는데 먼저 갔으나 결코 잊혀지지는 않았다며 짧은 문장이나 옛 부인에 대한 구곡간장 (九曲肝腸)같은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가장 가련한 여자는 버려진 여인도 아니요 증오하는 여인도 아니요 '잊혀진 여인' 이라 하지 않았던가? 리간 전 미국 대통령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며 더하여 모든 인생은 목표와 가치가 있으며 정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함을 나는 굳게 믿노라' 라 적은 바 있어 각자의 신념을 마지막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올해도 가을이 되자 어김없이 두고 온 집과 살던 동네도 돌아보고 아이들도 만날 겸 LA에 도착하는 길로 집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두분 묘소를 나를 마중 나온 아들과 함께 찾았다. 묘소를 찾아 동산을 오르며 수많은 묘비명을 읽었다. 인간이 죽는 법을 알면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럼 내가 이승을 하직하는 날 나는 나의 삶을 함축하는 비명을 과연 무어라 쓸 것인가? 10/21/2024 박인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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