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G☞ 나 혼자 시대, <함께>라는 행복에 관하여

#G☞ 나 혼자 시대, <함께>라는 행복에 관하여 미국의 커너먼 교수가 미국 기혼여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누가 가장 피곤하게 하느냐’라는 질문에 조사 결과는 아주 흥미로웠죠. 1위는 남편, 2위는 자녀들이었습니다.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이지만, 동시에 정신적으로 귀찮고 힘든 것입니다.   나는 행복한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던져보아야 할 질문임에 틀림없습니다. 행복은 큰 행운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기쁨에서 오고, 좋은 기분을 가질 수 있는 일에 투자하는 데에서 온다고 합니다. 즐겁지 않은 일을 수동적으로 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의 비중을 조금씩 늘려나가는 것이 행복임을 느끼게 하는 대목인 것이죠. 우리는 어려운 일에 도전했을 때 쉽게 해결되거나, 생각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되면 보람과 행복을 느낍니다. 반면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과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과정 또한 소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30평대 아파트 입주가 목표라면 돈을 아껴 쓰고, 저축해야 합니다.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는 것이 목표라면 가족의 보이지 않는 배려와 희생이 필요하죠. 이러한 목표들을 이루는 과정을 고통스럽다고만 생각한다면 인생의 반 이상을 불행하게 보내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결과는 과정이 있어야 얻을 수 있고 과정이 어렵고 힘들수록 결과는 크고 달콤합니다. ’여정이 곧 보상이다‘라고 하죠.   넘치는 풍요 속에서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과 불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과 비교 하며 현실 탓, 남의 탓 등 늘 부정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것은 불행해 지는 지름길입니다. 이제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가요?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불행한 사람은 자기가 행복 한 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살면서도 물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며, 우리는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가족의 소중함을 모를 때가 많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서로에게 감사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사람들은 소중한 것의 가치를 잊은 채 살아갑니다. 아침마다 밤새 일어난 수많은 사건사고를 다룬 뉴스가 방송됩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다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내 옆에서 코를 골며 평화롭게 자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세상은 경이로움의 연속이죠.
자신이 불행의 아이콘이라고 생각된다면 오늘만은 그런 생각을 지워보세요. 데일 카네기가 쓴 <행복론>을 보면서. 1. 오늘만은 행복할 것 행복은 내부에서 오는 것이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늘만은 현실(가족, 사업, 행운 등)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 내 기준에 맞추려 들지 말자. 2. 오늘만은 몸을 돌볼 것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휴식을 취하거나 운동을 하자. 3. 오늘만은 유쾌하게 지낼 것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단순하게 생각하자. 4. 오늘만은 오늘 하루를 살 것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결판낼 수는 없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100세 시대 배우자와는 짧아도 60년, 아이들과는 짧아도 20년을 동행해야 합니다. 행복한 동행을 위해 작은 즐거움과 기쁨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꿈꾸세요. 당신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이 모두 행복해지기 위한 나의 선택이었을 테니까요.   (위 글의 저작권은 행복한가에 있다) YouTube에서 '솔라 (Solar) - 행복을 주는 사람 (Happy People) MV' 보기 https://youtu.be/t6hdAJDUxYI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일본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 고 추 장  🌶

🌶 고 추 장  🌶 고추장에 관해서 특별한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게 갈비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의 일이다. 한개도 아니고 열개씩이나 골절되어 꼼짝달싹을 못하고 아편으로 통증을 겨우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혈압이 올라가고 혈당이 올라가 혼수지경에 이르니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도 어떻해서든지 날 살려보려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왔지만 모두가  헛수고일 뿐이었다. 나 또한 집사람을  혼자 살게 만들면 천벌을 받겠기에 열심히 음식을 먹으려 애를 썼지만 구역질만 더 할 뿐이었다. 여행다닐 때 고추장 단지를 꾀차고 다니며 햄버거에 발라먹던 생각이 나서 고추장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고추장을 죽에 넣어 먹으니 신통하게 잘 넘어가는데 그 맛 또한 기가막혀 부글거리는 뱃속까지 편안해졌다. 덕분에 문병오는 사람마다 고추장 단지를 가져오는 바람에  고추장 벼락을 맞을 지경이 되었다. 그 후로는 고추장 단지가 내 식탁에 주인이 되었다.   고추장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고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몰라도 신통하기 짝이 없었다. 소태 같던 입맛이 꿀맛이요,  구역질도 잠잠해지고 느글거리던  뱃속까지 고분고분 고추장말을 잘 들으니 과연 고추장의 위력이 대단하다. 내 미국 친구들이 겨울만 되면 단골처럼 감기로 골골대고 있을 때 나는 감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그들이 날보고 너는 어떻게 감기 한 번 안걸리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내가  건강한 것은 김치 파워야.  너희들도 김치를 먹어라." 하고  자랑을 했는데 이제는 고추장의 효능이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어린 아기를 달랠 때 호랑이 나온다 하면 뚝 그치고, 순사 온다 하면 뚝 그치듯이 뱃속이 앙탈을 부리면 고추장 먹는다  하면 조용해 질 것 같다.  고추는 남미와 아프리카가 원산지란다. 고추의 매운 맛은 알카로이드의 일종인 캡사이신 때문이란다. 이 캡사이신이  자극을 주어 발효작용을 해서 감기 열을 내리기도 하고 위도 자극해서 위액 분비를 촉진해...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 헤아릴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첩첩산중에 상당히 가난한 곳이다.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가정 형편도 안 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도시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나는 대구 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에서 나의 석차는 68/68, 68명 중에 꼴찌를 했다. 지독하게 부끄러운 성적표를 들고 고향으로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표를 부모님께 내밀 자신이 없었다. 무학의 한을 자식을 통해서 풀고자 했는데, 맨 꼴찌라니...!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부모님을 떠올리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 지우개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 1등으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초등 학교도 못다닌 무학이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말했다. "찬석이가 공부를 잘했더나 ? 아버지가 말했다. "앞으로 두고 봐야제, 이번에는 우짜다가 1등을 했는가배...!" "아들 하나는 잘 뒀구먼, 1등을 했으면 잔치를 해야제!" 그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 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 뿐인 우리집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제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부지 ~ !"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서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 박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