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다싱의 종교생활
1 선다의 신비관
「썬다싱」은 기독교 역사상 보기드문 대신비가이다 그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 신비한 은혜는 보통 사랑은 얻기 어려운 귀족적 선물인 듯이 생각하는 점에 반대하고 이것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평민적의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썬다-」는 그 자신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신비가(미스트)라는 것은 미스트(안개)를 연상케한 무슨 몰롱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신비가는 신인합일의 경지에서 신을 아는 자이다 대 성자라 할지라도 깊이에 들어 간 자는 극히 적고 나 같은 것은 초보요 영의 어미로부터 젖을 먹고 있는 자에 불과하다 나는 다만 영의 아이 됨에 불과하다. 신비가란 이를 듣기를 주저한다 나는 인도에서「스와미」(신성한 사람)라고 부르는 것을 피한다 나는 차라리 순수한「사두-」즉 (종교가)라고 부르는 것을 원한다」하였다.
언제 영국 학자가 아래와 같이 질문하였다.「신비적 소질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혹자는 음악을 잘하느 어떤 사람은 모르고 혹자는 그림을 잘 그리나 어떤 사람은 못하는 것과 같이 종교에 대하여도 은혜 받는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다르지 아니한가?」
「썬다-」는 대답하되「종교적 성질은 예술을 감상하는 능력과는 다르다 이것은 차라리 갈하는 것과 같다 갈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느냐 갈증이 사람을 물로 인도하는 것과 같이 종교적 갈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오게 한다.」학자들이 또 질문하였다,「그러나 확실히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큰 종교적 천재가 있지 않느냐 어거스틴 루터 웨슬레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선천적 소질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는 대답하되「육처는 크고 작은 것이 다르다 어떤 자는 두뇌가 크고 어떤 자는 작다 그러나 영혼은 모든 사람의 수용력이 같다고 나는 믿는다 어거스틴 같은 사람은 그 수용력을 더 잘 잘 발달케 한 자이다 그들은 각각 영적 향상을 더 하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것이다.」
누구든자 기도와 명상에 많은 시간을 바쳐 살아 계신 주와 교통하는 생활 가운데서 살아 간다면 그는 영적 진경을 볼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현세의 미온적 기독교에 대하여 늘 이같이 말한다 그리스도는 역사적 과거의 도덕가가 아니오 살아계신 신이며 신비적 최고의 모범이 아니라 구주시며, 각 사람의 정도에 따라 나타나시는 인격적 신인 것을 고조하며, 또 조물주와 피조물을 구별하여 동양류의 범신론을 부정한다 이 아래의 기록을 보면 그의 사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인도는 다만 도덕적 교사로서 가르치는 바의 선교는 필요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그리스도는 최고의 신비가라 하니 귀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물으니『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모르는 사람의 말이다 그리스도는 최고의 신비가가 아니라 신비가의 구주시다.『그리스도는 역사상의 인물일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시사 활동하신다 그는 성서중에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마음 가운데 살아 계시다.』
그는 신비적 결합에 대하여 신인의 경계를 구분한다.『사람들이 말하기를 구원은 신 안에 결합되는 것이오 그것은 하늘에 사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의 안에 사는 것은 그가 우리 안에 사는 것이다 철이 불가운데 들어 갈 때 철은 빨가케 된다 철은 불 가운데 있고 불은 철 가운데 있다 그러나 철은 불이 아니오 불은 철이 아니다. 그같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 우리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이 아니다.
우리의 호흡하는 숨은 우리의 생명이다 그러나 사람은 숨이 아니오, 숨은 사람이 아니다. 그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호흡하나 우리가 신은 아니다. 마치 호흡으로 공기를 마시는 것같이 기도로 당신은 호흡한다. 다만 우리가 신에 가까울뿐 아니라 그와 합체한다 다만 결합할뿐 아니라 생명을 받는다 이 생명을 가지면 놀낼만한 사실을 실험한다 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하여『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신자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와 달라 더 깊은 것이 있다 그리스도 신자는 그리스도의 한 부분으로 그리스도의 한 벗일뿐 아니라 한 그리스도 그 자신이다 그리스도는 신자를 통하여 호흡한다 그리스도는 항상 교회에 임재하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언제든지 그들의 마음에 숭배의 마음이 일 때는 그의 현재를 조금 자각할 때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결코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여 우리에게 자기의 실재를 알리려고 강박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받은 정도에 따라 감당함에 마낄 뿐이다 결코 강제적으로 간섭하는 것이 아니오 다만 노력에 따라 인도하신다.』
「썬다싱」은 기독교 역사상 보기드문 대신비가이다 그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 신비한 은혜는 보통 사랑은 얻기 어려운 귀족적 선물인 듯이 생각하는 점에 반대하고 이것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평민적의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썬다-」는 그 자신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신비가(미스트)라는 것은 미스트(안개)를 연상케한 무슨 몰롱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신비가는 신인합일의 경지에서 신을 아는 자이다 대 성자라 할지라도 깊이에 들어 간 자는 극히 적고 나 같은 것은 초보요 영의 어미로부터 젖을 먹고 있는 자에 불과하다 나는 다만 영의 아이 됨에 불과하다. 신비가란 이를 듣기를 주저한다 나는 인도에서「스와미」(신성한 사람)라고 부르는 것을 피한다 나는 차라리 순수한「사두-」즉 (종교가)라고 부르는 것을 원한다」하였다.
언제 영국 학자가 아래와 같이 질문하였다.「신비적 소질이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혹자는 음악을 잘하느 어떤 사람은 모르고 혹자는 그림을 잘 그리나 어떤 사람은 못하는 것과 같이 종교에 대하여도 은혜 받는 힘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다르지 아니한가?」
「썬다-」는 대답하되「종교적 성질은 예술을 감상하는 능력과는 다르다 이것은 차라리 갈하는 것과 같다 갈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느냐 갈증이 사람을 물로 인도하는 것과 같이 종교적 갈망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오게 한다.」학자들이 또 질문하였다,「그러나 확실히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큰 종교적 천재가 있지 않느냐 어거스틴 루터 웨슬레 같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선천적 소질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는 대답하되「육처는 크고 작은 것이 다르다 어떤 자는 두뇌가 크고 어떤 자는 작다 그러나 영혼은 모든 사람의 수용력이 같다고 나는 믿는다 어거스틴 같은 사람은 그 수용력을 더 잘 잘 발달케 한 자이다 그들은 각각 영적 향상을 더 하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것이다.」
누구든자 기도와 명상에 많은 시간을 바쳐 살아 계신 주와 교통하는 생활 가운데서 살아 간다면 그는 영적 진경을 볼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현세의 미온적 기독교에 대하여 늘 이같이 말한다 그리스도는 역사적 과거의 도덕가가 아니오 살아계신 신이며 신비적 최고의 모범이 아니라 구주시며, 각 사람의 정도에 따라 나타나시는 인격적 신인 것을 고조하며, 또 조물주와 피조물을 구별하여 동양류의 범신론을 부정한다 이 아래의 기록을 보면 그의 사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인도는 다만 도덕적 교사로서 가르치는 바의 선교는 필요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그리스도는 최고의 신비가라 하니 귀하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물으니『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모르는 사람의 말이다 그리스도는 최고의 신비가가 아니라 신비가의 구주시다.『그리스도는 역사상의 인물일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시사 활동하신다 그는 성서중에 살아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마음 가운데 살아 계시다.』
그는 신비적 결합에 대하여 신인의 경계를 구분한다.『사람들이 말하기를 구원은 신 안에 결합되는 것이오 그것은 하늘에 사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의 안에 사는 것은 그가 우리 안에 사는 것이다 철이 불가운데 들어 갈 때 철은 빨가케 된다 철은 불 가운데 있고 불은 철 가운데 있다 그러나 철은 불이 아니오 불은 철이 아니다. 그같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 우리안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이 아니다.
우리의 호흡하는 숨은 우리의 생명이다 그러나 사람은 숨이 아니오, 숨은 사람이 아니다. 그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호흡하나 우리가 신은 아니다. 마치 호흡으로 공기를 마시는 것같이 기도로 당신은 호흡한다. 다만 우리가 신에 가까울뿐 아니라 그와 합체한다 다만 결합할뿐 아니라 생명을 받는다 이 생명을 가지면 놀낼만한 사실을 실험한다 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하여『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신자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와 달라 더 깊은 것이 있다 그리스도 신자는 그리스도의 한 부분으로 그리스도의 한 벗일뿐 아니라 한 그리스도 그 자신이다 그리스도는 신자를 통하여 호흡한다 그리스도는 항상 교회에 임재하신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언제든지 그들의 마음에 숭배의 마음이 일 때는 그의 현재를 조금 자각할 때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결코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여 우리에게 자기의 실재를 알리려고 강박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의 받은 정도에 따라 감당함에 마낄 뿐이다 결코 강제적으로 간섭하는 것이 아니오 다만 노력에 따라 인도하신다.』
2 영혼의 암흑
신비가들의 경험에 의하면 간흑 영혼의 암흑시기가 있다 신과의 깊은 교통에서 늘평화를 얻고 원기에 넘치면 사람도 혹시 감웅이 막히고 아득 캄캄하여 신과의 사이에 무슨 장벽이 선 듯이 외로움을 느기는 때가 있다 이것이 사람에 따라 몇주일 혹은 몇 개월 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때가『사두-』에게 있느냐고 물으니 그는『어떤 때는 두 세시간 그런 때가 있으나 며칠이나 몇 주간씩 계속하는 일은 없다 이것은 일종 사랑의 유회다 왜 그러냐 하면 항상 빛가운데 있는 것보다 잠시 어둠이 도리어 기쁨을 더 크게 하며 신과 인간의 영이 같지 아니한 것을 알게 하는 까닭이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어떻게 분간할 수 있겠느냐 물론 신은 결코 그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잠깐 자기를 숨기는 것이다.』
그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로 이를 비유하였다.『비겁한 아이를 가진 그 아버지는 이를 교정하고 용기를 양성하기 위하여 하루밤 산림속 나무에 얽어매어 혼자 두었다 아이는 맹수가 올까 겁이 나서 울며 부르짖다가 그만 단념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간 것이 아니오 그 뒤에 숨어 총을 가지고 맹수가 오면 쏘아 죽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 같이 우리들의 하늘아버지도 전혀 우리를 내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혹시는 죄로 인하여 신이 그 낮을 숨기고 어떤 때는 교훈 하시기 위하여 하시는 경우가 있다. 혹 나는 혼자 버리운 것을 느끼는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죄를 범한 것이 아닌가 그 죄는 무엇인가 그대문에 평화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귀하는 그같이 영적 생애를 계속하는데서 괴로움을 느끼는 일이 없느냐 한 질문에 대하여『인도에서는 오래 가물던 더위 끝에 처음 비가 오면 더운 아지랑이나 안개 같은 것이 일어나 도리어 찌는듯하게 된다 그같이 내가 처음 은혜의 소낙비를 받을 때에 좀 견디기 어려운 듯 하였으나 두 번 세 번 받는 동안에 일 없게 되었다 특히 금식후에 그렇게 되고 그후부터 입신의 경험도 쉽게 되었다 또 육체에도 상쾌와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 전에는 보이는 세계를 많이 감하고 영계를 조금 감하엿더니 금식후 부터는 적당하게 되었다. 또 영적 압박을 감하는 일이 없느냐 하니『만일 내가 평화를 잃게 되는 경우에도 기도로써 곧 회복한다.』고 대답하였다. 이같이 그에게는 오래 계속하는 영적 암흑은 없다.
신비가들의 경험에 의하면 간흑 영혼의 암흑시기가 있다 신과의 깊은 교통에서 늘평화를 얻고 원기에 넘치면 사람도 혹시 감웅이 막히고 아득 캄캄하여 신과의 사이에 무슨 장벽이 선 듯이 외로움을 느기는 때가 있다 이것이 사람에 따라 몇주일 혹은 몇 개월 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때가『사두-』에게 있느냐고 물으니 그는『어떤 때는 두 세시간 그런 때가 있으나 며칠이나 몇 주간씩 계속하는 일은 없다 이것은 일종 사랑의 유회다 왜 그러냐 하면 항상 빛가운데 있는 것보다 잠시 어둠이 도리어 기쁨을 더 크게 하며 신과 인간의 영이 같지 아니한 것을 알게 하는 까닭이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어떻게 분간할 수 있겠느냐 물론 신은 결코 그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잠깐 자기를 숨기는 것이다.』
그는 아래와 같은 이야기로 이를 비유하였다.『비겁한 아이를 가진 그 아버지는 이를 교정하고 용기를 양성하기 위하여 하루밤 산림속 나무에 얽어매어 혼자 두었다 아이는 맹수가 올까 겁이 나서 울며 부르짖다가 그만 단념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간 것이 아니오 그 뒤에 숨어 총을 가지고 맹수가 오면 쏘아 죽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 같이 우리들의 하늘아버지도 전혀 우리를 내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혹시는 죄로 인하여 신이 그 낮을 숨기고 어떤 때는 교훈 하시기 위하여 하시는 경우가 있다. 혹 나는 혼자 버리운 것을 느끼는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죄를 범한 것이 아닌가 그 죄는 무엇인가 그대문에 평화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귀하는 그같이 영적 생애를 계속하는데서 괴로움을 느끼는 일이 없느냐 한 질문에 대하여『인도에서는 오래 가물던 더위 끝에 처음 비가 오면 더운 아지랑이나 안개 같은 것이 일어나 도리어 찌는듯하게 된다 그같이 내가 처음 은혜의 소낙비를 받을 때에 좀 견디기 어려운 듯 하였으나 두 번 세 번 받는 동안에 일 없게 되었다 특히 금식후에 그렇게 되고 그후부터 입신의 경험도 쉽게 되었다 또 육체에도 상쾌와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 전에는 보이는 세계를 많이 감하고 영계를 조금 감하엿더니 금식후 부터는 적당하게 되었다. 또 영적 압박을 감하는 일이 없느냐 하니『만일 내가 평화를 잃게 되는 경우에도 기도로써 곧 회복한다.』고 대답하였다. 이같이 그에게는 오래 계속하는 영적 암흑은 없다.
3 활동과 봉사 봉사는 기독교정신을 나타내는 특색 있는 생활이다 동양의 종교들은 은둔적 경향이 있으나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봉사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나는 자아의 완성에 목표를 두는 것이나 하나는 신의의 완성에 목표를 두는 것이다. 『사두-』는 그 일생을 봉사의 생활에 바쳤다 그러나 중세기의 은둔생활을 전혀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한 수도승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같은 것을 쓰지 않았느냐』고『아켐비쓰』의 이 저서에서 큰 감동을 받고 늘 이같이 그 가치를 인정하여 말하나 자기의 사명은 봉사에 있다고 믿는다『만일 귀하에게 한주일 밖에 남은 시간이 없다면 귀하는 기도와 명상을 하겠느냐 활동봉사를 하겠느냐?』고 묻는 말에 그는 대답하기를『우리가 한주일 동안 물만 먹을 것인가, 밥만 먹을 것인가 우리는 물과 밥을 다- 요구할 것이다.』하였다. 그는 하룻동안이라도 그 시간을 전부 명상에만 보내는 일은 극히 적다 히말라야에서 몇 주간 지날대에도 그 간에 숨은 촌락을 찾아서는 전도하고 있었다.
『제 목숨을 아끼는 자는 이것을 잃고 나를 위하여 제 생명을 버리는 자는이것을 얻으리라』한 것은 일반 크리스챤의 생활표어이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들어 이같이 설명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는 쉬우나 그를 위하여 살기는 어렵다 죽는 것은 한두시간만 괴로우면 되나 사는 것은 나날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수년동안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와 사람에게 봉사하였다 그러나 주께서 부르는 날이면 하늘에 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땅에 생존하여 있는 동안 활동할 의무가 있다 이 점에 대하여는 전혀 인도의 은둔자와 생각을 달리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산야시』라고 부르지 않는다『산야시』는 세상을 버린 사람이다 그들은 모두 이 세상을 악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또 나의 것이다 만일 내가 세상을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나에게 주신바 어떤 은혜도 버릴 것이다 나는 다만 그 중의 악한 것만 버린다. 금전과 지위를 얻고자 하는 욕망은 영적 높은 생활로부터 사람을 끌어 내리기 쉽다 그 증거로서 부자가 전도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은 극히 작은 일이다 그런고로 인도의 왕후들은 종종 둔세가가 되었다 불타도 그런 사람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이 즉 나븐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오 그것을 적당히 쓰지 않는 때에 그 결과가 나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비록 저들의 생각이 그릇되었다 하더라도 그 진리를 얻고자하여 기왕의 호화로운 생활을 버리고 출가한 용기를 존경하는 자이다 그 한 예로『우쟌왕『빠-라토리하리시짠도라의 사적을 생각한다 나는 그의 장려한 중전을 보았다 그리고 수마일 격한 곳에 그의 은둔하였던 지하굴을 보았다 이 두 곳의 현저한 대조를 생각할 때 이 세상에서 영혼의 만족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을 생각하였다 王子의 생활도 좋기는 좋았으나 그러나 그 가운데 있어서는 거룩한 영적 갈망을 채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고행하는 인도 행차들에게 늘 전도한다 그 그릇된 관념에 붙들려 생을 값 없는 고생으로 보내는 것을 볼 때 불쌍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나는 한사람의 인도『사두-』를 만나 그에게 말하였다.『그대는 제 몸을 괴롭게 하는『사두-』다 나는 봉사전도하는『사두-』다. 나는 괴롬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절로 제 몸을 괴롭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세상을 버리지 않고 세상 중에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아래와 같은 예를 들어 세상에 대한 그 태도와 가진 생각을 말하였다. 『나는 한번 히말라야의 한 동리를 지나다가 진애와 비료를 쌓아 놓은 큰 두엄무지를 보았다. 거기서 나는 악취에 구역이 날 지경이었다. 며칠후에 또 그 곳을 지낫다 그런즉 아름다운 향기가 악취를 덮어 버렸음으로 놀라서 자세히 본즉 아름다운 작은 꽃들이 一면에 피어서 향기를 발하고 있었다. 태양에사 오는 열과 빛이 꽃에 아름다운 빛과 향기를 준 것이다 장소는 더럽다 그러나 티끌 그 자신의 거름으로 말미아마 변화된 것이다 그 같이 우리도 오예와 홍진 세상에서 살아 있을지라도 우리 마음을 의의태양에 향하여 열면 그로부터 영적 빛과 향기를 받아 이 세상이 비료와 같이 우리의 생활을 돕는다.』생각하였다. 이것은 신이 자기의 필요로 지은 것이 아니오, 천사나 사단을 위함도 아니오, 그렇다고 금수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하여 지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이것을 비럴 것인가.』
그는 이같이 세상의 사물을 대할 때 거기 속박되지 않고 감사와 찬미로써 영의 자양이 될 진리를 섭취한다 누가 묻기를『귀하의 생애는 양육할 가족이라든지 사업이라든지 얽매일 것이 아무것도 없음으로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기 쉬우나 다른 사람들은 부양할 가족과 일이 있으니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매『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기 심히 곤난한 일이다 나의 곤난도 크다 비록 그 정도는 다르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 사는 이상 곤난없는 자는 없다 그러나 그 고통에 불구하고 우리의 최선을 다하면 우리가 다음세상에 들어가 그 장애가 제거 될 때는 그 순간에 크고 높은 곳에 달하는 힘을 얻을수 있다. 옛 사람들은 경주의 연습을 하는데 무거운 쇠줄을 맨 채로 달렸다 그래서 자유로 달릴 수 없고 힘들기는 하나 경주하는 날 그 줄을 풀어 버리면 몸이 경쾌하게 되어 평시보다 속히 달릴 수 있다 그들은 부자유중에서 힘을 양성한 까닭이다.』
봉사는 신의를 받드는 생활이다 인간의 최고 목표는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는데 있다 불교류의 자아 완성만을 목적하는 은둔생활은 신의의 한쪽만을 알고 다른 쪽을 모르는 생활이다 신이 부여한 모든 본능은 이것을 사용치 아니하면 위축하게 되는 것이다 봉사는 一면 타인을 완성하는 동시에 타면 자아를 완성하는 도리가 된다.「사두-」는 그 일생을 더 의미 있게 최선의 힘을 다햐여 봉사에 바치려했다 우리의 주위에 있는 모든 불완전과 신의에 배치하는 모든 현상은 우리의 봉사를 재촉하는 것이다
『한 수도승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같은 것을 쓰지 않았느냐』고『아켐비쓰』의 이 저서에서 큰 감동을 받고 늘 이같이 그 가치를 인정하여 말하나 자기의 사명은 봉사에 있다고 믿는다『만일 귀하에게 한주일 밖에 남은 시간이 없다면 귀하는 기도와 명상을 하겠느냐 활동봉사를 하겠느냐?』고 묻는 말에 그는 대답하기를『우리가 한주일 동안 물만 먹을 것인가, 밥만 먹을 것인가 우리는 물과 밥을 다- 요구할 것이다.』하였다. 그는 하룻동안이라도 그 시간을 전부 명상에만 보내는 일은 극히 적다 히말라야에서 몇 주간 지날대에도 그 간에 숨은 촌락을 찾아서는 전도하고 있었다.
『제 목숨을 아끼는 자는 이것을 잃고 나를 위하여 제 생명을 버리는 자는이것을 얻으리라』한 것은 일반 크리스챤의 생활표어이다 그는 자기의 경험을 들어 이같이 설명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는 쉬우나 그를 위하여 살기는 어렵다 죽는 것은 한두시간만 괴로우면 되나 사는 것은 나날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수년동안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와 사람에게 봉사하였다 그러나 주께서 부르는 날이면 하늘에 갈 것이다. 그러나 내가 땅에 생존하여 있는 동안 활동할 의무가 있다 이 점에 대하여는 전혀 인도의 은둔자와 생각을 달리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산야시』라고 부르지 않는다『산야시』는 세상을 버린 사람이다 그들은 모두 이 세상을 악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또 나의 것이다 만일 내가 세상을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나에게 주신바 어떤 은혜도 버릴 것이다 나는 다만 그 중의 악한 것만 버린다. 금전과 지위를 얻고자 하는 욕망은 영적 높은 생활로부터 사람을 끌어 내리기 쉽다 그 증거로서 부자가 전도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은 극히 작은 일이다 그런고로 인도의 왕후들은 종종 둔세가가 되었다 불타도 그런 사람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이 즉 나븐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오 그것을 적당히 쓰지 않는 때에 그 결과가 나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비록 저들의 생각이 그릇되었다 하더라도 그 진리를 얻고자하여 기왕의 호화로운 생활을 버리고 출가한 용기를 존경하는 자이다 그 한 예로『우쟌왕『빠-라토리하리시짠도라의 사적을 생각한다 나는 그의 장려한 중전을 보았다 그리고 수마일 격한 곳에 그의 은둔하였던 지하굴을 보았다 이 두 곳의 현저한 대조를 생각할 때 이 세상에서 영혼의 만족을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을 생각하였다 王子의 생활도 좋기는 좋았으나 그러나 그 가운데 있어서는 거룩한 영적 갈망을 채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고행하는 인도 행차들에게 늘 전도한다 그 그릇된 관념에 붙들려 생을 값 없는 고생으로 보내는 것을 볼 때 불쌍한 생각을 금할 수 없다.『나는 한사람의 인도『사두-』를 만나 그에게 말하였다.『그대는 제 몸을 괴롭게 하는『사두-』다 나는 봉사전도하는『사두-』다. 나는 괴롬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절로 제 몸을 괴롭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세상을 버리지 않고 세상 중에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아래와 같은 예를 들어 세상에 대한 그 태도와 가진 생각을 말하였다. 『나는 한번 히말라야의 한 동리를 지나다가 진애와 비료를 쌓아 놓은 큰 두엄무지를 보았다. 거기서 나는 악취에 구역이 날 지경이었다. 며칠후에 또 그 곳을 지낫다 그런즉 아름다운 향기가 악취를 덮어 버렸음으로 놀라서 자세히 본즉 아름다운 작은 꽃들이 一면에 피어서 향기를 발하고 있었다. 태양에사 오는 열과 빛이 꽃에 아름다운 빛과 향기를 준 것이다 장소는 더럽다 그러나 티끌 그 자신의 거름으로 말미아마 변화된 것이다 그 같이 우리도 오예와 홍진 세상에서 살아 있을지라도 우리 마음을 의의태양에 향하여 열면 그로부터 영적 빛과 향기를 받아 이 세상이 비료와 같이 우리의 생활을 돕는다.』생각하였다. 이것은 신이 자기의 필요로 지은 것이 아니오, 천사나 사단을 위함도 아니오, 그렇다고 금수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하여 지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이것을 비럴 것인가.』
그는 이같이 세상의 사물을 대할 때 거기 속박되지 않고 감사와 찬미로써 영의 자양이 될 진리를 섭취한다 누가 묻기를『귀하의 생애는 양육할 가족이라든지 사업이라든지 얽매일 것이 아무것도 없음으로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기 쉬우나 다른 사람들은 부양할 가족과 일이 있으니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매『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기 심히 곤난한 일이다 나의 곤난도 크다 비록 그 정도는 다르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 사는 이상 곤난없는 자는 없다 그러나 그 고통에 불구하고 우리의 최선을 다하면 우리가 다음세상에 들어가 그 장애가 제거 될 때는 그 순간에 크고 높은 곳에 달하는 힘을 얻을수 있다. 옛 사람들은 경주의 연습을 하는데 무거운 쇠줄을 맨 채로 달렸다 그래서 자유로 달릴 수 없고 힘들기는 하나 경주하는 날 그 줄을 풀어 버리면 몸이 경쾌하게 되어 평시보다 속히 달릴 수 있다 그들은 부자유중에서 힘을 양성한 까닭이다.』
봉사는 신의를 받드는 생활이다 인간의 최고 목표는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는데 있다 불교류의 자아 완성만을 목적하는 은둔생활은 신의의 한쪽만을 알고 다른 쪽을 모르는 생활이다 신이 부여한 모든 본능은 이것을 사용치 아니하면 위축하게 되는 것이다 봉사는 一면 타인을 완성하는 동시에 타면 자아를 완성하는 도리가 된다.「사두-」는 그 일생을 더 의미 있게 최선의 힘을 다햐여 봉사에 바치려했다 우리의 주위에 있는 모든 불완전과 신의에 배치하는 모든 현상은 우리의 봉사를 재촉하는 것이다
四 기도와 묵상 크리스챤의 생애는 연속된 기도의 생애라고 오리켄은 말하였거니와「사두-」의 생애는 기도 중의 생애다「사두-」는 기도의 의의를 기원이나 요구에 두지않고 신과 의에 둔다「귀하의 기도에는 얼마만이 교통이 되고 얼마만이 기원이 되느냐」고 묻는 말에 아래와 같이 대답하였다.
내가 회심후 2-3년간은 특별한데 대하여 기도하였으나 지금은 주님만을 구한다. 마치 과실이 많은 나무에 대하여 처음은 둘이나 셋을 그 주인에게 구하였으나 그 나무를 가지면 과실은 자연 다 가지는 것이다 그와 같이 만일 하나님이 그의 것이 되면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 모두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저는 그대의 아버지요 모든 것은 그의 것이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항상 거지와 같이 다니면서 몇 개씩 빌어먹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은사 말고 은사를 주시는 생명의 주를 구하라 그 때는 생명이나 기타 필요한 것이 다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기도는 무엇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신과의 교통이다 우리가 한 고상한 친구를 얻으면 얼마나 우리의 생애가 변할 것인가. 그렇다면 만물을 초월하시고 선하신 유일의 신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변케 할것인가 생각하여 보라.」
이같이「사두-」의 기도는 기원에 의하여 신의 뜻을 움직인다는 것보다 신과의 교통에서 우리 자아가 변화하여 가는 것을 말한다 마치 달걀이 큰 닭의 품 안에서 온기를 얻음으로 인하여 큰 닭과 같은 병아리가 되는 것 같이, 우리도 기도 중에우리의 마음을 열고 의의 태양을 향할 때 우리 마음의 사악과 더러움이 소멸되어 신과 같이 거룩하여 가는 것을 말한다 도 기도는 예기 이상의 큰 은혜를 얻는 것을 말하였다.
「기도는 자아의 영적 건강을 위하여 필요하다 그러나 멀리 멀리 더 큰 보배를 발견한다 어떤날 한 사람이 배가 고파 한 집을 찾아 와서 한쪼각 빵을 구하였다 그때 주인은 그를 환영하여 식자가 준비될 동안 그에게 향하여 복음의 도리를 전하였다 객은 반시 동안에 회심하여 하나님 아들이 되었다 그는 한쪼각의 방을 구하다가 영혼의 구원을 얻었다.」
또 대기도에 대하여「나는 2-3백의 하나님의 아이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들의 명부록을 마음에 가지고 전도 여행을 하는 동안은 충분한 대기도를 할 수 없지만 히말라야에 있을 때는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八년간 나는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것은 공연한 일 같이 보이지만 八년만에 그는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기도는 드디어 응답이 되었다.」
이 전에「사두-」는 대기도하는 일에 대하여 의문을 가졌다「우리 자신이 완전하기 전에 어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기도를 할 수 있을까?」그러나 그는 많은 영감을 주는 자연에서 이 의문을 풀게 되었다「나는 바닷물에서 증발하는 아지랑이가 구름이 되는 것을 보았다 그 바닷물로된 구름에서 덜어지는 비를 손에 받아 맛보니 조금도 염분이 없고 신선하고 또 순수하였다 해가 비칠 때 염분은 뒤에 떨어지고 증기만 높이 올라 간다. 그와 같이 의의 태양이 위에 비치고, 기도가 마음으로부터 하늘에 오를 때 모든 악한 것을 뒤에 두고 순진한 사상의 구름은 이같은 형상을 쓰고 은혜의 비가 되어 땅 위에 나린다.」
기도의 필요에 대하여「나는 한번 강가에 앉았다가 고기가 입을 벌리고 수면에 올라 와 있는 것을 보고 작은 고기를 먹고자 하는 줄 생각하였다 후에 들으니 이것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라 한다 신자도 이같이 일상 활동 중에서라도 신과의 밀접한 교통을 하기 위하여 사물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면 일하는 사이라도 신과의 교통을 계속할 수 있다」
「사두-」는 이같이 평범한 사물 중에서라도 가장 절실한 진리를 취하여 그의 사상의 양식을 삼는다 그에게는 삼라만상이 모두 진리의 상징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무진장한 비유가 나온다 내가 기선을 탓을 때 유명한 학자가 나에게 묻기롤『유성이나 화성에 음신을 통한다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귀하는 흥미를 가지지 않느냐?』나는 대답하되『그것은 재미 있는 것이 사실이나 몇 억마일 저쪽에 있는 화성보다 그 별을 지은 조물주와 당신의 거리는 호흡보다 가깝습니다 당신은 기도로 써 그에게 통신을 보낸 일이 있습니까?』
기도는 하고 싶으나 겨를이 없다는 의견에 대하여『기도는 아침밥보다 필요하다 아침밥이 없이 견디기 어려운 것 보다도 기도가 없이 어떻게 지낼 수 있느냐 만약 한 번 기도의 습관을 붙이면 이 때문에 어떻게든지 시간을 만들어 기도하도록 필요를 느끼게 한다 기도는 호흡과 같이 필요하다 우리들은 결코 호흡할 시간이 없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는 집회나 책임 있을 때에는 다과나 오찬의 초대를 사절하고 그 시간을 기도로 보낸다 그는 별로 신문을 안본다.『나는 인도의 자치라 하는데 대하여 큰 흥미가 없다 나의 영원한 집은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한 일도 있다.』
그는 기도에 종일을 보내는 때도 있고 혹은 밤새는 때도 있고 보통은 아침 두시간을 기도한다 영국에 있을 때는 대개 五시부터 七시까지 기도로 보내었다. 경우에 따라 묵상이나 기도시간이 없어질 때는 하룻동안 어떤 불만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는 아침 일어나면 될 수 있는대로 먼저 성경 한 장을 다 읽으면서 특히 의미 깊은 절에 기호를 표하였다가 다시 그 절에 와서 무엇을 얻기 까지 생각을 집주한다 이같이 十五분 혹은 그 이상 힘써 성신의 계시를 얻는다 그에게는 기도의 一정한 형식이 없다 앉거나 꿇고 혹 어떤 때는 걸으면서도 기도한다 처음은『씨쿠』족의 방식에 의하여 몸을 땅에 엎디어 기도하였으나 지금은 중지하였다.
기도에 말을 쓰느냐고 묻는데 대하여『아니 기도의 말은 말없는 말이다 신이 우리의 영에 말할 때는 직접 그 의미를 이해할수 있다 마치 서로 말할 때 말하기 전에 그 뜻이 벌서 알려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신은 고요한 때 그 영에 말한다. 신의 사상은 말 없이 직접 우리마음에 들어오고 혹시 말로는 표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일순간에 이 일로 인하여 깨닫는 것을 다른 법으로서 二十년을 허비하여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개인적 기도에는 말을 쓰지 않지만 공회에는 필요상 말을 쓰게 된다.』
그는 고요한 가운데 고요히 신을 대망하는 것을 고조한다『신은 정숙히 계신다 그러므로 신을 이해키 위하여 우리는 정숙지 않으면 안된다 떠들고 소란한 마음 가운데는 신이 침묵하신다 만약 우리들이 그의 축복을 받고자 하면 그리스도의 발아래 엎디지 않으면 안된다 그때 우리 마음에 천국이 임한다 오순절 전에 사도들은 열흘동안 기다렸다. 성신으로 큰 은혜를 받고자 할 때는 큰 준비가 필요하다. 철학자들은 고요할 때 더 잘 사고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물며 더 깊은영에 있어서는 더 한층 필요한 것이 아니냐. 그러나 이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정숙한 때를 게으른 때라 생각한다.』
귀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에 생각하며 기도하느냐? 고 묻는 말에 대하여『나는 처음은 항상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늘 그렇게 하지않는다. 그의 모습은 종종 나의 마음에 떠 온다. 바로 입신 중에서 항상 보는 그리스도의 영체 같은 것이다. 회심할 때와 같은 모양은 육안으로나 영안으로나 보지 못하나 어떤 때는 사이를 두고 비상히 강하게 그리스도의 임재를 감한다 만약 사람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면 될 수록 그 임재를 느끼는 것이 많게 된다. 우리가 더운 나라에 있을 때 찬바람이 불면 우리는 대단히 상쾌함을 느낀다 그와같이 활동 중에서 보는 그리스도의 현재는 나를 이같이 신선케 한다.』
그는 기도의 형식에는 불찬성이다. 형식적 혹은 기계화하지 않도록 주의한다.『기도에 대하여 요구하는 바는 마음이오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이 죽게 되어 신부를 청하였다. 그는 기도책을 넣지 않고 왔다. 그래서 그 책을 가지려 간 동안에 그사람은 벌써 죽었다. 그때 거기 있는 사람들이 말하되『시고는 마음에서 나오지 않고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모양이다』하고 비웃었다.
기도, 묵상의 방법에 대하여『예를들어 말한다면 성경 요한복음 一장을 읽고 그 중 감격한 구절에 표를 하였다가 후에 그 속뜻을 알고자 힘쓴다. 이것이 큰 도움이 된다. 처음 믿은 후 나의 경험은 신약에서 하나이나 그 이상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구절을 택하여 거기 마음을 집중하였다. 이같은 방법은 종이 한 곳에 확대경의 초점을 보내는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우리들이 영적 사물 위에 사상을 모으고 의의 태양에 마음을 향할 때 태양의 빛과 열은 인생의 모든 진애를 태우고 신의 의지에 불합당한 것을 없이 하여 버린다.』
나는 개심한 신자에 대하여 어떤 말에서 인도되었느냐고 물어 보니 혹자는『무릇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 十一 28) 한 구절이라 하고 혹자는 바울의 말에서라 한다. 그런고로 사람을 따라 감응되는 구절이 다름으로 전장을 읽고 그 중에서 감응된 절을 빼어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같은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것이 아님으로 남의 방법에 얽메이지 말고 각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에 의하면 좋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 약이 다른 것 같이 성질에 따라 그 받는 바가 다른 것이다.
내가 회심후 2-3년간은 특별한데 대하여 기도하였으나 지금은 주님만을 구한다. 마치 과실이 많은 나무에 대하여 처음은 둘이나 셋을 그 주인에게 구하였으나 그 나무를 가지면 과실은 자연 다 가지는 것이다 그와 같이 만일 하나님이 그의 것이 되면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 모두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저는 그대의 아버지요 모든 것은 그의 것이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항상 거지와 같이 다니면서 몇 개씩 빌어먹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은사 말고 은사를 주시는 생명의 주를 구하라 그 때는 생명이나 기타 필요한 것이 다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기도는 무엇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신과의 교통이다 우리가 한 고상한 친구를 얻으면 얼마나 우리의 생애가 변할 것인가. 그렇다면 만물을 초월하시고 선하신 유일의 신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를 변케 할것인가 생각하여 보라.」
이같이「사두-」의 기도는 기원에 의하여 신의 뜻을 움직인다는 것보다 신과의 교통에서 우리 자아가 변화하여 가는 것을 말한다 마치 달걀이 큰 닭의 품 안에서 온기를 얻음으로 인하여 큰 닭과 같은 병아리가 되는 것 같이, 우리도 기도 중에우리의 마음을 열고 의의 태양을 향할 때 우리 마음의 사악과 더러움이 소멸되어 신과 같이 거룩하여 가는 것을 말한다 도 기도는 예기 이상의 큰 은혜를 얻는 것을 말하였다.
「기도는 자아의 영적 건강을 위하여 필요하다 그러나 멀리 멀리 더 큰 보배를 발견한다 어떤날 한 사람이 배가 고파 한 집을 찾아 와서 한쪼각 빵을 구하였다 그때 주인은 그를 환영하여 식자가 준비될 동안 그에게 향하여 복음의 도리를 전하였다 객은 반시 동안에 회심하여 하나님 아들이 되었다 그는 한쪼각의 방을 구하다가 영혼의 구원을 얻었다.」
또 대기도에 대하여「나는 2-3백의 하나님의 아이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들의 명부록을 마음에 가지고 전도 여행을 하는 동안은 충분한 대기도를 할 수 없지만 히말라야에 있을 때는 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八년간 나는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것은 공연한 일 같이 보이지만 八년만에 그는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기도는 드디어 응답이 되었다.」
이 전에「사두-」는 대기도하는 일에 대하여 의문을 가졌다「우리 자신이 완전하기 전에 어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기도를 할 수 있을까?」그러나 그는 많은 영감을 주는 자연에서 이 의문을 풀게 되었다「나는 바닷물에서 증발하는 아지랑이가 구름이 되는 것을 보았다 그 바닷물로된 구름에서 덜어지는 비를 손에 받아 맛보니 조금도 염분이 없고 신선하고 또 순수하였다 해가 비칠 때 염분은 뒤에 떨어지고 증기만 높이 올라 간다. 그와 같이 의의 태양이 위에 비치고, 기도가 마음으로부터 하늘에 오를 때 모든 악한 것을 뒤에 두고 순진한 사상의 구름은 이같은 형상을 쓰고 은혜의 비가 되어 땅 위에 나린다.」
기도의 필요에 대하여「나는 한번 강가에 앉았다가 고기가 입을 벌리고 수면에 올라 와 있는 것을 보고 작은 고기를 먹고자 하는 줄 생각하였다 후에 들으니 이것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라 한다 신자도 이같이 일상 활동 중에서라도 신과의 밀접한 교통을 하기 위하여 사물을 초월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하면 일하는 사이라도 신과의 교통을 계속할 수 있다」
「사두-」는 이같이 평범한 사물 중에서라도 가장 절실한 진리를 취하여 그의 사상의 양식을 삼는다 그에게는 삼라만상이 모두 진리의 상징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무진장한 비유가 나온다 내가 기선을 탓을 때 유명한 학자가 나에게 묻기롤『유성이나 화성에 음신을 통한다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귀하는 흥미를 가지지 않느냐?』나는 대답하되『그것은 재미 있는 것이 사실이나 몇 억마일 저쪽에 있는 화성보다 그 별을 지은 조물주와 당신의 거리는 호흡보다 가깝습니다 당신은 기도로 써 그에게 통신을 보낸 일이 있습니까?』
기도는 하고 싶으나 겨를이 없다는 의견에 대하여『기도는 아침밥보다 필요하다 아침밥이 없이 견디기 어려운 것 보다도 기도가 없이 어떻게 지낼 수 있느냐 만약 한 번 기도의 습관을 붙이면 이 때문에 어떻게든지 시간을 만들어 기도하도록 필요를 느끼게 한다 기도는 호흡과 같이 필요하다 우리들은 결코 호흡할 시간이 없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는 집회나 책임 있을 때에는 다과나 오찬의 초대를 사절하고 그 시간을 기도로 보낸다 그는 별로 신문을 안본다.『나는 인도의 자치라 하는데 대하여 큰 흥미가 없다 나의 영원한 집은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한 일도 있다.』
그는 기도에 종일을 보내는 때도 있고 혹은 밤새는 때도 있고 보통은 아침 두시간을 기도한다 영국에 있을 때는 대개 五시부터 七시까지 기도로 보내었다. 경우에 따라 묵상이나 기도시간이 없어질 때는 하룻동안 어떤 불만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는 아침 일어나면 될 수 있는대로 먼저 성경 한 장을 다 읽으면서 특히 의미 깊은 절에 기호를 표하였다가 다시 그 절에 와서 무엇을 얻기 까지 생각을 집주한다 이같이 十五분 혹은 그 이상 힘써 성신의 계시를 얻는다 그에게는 기도의 一정한 형식이 없다 앉거나 꿇고 혹 어떤 때는 걸으면서도 기도한다 처음은『씨쿠』족의 방식에 의하여 몸을 땅에 엎디어 기도하였으나 지금은 중지하였다.
기도에 말을 쓰느냐고 묻는데 대하여『아니 기도의 말은 말없는 말이다 신이 우리의 영에 말할 때는 직접 그 의미를 이해할수 있다 마치 서로 말할 때 말하기 전에 그 뜻이 벌서 알려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신은 고요한 때 그 영에 말한다. 신의 사상은 말 없이 직접 우리마음에 들어오고 혹시 말로는 표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일순간에 이 일로 인하여 깨닫는 것을 다른 법으로서 二十년을 허비하여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개인적 기도에는 말을 쓰지 않지만 공회에는 필요상 말을 쓰게 된다.』
그는 고요한 가운데 고요히 신을 대망하는 것을 고조한다『신은 정숙히 계신다 그러므로 신을 이해키 위하여 우리는 정숙지 않으면 안된다 떠들고 소란한 마음 가운데는 신이 침묵하신다 만약 우리들이 그의 축복을 받고자 하면 그리스도의 발아래 엎디지 않으면 안된다 그때 우리 마음에 천국이 임한다 오순절 전에 사도들은 열흘동안 기다렸다. 성신으로 큰 은혜를 받고자 할 때는 큰 준비가 필요하다. 철학자들은 고요할 때 더 잘 사고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물며 더 깊은영에 있어서는 더 한층 필요한 것이 아니냐. 그러나 이 경험이 없는 사람은 정숙한 때를 게으른 때라 생각한다.』
귀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마음에 생각하며 기도하느냐? 고 묻는 말에 대하여『나는 처음은 항상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늘 그렇게 하지않는다. 그의 모습은 종종 나의 마음에 떠 온다. 바로 입신 중에서 항상 보는 그리스도의 영체 같은 것이다. 회심할 때와 같은 모양은 육안으로나 영안으로나 보지 못하나 어떤 때는 사이를 두고 비상히 강하게 그리스도의 임재를 감한다 만약 사람이 그리스도와 같이 되면 될 수록 그 임재를 느끼는 것이 많게 된다. 우리가 더운 나라에 있을 때 찬바람이 불면 우리는 대단히 상쾌함을 느낀다 그와같이 활동 중에서 보는 그리스도의 현재는 나를 이같이 신선케 한다.』
그는 기도의 형식에는 불찬성이다. 형식적 혹은 기계화하지 않도록 주의한다.『기도에 대하여 요구하는 바는 마음이오 책이 아니다. 한 사람이 죽게 되어 신부를 청하였다. 그는 기도책을 넣지 않고 왔다. 그래서 그 책을 가지려 간 동안에 그사람은 벌써 죽었다. 그때 거기 있는 사람들이 말하되『시고는 마음에서 나오지 않고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모양이다』하고 비웃었다.
기도, 묵상의 방법에 대하여『예를들어 말한다면 성경 요한복음 一장을 읽고 그 중 감격한 구절에 표를 하였다가 후에 그 속뜻을 알고자 힘쓴다. 이것이 큰 도움이 된다. 처음 믿은 후 나의 경험은 신약에서 하나이나 그 이상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구절을 택하여 거기 마음을 집중하였다. 이같은 방법은 종이 한 곳에 확대경의 초점을 보내는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우리들이 영적 사물 위에 사상을 모으고 의의 태양에 마음을 향할 때 태양의 빛과 열은 인생의 모든 진애를 태우고 신의 의지에 불합당한 것을 없이 하여 버린다.』
나는 개심한 신자에 대하여 어떤 말에서 인도되었느냐고 물어 보니 혹자는『무릇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 十一 28) 한 구절이라 하고 혹자는 바울의 말에서라 한다. 그런고로 사람을 따라 감응되는 구절이 다름으로 전장을 읽고 그 중에서 감응된 절을 빼어 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같은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것이 아님으로 남의 방법에 얽메이지 말고 각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에 의하면 좋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 약이 다른 것 같이 성질에 따라 그 받는 바가 다른 것이다.
4 전심 전력을 다하라
『우리는 기도에 충분한 시간을 허비하지 아니함으로 힘을 잃는다 한시간 이상 기도 시간을 가져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아침이 가장 좋은 때다 처음에 우리들은 주의 축복을 감하고 후에는 다만 축복뿐 아니라 어떻게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신다. 과학자는 어떤 과학적 발견에 여러 해를 허비한다. 하물며 영적 은혜의 묘경을 발견함에 아침 五분간만으로 어찌 될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은 十분간 三十분간 기도에 벌써 피곤하여 버린다 이같이 하면 하나님 앞에서 영원을 보내는 때는 어떻게 할것인가 우리는 이 세상에서부터 신과 같이 있는 습관을 붙이지 않으면 안되겠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신을 위하여 하려면 신과 함께 있지아니하면 안된다. 그런데 기도로라야 이것이 가능하게 된다. 바이오린에는 여러 가지 줄이 있으나 조화있는 음을 내려면 줄을 모두 죄어야 된다 사람의 마음에 사상도 이와같다 이것을 모두 그리스도에 죄여 맬 때 기도의 활이 놀낼만한 음을 내게 한다 우리가 만약 이 새로운 생활과 광명을 아직 얻지 못하였다면 힘써야 될 것이오 만일 이것을 얻었으면 신의 영광의 위하여 쓰게 하라 만일 이것을 쓰지 아니하면 잃어 버린다 동물학자의 말과 같이 타조는 처음 나래를 가지고 나왔으나 쓰지 아니하는 중에 퇴화하여 버렸다.』
「사두-」는 자기 희생이 없으면 기도로 가치가 적은 것이라고 한다 마치 소금이 그 형체를 녹여 잃어 버릴 때 맛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