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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막절 제도 규례 > 이한규목사




< 초막절 제도 규례 >

 초막절은 한 해 수확을 마치고 수확물을 저장한 후 7일 동안 지키는 절기입니다(13절). 오늘날로 말하면 추수감사절입니다. 초막절은 히브리 종교 달력으로 7월 15일부터 일주일간 지키는데 광야에서의 장막생활을 기념하고 한 해의 수확에 대해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때 모든 곡식을 창고에 저장한다는 뜻에서 ‘수장절’이라고도 하고 광야 체험을 위해 장막을 치고 7일간 지낸다고 해서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때는 히브리 민간 달력으로는 1월이고 오늘날의 태양력으로는 9-10월입니다.

 초막절은 히브리 종교 달력으로 신년을 의미하는 7월 1일의 나팔절이 지나고 10일 후인 7월 10일의 대속죄일이 지나고 다시 5일 후인 7월 15일에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의 개념으로 말하면 추수가 대략 끝나는 음력 8월 대보름(양력 9, 10월)에 지키는 우리나라의 추석과 같은 명절입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은 초막절에 함께 모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역사의식을 일깨우고 가족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초막절 규례를 통해 얻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함께 즐거워하십시오

 초막절에 수확의 기쁨을 노래하며 즐거워할 때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14절). 그처럼 소외된 자와도 함께 즐거워하려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축제가 벌어질 때 다른 한편에서 소외된 사람의 한탄이 있다면 허전한 축제가 됩니다. 잘산다는 것은 물질적으로만 잘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자를 도우며 잘 살려는 것이 진짜 잘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사는 사람도 혼자서만 잘살 수 있지 않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웃의 필요성을 느끼고 감사하면서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려는 것이 잘사는 것입니다. 늘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타인을 보고 자연만물을 보십시오. 잘살게 된 것을 어려운 자를 돌보고 어려운 자를 위해 나누라는 책임과 소명으로 알고 실천하는 것이 진짜 잘사는 것입니다. 성도의 어려움은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고 어려운 사람을 위한 나눔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으라고 주어진 어려움입니다.

2.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초막절에 예루살렘 중앙 성소에서 7일 동안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께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 복을 주신 것에 대해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15절). 하나님께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복을 주신 것에 대해 즐거워하며 감사하되 복 대신 고난을 주셔도 감사하십시오. 복을 주실 때 감사하는 평범한 감사에도 복이 주어지지만 고난을 주실 때 감사하는 비범한 감사에는 복이 더욱 주어질 것입니다.

 감사절을 지킬 때 한 해 동안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하십시오. 사랑은 사랑받는 대상을 존귀하게 만듭니다. 가족이 병들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고치려고 할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처럼 사람을 부요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부요한 것이고 사랑이 없으면 가난한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정신적으로 가난해지고 초라해지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면 정신적으로 부요해지고 풍성해집니다.

3. 절기를 힘써 지키십시오

 이스라엘의 20세 이상 남자는 1년에 3번, 즉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무교절(유월절), 칠칠절(오순절, 맥추절),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에 예루살렘의 중앙 성소에 와서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16절). 그때 성소로 와서 절기를 지키게 한 것은 성소 중심적인 국가 의식을 고취하면서 공동체와 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절기를 지키는 이유는 과거의 은혜를 기념하거나 기억하면서 공동체성을 강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때 떡을 떼어주시며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했고 잔을 주시면서 다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했습니다(고전 11:24-25). 그 실물교육을 통해 그들은 성찬식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큰 가족 공동체로서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됨을 중요성을 일깨웠을 것입니다. 거룩한 절기를 지키고 거룩한 의식을 행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가 공동체 영성의 훈련입니다. 기본적으로 가정과 교회를 귀하게 여겨야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주십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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