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집과 불행
입력 : 2017.03.27 17:10
▲이효준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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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자신이 고집이 세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일깨워야 합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사고를 깰 수 있도록, 이론적으로 충분히 이해되도록 설명을 해 준다면 그 사람은 고집을 부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뭔가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것을 자신이 부족할 때 무조건 밀어 붙이는 행위가 바로 고집입니다. 이는 서로의 관계에 금이 가게 하며, 불신만 쌓게 하는 근원이 됩니다.
물론 사람에게 일정 정도의 고집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집에도 여러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옳은 일에는 분명 '예'나 '아니요'라고 할 수 있는 고집이 필요합니다. 특히 신앙인으로서 '주님의 영광을 위한 고집'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피우는 고집은 '쓸데없는 누더기' 같은 것입니다.
성경 역사에는 한 사람의 고집으로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고통을 안겨준 사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당시 바로왕의 언행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 같으면 모세를 대신해 다른 사람을 뽑을텐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랑하셔서 그가 고집을 꺾고 명령에 따르도록 기다리셨습니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품고 바로에게로 나아갔습니다. "내 백성을 나가게 해 달라"고 합니다. 바로는 '웃기는 이야기' 같아, 이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재앙을 맞이합니다. 애굽 온 천지를 피바다로 만들어 버리자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듯 했으나 잠시 뿐, 그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열 가지 재앙을 다 겪은 후에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줍니다. 마지막 재앙으로 애굽에 있던 모든 장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후에야, 비로소 그는 고집을 내려놓습니다. 자신의 장자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은 바로왕은 이스라엘 민족이 빠져나간 후 더 참지 못했고, 그들을 뒤쫓다 세계 최강이던 자신의 기병들을 홍해 바다에서 몰살시키는 처참한 비극을 맛보았습니다. 강력했던 나라가 하루아침에 몰락한 비참한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소통 없는 '고집불통' 때문에, 많은 애굽의 백성들을 고아와 과부로 만들어 버린 슬픈 역사입니다.
이 밖에도 성경 역사 속 많은 선지자들 중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다, 뒤늦게 깨닫고 명령을 순종했던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인 요나를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
현 시대에도 그러한 고집불통의 정권이 있습니다. 북한에는 철통 같은 경계로 소통하지 않는 왕권을 행사하는 이들이, 많은 백성들을 굶겨 죽이거나 아오지로 보내 가혹한 노동을 시키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 지도자들은 사상을 검증하여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여 버립니다. 다른 사람의 충고는 아량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권력 강화에만 열을 올리는 그들의 고집불통 정치에, 반드시 최후 멸망의 날이 근접해 있음을 확신합니다.
지금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은혜의 시대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과연 하나님의 명령을 순탄하게 지키며 살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연금문제 부총회장, 총회장 선거에 늘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늘 싸우며 다투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바로 왕의 고집과 무엇이 차이가 나는지요?
교회마다 지도자들의 고집과 아집, 소통 없는 고집불통으로 인한 상처가 있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성도들의 몫이 되어, 신앙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주기도 합니다. 노회나 총회, 그리고 교회 당회나 제직회, 공동의회에서는 모든 성도들이 마음문을 터놓고, 편안하고 안락한 상태에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도자는 약자들의 편에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배려 차원해서 파악하여, 부족함을 서로 나누며 함께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서로 권면하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권력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정치하는 곳도 아닙니다. 믿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곳입니다. 고집은 고아와 과부, 노인들과 약자의 편에서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공생애를 보면, 고집으로 일관해 온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주님은 늘 먼저 물으셨습니다. 즐겨 소통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절대 군주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왕적인 모습도 봅니다. 교회 안에는 모든 분들이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내가 좀 가진 것이 많다, 내가 좀 지식이 많다 해서 우월감에 사로잡혀, 성도들을 멸시하거나 깔보는 행위를 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고집에는 교만이라는 못된 암덩어리가 내 안에서 살아 요동하므로, 나 한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무수한 고통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왕처럼 멸망의 길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
고집을 통해 미움과 증오로 이어지는 관계와 그 불편함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넉넉한 마음이 부족하여 믿음과 기도로 극복하고자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아 늘 힘들어하면서 살아갑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을 좀 더 깊이 소통하고 배려하며, 심지어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상처를 준 이들까지도 사랑 안에 품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중심적 사랑이라는 고집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나와 조금 다른 것을 틀렸다고 규정짓거나 판단하지 말고, 사랑의 대상으로 폭을 넓혀가며 상대방의 시선으로 나를 내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소한 것이라도 점검하면서 성도들의 괴로움과 아픔에 함께한다면, 고집 없는 소통과 열린 천국 문에서 맘껏 찬양하는 아름다운 교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효준 장로(부산 덕천교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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