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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복을 키우는 영성

  


 


    


작은 행복을 키우는 영성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는 행복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선한 목표입니다.
행복은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행복이란 예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요 10:10).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행복은 크고 많은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환경이나 외적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내면의 충만감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존재의 넉넉함을 통해 누리는 자족입니다.
환경을 초월해서 경험하는 신령한 기쁨입니다.
무엇보다도 행복은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때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입니다.

저는 꿈꾸는 목사입니다. 그래서 꿈꾸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꿈 이야기를 좋아하고, 꿈을 성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저는 매일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슴에 품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 정진하고 있습니다.
저는 꿈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꿈과 함께 잠자리에 듭니다.
 저는 사람들의 좌절된 꿈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꿈을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할 수만 있으면 큰 꿈을 꾸고, 큰 꿈을 성취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삶은 소박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작은 행복을 키우며 살기를 원합니다.

꿈꾸는 사람들은 꿈을 성취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잘못하면 성취 지향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성취 지향적인 삶을 사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성취해야 할 목표가 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성취해야 할 목표가 있다는 것은 소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망이란 변화에 대한 기대입니다.
소망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은 역경을 이겨냅니다.
고난을 비웃고 전진하게 됩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게 됩니다.
꿈을 품고 꿈을 성취하는 것이 이토록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꿈의 성취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때때로 성취는 공허를 주기 때문입니다.
큰 성취는 큰 공허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인생의 신비요, 인생의 모순입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을 상실한 느낌을 갖습니다.
가장 행복하리라고 생각했던 성취의 순간에,
하찮은 것을 위해 싸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찮은 것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정상에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상에 선 고독을 맛보게 됩니다.
정상의 자리가 얼마나 위험한 자리인가를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성취가 행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목표를 성취하기까지 행복을 보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취의 행복은 잠시뿐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후에 공허를 맛본다는 것입니다.

저는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참된 행복은,
외적인 데 있지 않고 내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큰 성취도 중요하지만,
작은 행복을 키우는 데
참된 행복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일상적인 삶 속에 진리가 있고,
작은 것 속에 큰 비밀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작고 세심한 데 관심을 가져주는
사랑이 깊은 행복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헨리 밀러는 “가녀린 풀잎같이 미약한 것이라 하더라도
주목을 받는 순간 그것은 신비롭고 경이로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하나의 우주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작고 세심한 것들은 작고 세심한 것에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가녀린 풀잎같이 미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주목을 받게 되면
신비로운 빛을 발하게 됩니다.
무한한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큰 꿈을 성취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크고 위대한 인물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지금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행복을 미루지 마십시오.
작은 행복을 키울 수만 있다면 풀벌레 소리나
순간 순간 달라지는 빛조차도 소중한 것입니다.
제가 행복한 것은 작은 자를
귀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작은 행복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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