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에 대한 세 가지,향락,윤리,믿음 킬케고르라고 하는 실존주의 철학자가 실존에 대한 세 가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실존이라는 말을 존재라 해도 좋고 생활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첫째로는 탐미적 실존입니다. 즉 탐미적인 인간입니다. 이들은 교회는 나와도 향락주의에 빠진 교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예배를 드린다 할지라도 이중에는 예배를 드리는 것 보다 설악산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말입니다. 향락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비가 오면 '재수 없다 예배당에나 가자'라고 예배당에 오는등 이런 식으로 믿는 교인들의 믿음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향락주의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둘째로는 윤리적 실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보다 오히려 윤리 도덕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윤리 도덕이 더 귀하다면 어떤 면에서는 공자의 유교가 더 나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들의 생활에 윤리가 있어야 되고 도덕이 귀하다 해도 믿음 이상 일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음을 말하면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윤리와 도덕 그렇지 않으면 교양을 이야기하면 오늘 새로운 소리를 들었다고 좋아합니다. 그런 새로운 소리를 듣고 싶으면 공자한테 찾아가지 무엇을 하러 교회에 나와 앉아 있습니까? 윤리는 윤리일 뿐이지 신앙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윤리적인 실존을 이야기합니다. 셋째로는 종교적인 실존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가장 귀한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이 전부 그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늘 나라도 바로 그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 번째 단계에서 믿고 생활하고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라는 것이 본문입니다 **어제 주일 오후 4시, 후드 팬추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