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 사랑, 십자가?’
A.W. 토저는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한 인간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거부할 때, 기독교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면, 이것이야 말로, 바로 십자가
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십자가의 의미는
철학과 이성의 바탕을 둔 세속적 학문과 과학적 합리성으로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영적의미는 역설적 사랑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A.W. 토저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고 믿지만, 그전보다 더 충만한 삶을 누리며,
또한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이것은 세상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십자가 신
앙의 신비일 수밖에 없다. 사순절을 지내며, 다시 한 번 역설적 사랑의 현장, 십자가의 의
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첫째, 십자가는 가장 흉악한 사형도구이다. 아무나 십자가에서 죽을 권리?가 있는 것은 아
니다. 오직, 극악한 일을 저지르거나, 정치적인 배반을 한 자만이 이 사형도구에서 죽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게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성경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가감없이 단언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3:23) 어느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할말을 잊을 수 밖에 없다.
둘째,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족되었다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는 단호히
벌을 내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시다. 그러면서도 당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와 사
랑이 동시에 실현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분 스스로가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는 길 밖
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으로서 자신의 공의와 인간을 향한 사랑을 동시에 충족하시었다.
마지막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아, 우리역시 역설적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
다. 십자가의 역설을 배운 그리스도인은, 안전하기 위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며,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또한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하고, 가난한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을 부유하게 하는 능력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의 역설적인 삶은 다음 한마디로 귀결 될 수 있으리라.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그분에 대하여 공포심을 갖지 않는다”
/최재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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