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하는 당신
설날 연휴동안
층간 소음 분쟁으로
살인과 방화를 저지른 범죄가 잇따르자,
“아니 층간 소음 문제로
그런 난폭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처럼 욱하는 범죄가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에는 같은 빌라에 사는
여성으로부터
‘못생겼다’라는 말을 들은 남성이
참지 못하여
칼로 죽이는 사건이 있었고,
최근에는
술김에 ‘욱’해서 던진 맥주잔으로
부하 한쪽 눈이 실명되어
인생 파장을 맞은
여의도 증권 맨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상하게도
최근 일어나는 사건들은
이렇듯 욱하는 순간을 참지 못하여
일어나는
우발적 범죄들이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는 이제
참을성 없고
충동적인 사회가 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뒤따르고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범죄를
‘충동 조절 장애’로 보고 있다.
이것은 본능적 욕구가 지나치게
강하거나
자기방어 기능이 약해져서
스스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정신적 장애를 말한다.
이런 장애는
이성적 판단을 관장하는
전두엽 기능이
순간적으로 마비되면서
자신이
저지르는 행동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예측하지 못한 채
본능적인 행동을
낳게 한다.
문제는 왜 이런 일들이
최근 들어
더 빈번하게 일어난단 말인가.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여러 관계 속에서
쌓여졌던 갈등들이 순간적인 화가
폭발하면서 분노 발작의
방아쇠를 당겨버려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간에
우리 사회가 이토록 참을성 없고
충동적인 사회가 되었는지
근본적인 바탕을
더듬을 필요가 있는 것은
그래야만
우리 자신도 욱하는 감정을
자제할 수 있고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오늘의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고 본다.
지금 이 사회가 갖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 중
가장 큰 기둥은 이기주의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빈부격차, 경쟁의식,
님비현상, 각종 범죄의 발생 등
모든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이기주의가 변질되어
나타난 개인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이기주의의 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웃이 죽어도 모르는 일들이
일본이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우편물이 쌓이고
악취가 진동하면 그제야
사람이 죽었음을 알 정도로
우리 사회는
나밖에 모르는 극심한
이기주의 세상이 되었기에
욱하는 한국인이
늘어가고만 있을지 모르겠다.
이기주의만큼 고질적인
한국인의 병은 빨리빨리 문화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운 단어중 하나가
‘빨리빨리’라고 한다.
심지어 대학생들조차도
한국에 대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빨리빨리’가 뽑혔다니
외국인들이
그런 말을 한다고 서운해 할 것도 없다.
식당엘 가도 택시를 타도
미장원에 가도 ‘되도록 빨리’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정말 급해서가 아니라 습관이다.
어느새 ‘빨리빨리’는
한국인의 문화로 굳어졌다는 사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업무도 빨리빨리,
공부 진도도 빨리빨리,
경제성장도 빨리빨리는 좋았을지 모르나,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추구하는
인생관이 문제다.
아울러 ‘대충대충’이라는 병이
생기면서
기다림, 배려, 용서라는 열매가
사라지면서
여유 없이 살아가기에
이 땅엔
낙태도 빨리빨리,
자살도 빨리빨리,
인생도 빨리빨리 결말을 보려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인이 욱하는 성격은
이기주의와 빨리빨리 문화와 함께
분노사회가 1등 공로자였다.
작년 연말 어느 신문에
‘한국사회의 분노의 숫자’ 도표에는
저임금 노동자,
노인빈곤,
자살률,
투표율을 통해
이 사회의 분노를 가름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이글거리는
용광로처럼 ‘화’가 가득 차 있다.
어느 나라든 21C가 되면서
저성장 시대 속에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 좌절감,
빈곤의 대물림이 고착화되어가고
희망 없는 사회가 되어가면서
내면의 분노는
가장 유치하고 어리석은 방법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절망과 체념은
분노를 투사할 대상을 찾는다.
현실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해소할 창구를 찾는다.
발악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막다른 골목에서
욱하는 한국인은 늘어만
가고 있다.
욱하는 한국인은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무너졌다.
욱하는 성질을
다스리지 않고는 자신도 모르게
하루아침에
딴 세상이 될 수 있다.
유대인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키소(돈주머니), 코소(술잔), 카소(분노)라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주머니를 보면
대충 사람을 알 수 있고,
술잔은 돈주머니보다
더 쉽게 사람을 평가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사람의 평가는
분노에 있다.
술잔은 비록 작지만
그 잔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담겨있다면,
분노와 인내는
그 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거울이기에
가장 확실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부모는
자녀들에게
자기감정을 관리하는 조절하는
지혜를 가르쳐야만 한다.
영어, 수학과 비할 수 없는
생존 기술이
바로 자기감정관리이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디에 있든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이 솟구쳐 오를 때
생각을 빨리 바꿔야 한다.
감정 관리는 최초의 단계에서
성패가 좌우된다.
심적 자극에서 벗어나려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
15초만 지나면
분노의 호르몬이 없어지기 때문에
심호흡을 깊게 마시면서
잠시 동안 기다리면서
이렇게 되새겨야 한다.
‘세상만사 새옹지마잖아’,
‘그 사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좋아 까짓 것
인생 뭐 있나 다 그런 거지 뭐...’
이런 생각으로 자신을 세뇌시키면
화는 지나가고
폭풍 뒤에 평온한 온기가 느껴진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지금 이 상황이
내 건강과 삶을 바꿀 만큼
중요한 일인지를
곰곰이 따져봐야만 한다.
선배가 카톡으로
‘이 네 가지를 알면
인생살이가 한결 수월하다’라는
글을 보내왔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첫째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청년에겐 자기일 아니라고 팔짱을 끼지만
노인에겐 죽음은
버스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림과 같다고 했다.
둘째는 회자정리(會者定離)다.
만나면 헤어짐이
세상사 법칙이요 진리다.
인생살이가 쉼 없는
연속적인 흐름인 줄 알 때부터
인생이 보이기 시작한다.
셋째는 원증회고(怨憎會苦)다.
인생은 미운사람, 싫은 것, 바라지 않는 일들을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것,
내가 피하고 싶은 것들이
나를 찾아올 때 긍정적으로 헤쳐 나가야만
인생의 파고에 휩쓸려 가지 않는다.
네 번째는 구득불고(求得不苦)다.
내가 구하는 일들을 얻기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밑 빠진 독처럼
내 소원을 채울 수가 없기에
마음을 털어 비워가야만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인생살이가
한결 쉬워지는 법이란
죽음을 염두 해 두고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말이었다.
내가 떠나가면
모든 것이
그만인 것이 인생이것만
우리는 알면서도
왜 포기하지 못하는가.
다 욕심이다.
중독에 빠진 일도
화가 나는 일도
가슴에 맺히는 일도
다 욕심이다.
타인이 욕심을 내면
우리는 추하다고 비난하지만
욕심 많은 돼지는
다름 아닌 바로 내 자신이었다.
지금은 욱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미워할 때가 아니다.
버려야 한다.
끊어야 한다.
나누어야 한다.
그래야만
언제 그 날이 된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여,
아직도
철부지 아이처럼
욱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십자가로
구원받았건만
아직도
십자가가 뭔지를 모르는
모양입니다.
내 만족
내 의지
내 의
내 연민의 굴에서 나와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2013년 2월 23일 강릉에서 피러한 올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이요셉님, 투가리님, 포남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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