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과 내리사랑 최청원 / 내과전문의 . 오래 전 인턴으로 근무할 때였다. 의무담당 과장인 닥터 더허티로 부터 호출이 왔다. 인자한 인상을 가진 아이리시계통의 백인 의사다.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내과 전염병과 부서에서 병리 부서로 옮기라고 했다. 전염병과에서 인턴을 담당하는 젊은 내과의사가 나와 영어 소통이 안돼서 가르치며 함께 일하기가 힘들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영어가 별로 필요하지 않는 병리부서에서 현미경이나 보면서 일과 영어를 익혀 나가라는 것이다. 미국에 갓 와서 영어가 부족해도 대신 정직하고 부지런하면 그런대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영어에 능통한 14명의 다른 인턴들과 경쟁하며 가진 것이라곤 근면밖에 없어 그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하였던 나로서는 참담할 뿐이었다. 내 표정에서 좌절과 실망을 읽었는지,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방과 후 30분씩 매일 일대일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같이 영어공부를 하자고 제의했다. 내과 교과서를 가지고 와 그의 앞에서 읽으라고 했다. 그 바쁘고 귀중한 시간을 할애 해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 의아해 하는 내게 그는 말했다. “나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는가. 가랑비가 하루 종일 내렸었지. 인턴 관사 앞에 이삿짐도, 부인도 없이 혼자 비에 젖은 남루한 옷차림으로 이상야릇한 신발(한국 고무신)을 신고 있었지만 넌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켰다. 그때 네가 남긴 강한 인상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고, 그게 너를 돕고 싶은 이유다” 닥터 더허티와 인턴 관사 앞에서 만나 안내 받기로 했던 그날은 어렵게 인턴 자리를 구해 필라델피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