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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정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

[ 백정에게 찾아오신 하나님 ] 7일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주일이지만, 오늘은 좀 거룩해져 보려한다. 생각해보니 벌써 방영 9년차인 드라마지만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라는 드라마에는 내가 참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 "누구의 인생에나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캬~ 1893년 조선, 박성춘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직업은 백정. 당시 백정은 사람이 아니었다. 호적도 없고, 이름도 되는대로 불렸으며, 길을 걸을 땐 허리를 굽혀야 했고, 갓도 쓸 수 없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그냥 '도살장의 고기 써는 기계' 취급을 받았다. 어느 날 박성춘이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백정 놈 죽나 보다" 하며 거적때기에 말아 버리려 했고 동네 의원조차 "천한 몸에 손댈 수 없다"라며 진료를 거부했다. 그가 죽어가던 그 밤, 낡은 초가집 문이 열리고 한 외국인이 들어왔다. 고종 황제의 주치의였던 캐나다 의사, 올리버 에비슨(Oliver Avison)이었다. 왕의 몸을 만지던 그 귀한 손이, 똥오줌과 피고름으로 뒤범벅된 백정의 몸을 덥석 잡았다. 에비슨은 며칠을 그를 치료했다. 무어라는 선교사의 부탁이 있었다지만 그가 어떻게 황제의 주치의면서 며칠씩 밖에 나올 수 있었는지, 왜 하필 그였는지 찾아봐도 기록이 없다. 다만 박성춘이 깨어났을 때, 에비슨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일어나세요. 당신은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순간이 아마 박성춘의 인생에 신이 머물다 간 순간 아닐까?. 그는 병만 나은 게 아니라 '영혼'이 구원받았다. 감격한 박성춘은 이후 '관민공동회' 연단에 올라 수천 명의 양반들 앞에서 이렇게 외친다. "나 같은 짐승도 사람 대접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귀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조선 최초의 백정 연설이다.) 그리고 기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박성춘은 자신의 아들만큼은 사람답게 살게 하겠다며 아들에게 '봉출'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에비슨에게 맡겼다. 그 아들이 바로 훗날 박서양. 세브란스 의학교 1회 졸업생이자, 역사상 최초 면허 의사가 되어 자신의 아버지처럼 병든 사람들을 구했다. 가장 천한 신분, 가장 위급한 순간, 가장 귀한 손길이 닿았던 그 짧은 시간. 그게 바로 '도깨비' 드라마에서 말한 '기적'이 아니었을까. ● 기록 "백정 박성춘이 장티푸스에 걸려 위독해지자, 무어 선교사의 부탁을 받은 에비슨 원장이 수차례 왕진하여 그를 완치시켰다." "박성춘은 1898년 관민공동회에서 백정 신분으로는 최초로 개막 연설을 했으며, 백정 차별 철폐 운동을 이끌었다." ● 후일담 박성춘의 아들 박서양(朴瑞陽)은 에비슨의 도움으로 제중원 의학교(세브란스 전신)에 입학했다. 1908년 제1회 졸업생으로 의사 면허(면허번호 1번)를 취득했으며, 이후 모교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일제강점기에는 간도로 넘어가 독립운동가들을 치료하는 군의관으로 헌신했다. 백정의 아들이 한국 의학의 아버지가 된 이 드라마틱한 사건은 한국 근대사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꼽아도 괜찮치 않을까? - 박주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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