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문화에 관한 연구 내용의 강연을 발췌한 것입니다. 흥미있는 글입니다.>
**한국의 젓가락 문화^^
저는 '리처드 폴먼'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30년째 문화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 전공은 '음식 인류학'과 '인지 인류학'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떤 도구로 먹느냐가 제 연구 주제였습니다. 젓가락, 포크, 숟가락, 손으로 먹는 문화까지 모두 제 연구 영역이었죠.
지난 30년간 저는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를 오가며 현장 조사를 진행해왔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식문화는 이미 여러 편의 논문으로 정리했습니다. 그들은 예측 가능한 문화권이었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달랐습니다. 한국은 늘 데이터에서 튀는 값이었습니다.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설명도 되지 않았죠.
세계 강대국과 식사 도구를 연결시키는 건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 논리니까요.
*먼저 포크를 생각해 봅시다.
포크는 서양 문명의 대표적인 식사 도구입니다. 구조가 단순하죠. 매개의 날카로운 네 갈래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습니다. 사용법도 간단합니다. 음식을 찌르면 됩니다. 손목을 약간만 움직이면 되고 힘도 거의 들지 않습니다. 필요한 근육은 손목과 팔뚝 일부뿐입니다. 단순 동작의 반복이죠. 뇌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이제 젓가락을 봅시다.
젓가락은 완전히 다른 도구입니다. 2개의 막대를 동시에 제어해야 하죠. 하나는 고정하고 다른 하나는 움직여야 합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아십니까? 지렛대 원리가 작동한다는 겁니다. 엄지와 검지 중지가 정확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손가락 끝에 압력이 손목으로 전달되고 손목의 각도가 팔 전체의 균형을 결정합니다. 하나의 연쇄 작용이죠.
그런데 한국의 젓가락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한국의 젓가락은 쇠로 만들어서 무게가 있습니다. 나무젓가락과 비교하면 2배에서 3배는 무겁죠. 그리고 표면이 매끄럽습니다. 나무처럼 마찰력이 없습니다. 힘을 과하게 주면 음식이 바져나가고 힘을 덜 주면 음식을 놓치게 됩니다.
강의실이 점점 더 조용해졌습니다.
더 중요한 건 형태입니다. 한국의 젓가락은 납작합니다. 둥근 젓가락보다 훨씬 다루기가 어렵습니다. 손가락 사이에서 자꾸 돌아가려 하거든요. 그걸 잡아두려면 계속해서 미세한 압력을 조절해야 합니다. 이 도구로 밥을 먹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미끄러운 반찬을 집어야 합니다. 국물 속에 있는 젖은 음식도 집어야 하죠. 매 순간 판단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힘을 줄 것인가? 어떤 각도로 접근할 것인가? 언제 압력을 풀 것인가?
한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님 그렇다면 그건 그냥 불편한 도구 아닙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맞습니다. 불편한 도구죠. 하지만 그 불편함이 핵심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이 불편한 도구를 사용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 매일 반복되는 훈련이죠. 손가락 끝의 감각을 날카롭게 만드는 훈련입니다. 압력을 조절하는 훈련입니다. 실수를 수정하는 훈련입니다.
이건 단순한 식사 습관이 아닙니다. 이건 하루 세 번 반복되는 고강도 손과 뇌의 협응 훈련입니다.
이 훈련은 어릴 때부터 시작됩니다. 태어나 숟가락을 잡기 시작할 때부터 이 무겁고 미끄러운 도구를 쥐게 되죠. 처음엔 제대로 짚지 못합니다. 떨어뜨립니다. 실패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매일 반복하니까요. 수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손끝의 감각이 극도로 정교해집니다. 미세한 압력 차이를 본능적으로 알게 됩니다. 순간적인 판단이 몸에 배입니다.
"이런 불편한 도구를 쓰는 나라가 한국뿐일까요?"
제 질문이 끝나자마자 한 아시아계 한 학생이
"교수님 중국과 일본도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왜 한국만 특별하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확히 제가 기다리던 질문이었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바로 그 지점부터 시작해야 하죠."
저는 가방에서 다른 젓가락들을 꺼냈습니다. 중국식 젓가락과 일본식 젓가락이었습니다.
*중국 젓가락부터 봅시다.
길고 둥근 나무 젓가락 중국 젓가락은 길이가 25cm 정도 됩니다. 한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길죠. 재질은 주로 나무나 대나무입니다. 가볍고 표면에 마찰력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중국의 식사 문화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중국은 원탁 문화죠. 큰 테이블에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습니다. 내 앞이 아니라 테이블 중앙에 음식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젓가락이 길어야 합니다. 멀리 있는 음식을 집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중국 음식은 기름진 요리가 많습니다. 볶음 요리 튀김 요리가 주를 이루죠. 그래서 마찰력이 필요합니다. 미끄러운 금속보다는 나무가 적합한 겁니다.
*일본 젓가락은 또 다릅니다.
짧고 끝이 뾰족한 젓가락입니다. 길이가 짧습니다. 20cm 정도죠. 그리고 끝이 아주 뾰족합니다. 왜 그럴까요?
일본은 독상 문화입니다. 각자 자기 앞에 놓인 밥상에서 식사하죠. 멀리 있는 음식을 집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짧아도 됩니다. 그리고 일본 음식의 특징은 생선입니다. 회, 구이, 조림, 할 것 없이 생선 요리가 많죠. 생선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그 가시를 발라내려면 끝이 뾰족해야 합니다. 정확하게 찔러서 분리해야 하니까요.
학생들이 진지하게 듣고 중국 젓가락도 일본 젓가락도 모두 이해가 됩니다. 환경이 도구를 만들었고 식문화가 젓가락 형태를 결정했죠.
*그런데 한국 젓가락은 다릅니다.
재질부터 다릅니다. 한국 젓가락은 쇠로 만들었죠. 그래서 무겁습니다. 나무 젓가락에 비해 두~세 배는 무겁습니다. 그리고 납작합니다. 둥근 형태가 아니라 평평하게 눌린 형태죠. 표면은 매끄럽습니다. 마찰력이 거의 없습니다. 편의성으로 설명이 됩니까? 안 됩니다. 무겁고 미끄러우니까요. 효율성으로 설명이 됩니까? 역시 안 됩니다. 음식을 집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한 학생이 "그럼 왜 그런 형태로 만든 겁니까?"
"바로 그겁니다. 한국 젓가락은 편의성으로도 효율성으로도 식문화의 특성으로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국 젓가락은 도구로서 보면 비효율적입니다.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도 수백 년간 이 형태를 유지해왔습니다. 바꾸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일반적인 젓가락 문화권이 아닙니다. 젓가락 문화권의 예외값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이런 비효율을 선택했을까요? 이제 비교 대상을 바꿔야 합니다. 도구가 아니라 생활을 봐야 하죠."
저는 강의 자료를 넘겼습니다.
"한국 식문화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국물입니다. 찌개, 국, 탕, 거의 모든 식사에 국물 요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발효 음식이죠. 김치, 된장, 간장, 그리고 삭히고 발효시키는 음식들입니다. 이런 음식을 나무 젓가락으로 매일 먹는다고 상상해 봅시다. 뜨거운 국물이 나무에 스며듭니다. 김치의 양념이 나무에 배어듭니다. 된장찌개의 냄새가 남습니다. 중국식 나무 젓가락인 나무는 다공성 재질입니다. 구멍이 많다는 뜻이죠. 수분을 흡수합니다. 냄새를 머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변색되고 세균이 번식합니다. 아무리 씻어도 완벽하게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주 바꿔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몇 주에 한 번씩 새 젓가락으로 교체해야 하죠."
"하지만 한국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쇠를 선택했습니다. 쇠는 흡수하지 않습니다. 냄새가 배지 않습니다. 국물에 담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끓는 물에 넣어 소독할 수 있습니다. 수십 년을 써도 처음 그대로죠."
저는 화면을 다시 넘겼습니다. 조선 시대 왕실 수라상 사진이 나타났습니다.
"금속 식기 문화는 상류층과 왕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을 감지하기 위해서였죠. 은 젓가락 (은수저)이 그래서 생긴 겁니다. 음식에 독이 있으면 은이 변색되니까요. 일반 백성들은 은을 쓸 수 없었습니다. 비쌌으니까요. 대신 무쇠와 놋쇠를 썼습니다. 그렇게 금속 식기 문화가 전 계층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청결이었죠. 한국은 편리함이 아니라 위생을 선택했습니다. 가벼움이 아니라 청결을 선택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왜 납작할까요? 왜 둥근 형태가 아니라 평평하게 눌린 형태일까요?
한국의 전통 생활 방식을 봐야 합니다.
한국은 좌식 생활입니다.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었죠. 밥상은 낮은 소반이었고 부엌에서 밥상을 차려 방으로 날라야 했습니다. 문지방을 넘고 좁은 복도를 지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밥상을 들고 이동하는 겁니다. 밥상이 흔들립니다. 그릇들이 덜컹거립니다.
만약 쇠젓가락이 둥글다면 어떻게 될까요? 둥근 쇠 젓가락은 밥상 위에서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조금만 기울어져도 굴러서 바닥에 떨어지죠. 그래서 납작하게 만들었습니다. 평평한 면이 밥상에 닿도록 만든 겁니다. 이 작은 디테일 하나에도 생활이 담겨 있습니다. 밥상을 나르는 문화, 좁은 공간을 오가는 생활, 흔들림 속에서도 음식을 지키려는 태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쇠젓가락은 취향이 아닙니다. 생활의 결과입니다. 불편함을 감수한 선택의 흔적이죠. 그리고 이 불편함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생활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결국 산업을 만드니까요.
반도체, 조선, 방산, 자동차,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죠. 그런데 이 산업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기술입니까? 아닙니다. 기술은 배울 수 있습니다.
자본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라면 다른 나라들도 했을 겁니다.
답은 손입니다. 미세한 압력을 조절하는 손, 반복 작업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손,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손 말입니다.
반도체 회로는 머리카락 굵기에 1,000분의 일입니다. 나노m 단위죠. 이 미세한 회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계가 모든 걸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기계를 세팅하는 건 사람입니다. 기계의 오차를 감지하는 것도 사람이고 불량을 걸러내는 것도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뭡니까? 손끝의 감각입니다. 공정 하나하나를 체크할 때 필요한 촉각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 순간의 판단력이죠. 이게 어디서 왔을까요? 매일 아침, 점심, 저녁, 무겁고 미끄러운 세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며 단련된 손끝에서 왔습니다.
이제 의료로 눈을 돌려 수술실 사진이 나타났습니다. 수술은 손끝 감각의 극한입니다. 피부를 절개하고 혈관을 봉합하고 신경을 연결하는 모든 과정이 손으로 이루어지죠. 칼을 쥐는 힘 바늘을 잡는 각도 실을 당기는 강도 모두 mm 단위의 정밀함을 요구합니다. 한국 의료진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가 뭡니까? 정교함입니다. 수술 후 흉터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봉합합니다. 미세혈관을 연결하는 재건 수술에서도 탁월하죠. 손의 감각을 믿는 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골프를 생각해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힘의 스포츠라고 착각합니다. 세계 치면 멀리 간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아닙니다. 골프는 터치의 스포츠입니다. 공을 치는 순간에 손 감각 그립을 쥐는 압력 클럽 페이스가 공에 닿는 각도, 이 모든 게 손끝에서 결정되죠.
거리감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m와 110 m를 구분하는 건 힘이 아니라 손의 기억입니다.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이 세계 랭킹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게 우연일까요? 타고난 재능일까요? 손 감각의 누적 결과입니다.
어릴 때부터 쇠 젓가락으로 밥알 하나하나를 집으며 길러진 미세 조절 능력 미끄러운 반찬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조심하며 체득한 압력 감각 매 끼니 마다 반복되며 몸에 배인 정밀함. 이 모든 게 골프채를 잡는 손으로 이어진 겁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쇠젓가락으로 단련된 손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는 손이 되었고, 수술실에서 사람의 몸을 다루는 손이 되었고, 골프장에서 공을 다루는 손이 되었습니다. 밥상에서 시작된 훈련이 국가의 경쟁력이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능력을 세계는 과연 가만히 두었을까요? 이제 분석이 아니라 관찰을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제가 지난 몇 년간 본 광경이 있습니다.
화면에 한 영상이 재생되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 식당에서 쇠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으려 시도하는 모습이죠. 영상 속 사람들은 젓가락을 쥐고 있었지만 손놀림이 어색했습니다. 음식을 집으려 하면 미끄러져 떨어졌고 다시 시도하면 또 놓쳤습니다. 몇 번 반복하다 결국 웃으며 포크를 찾았습니다. 재미있어 보입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발견했습니다.
왜 이렇게 간단한 도구를 다루지 못하는 겁니까? 막대기 2개입니다. 복잡한 기계도 아니고 정교한 장비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실패할까요? 연습이 부족해서그런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연습의 문제가 아닙니다.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입니다. 하루 이틀 연습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 뜻이죠. 일주일을 연습해도 한 달을 연습해도 한국 사람들만큼 자연스럽게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 사람들은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쇠젓가락 사용법을 배운 게 아닙니다. 자라면서 몸에 밴 겁니다. 서너 살 때부터 매일 하루 세 번씩 수년간 반복하며 체득한 겁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손이 움직이는 수준까지 온거죠.
문화는 따라할 수 있습니다. K-POP을 듣고 드라마를 보고 한글을 배울 수 있죠. 하지만 생활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생활은 시간 속에서 천천히 몸에 배어지는 것이니까요.
한국의 쇠젓가락 문화는 부모에서 아이로 전해집니다.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매일 밥상 앞에 앉히고 손에 쥐어주고 반복하게 만들 뿐이죠. 그렇게 세대를 거쳐 이어져온 겁니다.
저는 마지막 문장을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세계는 한국의 기술을 배우려 합니다. 반도체 공정을, 조선 기술을, 의료 술기를 배우려 하죠. 하지만 그 기술을 만든 생활까지는 가져가지 못합니다.
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시작은 어디였을까요? 답은 다시 밥상입니다.
강의가 끝났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한국의 어느 저녁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오래된 기억 속 장면이었죠.
텔레비전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거실 낮은 밥상 위에 하나씩 올라오는 반찬들 그리고 아이 앞에 놓인 쇠젓가락 한 쌍의 밥상머리였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젓가락을 가르치며 다른 것도 함께 가르쳤습니다.
기다림을 가르쳤습니다.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드시기 전엔 먹지 않는 것 그게 순서라고 했죠.
절제를가르쳤습니다. 많이 짚지 말고 적당히 먹으라고 했습니다.
배려를가르쳤습니다. 좋은 반찬은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버티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새 젓가락은 아이 손에 잘 맞지 않았습니다. 무거웠고 미끄러웠습니다. 밥알을 집으려 하면 자꾸 떨어졌고 반찬을 집으려 하면 손가락이 아팠습니다.
울고 싶었을 겁니다. 포기하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부모들은 포기하게 두지 않았습니다. 매일 밥상 앞에 앉혔고 다시 쥐게 했고, 계속 연습하게 만들었습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렇게 해야 하니까 반복하게 했을 뿐이죠.
하루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루 세 번이었습니다. 1년, 2년, 5년, 10년, 그렇게 시간이 쌓였습니다. 그 반복 속에서 아이의 손끝이 달라졌습니다. 뇌가 달라졌습니다. 인내심이 생겼고, 집중력이 길러졌고, 정밀함이 몸에 배었습니다. 밥상에서 시작된 태도가 학교에서 집중력이 되었고, 공장에서 정밀함이 되었고, 산업에서 신뢰가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쇠 젓가락을 집어들었습니다. 한국을 만든 것은 위대한 전략도 아니었고 기적 같은 정책도 아니었습니다. 한국을 만든 것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아이 앞에 놓인 30g의 쇠젓가락과 그것을 끝까지 가르친 어른들이었습니다.
한국은 천재를 키운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버티는 법을 가르친 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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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한국 젓가락의 특징과 서양 포크와의 비교
리처드 폴먼 교수의 연구 배경 및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
- 리처드 폴먼 교수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30년간 문화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음.
- 그의 주 연구 분야는 음식 인류학과 인지 인류학으로, 식사 도구의 중요성을 강조.
- 유럽, 중동, 동아시아 현장 조사를 통해 한국 문화가 예측 불가능한 특이점으로 인식됨.
** 젓가락과 포크의 형태와 기능상의 차이점
- 쇠젓가락은 무겁고 매끄러우며 납작한 형태로, 미세한 압력 조절과 손가락 끝의 정교한 감각을 요구하는 도구
- 포크는 단순한 구조와 사용법으로 손목과 팔뚝 일부 근육만 사용하는 반면, 젓가락은 두 막대 제어와 지렛대 원리 활용
- 한국 젓가락의 불편함은 손과 뇌의 협응 훈련을 반복하며 손끝 감각을 날카롭게 만드는 핵심 요소
** 동아시아 젓가락 문화권별 특징
- 중국 젓가락은 원탁 문화에 맞춰 길이가 길고 나무 재질로 마찰력이 있어 기름진 음식을 집기 용이
- 일본 젓가락은 독상 문화에 맞춰 짧고 끝이 뾰족하여 생선 가시를 발라내기 적합
- 한국 젓가락은 무겁고 납작하며 매끄러운 쇠 재질로, 편의성이나 효율성보다는 다른 이유로 형성
** 한국 쇠젓가락의 비효율성 선택 이유
- 한국 식문화의 국물 및 발효 음식 특성상 나무 젓가락은 위생상 문제가 있어 쇠젓가락이 청결 유지에 유리
- 쇠젓가락은 흡수성이 없어 냄새가 배지 않고 소독이 용이하여 수십 년 사용 가능
- 조선 시대 왕실의 독 감지용 은수저에서 시작되어 청결을 중시하는 금속 식기 문화가 전 계층으로 확산
** 한국 쇠젓가락의 납작한 형태의 기능적 이유
- 한국의 좌식 생활과 낮은 소반 사용 문화에서 밥상을 옮길 때 둥근 젓가락은 굴러 떨어질 위험 존재
- 납작한 쇠젓가락은 밥상 위에서 안정적으로 고정되어 이동 중에도 떨어지지 않도록 설계
- 작은 디테일 하나에 밥상을 나르는 생활 방식과 흔들림 속에서 음식을 지키려는 태도가 담겨 있음
** 쇠젓가락 훈련이 한국 산업 및 인재에 미친 영향
- 쇠젓가락으로 단련된 손끝 감각은 반도체, 조선, 방산, 자동차 등 한국 주력 산업의 정밀 작업에 기여
- 미세한 압력 조절, 반복 작업 수행, 실수 방지 능력은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핵심 요소
- 수술실에서의 정교함과 골프에서의 섬세한 터치 감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의 뛰어난 손 감각으로 발현
** 한국 쇠젓가락 문화의 계승과 의미
- 외국인들이 쇠젓가락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단순히 연습 부족이 아닌, 오랜 시간 동안 몸에 밴 생활 습관의 차이
- 한국인들은 쇠젓가락 사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매일 반복하며 체득하여 무의식적인 수준에 도달
- 쇠젓가락 문화는 부모에서 아이로 세대를 거쳐 전해지며, 기술을 넘어 생활 방식과 인내, 집중력, 정밀함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
- 리처드 폴먼. 하버드 대학교 문화 인류학 교수 -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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