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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삼십년" /박인철

"잃어버린 삼십년" "Nothing of me is original. I am the combined part of everyone I have ever known.".....Chuck Palahniuk (b.1962, American author) '내게 오리지날이란 것은 있을 수 없고 나는 그동안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의 부분들이 녹아있는 존재다.' 내가 스키에 입문한 것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인 1966년. 우리가 훈련 중이면 간혹 산장을 찾아오시던 어른들이 계셨는데 당시 차림새도 남루한 듯 보였고 살림살이도 여유가 없는 듯 했다. 그런데 스키계의 원로들은 이분들을 아주 깍듯이 정중하게 모시는 것이었다. 나중 알고보니 이분들은 일제시대 때부터 스키를 타시던 분들로 그분들이 열악하나마 면면히 스키계를 지탱해 왔으므로 우리도 스키를 훈련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나도 이분들을 귀히 여기게 되었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스키계의 후배 하나가 과거에 자신을 핍박하던 선배에 대한 증오심을 토로하던 중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네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내 말에 그것 참 맞는 말씀이라는 말과 함께 불평의 말을 접어넣는 것을 경험했다. 우리는 백지 한 장으로 태어났으며 누군가 계속해서 그 위에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그렸고 좀 커서는 스승들이 그렸으며 또 친구들이 잔뜩 그림에 개칠을 했는가 하면 반려자라는 이름의 여인 하나가 그림을 더하고 있으며 주변상황이 또 그림에 덧칠을 가하고 있다. 이렇게 '나' 라는 작품은 매일 새롭게 탄생하고 있으며 그림을 그려 온 사람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아련히 남아있으나 좀 더 선명하게는 사진 속에 남아있다. 휴대전화를 어쩔 수 없이 초기화하면서 휴대폰은 의외로 많은 면에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옛날에는 주소나 전화번호를 적는 수첩이 있었는데 페이지에는 'ㄱㄴㄷㄹ,,,,' 이 적혀져 있어 순서대로 나열할 수 있었으며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필요하면 펴서 볼 때도 있었다. 또 집에는 큰 수첩이 있었는가 하면 집집마다 두꺼운 전화번호부책이 있었다. 그러나 번호부가 없을 때 빨리 전화를 걸어야 할 때는 114에 있는 아가씨들이 알려주곤 했는데 이들은 통상 약 삼천개의 번호를 외우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정보가 작은 전화기에 담겨있는 마당에 전화기를 잃는다는 사실은 자신의 영혼을 잃는 것과 같다. 현대인이 가장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제일의 품목이 휴대전화라니까! 세상이 왜 이다지도 내게 가혹한가를 묻게 될 때 저장되어 있는 손주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얼마나 많은 위로를 얻었던가?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되었는가 보다 할 때마다 내게 또 다시 투쟁의 의지를 북돋아주곤 하던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Children are the keys of paradise.'....Eric Hoffer 우리는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천국의 얼굴을 본다고 했다. 어려운 환자를 만나 방황할 때면 그 옛날 열악하기만 하던 시절 입원한 가난했던 환자들을 돌보시며 고개를 갸우뚱하시던 부친의 사진을 들여다 보며 얼마나 많은 영감을 얻곤했던가? 이제는 손주들과 같이 놀던 빨간색의 놀이터도 없어졌고 친구들과 등산하던 산도 없어졌고 그간 심혈을 기울여 써놓은 천여편의 작품과 훗날 쓸 글을 위한 자료들도 같이 사라졌다. 모든 기억을 지우는 전화의 초기화작업에 앞서 삼성서비스센타의 직원이 비밀번호를 몇 번 더 생각해 보라던 순간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모든 추억을 잃고 난 후의 허망했던 많은 고객들을 그가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머리가 갑자기 하얘지더라는 어느 치매 초기 환자가 한 경험은 이런 순간을 말하는 것인가? 과거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나! 치매란 이런 것인가? 1/30/2026. 박인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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