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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놀아요..!"

"그냥 놀아요..!" / 한형조 교수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 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고, 잠잘 때 잠은 안 자고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예전에 이 글을 읽고는 속된 말 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보통 내공이 아니면 힘든 것이겠다 싶습니다. 머리를 단순화시키는 작업, 그것은 우연이나 성격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수련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은퇴를 하고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뭐하시며 지내세요?” 나는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합 니다. “그냥 놀아요!” 그러면 모두들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고,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 생활 습관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은퇴후에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직에 있을 때는 모든것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것이 놀이입니다. 그 사람들은 일도 놀이처럼 하는 내 생활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놀이가 일이고 일이 놀이라고 생각하며 생활합니다. 그러니 “그냥 놀아요!”가 내 대답입니다. 오래 전에 버틀런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나이가 좀 들고 보니 '찬양(讚揚)'의 의미를 알 것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너무 바쁘게 삽니다. “나 요즘 너무 바빠. 바빠서 정신이 없어!... ” 이렇게 타인에게 말하면 뭔가 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바쁜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회의 일원으로서 오랫 동안 살다 보니 우리 스스로도 뭔가 할 일이 없으면 불안해지거나 불러주는 이가 없으면 소외감(疎外感)을 느끼거나 늘상 무엇인가를 해야 하고, 늘상 무엇인가에 쫓기듯 살아야 오히려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러셀이 말하는 게으름이란 개미와 베짱이에서의 베짱이처럼 놀고 먹는 게으름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는 게으름이란 존재의 존엄성을 놓치지 않기 위한 여유(餘裕)로움과 여백(餘 白)입니다. 진정 행복해 지려면 게으름을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통해서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라고 말하는 책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존재와 자유를 스스로 확보할 만한 여유가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행복한 창조의 시간은 게으름으로부터 나온다. 행복해지려면 게을러지라!”라는 러셀의 처방이 저는 왠지 마음에 듭니다. 아일랜드 옛 시집에는 “어느 아일랜드 왕의 충고(忠告)”라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너무 나서지도 말고, 너무 물러서지도 말라. 너무 나서면 가벼운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너무 물러서면 무시할 것이다. 너무 거만하지도 말고 너무 겸손하지도 말라. 너무 거만하면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길 것이고, 너무 겸손하면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떠들지도 말고, 너무 침묵하지도 말라. 너무 말이 많으면 말에 무게가 없고, 너무 침묵하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너무 강하지도 말고, 너무 약하지도 말라. 너무 강하면 부러질 것이고, 너무 약하면 부서질 것이다." 결국 '너무'가 문제입니다. 너무 바쁘게 살지 말고 조금은 여백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보지 못했던 것이 보입니다. 그래야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입니다. 그래야 행복(幸福)이 보입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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