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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Enemy No. 1" - 공공의 적 제1호

"Public Enemy No. 1" - 공공의 적 제1호 "A truly great thoughts are conceived while walking."......Friedrich Nietzsche (1844-1900) '모든 위대한 사상은 걷는 가운데 잉태되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ㅡ thinking reedㅡ라고 말한 사람은 우리에게 유체역학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Blaise Pascal (1626-1662) 인데 그의 추가적인 설명에 의하면, 인간은 연약한 갈대와 같아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물 한 방울로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을 정도로 나약한 존재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므로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했다. 동물도 고등동물의 경우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원시적차원의 思考일 뿐 사색할 수 있는 능력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다. 동시대 프랑스를 산 또 하나의 석학인 Rene Descartes (1596-1650) 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했는데 그들에 의하면 인간으로 태어나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갈대와 같이 취약한 존재로 전락하며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G. B. Shaw 에 의하면 인류 중 2%만이 생각하며 3%는 자신이 생각한다고 생각하고 나머지 95%는 죽은 물고기가 떠내려가듯 살아가고 있다고 했으며 Carl Jung 같은 정신의학자는 생각하는 일은 어려우므로 인간들은 생각에 앞서 심판을 먼저한다고 했으며 영국의 문호 Samuel Johnson 은 그것을 하면 삶이 개선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인간들은 죽으면 죽었지 결코 하지 않는 것이 지적노력(intellectual labor) 즉 사고하는 일이라 했다.
그런데 특히 요즘 들어 인간들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인간들이 생각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에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인데 비근한 예로 우리가 왜 공부를 싫어했는가? 힘이 들어서가 아닐까? 기능성ㅡMRI 로 측정한 바에 의하면 인간이 생각할 때 실제로 해당부위에 혈류가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의 뇌의 기능은 거의 무궁무진하다고 하겠으나 한가지 결코 못하는 것이 있으니 두가지 사항을 한번에 진행하지 (process) 못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이 다른 행위에 개입되어 있으면 뇌는 사고하는 기능을 상실한다. 곧 인간이 외부세계로부터 완전차단이 이루어졌을 때만 비로소 사고능력이 발휘된다는 말인데 요즘 세대는 인간이 혼자 있을 수가 없게 되었으나 바로 휴대폰의 출현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첫번째 물건은 무엇이며 만약 잃어버렸을 때 뚜껑이 열리는 듯 황당한 경험을 하는 물건이 무엇일까? 하나의 성공은 반드시 하나의 실패를 불러온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싫어하는 생각하는 일을 이 괴물의 출현이래로 인간은 더욱 하지 않게 되었다. 관공서, 은행 등 주요기관의 전화번호를 모르면 114를 돌렸는데 안내양이 나와 해당번호를 알려주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안내양들은 약 삼천개의 번호를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 여자환자들을 진료할 때 제일 처음하는 질문이 마지막 생리일인데 요즘 환자들은 그런 간단한 것마저도 휴대폰을 들여다 보아야 답이 나오는 시절이 되었다. 인간의 뇌는 불과 1.3-1.4kg 에 이르는 기관이지만 뇌는 인체가 쓰는 산소와 연료의 1/5을 사용할 정도로 연료소모량이 많은 기관인데 뇌의 일차적 기능은 생각하는 일이다. 따라서 인간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구태어 귀한 산소와 에너지를 보내려 하지 않을 것이며 근육을 쓰지 않으면 근육의 양이 적어져 기운이 약해지 듯 用不用設에 의거해 뇌도 퇴화를 면치 못하며 바보가 되어갈 것이다. 요즘 인간들은 걷지를 않는다. 그래도 다행히 저기 한사람이 걸으며 심각하게 사색하는 듯하여 다행이라 여겼으나 가까이서 보니 그 역시 휴대폰을 보면서 걷고 있구나. 그러면 그렇지! 아해야, 말리지 마라, 그것 말려 무삼하리요! 8/23/2023 박인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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