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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들"

"선한 사마리아인들" "The greatest degree of inner tranquility comes from the development of love and compassion. The more care for the happiness of others, the greater our own sense of well-being.".....Dalai Lama (b.1935) '가장 커다란 마음의 평화는 사랑과 연민의 정으로부터 울어난다. 따라서 타인의 행복에 기여하는 바가 크면 클수록 우리의 행복도도 증가한다.' 누가복음 10장 25~37에 이르는 말씀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기술이 있다.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초죽음이 된 낯선 행인을 레위인 (유태인의 한 지파)과 제사장은 그저 지나치지만 사마리아 출신의 이방인은 그를 응급처치를 한 후 자신의 당나귀에 태워 여인숙에 맡긴 후 두 데나리온을 지급한다. 그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려 추가비용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고 그는 가던 길을 다시 간다. 그것이 기원이 되어 '선한사마리아 법'이 제정이 되어 응급구조업무에 종사하다 발생한 의료적과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도록하는 법이 제정이 되어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다.
필자도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의사를 호출하는 것이 아닌가? 손을 번쩍 드니 남자승무원이 황급히 나를 기체후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어느 중년여성이 기체바닥에 누워있는데 마침 하복부의 통증을 호소하는 바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보다. 바로 내가 전공하는 분야가 아닌가? 간이장막을 치고 잠시 진료를 하니 단지 관찰만을 요하는 상황으로 판단되어 자리에서 쉬게하였고 비행도중 별 문제없이 귀국했고 얼마 후 KAL로 부터 와인 한 병을 선물로 받은 일이 있다. 그러나 의사들이 이런 응급 Call 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가 있으니 물론 응급처치 중에 발생한 과오에 대해서 면책이 된다고는 하나 반드시 그렇지 않은데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자동차사고를 목격했다 치자! 의사로서 생명을 구하고자 닫힌 자동차 문을 열어 환자를 꺼냈다. 그러나 환자를 움직이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척추에 손상을 추가로 가할 수 있으므로 응급처치를 도왔다고 하나 그냥 방치한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했으므로 본인이나 가족들은 이 의사의 과실부분에 대해 충분히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칼에 복부를 찔린 환자는 수술이 준비될 때까지 꽂힌 칼을 그대로 두는 것이 출혈이 적지, 돕는다고 하며 칼을 뽑으면 더 많은 출혈이 내부적으로 발생해 오히려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 만약 심장이 멎은 환자를 발견하고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너무 과격했던 탓으로 사람은 살렸으나 늑골이 골절되어 기흉 (氣胸)을 일으킨 경우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으니 내 지갑 찾아달라는 격의 논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 또 이런 종류의 응급처치는 대개 여타의 의료장비나 보조인력이 전무한 가운데 일어나는 성격의 것이어서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꺼리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선한 사마리아인'들에 의해 많은 구호업무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며칠 전에는 내가 돌보던 임신 6개월의 환자가 다리에 피를 흘리며 어느 신사의 손에 끌려 진료실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 신사의 얘기를 종합하니 자신이 운전을 하고 가는데 마침 인도를 걷던 환자가 맥없이 길에 고꾸라지더라는 것이었다. 얼핏 보아하니 임산부인 것 같아 자신의 차에 태워 가던 길을 마다하고 물어물어 약 15분을 달려 왔다고 하면서 환자를 인계하고 가는 것이었다. 임산부에게 흔히 발생하는 일이어서 간단한 처치 후에 환자는 귀가한 바 있다. 만약 죽어가는 자를 보고 그냥 지나쳤을 때 내게는 무슨 일이 생기며 환자에게는 무슨 일이 생길까? 그는 죽을 것이며 아마 나의 뇌리에는 죽어가는 인물의 얼굴이 지속적으로 떠오르며 일생을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사라져가는 극도의 이기주의적 사회에서 이런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보며 잃어가던 희망을 되찾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영적지도자의 하나인 달라이 라마는 따듯한 인간끼리의 정 (affection)이 없으면 어찌 인간의 삶이 가능하겠는가를 물으며 인간을 향한 애정과 자신보다 못한 존재들에 대한 연민의 정만으로도 자신들의 종교는 충분히 성립한다고 했다. 7/28/2023 /박인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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