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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잠시 잠깐일세"

♤ "인생 잠시 잠깐일세" 재작년 오월 친구들과의 만남이 서울대공원에서 있었다. 시골에 사는 탓에 서울대공원을 처음 갔다. 얼마나 내가 촌놈인지 서울대공원을 서울대학교 공원으로 생각한 적도 있었던 나였다. 학교를 졸업한 지 사십년이 훌쩍 넘고 근처 구경을 끝내고 약속 식당에 갔더니 시골 촌놈 만나러 회장 친구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십여 년 만에 처음 만남이지만 목소리 행동 변한 게 없는 친구다. 그래도 세상 열심히 살았던 탓에 기사 딸린 자가용도 있단다. 친구는 식사를 하는 중에 이십 여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오늘 촌놈이 왔으니 내가 밥을 산다"고 했다. 공짜는 그래서 좋다고 했던가... 평소라면 불고기 20인분을 먹었다는데 40인분. 배로 먹어 치웠으니... 이 친구는 십여년 전에 여행경비 전액을 부담하고 친구들을 부부동반으로 캐나다 여행까지 시켜주고 금강산, 캄보디아 여행 갈 때 찬조금도 듬뿍 낸 친구다. "자네, 친구들을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찬조했어..." "돈이 별건가... 운이 좋아 돈 좀 만진것 뿐일세"
"어이 김회장! " 어느 친구가 재산이 얼마나 되는가 묻는다. "재산...?" 친구는 웃으면서 하는 말이 "인생 사는 거 잠시 잠깐이야. 재산은 있다가 없는 거고. 죽을 때 뭐 가지고 갈 께 있나! 인생 사는 게 잠시 잠깐인데..." 친구는 아직도 담배를 피고 있었고 술은 맥주만 마신다고 했다. 그렇게 살았던 친구였는데 며칠 전 반창회장으로부터 문자 메세지 한 통이 왔다. '김xx씨 별세, 발인 26일 05시. 부의금, 조화는 정중히 사양합니다.' 뒷 이야기지만 젊어서 친구는 하는 사업마다 잘돼서 수도권에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몇 천억 재산가가 됐다고 한다. "인생 산다는 거 별건가... 잠시 잠깐일세" 친구가 하던 그 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당신, 2년전만해도 머리가 반백 이었는데 이제 전부 흰머리가 됐어요." 며칠 전 아내가 하던 말이 귓속에서 뱅뱅거린다. 친구가 하던 말이 맞다. 아니 명언이다. "인생 사는 거 별건가... 잠시 잠깐일세" 그래도 그 말을 입으로만 맞다 맞아 하면서 나는 그래도 아껴야 한다고 이 더위에 에어컨 켜는 걸 이유 붙인다. '에어컨 켜고 살면 면역력이 떨어져 절대 안돼.' 입으로 하는 말이지만 속 마음은 전기료가 부담스러워서...
''인생 산다는 거 별건가" "잠시 잠깐일세" 나도 술 한잔 하면 곧잘 그 말을 하는데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친구의 삶은 역시나 대인배 삶이었고, 내 삶은 역시나 소인배 삶이라는건 부인 못할 사실일세. 내 삶이 소인배 삶인 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 소인배 그룹에서 빠져 나갈 꾀도 없으니... - 詩庭 박태훈의 '해학이 있는 아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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