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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추수감사절,

첫 추수감사절, /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청교도들 102명이 1620년 12월에 보스톤 남쪽 풀리머스 항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배 안에서 삼 개월을 지내다 이듬해 3월에야 상륙했습니다. 아무리 여유 있게 식량을 준비했어도 절식 금식하며 겨우 버텼을 것입니다. 항해 중에 죽은 자를 포함해 상륙 직후에 이미 반 이상이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신대륙은 그들로선 물도 다르고 풍토병도 있고 지도는커녕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모릅니다. 아무리 땅이 비옥해도 처음부터 땅을 개간해야 합니다. 농사를 지을 만한 날씨 온도 등에 대한 기초적 자료도 전혀 없습니다. 시쳇말로 완전히 "맨 땅 에 헤딩"하기였습니다. 틀림없이 여러 시행착오 를 겼었을 것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주변의 왐파스아크라는 인디언 부족에게서 옥수수 재배법을 배워서 겨우 첫 수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는 사냥을 하거나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했을 것이며 새 옷을 지어 입을 여유 도 없어서 몰골이 말 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첫 번째 감사절을 당시상황으로 돌아가 상상해보십시오. 칠면조를 굽고 온갖 풍성한 요리를 마련하고 화려한 옷으로 차려 입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밴드에 맞춰서 스퀘워 댄스를 추는 것과는 완전히 거리 가 멀었습니다. 상륙한지 거의 8달이 흘렀기에 그 사이에 희생자가 더 나왔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슬픔과 비탄의 예배였을 것입니다. 음식이라곤 옥수수로 만든 것 몇 가지 조촐 하게 차렸을 것입니다. 요컨대 풍성한 수확에 대한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에 대한 처절한 감사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최근에 잃었거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와보지 못한 사람 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사절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민한 목적 이 무엇이었습니까?
지금 남미에서 미국으로 올라오는 캐러밴이나 한국 이민 1세대처럼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려는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영국 국교도들의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키려는 뜻이었습니다. 당시는 개신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잡아 죽였습니다. 그렇다고 개종하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었습니다. 대양을 장기간 항해하는 것은 당시의 일반인에게 아주 위험했습니다. 또 미지의 대륙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영국을 출발할 때부터 그들은 자기들 목숨을 하나님께 완전히 저당 잡았습니다. 먼저 희생되는 자는 아무래도 노약자 부녀자 아이들이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추수감사절 잔치는 부모와 자식을 겨우 몇 달 전에 여윈 사람들 의 통한의 예배와 함께 이뤄졌습니다. 반 이상 죽었으니까 죽지 않은 가족이 있는 가정은 하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는데 풍성히 즐길 여유가 과연 있었겠습니까? 옥수수로 만든 그 간단한 음식마저 목이 메어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원망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 단순히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로 가나안 땅 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했던 것처럼 신대륙에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 자기들의 소명임 을 확신했습니다. 먼저 죽은 자들은 그 일을 위해 순교의 제단에 피를 뿌렸을 뿐 아니라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좋은 천국에 이미 가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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