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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가지구(東家之丘)

역사로놀자 - 동가지구(東家之丘) - 동쪽 집에 사는 구라는 사람, 공자를 알지 못해 사람 보는 눈이 없음.. [동녘 동(木/4), 집 가(宀/7) ,갈 지(丿/3) ,언덕 구(一/4)], 늘 접하는 물건은 귀한 줄을 잘 모른다. 들에 있는 꿩이나 고니 보다 자기 집에 있는 닭이 더 가치 있는데도 천시하여 家鷄野雉(가계야치)나 貴鵠賤鷄(귀곡천계)란 성어를 낳았다. 마찬가지로 가까이 있는 사람의 재주는 잘 판단하지 못한다. 실제 큰 능력이 있는데도 사회에 널리 알려진 다음에야 아는 격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 燈下不明(등하불명)과 같이 目不見睫(목불견첩)이란 말도 있다. 눈과 가까이 붙어 있는데도 눈썹을 보지 못하는 경우다. 중국 최고의 스승이자 사상가 孔子(공자)는 옆집 사람에게 대수롭지 않게 동쪽에 있는 집(東家)의 구라는 사람(之丘)으로 불렸다. 공자는 60세가 넘은 아버지와 20대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 魯(노)나라의 수도 曲阜(곡부) 근처의 尼丘山(니구산)에서 자랐다. 그래서 자가 仲尼(중니), 이름이 丘(구)가 되었다고 한다. 가난을 이겨내며 젊어서부터 志學而立(지학이립)하여 큰 교육자가 되고, 사방에서 가르침을 구하는 제자들이 모여들어 3000명이 넘었다. 六藝(육예)에 능통한 제자가 七十二賢(칠십이현)에, 고락을 함께 한 제자만 10명이나 되어 孔門十哲(공문십철)이라 불렸다. 이렇듯 대단한 공자라도 젊어서 가까이 살던 이웃 사람조차 그의 명성을 알지 못했다. 공자집의 서쪽에 살던 사람은 공자를 가리킬 때마다 ‘우리 집 동쪽에 살고 있는 구씨(俺東家之丘/ 엄동가지구)’라 불렀다며 ‘孔子家語(공자가어)’에 전한다고 했다. 여기서 유래하여 실제 등장하는 곳은 後漢(후한)의 학자 邴原(병원, 邴은 고을이름 병)의 이야기에서다. 병원이 젊은 시절 학문이 높은 스승을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때 한 사람이 병원의 집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유명한 鄭玄(정현)선생이 계신데 왜 멀리서 찾으려 하느냐고 꾸짖었다. 후한 말기 제자를 많이 기른 정현은 자가 康成(강성)인 대유학자였다. ‘그런 사람을 두고 신발을 끌고 멀리 떠나려 하다니 정현을 동쪽 집 구로 여기는 것 아닌가(君乃舍之 躡屣千里 所謂以鄭爲東家丘者也/ 군내사지 섭사천리 소위이정위동가구자야).’ 躡은 밟을 섭, 屣는 짚신 사. ‘三國志(삼국지)’ 魏書(위서)의 주에서 비롯됐다. 자신이 잘 알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의 재주는 별 것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가까운 무당보다 먼 데 무당이 영하다’고 믿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화려한 업적을 쌓은 사람은 그것만큼 훌륭하여 온갖 조건을 내세우며 영입하려 한다. 하지만 가까운 데서도 조금 더 노력을 기울이면 인재는 곳곳에 있다. 열 길 물속은 알고 사람 속은 모른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재주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먼저다. / 제공 : 안병화(전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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