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눈을 가려 주신 하나님"

🌻오늘의 말씀(言)🌻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 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當身)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先生)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눅8:49~50) While Jesus was still speaking, someone came from the house of Jairus, the synagogue ruler. "Your daughter is dead," he said. "Dont bother the teacher any more." Hearing this, Jesus said to Jairus, "Dont be afraid; just believe, and she will be healed." 🍇 오늘의 보너스(bonus)🎶 "눈을 가려 주신 하나님" 2003년 개봉되어 1100만의 관객(觀客)을 동원(動員)한 실미도라는 영화(映畵)가 있다. 1971년 8월 23일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事件)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映畵)다. 1968년 1월, 1.21사태가 터지자, 그에 보복하고자 우리나라에서도 실미도 부대를 만들었다. 북한의 특수부대원 31명과 동일한 31명의 부대원으로 구성되었는데, 1968년 4월에 창설되었다고 해서 ‘684’부대로 불렀다. 김일성 주석궁을 침투하기 위해 3년 4개월 동안 지옥훈련을 받았지만, 남북화해분위기로 인해 침투가 계속 지연되었다. 특수부대원들은 침투 지연과 대우에 대한 불만이 폭발해, 그들의 훈련을 담당했던 기간요원들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기적(奇蹟)적으로 살아남은 기관병이 한 사람 있었는데 바로 양동수 장로다. 양동수 장로는 처참한 살육의 현장에서 총알이 목을 관통하는 총상을 입었는데 중요한 부분을 총알이 다 피해 갔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당시 수술을 담당했던 군의관이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다.하나님께서 살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양동수 장로(長老)는 원래 모태신앙으로, 어머니가 전도사였다. 어머니 때문에 할 수 없이 교회는 다녔지만 믿음이 없었고, 말썽을 자주 일으키는 사고뭉치였다.
대학에 다닐 때에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제적을 당하게 되었는데, 군에 입대하는 조건으로 휴학을 할 수 있었다. 입대 후, 실미도에 배치되어 실미도 부대원들을 훈련시키는 기간요원이 되었다. 사건이 터지던 날, 양동수 하사는 인천에 나가기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나 휴게실에 가서 세면을 하고 막 군복 상의를 입으려고 단추를 채우고 있는데, 총소리가 콩 볶듯이 났다.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해 밖으로 나갔는데 훈련병이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잠시 후, 훈련병 하나가 핏자국을 보고 그가 있는 곳으로 왔다. 그는 어렸을 때 들은사자굴에서 구해주신 다니엘 생각이 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祈禱) 했다. ‘하나님,저 훈련병의 눈을 가려 주셔서 제가 안보이게 해주세요.’ 그런데 놀랍게도 핏자국이 흥건한, 그가 쓰러져 있는 곳까지 왔음에도 그를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 몸을 움직여 모래사장에 엎드려 있는데, 이번에는 2명의 훈련병이 핏자국을 보고 양동수 하사를 찾으러 다가오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으로, 그들의 모습이 죽음의 사자처럼 보였다. 또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들의 눈을 가려주세요.’ 그들도 그의 앞까지 와서 이러저리 살폈는데 양동수 하사가 그 자리에 있었음에도 보지를 못하고 왔던 길로 돌아갔다. 2번씩이나 하나님의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또 한번의 기적은 사건 발생 10시간만에 구조헬리콥터가 왔는데, 구조되기 전에 피가 멎었다는 것이다. 얼마 뒤, 병원에서 양동수 장로는 자신이 기적적으로 살아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고(事故)가 있던 그날 그의 어머니가 꿈을 꿨는데 군복을 입은 아들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살려달라고 매달렸다는 것이다. 꿈에서 깬 그의 어머니는 즉시 교회로 달려가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기도하는 바로 그 시간 양동수 장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22년 동안 망나니 같은 아들을 위해 흘린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죽음에서 건져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 사망(死亡)의 자리에서도 눈을 가려 주시고 건져주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세상 가운데 늘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께서 창조(創造)하신 아름다운 지구(地球)별(star) 의 나라 '단' 한 번 뿐인 나그네 여행(旅行)길에서 창조주(創造主) 하나님께 감사,찬양(讚揚) 드리며"삶"의 예배(禮拜)로 살아가는 청(請)함 받은 카톡 친구님들 오늘도 '멋진' 추억(追憶)들을 만들어 가셔요. 🌹대단히感謝합니다.'샬롬'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일본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 고 추 장  🌶

🌶 고 추 장  🌶 고추장에 관해서 특별한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게 갈비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의 일이다. 한개도 아니고 열개씩이나 골절되어 꼼짝달싹을 못하고 아편으로 통증을 겨우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혈압이 올라가고 혈당이 올라가 혼수지경에 이르니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도 어떻해서든지 날 살려보려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왔지만 모두가  헛수고일 뿐이었다. 나 또한 집사람을  혼자 살게 만들면 천벌을 받겠기에 열심히 음식을 먹으려 애를 썼지만 구역질만 더 할 뿐이었다. 여행다닐 때 고추장 단지를 꾀차고 다니며 햄버거에 발라먹던 생각이 나서 고추장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고추장을 죽에 넣어 먹으니 신통하게 잘 넘어가는데 그 맛 또한 기가막혀 부글거리는 뱃속까지 편안해졌다. 덕분에 문병오는 사람마다 고추장 단지를 가져오는 바람에  고추장 벼락을 맞을 지경이 되었다. 그 후로는 고추장 단지가 내 식탁에 주인이 되었다.   고추장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고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몰라도 신통하기 짝이 없었다. 소태 같던 입맛이 꿀맛이요,  구역질도 잠잠해지고 느글거리던  뱃속까지 고분고분 고추장말을 잘 들으니 과연 고추장의 위력이 대단하다. 내 미국 친구들이 겨울만 되면 단골처럼 감기로 골골대고 있을 때 나는 감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그들이 날보고 너는 어떻게 감기 한 번 안걸리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내가  건강한 것은 김치 파워야.  너희들도 김치를 먹어라." 하고  자랑을 했는데 이제는 고추장의 효능이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어린 아기를 달랠 때 호랑이 나온다 하면 뚝 그치고, 순사 온다 하면 뚝 그치듯이 뱃속이 앙탈을 부리면 고추장 먹는다  하면 조용해 질 것 같다.  고추는 남미와 아프리카가 원산지란다. 고추의 매운 맛은 알카로이드의 일종인 캡사이신 때문이란다. 이 캡사이신이  자극을 주어 발효작용을 해서 감기 열을 내리기도 하고 위도 자극해서 위액 분비를 촉진해...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 헤아릴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첩첩산중에 상당히 가난한 곳이다.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가정 형편도 안 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도시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나는 대구 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에서 나의 석차는 68/68, 68명 중에 꼴찌를 했다. 지독하게 부끄러운 성적표를 들고 고향으로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표를 부모님께 내밀 자신이 없었다. 무학의 한을 자식을 통해서 풀고자 했는데, 맨 꼴찌라니...!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부모님을 떠올리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 지우개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 1등으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초등 학교도 못다닌 무학이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말했다. "찬석이가 공부를 잘했더나 ? 아버지가 말했다. "앞으로 두고 봐야제, 이번에는 우짜다가 1등을 했는가배...!" "아들 하나는 잘 뒀구먼, 1등을 했으면 잔치를 해야제!" 그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 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 뿐인 우리집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제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부지 ~ !"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서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 박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