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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모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앎과 모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안다면 무엇을 알고 모른다면 무엇을 모르겠습니까. 그보다는 계속 존재에 대해 물으십시까 너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가를 물으십시오 그때 비로소 왜 알아야 하는지 왜 몰라서는 안 되는 지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너의 문제 속에 내가 있고 나의 문제 속에 네가 있음을 그리고 세계의 문제가 또 따로 있지 않음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읽은 책들에는 역사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었습니다. 일일이 열거하기엔 너무 많은 분들이지만 그 분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평생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 어린 나도 입술을 꼭 깨물고 주먹을 쥐었습니다. "나도 커서 어른이 되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세월이 흐르고 어른이 되면서 점차로 어린 시절의 꿈은 사라지고 먹이를 찾아, 편리를 찾아, 욕심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남에게 밟히지 않으려고 아니 밟는 위치로 자리를 잡으려고 속고 속이며 꾀만 늘어갔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것을 지혜라고 가르치는 선생도 많았습니다. 이용 될만한 사람만 만나서 우정이니, 사랑이니 하는 헛된 맹세를 하며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편을 가르고 적을 미워하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세월 말입니다. 카멜레온은 나의 모습이며 나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뱀이고, 원숭이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깊은 곳에서 갈망하는 소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였고 흔들릴 수 없는 소리는 영원한 말씀의 소리였습니다. 사랑의 소리! 영원한 말씀! 나는 인생의 무대에 노을이 물들고야 비로소 사람이 사는 길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가야할 바른 길에 들어섰습니다. 서툴지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걸음마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좋을 것이 구분되고 해야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이 갈라졌습니다. 사랑 받고 싶은 것처럼 사랑할 것이며 존중받고 싶은 것처럼 존중할 것이며 인간의 문제가 나 개인의 문제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변함없어야하는 원칙이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왜 눈물이 흐를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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