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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콜린 사령관 이야기

파워콜린 사령관 이야기// 미국 빈민가 출신의 흑인 육군대장 콜린 파월장군은 1991년 걸프전의 전쟁 영웅이며 다국적군의 총사령관으로서는 처음으로미국 대통령후보로 거론 될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나이 17세가 되던 해여름방학에 코카콜라 음료수 제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맨 처음 출근하는 날 백인 학생에게는 기계 옆에서 콜라를 담는 일을, 흑인인 그에게는 바닥을 청소하고 걸레질 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그래도 그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그는 그 때를 회상했습니다. '그때 나는 최고의 청소부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청소부는 쓰레기통을 비웁니다. 슬픔의 쓰레기,아픔의 쓰레기, 절망의 쓰레기,낙심의 쓰레기를 비워주는 청소부입니다. 청소부는 걸레질을 합니다. 때를 닦아주고, 죄를 닦아주고, 허물을 닦아주고, 입술로 뱉아 내는 독을 닦아주는 청소부입니다. 청소부는 쓰레기를 치웁니다. 깨진 마음, 망가진 마음, 비뚫어진 마음, 왜곡된 마음을 치유해줍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열심히 걸레질을 했습니다. 방학동안의 아르바이트가 끝나자 감독관이 콜린 파월에게 "자네 일 잘하는군" 콜린 파월이 대답했습니다. "오히려 제게 청소부로 일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감독관이"자네의 그러한 성실한 모습은어디서 배웠나?“ " 네 저는 성경에서 배웠습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편 뺨을 돌려대며 속옷을 달라거든 겉옷 까지 주며 오리를 가자하거든 십리를 가주고 핍박하는 자는 그를 위해 기도하고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 다음해 여름 방학 때에 그 공장에 아르바이트를 하러간 콜린파월은 콜라를 채우는기계 앞에 앉아서 일할 수 있었고 또 그 다음 해에는 부감독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뉴욕 빈민가 출신의 한 흑인소년이 오늘날 세계다국적군의 최고의 수장인 총 사령관인 대장의 빛나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불평하지 않고 늘 감사하며 자신의 직무에 최선을 다한 삶의 열매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태도는 어떤 모습 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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