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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리리해 와 사해 ☆

 

                         ☆ 갈리리해 와 사해 ☆



팔레스타인에는  두 개의 바다가 있다.


하나는 맑은 물에서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초록색 바닷물이 방파제에 부딪히며 아름다운 물보라를 일으킨다.

나무들은 그 위에 가지를 드리우고 목마른 뿌리를 뻗어 갈증을 풀어줄 물을 빨아들인다. 


산골짜기로부터 흘러내리는 요단강의 물이 이 바다를 더욱 빛나게 적셔준다. 

햇빛을 받은 바다가 환하게 미소 짓는다.

사람들이 그 근처에 집을 짓고 살며 새들도 둥지를 틀고 산다.

그 바다가 있기에 모든 생명체들은 더없이 행복하다.


요단강은 남쪽으로 흐르다가 다른 바다를 만난다.

이 바다에는 물고기들이 튀어 오르지도 않고, 나뭇잎의 펄럭임도, 새들의 지저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없다.

여행객들도 아주 급한 용무가 있지 않는 한 이 곳을 지나가지 않는다.


물 위로는 무거운 공기가 감돌고 있으며, 사람도, 짐승도, 새도 그 물을 마시지 않는다. 


무엇이 인접해있는 두 바다를 그토록 다르게 만들었을까?


요단강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요단강은 두 바다에 똑같이 좋은 물을 공급한다. 

바다 속 토양 때문도 아니고, 주변 지역의 토양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갈릴리 해는 요단강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가두어 두지는 않는다.

한 방울의 물을 받아들이면 한 방울의 물은 흘려보낸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언제나 똑같이 이루어진다.


다른 바다 사해(死海)는 얌체처럼 욕심껏 받아들이기만 한다. 

그리고는 조금도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흘러 들어오는 족족 가두어 둔다.


갈릴리 해는 내어주고 훌려 보내면서 살아있다.

또다른 바다는 아무 것도 내어 놓지 않는다. 

그래서 이 바다는 ‘사해(死海)’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세상에도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팔레스타인에 두 종류의 바다가 있듯이.....



이글은 브루스 바턴(Bruce Barton)이 쓴 [아무도 모르는 사람(The Man Knows)]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갈릴리 해와 사해는 호수이다.

너무 크다보니 옛날부터 사람들이 바다라고 불러서 그렇게 이름 지어졌다. 


사해(死海)는 요단강의 물을 받아들이려고만 했지 내어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호수 안에 물이 고이고 증발되어 점점 염분의 농도만 높아졌고, 결국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호수로 변하고 말았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는 옛날 선조들의 지혜는 괜한 말이 아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재산은 퇴비와 같다’고 말했다.

퇴비는 적당히 묵힌 다음에 제 때 논이나 밭에 뿌려주면 농작물을 잘 자라게 하는 좋은 거름이 된다.

그러나 퇴비를 쌓아놓고 오래 묵히고만 있으면 고약한 냄새만 진동할 뿐 아무 쓸모가 없는 쓰레기가 되고 만다.


진정한 부자는 많이 소유하고 쌓아놓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사람이다.


몸이나 피부에 좋다면 사족을 못 쓰고 싹쓸이하려는 졸부들이나 명품이나 고가품이 아니면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는 오랜지 족들에게 나눔과 베품 은 오히려 사치스런 말일지 모른다.


김밥 장사하면서, 삯바느질하면서, 피 같이 모은 돈을 자신보다 더욱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선뜻 내놓을 줄 아는 할머니가 참된 부자다.


이제는 ‘가진 자’의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

베풀지 못하고 갖고만 있으면 진정으로 가진 사람이 아니다.

단지, 많이 소유하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서 ‘천민자본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늘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선진국은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나라가 아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베풀어 줄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나눔과 베품의 미학’이 종교인들이나 기업가들만의 미덕은 아니다.


또한 나눔의 대상이 물질적인 것으로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생명, 지식, 정보, 사랑, 희망, 행복 등과 같이 물질이 되었든 정신이 되었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베풀려고 할 때 우리는 갈릴리 호수처럼 늘 맑음과 건강함이 넘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과 행복의 세레나데를 합창할 수 있는 삶을 함께 열어갈 수 있다.


‘나눔의 뺄셈은 곧 희망의 덧셈’이라 하지 않던가!

베푸는 일은 베품을 받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베푸는 사람에게도 베품이 돌아가도록 한다. 


사랑을 서로 받으려고만 하면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게 된다.

사랑을 서로 나누어주려고 할 때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베푼 사랑이 흐르고 흘러 또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지고, 

그렇게 해서 온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갈릴리 해처럼 늘 내어주고 베풀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움과 싱그러움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봉사하고, 기여하며, 헌신하고 공헌하기 때문에 아무리 퍼내도 결코 마르지 않는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향기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다른 하나는 사해처럼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탐욕과 과욕의 화신이 되어 육신은 기름지지만 영혼은 갈수록 메말라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서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며 영혼이 썩어가고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갈릴리 해가 될 수도 있고 사해가 될 수도 있다.

내어주기 때문에 부자가 될 수도 있고, 

내어놓지 않기 때문에 가난해질 수도 있다.


베풀기 때문에 행복할 수도 있고

갖고만 있기 때문에 불행할 수도 있다.



삶을 변화(變化)시키는 33가지 우화(寓話)

<저자미상>

 



                               ☆ 갈릴리와 사해 2 ☆


이스라엘에는 큰 두 호수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바다라고 불렸을 만큼 크죠. 

이 호수들은 남북으로 흐르는 요단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위쪽은 갈릴리 호수가, 아래쪽은 사해가 위치해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고기잡이 한 사건이 성경에 여러 번 기록되어 있듯이 물이 맑아서 고기들이 많이 삽니다.

 

그러나 아래에 위치한 사해는 염분의 농도가 너무 높아 물고기가 전혀 살지 못합니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익사할 염려가 없이 물에 붕붕 떠 다니는 호수입니다.


이 호수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위치도 비슷하지만 한쪽은 물고기가 살고 다른 한 쪽은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갈릴리 호수는 헤르몬산으로부터 눈이 녹아 내린 물을 받고, 

그 물을 다시 남쪽에 있는 요단강으로 내 보냅니다. 

그러나 사해는 요단강을 통해서 들어온 물이 다시 흘러나갈 통로가 전혀 없습니다. 

물을 받기만 하는 호수인거죠.

우린 이 두 호수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는 다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명령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누가복음 6:38).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이유는 주기 위해서 입니다. 

만약 우리가 받을 것을 움켜지고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영혼은 사해와 같이 생명 없는 영혼이 되고 말지요.


여러분은 갈릴리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사해가 되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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