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어느 교인의 코로나 바이러스 일지*

*어느 교인의 코로나 바이러스 일지*

3/19/20 목요일 새벽 3시 쯤 아들이 몸이 아프다고 깨워서 보니
아들이 열이 많이 남.( 집에 체온계가 없어서 정확히 알수 없음 ) 머리도 아프다고 해서 아침에 혹시나 코로나 인가 ? 겁이나서 아들을 데리고 littleneck urgent care( 코로나 검사 해주는 장소 ) 방문 하였음.
Drive through 라서 차들이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온라인으로 예약 안되면 검사 안해 준다고 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온도계 찾으니 하나도 없고 타이놀 한 박스만 손님당 팔기에 사서 가지고 왔습니다.
오후에 온도계 준비 해서 아들 열을 재보니 99.7 - 103 왔다 갔다 함
저도 오후 부터 몸이 무겁고 머리가 몹시 아프고 귀도 먹먹해지고 타인놀을먹어도 가라앉지 않아서 저녁 7시에 northern urgent care 방문하여 flu 검사하니 negative 라고 합니다.
낮에는 CDC, 311, urgent care 다 전화를 했는데 숨쉬기 힘들고 입술이 파래 지면 ER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지켜 보면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비상으로 CDC에 우리 전화 번호를 남겨 놓있지만 한번도 우리 상태가 어떤지 전화로 확인 안 옵니다. ㅜㅜㅜ 그만큼 미국 보건부가 혼란 스러운 상태 였습니다.
Urgent care 의사는 자기네는 코로나 검사를 못하고 아들과 저의 증상이 혹시 코로나 일줄 모르니 체크 해보라고 의사가 말하면서 본인도 코로나 바이러스라 솔직히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남편과 아들이랑 일단 아무도 만나지 말고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자고 했습니다.

3/20/20 금요일 잘때는 기침 약이랑 5시간 마다 타이놀을 복용. 간간히 기침을 하면서 잤습니다. 두통과 근육통이 엄청 났고 억지로 물도 마셨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키면 눈 부심 때문에 오래 보지를 못했습니다.
두통이 심하니까 속도 미쓱 됐습니다. 아들도 자기 방에서 중간 중간 약을 먹으면서
계속 자더라구요. 남편은 근육만 조금 뻐근 하고 기침만 하면서 괜찮다고 했습니다
우리 식구 3명 다 입맛이 없고 입맛이 씁니다.

3/21/20 토요일 아침에 아들과 저의 열이 내려 가고 두통도 없어지고 몸도 가벼워져서 독감이었나 보다 하고 안도를 하며 좋아 했습니다.
그날밤에 아들이 머리가 아프다고 다시 타이놀을 먹고는 일찍 잠이 들고 저도 몸은 뻐근했습니다.

3/22/20 일요일 아침 예배를 드리려고 준비 하는데 순간 몸이 조요 오는것 같고 손가락 끝까지 저릿 하면서 다시 근육통이 심하게 왔습니다. 다행히 열은 없고 온 몸에 기운이 빠지고 다시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아들도 자고 저도 잤습니다.

3/23/290 월요일 몸이 기운은 없지만 두통이 느낌만 있고 심하지 않았습니다.
약간 귀도 먹먹한 상태 는 지속 되었습니다. 다행히 열은 계속해서 없었습니다 .
아들은 자택 근무를 하다가 중간에 침대에 드러눕고 저도 누워 있다 너무 지겹고 좀 나은을 같으면 화장실에 가서 청소를 하였습니다
크로락스를 여는데 이상하게 냄새가 하나도 안나서 남편과 아들을 불러 냄새를 맡아 보라 하니 들다 냄새가 안 난다고 이상하게 생각 했습니다. 다시 알코올을 가져다 코에다 대니
냄새가 안 났습니다.
저녁에 뉴스를 보니 후각, 미각을 잃어 버리는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아는 중요한 단어라는 것을 읽고는 아 !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구나 !! 했습니다.
3/24/20-3/27/20
아들은 정상 자택 근무를 하면서 중간 쉬는 것을 봤는데 본인은 다 나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중간 중간에 가벼운 두통, 근육통과 기운 빠짐이 왔지만 견딜만 하고 타이놀도 하루에2번정도 복용했습니다. 기침도 많이 줄었습니다
남편은 전혀 통증도 없고 근육통도 없고 기침만 간간히 하면서 후각만 기능을 못했습니다.

3/28/20 아들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저는 토요일 아침 하루종일 다시 기운이 빠지고 근육이 아파서 침대에서 있고 중간 중간 물도 억지로 마시고 식사도 맛 없어도 기운을 내기 위해서 먹었습니다

3/ 29/20 일요일. 최고로 컨디션이 좋고 입맛도 돌아왔습니다.
약간의 두통이 있지만 머리속은 깨끗해졌고 몸 상태는 다 낫지만 근육에 이상한 느낌은
지금도 있습니다.

앞으로 2주 더 자가 격리를 하려고 합니다. 확실히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것은 아니지만
( 중증 환자가 너무 많아서 저희 처럼 경증 상태는 병원서 안 받습니다 ) 코로나 증상 이었던 것을 알려 드리고 나누어서
혹시라도 코로나에 걸려도 당황하시지 말고 자가격리를 하시면 됩니다.

어제도 롱아일랜드에서 저희 식구랑 똑같은 증상을 가진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많이 이런 증상들이 생기는 것 같으니 재 경험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 경험을 교회에서 교인 들에게 나누어 주셔도 좋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일본

일본에 주재원으로 23년 살다온 친구가 12월 초에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가 어느 선술집 벽에 있는 낙서를 사진으로 찍어서 번역해준 건데 웃기면서도 의미가 심장합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두 줄 읽고 웃고, 두 줄 읽고 무릎 치고... 와, 뭔가 조금은 통달한 '꾼'이 끄적거린 거 같습니다. <18 81="">  사랑에 빠(溺)지는 18세  욕탕서 빠(溺)지는 81세  도로를 폭주하는 18세  도로를 역주행하는 81세  마음이 연약한 18세  온뼈가 연약한  81세  두근거림 안멈추는 18세  심장질환 안멈추는 81세  사랑에 숨막히는 18세  떡먹다 숨막히는 81세  수능점수 걱정하는 18세  '혈당/압'치 걱정의 81세 아직 아무것 모르는 18세 벌써 아무것 기억無 81세  자기를 찾겠다는 18세  모두가 자기를 찾고 있는  81세. ———-!———!—— 몸에좋고 인생에 좋은 피자 열판 보내드립니다.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허리피자 가슴피자 어깨피자 얼굴피자 팔다리피자 주름살피자 내형편피자 내인생피자 내팔자피자 웃음꽃피자 오늘부턴 신년까지 늘 웃음과 행복한 일만 가득하세요.**

🌶 고 추 장  🌶

🌶 고 추 장  🌶 고추장에 관해서 특별한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게 갈비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의 일이다. 한개도 아니고 열개씩이나 골절되어 꼼짝달싹을 못하고 아편으로 통증을 겨우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혈압이 올라가고 혈당이 올라가 혼수지경에 이르니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도 어떻해서든지 날 살려보려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왔지만 모두가  헛수고일 뿐이었다. 나 또한 집사람을  혼자 살게 만들면 천벌을 받겠기에 열심히 음식을 먹으려 애를 썼지만 구역질만 더 할 뿐이었다. 여행다닐 때 고추장 단지를 꾀차고 다니며 햄버거에 발라먹던 생각이 나서 고추장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고추장을 죽에 넣어 먹으니 신통하게 잘 넘어가는데 그 맛 또한 기가막혀 부글거리는 뱃속까지 편안해졌다. 덕분에 문병오는 사람마다 고추장 단지를 가져오는 바람에  고추장 벼락을 맞을 지경이 되었다. 그 후로는 고추장 단지가 내 식탁에 주인이 되었다.   고추장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고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몰라도 신통하기 짝이 없었다. 소태 같던 입맛이 꿀맛이요,  구역질도 잠잠해지고 느글거리던  뱃속까지 고분고분 고추장말을 잘 들으니 과연 고추장의 위력이 대단하다. 내 미국 친구들이 겨울만 되면 단골처럼 감기로 골골대고 있을 때 나는 감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그들이 날보고 너는 어떻게 감기 한 번 안걸리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내가  건강한 것은 김치 파워야.  너희들도 김치를 먹어라." 하고  자랑을 했는데 이제는 고추장의 효능이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어린 아기를 달랠 때 호랑이 나온다 하면 뚝 그치고, 순사 온다 하면 뚝 그치듯이 뱃속이 앙탈을 부리면 고추장 먹는다  하면 조용해 질 것 같다.  고추는 남미와 아프리카가 원산지란다. 고추의 매운 맛은 알카로이드의 일종인 캡사이신 때문이란다. 이 캡사이신이  자극을 주어 발효작용을 해서 감기 열을 내리기도 하고 위도 자극해서 위액 분비를 촉진해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우리 아버지 마음 (실 화 (實話)) " 헤아릴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첩첩산중에 상당히 가난한 곳이다. 그런데도 나의 아버지는 가정 형편도 안 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도시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나는 대구 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정말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에서 나의 석차는 68/68, 68명 중에 꼴찌를 했다. 지독하게 부끄러운 성적표를 들고 고향으로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표를 부모님께 내밀 자신이 없었다. 무학의 한을 자식을 통해서 풀고자 했는데, 맨 꼴찌라니...! 끼니도 제대로 못 잇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부모님을 떠올리면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 지우개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 1등으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 드렸다. 아버지는 초등 학교도 못다닌 무학이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말했다. "찬석이가 공부를 잘했더나 ? 아버지가 말했다. "앞으로 두고 봐야제, 이번에는 우짜다가 1등을 했는가배...!" "아들 하나는 잘 뒀구먼, 1등을 했으면 잔치를 해야제!" 그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 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 뿐인 우리집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목록 제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아부지 ~ !"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서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쥐어 박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