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시116:15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시작과 끝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2019, 2020, 2021년과 같이 시작과 끝의 매듭이 없이 매년 같은 해라면 참 많이 지루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년, 열두 달의 구별이 있기에 우리 삶에 지루함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 사흘의 카운트가 될 때 매일 아침을 새로운 은혜 가운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3:23)하고 주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인생은 이렇게 시작과 끝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늘 새롭습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시작과 끝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12월 31일이 한 해의 끝이고 1월 1일은 한 해의 시작입니다. 이 둘은 일초 간격으로 붙어 있습니다. 12월 31일 23시 59초가 한 해의 끝이고 1초가 지난 1월 1일 0시는 한 해의 시작입니다. 끝과 시작이 이렇게 맞물려 있습니다.
이러한 시작과 끝을 규정하는 시간은 크로노스 (연대기)의 시간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는 연대기적 시간이 아니어서 그 안에는 시작과 끝의 개념이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시작을 출생이라고 하고 끝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일 뿐입니다.
크로노스 시간에서 끝인 죽음이 오면 이제 곧 카이로스 시간의 새로운 시작이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시작이 펼쳐집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생으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영벌로 펼쳐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역에 대한 약속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새로운 시작을 부활이라고 부릅니다. 부활은 카이로스 시간으로의 진입이며 새로운 시작입니다.
크로노스 시간에는 끝이 있고 죽음이 있지만 카이로스 시간에는 늘 새로운 시작만 있지 끝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영원”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가까이 올수록 시작도 가까이 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새로운 시작을 잘 준비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아직 죽음이 오기 전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 준비를 잘 하는 사람이 내일을 멋있게 시작할 수 있듯이 삶 가운데서 죽음을 잘 준비한 사람이 죽음 이후의 새로운 시작을 멋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표현이 well-dying입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어떤 청년이든 중년이든 시간이 지나면 노년기에 이릅니다. 아무리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서 갖은 노력을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노년기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기로,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경건한 자의 삶을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의뢰하는 삶,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코람 데오의 삶, 그리고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갚는 예배자의 삶으로 그립니다. 이러한 시편 116편을 “할렐시”라 부릅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의 기도에 귀 기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더 자세히 듣기 위하여 하나님의 귀를 우리의 입 가까이에 구부려서 귀를 가까이 대시고 계십니다.
오 주여
우리의 삶이 오늘도 코람 데오의
삶이 되도록 하소서
우리의 기도와 간구에 귀 기울이소서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있게
사용하도록 하소서
이 아침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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